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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저장고
월든 - 겨울 동물들 본문
호수들이 꽁꽁 얼어붙자 여러 곳으로 통하는 지름길들이 새로 생겼을 뿐만 아니라, 호수 주변의 낯익은 풍경들도 얼음판 위에서 바라보자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플린트 호수도 내가 자주 노를 저어 돌아다니거나 썰매를 타던 곳이었지만, 눈으로 덮인 뒤에 건너보니 뜻밖에 넓고 낯설게 보여 광할한 배핀 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덮인 설원 끝에는 링컨 마을을 에워싼 언덕들이 우뚝 솟아 있었지만, 정말로 내가 전에 그 설원에 서본 적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거리조차 가늠할 수 없는 저쪽 얼음판 위에서 늑대처럼 생긴 개들과 함께 천천히 돌아다니고 있는 낚시꾼들은 물개 사냥꾼이나 에스키모처럼 보였고, 안개라도 낀 날에는 전설 속의 생물처럼 어렴풋이 보여서 그들이 거인인지 난쟁이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저녁에 링컨 마을로 강연을 하러 갈 때면 나는 내 집과 강연장 사이에 있는 길이나 집들을 지나지 않고 플린트 호수를 가로지르는 이 길을 택했다. 링컨 마을로 가는 길에 있는 구스 호수에는 한 무리의 사향쥐가 살고 있었는데, 녀석들은 수면보다 높은 곳에 집을 지었지만, 내가 얼음판을 건너갈 때 밖에 나와 있는 녀석은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월든 호수는 다른 호수들과 마찬가지로 대개는 눈이 거의 쌓이지 않거나 쌓이더라도 얇게 덮일 뿐이고, 바람에 날려 쌓인 눈더미가 호수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정도여서 내게는 앞마당 같았다. 다른 평지에는 눈이 50센티미터 깊이로 쌓여서 마을 사람들도 큰길이 아닌 곳은 다닐 엄두조차 내지 못할 때도 나는 호수 위를 얼마든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마을 안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그 길을 달리는 썰매의 방울 소리도 어쩌다 한 번씩밖에 들리지 않는 호수 위에서 나는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면서 놀았다. 눈의 무게에 짓눌려 휘어지고 고드름으로 반짝거리는 떡갈나무와 소나무들이 머리 위로 가지를 내민 그곳에 있으면, 사슴들이 밟아서 다져놓은 겨울철 사슴 마당에 있는 듯했다.
겨울에는 밤은 물론이고 낮에도 어딘가 멀리서 들려오는 올빼미의 울음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쓸쓸하면서도 음악처럼 선율이 아름다웠다.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적당한 활로 켜면 날 것 같은 소리였다. 올빼미의 울음소리는 바로 월든 숲의 고유어였다. 나는 올빼미가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적은 없었지만, 드디어 내게도 그 소리가 아주 익숙해졌다. 겨울 저녁에 문을 열면 어김없이 그 낭랑한 소리가 들렸는데, "우엉, 우엉"하는 소리가 어떤 때는 "안녕, 안녕"하고 인사라도 건네는 것처럼 들렸고, 또 다른 때는 그냥 "엉 엉"하고 우는 소리로만 들리기도 했다.
호수가 완전히 얼어붙기 전인 초겨울의 어느 날 밤 9시께, 나는 기러기 한 마리가 요란하게 울어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문간으로 다가갔다. 기러기 떼가 내 집 위를 낮게 날아가고 있었는데, 그들의 날갯짓 소리가 숲에 휘몰아치는 폭풍우 소리처럼 들렸다. 기러기들은 월든 호수를 넘어 페어헤이븐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내 집에서 나오는 불빛 때문에 호수에 내려앉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우두머리 기러기가 무리를 이끄느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큰 소리로 울어댔던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바로 내 옆에서 올빼미 한 마리가 우두머리 기러기의 울음소리에 응답하듯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어댔다. 그 소리는 내가 그동안 숲에서 들어본 목소리 중에서 가장 우렁차고 거칠고 무시무시했다. 올빼미는 허드슨 만에서 찾아온 이 침입자들에게 월든 토박이의 음역과 성량을 과시함으로써 저들을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망신을 주어 콩코드의 지평선 밖으로 쫓아내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나에게 주어진 이 밤늦은 시간에 이 숲의 성채를 기습한 속셈이 무엇인가?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잠이나 자고 있을 줄 알았는가? 내가 너 정도의 폐와 목청도 못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였는가? 꺼져라 꺼져, 부엉!" 둘의 대화는 내가 이제껏 들어본 소리 중에 가장 끔찍한 불협화음이었다. 하지만 예민한 귀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불협화음 속에서도 이 평원 일대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concord의 요소들을 찾아냈을 것이다.
