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인간의 윤리학 - 평가
윤리학 이론들은 서로 여러가지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적어도 3가지의 윤리 이론(공리주의, 칸트주의, 자유주의)이 경합을 지속하는 이유는 이들이 서로가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종합적이고 올바른 윤리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윤리 이론을 넘어 각 이론들의 장점과 한계를 인지하고 여러 이론을 함께 적용해야 한다.
앞서 우리는 human doing 개념과 사회계약에 기초하여 새로운 윤리 이론을 고안한 바 있다. 이 이론은 사회계약의 가정 하에서 인권과 차등원칙, 공리주의를 기본 덕목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준 인간적 존재에 대한 적용과 처벌 윤리의 형태, 도덕의 한계와 덕(virtue)에 대해서도 나름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 이론을 보도 이해해야 한다.다 잘 이해하는 방법은 이 이론이 다른 윤리 이론과 비교할때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떠한 장점과 단점을 가지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삼원적 사회계약론을 현대윤리학의 대표적인 3가지 이론과 비교하고, 또한 그 외의 몇가지 다른 윤리 이론들과도 비교해볼 것이다. 그리고 이 이론이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을 설파한 후, 이론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논할 것이다.
다른 이론들과의 비교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그 내용의 대부분을 다른 윤리 이론에서 차용해 왔다. 사회계약의 개념은 계몽주의 시대부터 내려온 유서깊은 지적 전통이고, 인권과 차등원칙, 공리주의는 모두 현대윤리학에서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개념들 중 하나이다. 또한 처벌 윤리에도 회복적 정의와 관련한 많은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결과주의라는 강력한 토대를 다른 이론들과 공유하고 있다.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이런 측면에서 볼때, 독창적인 새로운 이론이라기 보다는 종래의 윤리 이론들이 가진 여러 장점을 결합한 복합 이론에 가깝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칸트
공리주의는 삼원적 사회계약론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이다. 삼원적 사회계약론에서는 공리주의를 도덕규칙이 준수해야할 기본 원칙으로 상정했으며, 인권의 세부 항목을 설정할때도 공리주의 원칙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유재산권이 인권(자유권과 사회권)의 세부 항목에 포함되는 이유는 사유재산권 자체가 정당해서 아니라, 그러한 권리의 인정이 공리주의적으로 최대의 평균효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또한 도덕규칙의 결과를 중심으로 도덕규칙이 설정된다는 점에서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공리주의와 같이 결과주의의 토대를 공유한다.
권리 개념의 존재와 최대효용의 달성을 위한 권리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밀 등의 규칙 공리주의의 일종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비록 인권이 정확히 어느 세부항목까지 보장해야 되는지를 공리주의적 판단에 맡기고 있지만, 최대효용을 이유로 침해될 수 없는 권리 항목들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또한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공리주의 이전에 차등원칙도 함께 도덕 원칙으로 가지고 있으며, 차등원칙이 공리주의보다 우선한다. 차등원칙의 유무와 약자의 우선권은 공리주의와 삼원적 사회계약론의 큰 차이점 중 하나이다.
자유권을 보장하라는 요구에서 삼원적 사회계약론과 자유지상주의는 동일하지만, 자유지상주의는 삼원적 사회계약론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이론 중 하나이다. 자유지상주의는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가치로 천명하지만, 삼원적 사회계약론에서 자유권은 사회계약에서 도출된 결과물이로서 생명권, 평등권 등 다른 권리와 같은 지위를 가진다. 또한 자유지상주의에서는 자유에 대한 침해를 필요악으로 간주하나, 삼원적 사회계약론에서는 자유권이 차등원칙과 공리주의 원칙에 의해 합당하게 제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지상주의에서 신으로 군림하는 자유는 삼원적 사회계약론에서 그 지위와 힘이 약화된다.
