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패스는 윤리적인가? - 이론 적용하기
2021년 초반에 탄생한 백신패스라는 개념은 당해 후반기부터 여러 선진국으로 확산되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을 시작으로 백신패스가 선진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은 백신패스 미부여자들에게 불이익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미접종자에 한해서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용하는 형식으로 백신패스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선진국 사회에 백신패스가 확산되면서, 백신패스가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시민사회의 반발도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 글은 앞서의 글들에서 정리된 삼원적 사회계약론을 백신패스에 적용하여 이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백신패스 논쟁은 개인의 자유권과 공익 간의 충돌로 나타나고 있으나, 불행히도 자유권과 공리를 동시에 고려하는 윤리학적 방법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그런 면에서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자유권과 공익의 문제를 동시에 처리함으로써 이러한 윤리적 문제에 해답을 제공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1.백신패스의 이해
백신패스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접종한, 즉 코로나19에 대하여 일정부분 면역력을 획득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전자 증명이다. 보통 백신패스는 코로나 백신을 2차까지 접종한 사람들에게 부여되며, 여러 국가들에서는 코로나를 앓았다가 나은 코로나 완치자들에게도 백신패스를 부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시행중인데, 다만 한국에서는 백신패스의 유효기간을 설정해서 지속적으로 추가 예방접종(부스터샷)을 접종하도록 하고 있다. 백신패스 소지자는 일반적으로 5-60% 정도 코로나에 면역력을 가지며, 백신패스 소지자의 절대다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중증 질환이나 사망을 경험하지 않는다.
백신패스의 목적은 백신 접종에 인센티브를 부여함과 동시에, 백신 미접종자들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더 많은 백신접종은 더 적은 감염자와 더 적은 중증 환자, 더 적은 사망자를 보장하며, 이는 코로나 사태의 완화를 앞당기고 마스크를 벗는 그 날을 앞당긴다. 또한 백신패스 제도는 백신 미접종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용하는데,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진 코로나 억제 효과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거리두기로 인한 경제활동 억제를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백신패스 제도를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도입하면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권 보호와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으며, 이는 락다운없이도 코로나를 이겨내게 도와준다.
백신패스의 문제는 이 제도가 백신 미접종자들에 대해 처벌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백신패스 소지자들에게 코로나 사태는 실질적으로 끝나가는 상황이지만, 미접종자들은 2020년과 마찬가지로 시설 이용을 제한당하며 그 시절의 불편을 그대로 경험해야 한다. 또한 비판자들은 백신패스가 사실상 국민들에게 백신을 강요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의학적 처치에 대한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시급하고 필요한 의학적 처치라도 응급실이 아닌 경우에는 반드시 환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백신패스는 의학적 선택에 대한 환자들의 자유를 사실상 침해하는 조치일 수도 있다.
2.자유vs공리 문제
백신패스 논쟁에서 핵심이 되는 논제는 자유와 공리 문제이다. 백신패스의 지지자들은 백신패스가 공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이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비판자들은 백신패스가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며, 그렇기 때문에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익과 자유가 동시에 다뤄져야 하며, 공익을 위해 자유를 유보하거나 개인의 인권을 위해 공익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백신패스 제도가 철회되는 경우 남은 대안은 사회적 거리두기 제도가 유력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 논쟁은 백신패스 제도와 사회적 거리두기 제도간의 효용 비교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삼원적 사회계약론에 비추어 보면, 백신패스 문제는 세금이나 군대 문제와 비슷하다. 징세와 징병은 공익에 부합하지만, 사람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면 어떤 이들은 인신의 자유까지 침해당한다. 이러한 경우 징세와 징병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긴 하지만, 그것이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부자세와 비례소득제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차등원칙에 따라 최소수혜자들에게 최대의 이득을 보장하기 때문에 역시 윤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우리가 보전해야 할 인권은 차등원칙과 공리주의에 따라 설정되기 때문에, 그 권리의 보장이 최소수혜자들의 효용과 사회의 평균 효용을 해치는 경우 보장되어야 할 권리 요목에서 제외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식을 백신패스에 적용하면, 백신패스는 미접종자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제도이므로 정당화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백신패스 제도와 사회적 거리두기 제도는 모두 사회구성원들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때문에 자유방임 상태보다 정당한데, 백신패스 제도 하에서 락다운으로 인한 피해자들(자영업자, 영화사업자 등)은 적어도 일부 소비자들(백신 접종자들)을 대상으로 이전처럼 경제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거리두기 제도에 비해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 반면 백신 미접종자는 거리두기 제도 하에서 그랬듯이 백신패스 제도 하에서도 경제활동을 제약당하지만, 이는 백신패스 제도나 거리두기 제도나 차이가 없다. 결론적으로 사회적으로 얻을 수 있는 총 효용은 거리두기 제도보다 백신패스 제도가 더 우월하며, 최소수혜자의 수도 백신패스 제도에서 더 적다.
