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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숲속의 소리들1

과학주의자 2022. 6. 14. 18:22

하지만 아무리 엄선한 양서나 고전이라 해도 우리가 책에만 몰두하여, 그 자체가 하나의 방언이고 지방어에 불과한 특정 언어로 쓰인 책만 읽는다면, 우리는 모든 사물과 사건을 은유없이 말하는 언어, 어휘와 내용이 풍부하고 표준이 되는 언어를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이런 언어는 많이 발표되기는 하지만 활자로 인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덧문을 없애버리면, 그 덧문을 통해 흘러들던 햇살도 기억에서 사라지는 법이다.
 
어떤 방법과 훈련도 늘 방심하지 않고 경계 태세를 취하는 태도만큼 좋을 수는 없다. 보아야 할 것을 늘 눈여겨보는 훈련에 비하면, 아무리 훌륭한 역사, 철학, 시에 대한 강좌나 최고의 학회나 모범적인 생활방식 따위가 뭐란 말인가? 단순한 독자나 학자가 되겠는가? 아니면 앞일을 내다보는 사람이 되겠는가? 자신의 운명을 읽고,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라. 그리고 계속 전진하여 미래 속으로 들어가라.
 
숲에서 처음 맞이한 여름에 나는 책을 읽지 못했다. 콩밭을 일궈야 했기 때만이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나은 일을 할 때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머리로 하는 일이든 손으로 하는 일이든 무슨 일을 하면서 희생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나는 내 생활에 여백을 남겨두기를 좋아한다. 이따금 여름날 아침이면 나는 여느 때처럼 미역을 감은 다음 양지바른 문간에 앉아서 동트는 새벽부터 정오까지 소나무와 호두나무와 옻나무에 둘러싸인 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적막 속에서 조용히 공상에 잠기곤 했다. 그러는 동안 새들은 내 주위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소리없이 집안을 들락거렸다. 그러다가 햇빛이 서쪽 창문으로 비쳐 들거나 멀리 떨어진 간선도로에서 여행자의 마차 소리가 들려오면 그제야 나는 시간이 흘렀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 시기에 나는 옥수수가 밤새 자라듯 성장했다. 그 시간들은 손으로 하는 어떤 일보다 훨씬 좋았다. 그런 시간들은 내 삶에서 공제되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평소 허락되는 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동양인들이 말하는 명상과 무위가 무슨 뜻인지를 깨달았다. 대개의 경우 나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루는 마치 내 일을 덜어주려는 것처럼 지나갔다. 조금 전까지 아침이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지금은 어느새 저녁이다. 따라서 특별히 기억할 만한 일은 이루지 못했다. 새들처럼 노래를 부르는 대신, 나에게 주어진 끝없는 행운에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참새가 집 앞 호두나무 가지에 앉아 지저귀듯 나도 깔깔대거나 아니면 소리를 억눌렀지만, 참새는 내 둥지에서 지저귀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나날은 이교도 신들의 이름이 붙은 요일도 아니었고, 24시간으로 잘게 쪼개져 시계의 재깍거리는 소리에 시달리는 그런 하루도 아니었다. 나는 푸리족[각주:1]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단 하나의 낱말로 나타낸다. 어제를 의미할때는 뒤를 가리키고 내일은 앞을 가리키고, 지나가고 있는 오늘을 의미할 때는 머리 위를 가리켜 다양한 의미를 표현한다."[각주:2]
 
이런 삶은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지독하게 게으른 삶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새와 꽃들이 자기네 기준으로 나를 심판했다면 나는 기준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 안에서 삶의 동기를 찾아야 한다. 정말이다. 자연의 하루는 매우 평온해서, 인간의 게으름을 나무라지 않는다.
 
즐거움을 밖에서 찾기 때문에 사교 모임이나 극장에 가야 하는 사람들에 비해 내 생활방식은 적어도 한가지 이점을 갖고 있었다. 내 생활은 그 자체가 나의 즐거움이 되었고, 결코 신선함을 잃지 않았다. 그것은 수많은 장면으로 구성된 끝없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우리가 항상 가장 최근에 배운 최선의 방법으로 생계를 꾸리고 생활을 조정해나간다면, 우리는 결코 권태감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타고난 재능을 따라간다면 그것은 반드시 시간마다 새로운 전망을 보여줄 것이다.
 