나는 콩코드의 그 지역에서 나와 절친한 월든 호수의 얼음이 외치는 소리도 들었다. 마치 호수가 불면증에 걸려 잠자리에 들었어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는 것 같기도 하고, 소화불량으로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서리 때문에 땅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에 잠을 깨기도 했는데, 누군가 소 떼를 몰고 와서 내 집 안으로 몰아넣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땅바닥이 500미터 길이에 1센티미터 폭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따금 달빛 밝은 밤에는 여우들이 자고새같은 먹잇감을 찾아 눈덮인 숲속을 돌아다니며 들개처럼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여우들은 어떤 불안감에 짓눌리거나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 듯했다. 또한 빛을 찾아 헤매는 것 같기도 했고, 개가 되어 거리를 마음놓고 달리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동물 세계에서도 나름의 문명화가 진행되고 있는게 아닐까? 내가 보기에 여우들은 혈거시대의 원시인, 아직은 제 한 몸 지키기에 급급하지만 언젠가는 변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인간처럼 보였다. 이따금 여우 한 마리가 내 집 불빛에 이끌려 창문 가까이 다가와서는 나에게 여우다운 저주를 퍼붓고 잽싸게 달아나곤 했다.
새벽에는 대개 붉은다람쥐가 나를 깨웠다. 녀석들은 나를 깨우기 위해 숲에서 파견되기라도 한 것처럼 지붕을 타넘고 벽을 오르내렸다. 겨울 동안 나는 문 옆에 쌓인 눈 위에 덜 여문 채 거둔 옥수수를 반 부셸쯤 던져놓고, 그 미끼에 낚인 다양한 동물들의 거동을 관찰하며 즐거워했다. 해질녘과 밤중에는 멧토끼들이 어김없이 찾아와 옥수수를 실컷 먹었고, 붉은다람쥐들은 온종일 들락거리며 교묘한 몸짓으로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다람쥐는 우선 떡갈나무 숲을 지나 조심스럽게 다가와서는, 무슨 내기라도 하는 듯이 '뒷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엄청난 속도로 눈밭 위를 바람에 날리는 가랑잎처럼 쪼르르 달려왔다고 다시 반대쪽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한 번에 2미터 이상은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세상의 모든 시선이 자기한테 쏠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아무 이유도 없이 공중제비를 한번 넘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처럼 외지고 한적한 산속에 사는 다람쥐조차 무희만큼이나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듯했다. 나는 다람쥐가 걷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녀석들은 목적지까지 천천히 걸어가도 충분히 도착했을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제자리에 멈춰 서서 주위를 경계하며 머뭇거리는 데 보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어린 리기다 꼭대기로 올라가서는 시계태엽을 감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상상 속의 관중을 나무라고, 혼잣말을 하는 동시에 온 세상을 상대로 말하기도 하지만, 다람쥐가 그러는 이유를 나는 알아낼 수 없었고, 그건 다람쥐 자신도 모를 것이다.