또한 판데믹 상황에서 백신 선택권은 이러한 맥락 하에 제한될 수 있다. 백신접종은 바이러스 감염력을 낮추며, 동시에 중환자 수를 줄여서 더 많은 의료인력을 보존하게 도와준다. 즉 백신접종은 사회에 더 많은 생명권을 보장하고, 반대로 말하면 백신을 맞지 않는 행위는 감염자를 늘리고 의료적 대응력을 약화시켜서 사회의 생명권 보장에 지장을 준다. 이런 경우 '코로나로 사망에 이른 사람'의 이득이 '백신 선택에 대한 자유를 실질적으로 침해당한 사람'의 이득보다 더 적기 때문에, '백신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에서의 최소수혜자들의 이득이 '백신 선택권을 공익에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만 보장하는 제도'에서의 그것보다 적다. 그렇다면 우리는 차등원칙에 따라 백신 선택권을 공익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만 보장하는 방안을 택해야 하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듯이 판데믹 상황에서는 백신을 강제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백신패스 제도는 윤리적으로 정당해 보이며, 오히려 장려되는 것으로 보인다. 백신패스는 사회적 거리두기 체제에 비해 최소수혜자의 수가 적다. 또한 백신 선택권은 무한정으로 보장될 경우 최소수혜자들에게 더 많은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다른 몇몇 인권 요목들이 그러하듯이 공익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만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코로나 판데믹은 많은 중환자를 낳는 무서운 질환이기 때문에(오미크론이 확산되면 달라질 수도 있다), 국가는 국민들의 생명권 보장을 위해 백신 선택권을 침해해야 한다.
3.필요한 후속 조치들
백신 선택권은 공익을 위해 유보될 수 있지만, 이것은 모든 국민들에게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백신을 맞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백신패스 제도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말도 백신 미접종자를 잡아서 십자가에 매달고 거리를 순회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사회의 최소수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백신패스 제도를 도입했듯이, 우리는 또한 백신패스 제도 하에서의 최소수혜자들이 최대의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비슷하게 백신 선택권이 공익을 위해 유보되더라도, 권리는 최소한도로만 제한되어야 한다.
만약 미접종자들이 카페나 식당을 넘어서 마트와 식당, 병원, 관공서의 출입을 금지당한다면 미접종자들의 삶을 지속하는데 크나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미접종자들이 겪는 불이익은 사회적 거리두기 체제에서보다 훨씬 높을 것이며, 코로나에 걸려 죽는 대신 생필품을 구하지 못해 죽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접종자들에 대한 제재는 유지하되, 그것이 미접종자들의 생계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된다. 마트와 같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필수적인 시설에는 미접종자들의 입장을 허가해야 하며, 결론적으로 미접종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체제 하에서 받았던 만큼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한편 2022년에 들어와 오미크론 변이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코로나19의 치명률은 계속해서 약해지고 있다. 만약 코로나의 치명률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져서 더이상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를 우려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 된다면, 백신패스로 보호받은 생명보다 백신패스 제도로 인해 미접종자들이 겪는 자유의 침해와 불편감이 더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백신패스 제도는 코로나의 치명률과 연동되어 적용되어야 하고, 치명률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즉시 해제되어야 한다. 도대체 그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는 필자는 아직 알지 못하며, 다만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독감 치명률을 기준으로 사용하는 안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4.결론
백신패스 문제에 삼원적 사회계약론을 대입하는 경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백신패스는 충분히 윤리적으로 정당하며, 백신 접종을 선택할 개인의 자유는 공익보다 후순위이다. 국가는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한 강도로 백신을 강제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최소한도로 침해되어야 하며, 미접종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하에서 받던 통제 만큼의 통제만 받아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의 치명률이 독감보다 낮아지면 빠른 시일 내에 백신패스 제도를 해제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백신패스 제도는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 체제는 미접종자들을 중증과 사망에서 보호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고통받는 자영업자들에게도 생계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왜 마트까지 못가게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으며, 또한 중증 예방을 위해서는 2차 접종까지만 해도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왜 백신패스에 유효기간을 설정해서 부스터샷을 요구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백신패스 제도의 개선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