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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손님들1

과학주의자 2022. 6. 14. 18:40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남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나와 죽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한동안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을 용의도 있다. 나는 본래 은둔자가 아니고, 일이 있어서 술집에 가면 그 술집의 가장 끈질긴 단골손님보다 더 오래 눌러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내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정을 위한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교제를 위한 것이다. 뜻밖에 손님이 여럿 찾아왔을 때도 그들에게 내놓을 의자는 세 개뿐이지만, 대개는 서 있기 때문에 방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다. 작은 집에도 얼마나 많은 남녀가 들어가는지, 놀랄 정도다. 나는 한번에 스물다섯 또는 서른 명의 영혼을 그들의 육신과 함께 내 지붕 밑에 맞아들인 적도 있지만, 우리는 서로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헤어지곤 했다.

 

공공 주택이든 개인 주택이든 우리의 집들은 대부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방과 넓은 홀, 그리고 술을 비롯한 평화 시의 군수품을 저장하기 위한 지하실까지 갖추고 있어서,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 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커 보인다. 집이 너무 크고 화려해서, 거주자들은 그 안에 기생하는 해충처럼 보일 지경이다. 포고꾼이 트레몬트 호텔이나 애스터 호텔이나 미들섹스 하우스 같은 큰 호텔 앞에서 나발을 불어 소집령을 발해도 투숙객들을 위한 광장 너머로 기어나오는 것은 우스꽝스럽게 생긴 생쥐 한마리 뿐인데, 그 녀석도 포장도로에 나 있는 구멍 속으로 살금살금 도망쳐 들어가는 것을 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작은 집에 살면서 이따금 겪는 불편 하나는, 손님과 마주 앉아 심오한 사상에 관해 거창한 대화를 나눌 때 두 사람 사이에 충분한 거리를 두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생각이 정해진 항구에 들어가려면 우선 출범 준비를 갖추고 시험 삼아 한두 바퀴 돌아볼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이라는 총알은 듣는 사람의 귀에 도착하기 전에 상하좌우의 요동을 극복하고 마지막 안정된 궤도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총알은 듣는 사람의 한쪽 귀로 들어갔다가 머리를 통과하여 다시 밖으로 빠져나올지 모른다.

 

우리의 문장도 중간에 넓게 전개되어 단락을 형성할 공간이 필요하다. 나라와 마찬가지로 개인 간에도 적당히 널찍하고 자연스러운 경계뿐 아니라 상당한 넓이의 중립지대도 있어야 한다. 언젠가 나는 호수를 사이에 두고 친구 하나와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참으로 각별하고 유쾌한 경험이었다. 내 집에서는 우리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처음에는 상대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상대에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잔잔한 수면에 돌멩이 두 개를 너무 가깝게 던지면 두 파문이 서로를 방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단순히 목소리 크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뺨과 턱이 닿을 정도로 바싹 붙어 서서 상대의 입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중하고 사려 깊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동물적 열기와 습기가 증발할 수 있도록 상대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우리가 각자의 내면에 말하지 않아도 존재하고 말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과 친밀한 교제를 즐기고 싶다면 우리는 침묵을 지켜야 할뿐만 아니라 상대의 목소리를 도저히 들을 수 없도록 몸이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말은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크게 소리를 질러도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것들이 많다. 대화가 점점 고상하고 웅장한 어조를 띠기 시작하면 우리는 의자를 조금씩 뒤로 밀어서 결국에는 서로 반대쪽 구석에 닿게 되고, 그러면 더이상 물러날 여지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가장 좋은' 방, 언제든지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응접실은 집 뒤에 있는 소나무 숲이었다. 이곳 카펫에는 햇빛이 닿은 적이 거의 없지만, 여름날 귀한 손님들이 오면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하인이 바닥을 쓸고 가구의 먼지를 털고 말끔히 정돈해둔 이곳으로 데려갔다.