마침내 다람쥐는 옥수수에 이르러 적당한 자루 하나를 골라잡으면, 올 때와 똑같이 변덕스러운 삼각 주법으로 이리 폴짝 저리 폴짝 뛰어다니다가 창문 앞에 있는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몇 시간이나 그 자리에 앉아 있곤 했다. 이따금 새 옥수수 자루를 가져와서 처음에는 게걸스럽게 갉아먹다가 반쯤 남은 속대를 내던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더욱 입이 까다로워져서 알갱이만 파먹고는 남은 속대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런데 장작 위에 올려놓고 한쪽 앞발로 붙들고 있던 옥수수자루가 방심한 녀석의 발에서 빠져나와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러자 다람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옥수수가 살아있는게 아닐까 의심하며, 내려가서 옥수수를 다시 주워야 할지, 아니면 새 옥수수를 가져와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그만 자리를 떠야 할지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 같았다.
녀석은 열심히 옥수수를 생각하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바람결에 실려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세우곤 했다. 그 뻔뻔한 꼬마 녀석은 그런 식으로 오전 내내 많은 옥수수를 낭비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제 몸집보다 큰 옥수수자루 하나를 골라잡더니, 능숙한 솜씨로 균형을 잡으며 숲으로 떠났다. 그 모습은 마치 들소를 끌고 가는 호랑이 같았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가다가 자주 걸음을 멈추고 쉬었다. 옥수수자루가 녀석에게는 너무 무거웠는지 걸핏하면 떨어트렸지만, 그래도 수직과 수평의 중간즘 되는 대각선 모양으로 눕혀서 질질 끌고 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고야 말겠다고 단단히 작정한 것 같았다. 그렇게 녀석은 옥수수자루를 내 집에서 200-300미터 정도 떨어진 소나무 꼭대기까지 옮기곤 했다. 나중에 나는 숲속 여기저기에 옥수수속대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어치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 새들의 시끄러운 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치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살금살금 날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 다람쥐들이 떨어트린 옥수수 알갱이를 부리로 물고 리기다 가지에 앉아서 얼른 삼키려 하지만, 어치의 목구멍에는 알갱이가 너무 커서 목에 걸리기 때문에 녀석은 연신 캑캑거린다. 어치는 한참 애쓴 끝에 간신히 알갱이를 토해내고, 한 시간쯤 부리로 알갱이를 열심히 쪼아 잘게 부순다. 어치는 소문난 도둑이어서 나는 녀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람쥐는 처음에는 수줍은 듯 머뭇거리지만, 나중에는 마치 자기 것을 가져가듯이 당당하게 행동한다.
그러는 동안 박새도 떼를 지어 날아왔다. 박새들은 다람쥐가 떨어트린 부스러기를 주워서 가까운 나뭇가지로 날아가 발톱 밑에 놓고, 마치 나무껍질 속에 들어있는 벌레를 쪼듯 작은 부리로 쪼아대어 제 목구멍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잘게 부순다. 이 작은 새들은 나라마다 몇 마리씩 무리를 지어 날아와 내 장작더미에서 먹이를 찾거나 문간에서 음식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다. 박새는 풀잎에 맺힌 고드름이 서로 부딪칠 때처럼 희미한 날개 소리를 내면서 혀짤배기소리로 울거나 쾌활하게 "데이 데이 데이"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어쩌다 날씨가 봄날처럼 따뜻할 때는 여름에 그러듯 숲 가장자리에서 "피비"하고 세차게 울기도 했다. 박새들은 나와 아주 친숙해져서, 드디어 어느 날은 내가 한 아름 안고 가던 장작 위에 박새 한 마리가 내려앉더니 겁도 없이 나무토막을 쪼아댔다. 한번은 내가 마을 텃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때 참새 한 마리가 내 어깨에 잠시 내려앉은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어떤 견장을 단 것보다 명예로운 기분을 느꼈다. 다람쥐들도 결국에는 나와 아주 친숙해져서, 내 발이 녀석들의 지름길을 밟고 있을 때는 내 신발 위를 서슴없이 넘어가기도 했다.
