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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앞서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겨울의 손님들

과학주의자 2024. 5. 11. 19:51

나는 몇차례 즐거운 눈보라를 겪었다. 밖에서는 눈발이 사납게 소용돌이치고 올빼미의 울음소리도 조용해졌지만, 나는 난롯가에서 유쾌한 겨울밤을 보냈다. 몇주 동안 내가 산책길에 만난 사람은 이따금 숲의 나무를 베어 썰매로 마을까지 실어나르는 나무꾼 뿐이었다. 하지만 자연의 매력은 숲에서도 눈이 가장 깊이 쌓인 곳을 뚫고 길을 내도록 나를 부추겼다. 내가 일단 눈을 밟고 지나가면 바람이 떡갈나무 잎을 떨어트렸고, 가랑잎은 내 발자국 안에 자리를 잡고 햇빛을 흡수해 눈을 녹였고, 그러면 밟고 다니기에 좋은 마른 바닥이 생겨났고, 밤에는 이 자국들이 검은 선을 이루어 나에게 길잡이 노릇을 해주었다.

 

사람들과의 교제에 대해서는 전에 이 숲에 살았던 사람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내 집 근처를 지나는 도로에 주민들이 웃으며 수다를 떠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 길과 접해 있는 숲은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울창했지만 숲 여기저기에 주민들의 작은 텃밭과 집들이 흩어져 있던 시절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내 기억에도 길가의 소나무가 역마차의 양쪽을 동시에 스치는 곳이 있었고, 혼자서 이 길을 따라 링컨 마을까지 걸어가야 했던 아녀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거의 줄곧 뛰어가기 일쑤였다. 이 길은 주로 이웃 마을에 가는 사람이나 나무꾼들이 이용하던 하찮은 길이었지만, 과거에는 지금보다 다양한 풍경으로 여행자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기억에도 더 오래 남아 있었다. 지금은 너른 들판이 마을에서 숲까지 뻗어 있지만, 당시에는 단풍나무 우거진 늪지를 가로질러 통나무로 토대를 놓고 그 위로 길이 나 있었다. 스트래튼 농장에서 브리스터 언덕에 이르는 먼지날리는 큰길 밑에는 지금도 그 통나무 토대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길 건너편, 내 콩밭 동쪽에는 카토 잉그램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 원래 콩코드 마을의 유지였던 덩컨 잉그램 씨의 노예였다. 주인은 이 노예에게 월든 숲속에 집을 한 채 지어주고 거기서 살도록 허락했다. 그러니 여기서 카토는 우티카의 카토가 아니라 콩코드의 카토를 말한다. 그는 아프리카의 기니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였다고 전해지는데, 호두나무들 사이에 있던 그의 작은 밭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도 몇 명 남아있다. 호두나무는 그가 훗날 늙으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키웠지만, 결국은 그보다 젊은 백인 투기꾼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그도 지금은 카토와 똑같이 좁은 집에 잠들어 있다. 카토가 지하실로 썼던 구덩이는 반쯤 무너진 채 아직도 남아 있지만, 주변에 있는 소나무에 가려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그 구덩이는 매끄러운 옻나무 덩굴로 가득 차 있고, 미역취 중에서도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종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내 콩밭의 한쪽 모퉁이, 마을과 훨씬 가까운 곳에는 질파라는 흑인 여자의 작은 집이 있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아마포를 짜는 일을 했는데, 목청이 커서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 그 우렁찬 노랫소리에 숲이 쩌렁쩌렁 울리곤 했다. 1812년의 전쟁 때, 포로가 되었다가 가석방으로 풀려난 영국군 병사들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다. 그녀는 마침 밖에 나가서 집에 없었지만, 그녀가 기르던 개와 고양이와 닭들이 모두 불타 죽었다. 그녀는 무척 어렵게 살았고, 정신도 온전치 못했다. 당시 이 숲을 자주 드나들었던 마을 노인에 따르면, 어느 날 정오 무렵 그녀의 집 옆을 지나칠 때 그녀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를 들여다보면서 "넌 뼈다귀밖에 없구나. 온통 뼈다귀뿐이야!"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제 떡갈나무 숲으로 변한 그곳에서 나는 벽돌 몇 장밖에 보지 못했다.

