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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춘곡(수필)

과학주의자 2022. 5. 24. 19:36

상춘곡

 

 

정극인

 

속세에 묻힌 분들아 나의 생애 어떠한가

 

옛 사람들 풍류에 미칠까 못 미칠까

 

천지간 남자 몸이 나만한 이 많건마는

 

산림에 묻혀 있는 지락을 모르는가

 

 

초가삼간을 벽계수 앞에 두고

 

송죽 울창한 숲에 풍월주인 되었어라

 

엊그제 겨울 지나 새 봄이 돌아오니

 

도화 행화(살구꽃)는 석양 속에 피어 있고

 

푸른 버드나무 향기로운 풀은 가랑비 중에 푸르도다

 

 

칼로 말아냈나 붓으로 그려 냈나

 

조화신공이 물물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를 못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로다

 

물아일체로니, 흥이야 다른쏜가.

 

 

사립문을 걸어보고 정자에 앉아 보니

 

소요 음영하야 산일이 적적한데

 

한가로움 속 진미를 아는 이 없이 혼자로다

 

 

이봐 이웃들아 산수 구경 가자스랴

 

풀밟기는 오늘 하고, 목욕은 내일 하세

 

아침에 나물캐고, 저녁에 낚시하세

 

갓 괴여 익은 술을 갈건으로 받혀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수 놓고 먹으리라

 

 

화풍이 문득 불어 녹수를 건너 오니

 

청향이 잔에 지고 낙홍이 옷에 진다

 

술동이 비었거든 날더러 알리워라

 

 

소동 아이시켜 주가에 술을 물어

 

어른은 막대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

 

미음 완보하여 시냇가에 혼자 앉아

 

명사 위 맑은 물에 잔 씻어 부어 들고, 청류를 굽어 보니

 

떠내려오는 것이 도화로다

 

 

무릉이 가깝도다 저 들이 무릉인가

 

송간 오솔길에 진달래를 붙여 들고

 

봉우리 위에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천촌만락이 곳곳이 널려 있네

 

 

연하일휘는 비단을 펼쳤는듯

 

엊그제 검은 들이 봄빛도 유여할샤

 

공명도 날 꺼리고 부귀도 날 꺼리니

 

청풍명월 외에 어떤 벗이 있사올까

 

단표누항(누추한 곳에서의 가난한 생활)에도 허튼 생각 아니하네

 

아무튼 백년행락이 이만한들 어찌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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