 

찾아온 손님이 한 사람일 때는 함께 소박한 식사를 할 때도 있었다. 푸딩을 만들려고 반죽을 휘젓거나 숯불 위에서 빵 덩어리가 부풀어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곤 했지만, 그것 때문에 대화가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손님이 스무 명쯤 몰려와 내 집을 가득 채울 때는, 두 사람이 먹기에 충분한 빵이 있더라도 마치 먹는 습관을 잊어버린 것처럼 아무도 식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금식을 실천했다. 하지만 그것이 손님 접대의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는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적절하고 사려깊은 과정으로 여겼다. 그런 경우, 회복할 필요가 있는 체력 소모와 쇠약은 기적적으로 지연되는 것 같았고, 생생한 활력이 자리를 굳게 지켰다. 이런 식이라면 나는 스무 명이 아니라 천 명도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고 내 대접에 실망하거나 고픈 배를 안고 돌아갔다 해도, 내가 적어도 그들을 동정했다는 것은 믿어도 좋을 것이다.

 

많은 주부들은 믿지 않겠지만, 낡은 관습 대신 새롭고 더 좋은 관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손님에게 내놓는 식사에 여러분의 평판을 걸 필요는 없다. 내가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케르베로스만큼이나 효과적으로 막는 게 있다면, 그것은 나를 초대한 사람이 접대를 과시하듯 줄줄이 내놓는 음식이다. 이제 다시는 자기를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주인의 정중하고 완곡한 암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런 집에 다시는 방문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떤 손님이 명함 대신 노란 호두나무 잎사귀에 적어놓고 간 스펜서의 시구를 나는 내 집의 모토로 삼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그곳에 이르러 그들은 작은 오두막을 채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아무도 대접을 기대하지 않는다.

휴식이 그들의 향연이며 모든 것이 그들의 뜻대로다.

가장 고귀한 정신이 가장 큰 만족을 얻는다.[각주:1]

 

훗날 플리머스 식민지 총독이 된 윈슬로[각주:2]가 수행원 한 명과 함께 매사소이트 추장[각주:3]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들은 걸어서 숲속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추장의 오두막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지치고 배도 고팠다. 추장은 그들을 친절하게 맞아주었지만, 그날은 식사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 윈슬로의 기록을 인용하면 "밤이 되자 추장은 우리를 자기 부부가 쓰는 침대에 함께 눕게 했다. 추장 부부는 한쪽에 눕고 우리는 반대쪽에 누웠다. 침대는 바닥에서 30센티미터쯤 높이의 널판 위에 얇은 담요 한 장을 깐 것에 불과했다. 추장의 심복 두 명도 잘 데가 없어서 우리 옆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보다 잠자리 때문에 더 피곤했다."

 

이튿날 오후 1시에 매사소이트 추장이 직접 활로 쏘아서 잡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다. 크기가 잉어의 세 배쯤 되는 물고기였다. "그것을 삶아놓자 적어도 40명이 나누어 먹었다. 이틀 밤과 하루 낮 동안 우리가 먹은 음식이라곤 이게 다였다. 도중에 자고새 한 마리를 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내내 굶은 채 여행했을 것이다." 그들은 먹지도 못한 데다 "인디언들의 야만스러운 노랫소리 때문에(인디언들은 노래하면서 잠드는 버릇이 있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어서, 그나마 여행할 기력이 남아 있을 때 집에 돌아가려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잠자리에 대해서는 형편없는 대접을 받은 게 사실이지만, 그들이 불편하게 생각한 것이 사실 인디언들로서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었다. 하지만 식사와 관련해서는 인디언들이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있었을지 나는 모르겠다. 그들 자신도 먹을 게 전혀 없었고, 인디언들도 손님들에게 아무리 사과하고 변명해봤자 그것이 식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고 식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윈슬로가 다시 방문했을 때는 마침 먹을 게 풍부한 계절이었기 때문에 식사 대접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사람이 어디에 살든 손님은 어차피 있게 마련이다. 나는 숲속에서 사는 동안, 내 평생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많은 손님을 맞았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곳에서 나는 다른 어느 곳보다 좋은 상황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사소한 볼일로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은 줄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방문객이 걸러진 셈이다. 나는 교제라는 이름의 강물이 흘러드는 고독의 바다 속으로 깊숙이 물러나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것으로는 가장 고운 침전물만 주위에 쌓였다. 게다가 바다 저편에는 아직 탐험도 개발도 안 된 대륙이 존재한다는 증거물이 나에게 떠내려왔다.