 

길을 더 내려가서 오른쪽에 있는 브리스터 언덕 위에는 브리스터 프리먼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일찍이 시골 유지인 커밍스 씨의 노예였던 '솜씨 좋은 흑인'이었다. 언덕에는 브리스터가 심어서 키운 사과나무들이 이제는 거목이 되어 아직도 서 있지만, 사과는 내 입맛에는 여전히 시고 떫은 야생사과였다. 얼마 전에 나는 링컨 마을의 오래된 공동묘지에 갔다가 브리스터의 묘비명을 읽었다. 콩코드에서 퇴각하닥가 전사한 영국군 척탄병들의 이름없는 무덤들 근처의 한쪽 구석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시피오 브리스터, 유색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콩코드에서 그는 '시피오 브리스터'라고 불리는데, 사실 그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라고 불려도 좋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덧붙인 '유색인'이라는 말은 그가 마치 탈색이라도 되어버린 듯한 인상을 주었다. 또한 이 묘비명에는 그가 죽은 날짜까지 강조하듯 적혀 있었지만, 그것은 그가 한때 살아 숨쉬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줄 뿐이었다. 브리스터는 펜다라는 자상한 아내와 함게 살았는데, 그녀는 사람들의 운수를 점쳐주곤 했으며 점괘를 항상 좋은 쪽으로 말해주었다. 그녀는 몸집이 크고 통통했으며, 어떤 밤의 자식들보다 검은 피부를 갖고 있었다. 그렇게 검은 달은 그녀 이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콩코드의 하늘에 뜬 적이 없었다.

 

언덕을 더 내려가면 왼쪽의 오래된 오솔길 근처에 스트래튼 가족의 농장 흔적이 남아있다. 그들의 과수원은 한때는 브리스터 언덕 비탈을 온통 뒤덮고 있었지만, 오래전에 리기다소나무에 밀려나 이제는 그루터기만 몇 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 그루터기들의 오래된 뿌리에서는 아직도 많은 줄기가 돋아나고 있다. 지금도 마을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수많은 야생 과일나무는 그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좀 더 마을로 가까이 가면, 길 건너편 숲 가장자리에 브리드의 집터가 있다. 이 집터는 오래된 신화에도 이름이 나오지 않은 어떤 악마의 못된 장난으로 유명하다. 이 악마는 여기 뉴잉글랜드의 생활에서 두드러지고 놀라운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그의 행적은 신화에 나오는 어떤 등장인물 못지않게 기록해둘 가치가 있다. 처음에는 친구나 일꾼으로 가장하여 찾아오지만, 나중에는 온 가족을 살해하고 재산을 빼앗는다. 이 악마의 이름은 바로 '뉴잉글랜드 럼주'다. 하지만 이 집터에서 벌어진 비극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비극이 완화되고 하늘색을 띨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자. 옛날 이곳에 주막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진위를 확인할 수 없어 미심쩍은 전설에 불과하다. 여행자들의 목을 축여주고 말에게 기운을 북돋워주던 우물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당시 사람들은 여기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소식을 주고받은 뒤 다시 각자의 길을 떠났다.

 

브리드의 오두막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지만, 12년 전만 해도 그대로 서 있었다. 내 집과 거의 같은 크기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마을의 개구쟁이 녀석들이 그 집에 불을 지른 것은 어느 선거일 밤[각주:1]이었다. 당시 나는 마을 변두리에 살고 있었고, 그날 밤에는 윌리엄 대버넌트[각주:2]의 <곤디버트>를 읽는 데 푹 빠져 있었다. 게다가 그해 겨울에는 기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면증이 집안에 내려오는 유전병인지(왜냐하면 삼촌 한 분은 면도를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잠에 빠져버리는가 하면, 안식일을 뜬눈으로 지키기 위해 일요일에는 일부러 지하실에서 감자 싹을 따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알렉산더 차머스[각주:3]가 편집한 <영시 선집>에 실린 작품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으려는 욕심의 결과인지는 나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어쨌든 기면증은 내 신경을 완전히 압도했다.

