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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시)

과학주의자 2022. 6. 28. 09:43

황혼

 

 

이육사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더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게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십이 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들에게도,

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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