한편 칸트의 가장 강력한 후계자 중 하나인 롤스의 정의론은 삼원적 사회계약론과 매우 가깝다. 사회계약 개념과 무지의 베일은 롤스의 정의론에서 왔으며, 두 이론은 똑같이 차등원칙과 자유를 도출한다. 또한 덕에 비해 권리와 원칙의 우위를 내세운다는 점도 비슷하며, 징세에 대한 합리화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사실상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정의론의 일종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보다 더 자세한 정당화와 디테일을 제공하는 또다른 정의론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이론들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정의론과 마찬가지로 사회계약론의 아들이다. 홉스나 로크의 이론과는 여러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사회계약이라는 기초적이고 큰 틀을 다른 사회계약론들과 공유하고 있다. 삼원적 사회계약론의 주요 특징은 사회계약을 맺는 인간에 대한 별다른 가정을 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인간의 선악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가정에 근거했던 홉스나 로크, 루소와는 달리 인간 본성에 대한 가정을 최대한 피하면서 모든 가정에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를 부여하고 있다.
근대윤리적이고 사회계약적인 특성으로 인해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덕윤리와 대치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삼원적 사회계약론에서도 나름의 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지성과 사회성, 의지력을 주요 덕목으로 거론하고 있으며, 동시에 공동체에서 덕을 어떻게 다루고 장려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덕목보다 규칙이 우선한다는 점과, 무엇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덕목으로 간주하는 우정, 효도, 충성 등이 기초 덕목으로는 거론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이론은 역시 차이가 있다.
그외에 기독교 윤리는 낙태 문제와 같은 특정 이슈에서 삼원적 사회계약론과 비슷한 결론을 도출하지만, 많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두 이론은 상충한다.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도덕의 기반을 사회계약에 두며, 종교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진 않는다. 또한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힘에의 의지같은 모호하고 비과학적인 가정이나 근거없는 약자 멸시 등이 없기 때문에, 니체의 철학과도 상충한다. 사실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모든 도덕의 기반을 특정 가치가 아닌 사회계약에 두기 때문에, 자유지상주의나 니체와 같이 특정 가치를 절대시하는 모든 비결과주의적 윤리 이론들과 대립한다.
이론의 평가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롤스의 정의론과 사회계약론에 기반하여, 현대적인 인권 개념과 공리주의, 그리고 기타 이론들을 결합한 복합 이론이다. 이 점은 삼원적 사회계약론의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단점도 될 수 있다. 복합 이론은 다른 단일 이론들이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응할 수 있지만, 반대로 복합된 이론들이 탄탄한 논리로 상호연결되지 않는다면 이론 전체의 논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
장점
삼원적 사회계약론의 가장 큰 장점은 주요 현대윤리학 이론들을 모두 받아들이거나 일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가장 설득력있다고 알려진 롤스의 정의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공리주의 원칙을 받아들여 적용의 편의성을 확보하고 현대적인 자본주의적 윤리관에 무리없이 융화된다. 또한 여러 인권에 대한 정당화를 제공하면서 인권 이론을 보다 강화하여 수용하고, 나름의 덕목을 도출하여 근대윤리학의 약점인 덕과 가치의 부재에도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삼원적 사회계약론에 포함된 여러 이론들은 삼원적 사회계약론에 그만큼 탄탄한 기반을 제공한다.
복합 이론으로서의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단순히 여러 이론들을 결합하는 것을 넘어, 현대윤리학이 받아들이는 주요한 개념들에 정당화와 기반을 제공해 준다는 장점도 있다.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인권에 대한 보호와 약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공리주의를 보완하고, 많은 비판이 제기된 로크의 논증을 대신해 자유의 논리적 기반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자유에 제한을 가하여 국가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또한 사회계약이라는 기반에서 인권 개념을 정당화하며, 공리주의 원칙을 차등원칙과 함께 도입하면서 롤스의 정의론이 가지는 설득력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나름의 덕목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그 한계도 제시하기 때문에, 덕윤리와 근대윤리학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방안도 제시한다.