 

내가 책에 막 머리를 박았을 때 화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소방마차들이 서둘러 그쪽으로 달려갔고, 그 앞을 한 무리의 남자와 아이들이 허둥지둥 달리고 있었다. 나는 개천을 뛰어넘는 지름길을 택해서 선두 그룹에 들어갔다. 우리는 숲을 지나 훨씬 남쪽에 있는 창고나 가게나 주택, 혹은 마을 전체가 불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그쪽에 몇 번 화재가 났었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가 "베이커네 농장 창고야!"하고 외쳤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아니 코드먼 저택이야!"하고 주장했다. 바로 그때 지붕이 내려앉은 것처럼 새로운 불꽃이 숲 위로 치솟았다. 우리는 모두 입을 모아 외쳤다. "콩코드가 구원하러 간다!"

 

마차들이 사람들을 가득 싣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갔다. 마차에는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화재 현장에 가봐야 하는 보험회사 직원도 아마 타고 있었을 것이다. 때때로 소방마차가 그 뒤에서 종을 딸랑딸랑 울리며 달려갔다. 그리고 나중에 사람들이 쑥덕거린 바에 따르면, 맨 뒤에는 불을 지르고 경보를 울린 녀석들이 따라갔다. 그렇게 우리는 진정한 이상주의자처럼 감각이 제시하는 증거를 거부한 채 계속 달렸다. 길모퉁이를 돌자 불꽃이 탁탁 튀는 소리가 들리고 돌담 너머에서 밀려오는 불의 열기를 몸에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현장에 도착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불과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우리의 열의는 식지 않았다. 처음에 우리는 개구리 연못의 물을 떠다 부으려고 했다. 하지만 불이 너무 많이 번져 있었고 굳이 불을 끌 가치도 없었기 때문에, 집이 그냥 다 타버리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우리는 소방마차를 에워싼 채 서로 밀치닥거리며 손나팔로 우리 생각을 표현하기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배스콤 상점의 화재를 비롯하여 세상이 목격한 대화재를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가 소화용 물통을 끌고 제때에 현장에 도착했다면, 그리고 개구리 연못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면, 세상이 멸망할 때 일어난다는 최후의 대화재도 또 하나의 대홍수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마침내 우리는 누구한테도, 어디에도 피해를 주지 않고 현장에서 물러나 각자의 잠자리와 곤디버트로 돌아갔다.

 

이튿날 밤, 거의 같은 시각에 나는 우연히 들판을 가로질러 그쪽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전날 밤 불이 났던 지점에서 낮게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나도 알고 있는 브리드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들이 배를 땅바닥에 깔고 엎드린 채 지하실 벽 너머로 저 밑에서 아직도 연기를 피우고 있는 깜부기불을 바라보며 평소 버릇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브리드 집안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물려받은 그 아들은 이번 화재와 이해관계가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여기서 멀리 떨어진 강변 목초지에서 온종일 일하고 있다가, 자유 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나자마자 그 틈을 이용하여 조상들의 집이자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옛 집을 찾아온 것이다.

 

그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마치 그곳에 무슨 보물이라도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지하실을 모든 방향과 모든 시점에서 차례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돌틈에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고 기억했지만, 거기에는 벽돌과 잿더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집이 없어졌으니 집터에 남은 거라도 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은 듯했고, 그래서인지 가려진 우물의 위치를 어둠이 허락하는 만큼 나에게 알려주었다. 다행히 우물은 불에 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한참동안 벽을 더듬더니 부친이 나무를 잘라서 박아놓은 두레박틀을 찾아냈다. 그리고 무거운 쪽 끝에 무겟돌을 고정시킨 갈고리인지 꺾쇠인지를 손으로 더듬어 찾아내서, 그것이 결코 평범한 '추'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에게 납득시키려 했다. 나는 그것을 만져보았고, 아직도 산책길에 그곳을 지날 때는 그 갈고리를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거기에 걸려 있는 것은 바로 한 집안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탁 트인 들판이 되어 있지만, 우물과 돌담 옆 라일락 군락이 보이는 왼쪽에는 한때 너팅과 르그로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링컨 마을 쪽으로 돌아가기로 하자.