 

오늘 아침 내 집을 찾아온 사람은 정말로 호메로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파플라고니아[각주:4]사람 같았다. 그가 아주 잘 어울리는 시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데도 여기서 밝힐 수 없어 유감이지만, 어쨌든 그는 캐나다 태생의 나무꾼이자 기둥 만드는 사람이다. 하루에 50개의 기둥에 구멍을 뚫을 수 있으며, 전날 저녁에는 자기 개가 사냥한 마멋으로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그도 호메로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고, "책이 없다면 비오는 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우기 동안 책 한 권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멀리 떨어진 그의 고향에서 그리스어를 읽을 줄 알았던 신부가 성경 읽는 법을 가르쳐주었다지만, 이제는 그가 호메로스의 책을 들고 있는 동안 내가 번역해주어야 한다. 예컨데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슬픈 안색을 질책하는 구절이다.

 

파트로클로스, 자네는 어찌하여 계집애처럼 질질 짜고 있나?

혹시 자네 혼자만 프티아에서 온 소식을 들었나?

악토르의 아들 메노이티오스가 아직 살아 있고

아이아코스의 아들 펠레우스도 미르미돈 사람들 속에 살아 있다더군.

둘 중 하나라도 죽었다면 우리는 크게 슬퍼해야겠지만.

 

"그거 좋군요"하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 일요일 아침에 어떤 환자를 위해 모은 하얀 참나무 껍질 한 다발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그런 책을 읽어도 해로울 건 없겠죠." 그는 호메로스가 무슨 책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호메로스는 위대한 작가였다. 이 나무꾼보다 더 순박하고 꾸밈없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 세상에 암울한 도덕적 그림자를 던지는 악덕과 질병도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스물여덟 살쯤 되었고, 12년 전에 캐나다의 부모 집을 떠나 미국으로 일하러 왔다. 돈을 벌어서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장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안고 있다. 용모는 거칠고 투박하게 생겼고, 체격은 건장하지만 동작이 굼떴고, 그러면서도 행동거지는 우아했다. 햇볕에 그을린 굵은 목, 더부룩한 검은 머리, 졸린 듯 멍한 푸른 눈은 이따금 감정을 표현할 때는 밝게 반짝였다. 그는 납작한 회색 천 모자를 쓰고 우중충한 색깔의 두꺼운 모직 외투를 입고 소가죽 장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고기를 많이 먹었다. 여름에는 한철 내내 나무를 베었기 때문에, 대개는 도시락이 들어 있는 양철통을 들고 내 집 앞을 지나 3, 4킬로미터 걸어서 작업장으로 가곤 했다. 점심 식사는 차가운 고기였는데, 대개는 차가운 마멋 고기였다. 커피는 돌로 만든 병에 담아서 허리띠에 끈으로 매달고 다녔고, 이따금 나에게 한 모금 마셔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는 아침 일찍 내 콩밭을 질러갔지만, 미국인들처럼 조바심을 내거나 서두르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는 몸이 상할 만큼 열심히 일하지도 않았다. 숙식비 정도만 벌어도 개의치 않았다. 일하러 가는 도중에 개가 마멋을 잡으면 그는 도시락을 덤불 속에 놔두고 하숙집까지 되돌아가서 고기를 손질하여 지하실에 보관해둘 때도 많았다. 때로는 하숙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해가 질 때까지 마멋을 호수에 안전하게 담가둘 수는 없을까 하고 30분 동안 곰곰이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아침에 내 집 앞을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날짐승이 아주 많아요, 날마다 일하러 가야 하는 처지만 아니라면 산비둘기, 마멋, 산토끼, 자고새 따위를 사냥해서 필요한 만큼 고기를 구할 수 있을 텐데요. 한 시간만 사냥하면 일주일 먹을 고기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능숙한 사냥꾼이어서, 때로는 자신의 기술을 멋지게 과시하곤 했다. 나무를 자를 때는 지면에 가깝도록 수평으로 잘랐다. 그러면 나중에 나온 새싹은 훨씬 더 무성하게 자랄 수 있었고, 썰매도 그루터기 위를 미끄러지듯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장작더미를 받치는 나무도 그냥 통나무째 놔두지 않고, 나중에 손으로 꺾을 수 있을 만큼 가느다란 막대기나 지저깨비로 잘라놓았다.

 

내가 그에게 흥미를 느낀 것은 그가 조용하고 고독한데도 한편으로는 무척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쾌활함과 만족감의 샘이었고, 그 샘물은 그의 눈에서 넘쳐흘렀다. 그의 기쁨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았다. 이따금 나는 그가 일터인 숲에서 나무를 베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럴때면 그는 형언할 수 없이 만족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면서 나를 맞이했고, 영어도 잘했지만 캐나다식 프랑스어로 인사를 하곤 했다. 내가 가까이 가면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기쁨을 반쯤 억누르면서 잘라놓은 소나무 줄기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리고 소나무의 속껍질을 벗겨 공처럼 돌돌 말아서 입안에 넣고 씹으며 즐겁게 웃기도 하고 이야기도 했다.