땅이 아직 눈으로 완전히 덮이지 않았을 때, 그리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 내 집 남쪽에 있는 언덕 비탈과 내 장작더미 주위의 얼음이 녹을 때면 자고새들이 먹이를 찾으려고 아침저녁으로 숲에서 나왔다. 이즈음이면 숲속에서는 어느 쪽을 걷고 있어도 느닷없이 자고새가 요란한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라 나뭇잎과 나뭇가지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낸다. 그러면 눈은 햇빛 속에서 금가루처럼 반짝이며 떨어진다. 이 용감한 새는 겨울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바람에 날려 쌓인 눈더미 속에 자주 파묻히고, 때로는 푹신한 눈 속으로 곧장 날아들어가 하루나 이틀 동안 숨어 지내기도 한다. 나는 해질녘에 숲에서 나와 너른 들판에서 야생 사과나무의 새싹을 따먹는 자고새를 놀래주곤 했다. 자고새는 저녁마다 정기적으로 특정한 사과나무를 찾아오기 때문에 교활한 사냥꾼은 거기서 자고새를 잡으려고 기다린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 근처의 과수원들은 자고새때문에 피해가 적지 않다. 그렇더라도 자고새들이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자고새는 새싹과 물만 먹고 사는 자연의 자식이다.
어두운 겨울 아침이나 해가 짧은 오후에는 이따금 한 무리의 사냥개가 추적 본능을 억누르지 못하고 큰 소리로 짖어대며 온 숲을 누비고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간간이 사냥 뿔나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사람이 뒤따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숲에는 다시 소리가 울려퍼지지만, 호숫가 빈터로 뛰쳐나오는 여우는 아직 한 마리도 없고, 악타이온을 추적하는 사냥개 무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여우 꼬리 하나를 썰매에 전리품으로 매달고 여관으로 돌아가는 사냥꾼들을 보게 될 것이다. 사냥꾼들은 말한다. 여우가 얼어붙은 대지의 품안에 남아 있으면 안전할 거라고, 혹여 밖으로 나오더라도 일직선으로 곧장 달아나면 어떤 사냥개도 따라잡지 못할 거라고. 하지만 추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린 여우는 걸음을 멈추고 쉬면서 사냥개들이 다가올 때까지 귀를 기울이고, 달아날 때는 먼 길을 돌아서 자주 드나드는 은신처로 가지만, 그곳에는 이미 사냥꾼들이 기다리고 있다.
여우는 돌담 위를 수십미터나 달리다가 한쪽으로 멀리 뛰어내려 달아나기도 한다. 여우는 물속에 들어가면 냄새를 지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하다. 어떤 사냥꾼한테 들었는데, 언젠가 사냥개에게 쫓기던 여우가 월든 호수로 뛰어드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월든 호수는 얼어있었지만 얼음이 녹아서 생긴 얕은 웅덩이가 곳곳에 있었다. 여우는 호수를 조금 건너가다가 다시 같은 쪽 호숫가로 되돌아왔다. 오래지 않아 사냥개들이 몰려왔지만 거기서 여우 냄새를 놓치고 우왕좌왕했다.
때로는 사냥꾼없이 사냥에 나선 한 무리의 개들이 내 집 앞을 지나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녀석들은 집 주위를 돌면서, 내 존재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서로 격려하듯 짖어댔다. 일종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어서, 무슨 수를 써도 사냥감을 추적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녀석들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사냥개들은 여우가 가장 최근에 남긴 냄새를 다시 찾아낼때까지 한 지점을 계속 빙빙 도는데, 영리한 녀석일수록 이 냄새에 집착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렉싱턴에서 온 남자가 내 집에 와서 자기 사냥개에 대해 물었다. 그 개는 큰 사냥감을 쫓아간 뒤 벌써 일주일 넘게 혼자 사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할 때마다 그는 내 말을 가로막으며, "당신은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하고 물었기 때문이다. 그는 개를 한마리 잃고 사람 하나를 찾은 셈이다.