집안일은 유쾌한 소일거리였다. 마루가 더러워지면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재도구를 모두 집 밖에 풀밭으로 끌어냈다. 침대와 침대틀은 한 묶음밖에 안 된다. 그런 다음 마룻바닥에 물을 끼얹고, 호수에서 가져온 하얀 모래를 그 위에 뿌리고는 마루가 하얗게 될 때까지 솔로 북북 문질렀다. 마을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마칠 무렵이면 내 집은 아침 햇살로 충분히 말라서, 나는 다시 안에 들어가 명상을 계속할 수 있었다.
 
살림살이가 모두 풀밭에 나와서 마치 집시의 봇짐처럼 작은 무더기를 이루고, 책과 펜과 잉크가 그대로 놓여 있는 세발탁자가 소나무와 호두나무들 사이에 서 있는 광경은 보기에도 유쾌했다. 그 물건들도 밖에 나온것을 기뻐하는 듯했고, 안으로 다시 끌려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듯했다. 이따금 나는 그 위에 차양을 치고 그 밑에 앉아 있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이 물건들 위에 햇빛이 빛나는 광경은 볼만했고, 자유로운 바람이 그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도 들을 만했다. 아무리 익숙한 물건도 집밖에서 보면 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흥미로워 보인다.
 
새 한 마리가 가까운 나뭇가지에 앉아 있고, 탁자 밑에서는 풀솜나물이 자라고, 검은딸기 덩굴이 탁자 다리를 휘감고, 솔방울과 밤송이의 가시와 딸기 잎사귀 따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한때 가구들이 이런 식으로 솔방울과 밤송이와 딸기 덩굴 사이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형체들이 탁자나 의자나 침대틀같은 가구에 장식 무늬로 새겨지게 된 것 같았다.
 
내 집은 언덕 비탈, 어린 소나무와 호두나무로 이루어진 숲 한복판에 있는 더 큰 숲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호수에서는 30미터쯤 떨어져 있었고, 좁은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가면 호수에 닿을 수 있었다. 앞마당에는 검은딸기, 풀솜나물, 물레나물, 미역취, 떡갈나무, 벚나무, 월귤나무, 땅콩이 자라고 있었다. 5월 말이 가까워지면 벚나무가 짧은 줄기 주위에 산 모양의 꽃들을 원통형으로 피우고 호수로 이어진 오솔길 양쪽을 장식했다. 가을이 되면 그 짧은 줄기는 크게 야무진 버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마치 사방으로 퍼지는 빛살 같은 화환 모양으로 휘어졌다. 그 버찌는 맛이 별로였지만, 나는 자연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그것을 맛보곤 했다.
 
옻나무는 내가 쌓아놓은 둑을 뚫고 올라와 집 주위에 무성하게 자라서 첫해에 2미터까지 자랐다. 넓은 깃털 모양을 한 열대성 잎사귀는 기묘하지만 보기 좋았다. 죽은 듯이 보였던 마른 줄기에서 늦봄에 갑자기 커다란 새싹이 돋아나더니,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지름이 2-3센티미터 되는 초록빛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가지로 자라났다. 그 가지들은 제멋대로 자라서 연약한 마디에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이따금 내가 창가에 앉아있으면 바람 한점 없는데도 싱싱하고 여린 가지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서 갑자기 부채처럼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꽃이 피었을 때 수많은 야생벌을 끌어들였던 엄청난 양의 딸기들은 8월이 되면 점점 벨벳 같은 진홍빛을 띠었고, 이 딸기들도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휘면서 여린 줄기를 부러뜨렸다.

  1. 남미 북부해안과 브라질에 살던 인디언 [본문으로]
  2. 이다 파이퍼의 <한 여인의 세계일주> 중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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