 

이런 집들보다 숲속으로 가장 깊숙이 들어가 있고 도로가 월든 호수에 가장 가깝게 접근해 있는 곳에 와이먼이라는 옹기장이가 살았다. 그는 옹기그릇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고, 그 일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지만, 그들은 재산을 크게 모으지도 못했고, 그들이 살고 있는 땅도 주인이 눈감아준 덕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보안관이 가끔 세금을 걷으러 왔지만 매번 허탕을 치고 돌아갔다. 나는 그가 보고서에 형식적으로 '사금파리 한 조각 압류'라고 적은 것을 보았다. 그것 말고는 압류할 물건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여름날, 내가 밭에서 괭이질을 하고 있을 때, 옹기그릇을 짐마차에 가득 싣고 장에 가던 사람이 내 밭 옆에 말을 세우고는 와이먼의 아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오래전에 그에게 녹로를 샀는데, 그 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성경에서 옹기장이의 진흙과 녹로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쓰고 있는 옹기그릇들이 그 먼 옛날부터 깨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조롱박처럼 나무에 열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웃에서 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옹기그릇을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

 

나보다 앞서 이 숲에 살았던 마지막 주민은 아일랜드 사람인 휴 코일이었다. 그는 와이먼이 살던 집에서 살았는데, 흔히 코일 대령이라고 불렸다. 워털루 전투에 참전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그가 살아 있었다면 그에게 전투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댔을 것이다. 그는 마을에서 도랑 파는 일을 해서 먹고살았다. 워털루 전투가 끝난 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갔고 코일은 월든 숲으로 온 것이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은 모두 비극적인 일들 뿐이었다. 그는 세상 경험이 많은 사람답게 예의바른 사람이었고, 말투도 가만히 듣고 있기 거북할 만큼 정중했다. 알코올 중독으로 섬망을 앓아 늘 몸이 떨렸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었고, 얼굴은 항상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내가 숲에 온 직후에 브리스터 언덕 기슭의 길바닥에서 죽었기 때문에 이웃으로 지낸 추억거리는 별로 없다.

 

코일의 집이 헐리기 전에 그의 동료들은 그 집을 '흉가'라고 부르면서 피했지만, 나는 거기에 가보았다. 높은 나무 침상 위에는 그가 입었던 낡은 옷이 돌돌 말린 채 그의 분신처럼 놓여 있었다. 벽난로 위에는 그의 곰방대가 깨진 채 놓여 있었지만, '샘가에서 깨진 물동이'[각주:4]같은 것은 없었다.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죽음을 상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브리스터 샘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가본 적은 없다고 나한테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마룻바닥에는 다이아몬드와 스페이드와 하트 등 때묻은 카드 몇 장이 흩어져 있었다.

 

유산 관리인도 붙잡지 못한 검은 닭이 한 마리 있었는데, 레너드[각주:5]라도 기다리는지 꽥꽥거리지도 않고 조용히 옆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집 뒤에는 윤곽이 희미한 텃밭이 있었다. 씨는 뿌렸지만, 심한 섬망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김을 매주지 않았다. 텃밭에는 다북쑥과 도깨비바늘만 무성하게 자랐는데, 도깨비바늘이 씨를 퍼트리려고 내 옷에 잔뜩 달라붙었다. 집 뒷벽에는 그의 마지막 전투의 전리품인 마멋 가죽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따뜻한 모자나 장갑이 더이상 필요 없었다.