 

그에게서는 이처럼 동물적인 활기가 흘러넘쳤다. 이따금 재미난 생각이 떠오르면 땅바닥을 구르며 깔깔 웃어댔다. 또, 주위의 나무들을 둘러보며 외치곤 했다. "정말이지, 나무 베는 일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니까요.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은 바라지 않아요." 이따금 한가할 때면 권총 하나를 들고 온종일 숲을 쏘다녔는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신을 위해 축포를 쏘았다. 겨울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정오가 되면 그 모닥불로 주전자에 든 커피를 데웠다. 그가 점심을 먹으려고 통나무 위에 걸터앉으면 때때로 박새들이 모여들어 그의 팔에 내려앉아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감자를 쪼아먹기도 했다. 그러면 그는 "이 꼬맹이 녀석들이 주변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하고 말했다.

 

그의 내면에서는 주로 동물적인 면이 발달한 것 같았다. 신체적 인내와 만족이라는 점에서 그는 소나무와 바위의 사촌이었다. 언젠가 내가 하루종일 일하면 밤에는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천만에요. 평생 피곤이라곤 느껴본 적이 없어요."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 있는 지적인 면, 그러니까 정신적인 면은 갓난아기의 그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그는 가톨릭 신부들이 원주민을 가르칠 때 이용한 순진하고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아서는 결코 자각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그저 신뢰와 존경을 나타내는 단계까지만 다다를 수 있다. 아이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계속 아이로 남게 된다. 자연은 그를 만들 때 그의 몫으로 튼튼한 육신과 만족을 주었고, 칠십 평생을 아이로 살 수 있도록 존경과 신뢰의 기둥으로 사방에서 그를 받쳐주었던 것이다.

 

그는 너무나 성실하고 순진해서, 남에게 그를 소개하려 해도 마멋을 이웃에게 소개하는 것 이상으로 그를 소개하기는 어려웠다. 남에게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 그는 어떤 역할도 맡으려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품삯을 주었고, 그런 방법으로 그가 먹고 입는 것을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법이 없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을 겸손하다고 부를 수 있다면 그는 실로 꾸밈없이 순박하고 천성적으로 겸손했기 때문에, 겸손함은 그의 두드러진 특징이 아니었고 본인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을 신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이제 곧 올 거라고 말해주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자기 같은 하찮은 사람에게 아무런 볼일도 없을 테니, 그 사람이 모든 책임을 떠맡고 자기는 그냥 내버려둘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평생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특히 작가와 목사를 존경했고, 그들이 하는 일은 그에게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도 글을 꽤 많이 쓴다고 말했지만, 그는 내가 그냥 글씨를 많이 쓴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도 글씨를 아주 잘 썼다. 나는 이따금 길을 가다가 길가에 쌓인 눈 위에 그의 고향 이름이 프랑스어 특유의 부호와 함께 멋진 글씨체로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그가 나보다 먼저 지나갔음을 알아보곤 했다. 한번은 그에게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써보고 싶어 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글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편지를 읽어주거나 써준 적은 있지만 자기 생각을 글로 써보려고 한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아니, 그건 못할 거 같아요. 우선 무엇부터 쓰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짓을 하다가는 제명에 죽지 못할 겁니다. 게다가 철자법까지 신경을 써야 하잖아요!"