삼원적 사회계약론이 가진 직관성도 이론의 장점이 될 수 있다. 이론이 제시하는 인권은 세계인권선언과 맥을 같이하는데, 세계인권선언에서 제시한 기본권은 유구한 종교적/철학적 전통을 가지는 동시에 현대에 많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차등원칙과 결부되는 약자 보호는 마찬가지로 전세계의 많은 도덕 전통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공리주의는 전근대 사회에서 우세한 공동체 이익의 우선권과 현대사회에서 우세한 자본주의적 질서 모두에서 지지를 받는다. 삼원적 사회계약론의 핵심 개념을 인권, 약자보호, 공익으로 대체하면 이론은 매우 직관적이면서 종래의 도덕관(과 이를 따르는 사람들)과 잘 부합한다.
한계
삼원적 사회계약론이 복합 이론으로서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점은 이론의 약점이 될 수 있다. 이 이론은 롤스의 정의론과 매우 유사하며, 공리주의와 인권도 현대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개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특정 윤리 이론만을 따르는게 아니라, 이 3가지 윤리 이론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나름의 가치관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미 모두가 3가지 이론을 적절히 조합해서 잘 사용하고 있다면, 삼원적 사회계약론이 추가적인 유용성을 가질 수 있는가?
또한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롤스의 정의론과 마찬가지로, 차등원칙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롤스도 마찬가지지만 차등원칙은 논리적 기반이 약하다는 많은 비판이 있어왔다. 삼원적 사회계약론의 경우 차등원칙은 무지의 베일 상태에서의 인간이 위험회피적이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가정을 뒷받침하는 연역논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록 이 이론은 자연계에서 관찰된 사실을 통해 이 가정이 올바르다고 옹호하고 있지만, 자연과학적 관찰은 틀릴 수도 있으며 보다 확고한 기반을 위해서는 반드시 연역논증의 형태로 차등원칙이 정당화되어야 한다. 어쩌면 차등원칙은 폐기되어야 할 지도 모르며,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인권과 공리주의에 기반한 이원적 사회계약론으로 바뀌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보다 근원적으로, 이 이론이 근거하는 human doing-human being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론의 적용은 힘들수도 있다. 물론 필자는 이 관점이 많은 영적/신화적 문헌에 근거하고 있다고 옹호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전통적인 문헌에 그다지 큰 지위를 부과하지 않으며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물론 실제로 사람들에게는 운명에 따르는 측면과 운명을 개척하는 측면이 모두 관찰되기 때문에 신화적 문헌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이 이론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으며, human doing-human being의 관점을 확고한 우위에 두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정당화가 필요할 수 있다.
글을 마치며
필자는 작금의 윤리학적 논쟁에 다소 새로운 시각, 영적이며 실존적 고찰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통해 해답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이 시각이 함의하는 바는 도덕이란 행동하는 인간, human doing의 행동이 목표하며 지켜야 할 기준이며, 이는 모든 human doing이 참여하는 사회계약을 통해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계약은 인권의 보장과 차등원칙,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요 내용으로 가지고 있고, 덕은 지성과 이타성 및 특정 공동체에서 중시하는 어떤 가치들로 정의된다. 이 이론의 세부항목과 적용에 대해 논의한 끝에 5편의 글이 작성되었다.
아직 풍부한 반론에 부딫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론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지 판단하는 것은 힘들 수 있다. 이론을 정교화하고 보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계속해서 이론이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할 것이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 이론이 완성판은 아니더라도, 훌륭한 시작점은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복합 이론이라는 특성을 가진 삼원적 사회계약론은 논리의 칼날에 가장 잘 제련된 3가지 윤리 이론에 기반하고 있으며, 사회계약과 결과주의라는 확고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반이 성실한 노력과 양심적인 지성에 결합된다면 이론의 발전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윤리학은 단언컨데 인간이 이성을 통해 일군 학문 분야중 가장 특이한 학문이다. 다른 분야들이 '세상은 이러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면, 윤리학은 '세상은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직 윤리학만이 세상을 적극적으로 개변하려 들고, 자연을 개발하고 운명에 맞서온 인간의 본질은 윤리학에서야말로 가장 잘 드러난다. 도덕은 가히 인간의 상징이며, 윤리학은 위대한 인간 진보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동반자 중 하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