 

이제는 땅이 우묵하게 꺼진 흔적과 지하실을 쌓은 돌덩이만이 이곳에 한때 집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집터의 양지바른 풀밭에는 딸기와 나무딸기, 골무딸기가 자라고, 개암나무와 옻나무가 덤불숲을 이루고 있다. 굴뚝이 있던 구석은 리기다소나무와 떡갈나무가 차지했고, 문간 섬돌이 있던 자리에서는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검은 자작나무 한 그루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한때 샘물이 흘러나오던 곳에는 우물의 흔적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바싹 말라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풀이 자라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마지막 거주자가 이곳을 떠나면서, 훗날 다시 찾아낼 작정으로 우물 위에 평평한 돌을 덮고 그 위에 잔디를 덮어서 감추어두었는지도 모른다. 우물을 덮다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을까! 그것은 눈물샘을 여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리라.

 

이 버려진 여우굴과도 같은 지하실의 흔적이 한때 부대끼며 살았던 인간들이 남겨놓은 유일한 흔적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삶을 영위하고 '운명과 자유의지와 절대 예지'에 대해 어떤 형식, 어떤 용어를 사용하여 토론을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린 결론에 대해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카토와 브리스터가 사기쳤다"는 것뿐이다. 그래도 그것은 더 유명한 철학 학파들의 역사에 못지않을 만큼 교훈적이다.

 

문짝과 상인방과 문턱이 모두 없어지고 한 세대가 지난 뒤에도 라일락은 활기차게 자라나 봄마다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지나는 나그네들은 생각에 잠긴 채 그 꽃을 꺾는다. 아이들이 앞마당에 심어서 가꾼 라일락이 이제는 외딴 목초지의 돌담 기슭에 서서 새로 조성되고 있는 숲에 자리를 내주었다. 라일락은 그 집안의 마지막 혈통이자 유일한 생존자였다. 피부가 거무스름한 그 집 아이들은, 집의 응달진 곳에 직접 심어서 날마다 물을 준 라일락, 싹눈이 두 개밖에 붙어 있지 않던 그 작고 연약한 나뭇가지가 마침내 뿌리를 내려 자기들보다 더 오래, 뒤쪽에서 나무에 그늘을 드리우던 집과 텃밭과 과수원보다도 더 오래 살아남아, 그들이 어른이 되고 세상을 떠난 반세기 뒤에도 그 나무가 맞이했던 첫번째 봄 못지않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어느 외로운 방랑자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부드럽고 기품있고 쾌활한 라일락의 색깔을 눈여겨본다.

 

콩코드는 지금도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건만, 더 크게 성장할 조짐을 보였던 이 작은 마을은 왜 몰락하고 말았을까? 자연의 혜택, 특히 물의 혜택을 입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 깊은 월든 호수와 시원한 브리스터 샘에서 몸에 좋은 물을 실컷 마실 수 있는 특혜를 이곳 사람들은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술을 희석하는 데에나 이용했을 뿐이다. 그들은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술꾼에 지나지 않았다. 바구니와 돗자리를 짜고, 마굿간용 빗자루를 만들고, 옥수수를 말리고, 아마실을 잣고, 옹기그릇을 만들며, 그렇게 황무지를 장미꽃처럼 활짝 꽃피우며 번성할 수는 없었을까? 그리하여 수많은 후손들이 조상의 땅을 대대로 물려받게 할 수는 없었을까? 땅이 척박해서, 적어도 저지대처럼 타락한 삶을 살아가지는 않아도 됐을 텐데. 안타깝게도 일찍이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추억한다고 해서 경치의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자연은 나를 최초의 정착자로 삼고, 지난봄에 지은 내 집을 이 작은 마을에서 제일 오래된 집으로 삼아서 다시 시도할지도 모른다.

 

내 집이 서 있는 자리에 다른 사람이 집을 지은 적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고대 도시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도시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그런 도시의 건축자재는 폐허의 잔해일 것이고, 정원은 공동묘지였을 테니까. 그런 도시의 흙은 하얗게 바래어 저주받을 테지만,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지구 자체가 멸망하고 말 것이다. 나는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숲의 새로운 주민이 되었고, 나 자신을 달래어 편히 잠들었다.

  1. 1841년 5월 26일 [본문으로]
  2. 영국의 시인 [본문으로]
  3. 스코틀랜드의 전기작가 [본문으로]
  4. (전도서 12:6) [본문으로]
  5. 꾀많은 여우를 이르는 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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