나는 어느 저명하고 현명한 사회개혁가가 그에게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지 않느냐고 묻는 것을 들었다. 그는 놀라서 킥킥 웃으며 캐나다 억양으로 "아니, 난 지금 이대로가 좋은걸요."하고 대답했다. 어느 철학자가 그와 교제했다면 많은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그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가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따금 그에게서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가 셰익스피어처럼 현명한 사람인지 아니면 단순히 어린애처럼 무지한 사람인지, 달리 말하면 그가 섬세한 시적 의식을 가진 사람인지 아니면 순전히 어리석은 사람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어떤 마을 사람은 그가 머리에 꼭 맞는 모자를 쓰고 혼자 휘파람을 불면서 마을을 한가로이 거니는 것을 보면 신분을 위장하고 돌아다니는 왕자가 생각난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가 가진 책이라고는 연감 한 권과 산수책 한 권뿐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산수 실력이 상당했다. 연감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연감을 인간의 지식이 압축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의 지식이 연감에 상당히 담겨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당시의 다양한 개혁에 대해 그의 의견을 묻곤 했는데, 그러면 그는 가장 단순하고 실질적인 관점에서 그 개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런 문제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공장이 없어도 살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버몬트산 천으로 집에서 지은 옷을 입어 봤는데 아주 괜찮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또 물었다. 차나 커피가 없어도 살 수 있겠나? 이 나라에 물 말고 다른 마실 게 있나? 그는 솔송나무 잎을 물에 담갔다가 그 물을 마셔보았는데, 더운 날씨에는 물보다 나았다고 대답했다.

 

돈이 없어도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는 나에게 돈의 편리한 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화폐제도의 기원에 대한 가장 철학적인 해석과 일치했고, 라틴어로 '돈'을 뜻하는 '페쿠니아'라는 단어의 유래와도 일치했다. 가령 황소 한 마리가 전 재산일 때, 가게에서 실과 바늘을 사고 싶을 때마다 그 값에 해당하는 만큼 소의 일부를 저당 잡히는 것은 불편할 뿐 아니라 불가능할 거라는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제도에 대해서도 어떤 철학자보다 훌륭하게 옹호할 수 있었다. 그 제도를 자신과 관련하여 설명하면서 그것이 널리 보급된 진정한 이유를 제시했고, 추측만 가지고 무언가를 암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인간에 대한 플라톤의 정의(인간은 깃털없는 두발짐승이다)를 들려주고, 어떤 철학자가 털을 뽑은 수탉을 가리키며 "이것이 '플라톤의 인간'이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사람과 닭은 무릎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굽어지는 게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이따금 그는 이렇게 외치곤 했다. "나는 이야기하는 걸 무척 좋아해요! 정말 온종일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언젠가 몇 달만에 만났을 때, 이번 여름에 뭔가 새로운 생각을 얻은 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나처럼 일을 해야 먹고사는 사람은 옛날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나 잊어버리지 않으면 다행이죠. 선생님과 함께 김을 매던 사람이 김매기 시합을 하자고 하면, 선생님 같은 분도 분명 솔깃해서 잡초 매는 생각만 하게 될 겁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면, 이따금 그가 먼저 선수를 쳐서 그동안 무슨 진척이라도 있었느냐고 나한테 물을 때도 있었다.

 

어느 겨울날 나는 그에게, 항상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내면에는 외부의 사제를 대신할 내부의 사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좀 더 고차원적인 삶의 동기를 제시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는 "만족하냐고요?"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무엇에 만족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가진 것이 넉넉하면, 등은 난로 쪽을 향하고 배는 식탁 쪽을 향한 채 온종일 앉아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가 사물을 정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할 수는 없었다. 그가 이해하고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개념은 단순한 편의성(그 정도는 동물들도 인식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이었다. 사실 이것은 대부분의 인간에게도 해당된다. 내가 그의 생활방식에 개선할 점을 제안하면 그는 유감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직과, 그와 같은 미덕들을 철저히 신봉했다.

 

그에게는 비록 보잘것없지만 실제적인 독창성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고, 그가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나름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도 이따금 목격했다. 매우 드문 경우였기 때문에, 그런 장면을 보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천릿길도 마다않고 달려갔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사회제도가 다시 생겨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머뭇거렸고,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언제든 남에게 내놓을 만한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너무 원시적인 데다 자신의 동물적인 삶에 너무 젖어 있어서, 설령 그것이 단순히 학식만 가진 사람의 생각보다 유망하다 할지라도 남들에게 전할 수 있을 만큼 무르익은 경우는 드물었다.

 

그의 존재는 사회의 최하층에도 얼마든지 천재적 인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들은 평생 가난하고 무지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자신의 독자적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하는 사람들, 겉으로는 어리석고 흐리멍덩해 보일지 모르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월든 호수처럼 속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1. 에드먼드 스펜서의 <요정여왕> 중 [본문으로]
  2. 필그림의 일원 [본문으로]
  3. 왐파노아그 족의 추장, 필그림의 정착을 도왔다. [본문으로]
  4. 옛 아나톨리아 북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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