월든 호수의 물이 가장 따뜻해졌을때, 해마다 한 번씩 월든 호수로 미역을 감으러 오는, 말투가 퉁명스러운 늙은 사냥꾼이 있었다. 그는 월든 호수에 올 때마다 내 집에 잠깐 들르곤 했는데,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래전 어느 날 오후에 그는 엽총을 들고 월든 숲으로 사냥을 갔다. 웨일런드 가도를 걷고 있을때 사냥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오래지 않아 여우 한 마리가 돌담을 넘어 길로 뛰어들었다가 눈깜짝할 사이에 맞은 편 돌담 너머로 사라졌다. 그가 재빨리 총을 쏘았지만 총알은 여우한테 닿지도 않았다. 잠시 후, 늙은 사냥개 한 마리가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여우를 쫓아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주인도 없이 자기들끼리 사냥을 하고 있던 개들은 곧 다시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오후 늦게 그가 월든 호수 남쪽의 울창한 숲속에서 쉬고 있을때, 멀리 페어헤이븐 호수 쪽에서 사냥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낮에 본 개들이 아직도 여우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개들이 다가오자, 서로 격려하며 짖는 소리도 숲 전체에 울려퍼지면서 점점 가까워졌다. 개들이 짖는 소리가 때로는 웰메도 쪽에서, 때로는 베이커 농장 쪽에서 들려왔다. 그는 한참동안 가만히 서서, 사냥꾼의 귀에는 음악처럼 감미롭게 들리는 개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 여우가 나타났다. 느긋하면서도 빠르고 차분한 발걸음으로 신성한 숲길을 이리저리 빠져나가, 추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던 것이다. 여우를 가엾게 여긴 가랑잎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여우의 발소리를 감추어준 덕이었다. 이제 여우는 숲 한가운데 있는 바위 위로 뛰어오르더니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앉아 귀를 기울였다. 등 뒤에 사냥꾼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였다.
잠시 연민의 감정이 사냥꾼의 팔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 지나는 감정에 불과했고, 눈깜짝할 사이에 그의 엽총은 여우를 겨냥하여 발사되었다. 탕! 소리와 함께 여우는 바위에서 굴러떨어져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사냥꾼들은 그 자리에 선 채 사냥개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냥개들은 계속 다가왔고, 이제 악마처럼 사나운 외침소리가 가까운 숲길에 울려퍼졌다. 드디어 늙은 사냥개가 코를 땅에 대고 킁킁거리거나 귀신들린 것처럼 허공을 물어뜯으면서 불쑥 나타나더니 곧장 바위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죽은 여우를 보고는 너무 놀라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입을 다물고 말없이 여우 주위를 돌고 또 돌았다. 이윽고 새끼들도 한 마리씩 도착했는데, 어미와 마찬가지로 이 수수께끼같은 사태에 놀라 조용해졌다. 그러자 사냥꾼이 앞으로 나아가 개들 한복판에 섰다. 수수께끼가 풀렸다. 사냥꾼이 여우 가죽을 벗기는 동안 개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사냥꾼이 여우 꼬리를 들고 떠나자, 개들도 잠시 그 뒤를 따라가다가 결국은 돌아서서 다시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저녁에 웨스턴의 유지 하나가 이 콩코드의 사냥꾼 집에 와서 자기네 사냥개들의 행방을 물었다. 그 개들은 웨스턴 숲에서 시작하여 벌써 일주일째 저희들끼리 사냥을 하는 중이라고 유지는 말했다. 콩코드의 사냥꾼은 자신이 알고있는 바를 말해주고 여우 가죽을 그 유지에게 내놓았다. 하지만 유지는 거절하고 집을 떠났다. 그날 밤 그는 사냥개들을 찾지 못했지만, 이튿날에는 개들이 콩코드 강을 건너 어느 농가에서 하룻밤 보낸 뒤, 그 집에서 잘 얻어먹고 이튿날 아침 일찍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사냥꾼은 샘 너팅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너팅은 전에 페어헤이븐 언덕에서 곰을 사냥하여 그 가죽을 콩코드 마을에서 럼주와 교환하고 했는데, 그 언덕에서 말코손바닥사슴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너팅은 버고인이라는 유명한 여우 사냥개를 데리고 있었는데,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사냥꾼에게도 그 개를 빌려주곤 했다는 것이다.
콩코드 마을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한 늙은 상인이 있는데, 경찰 지서장과 읍사무소 서기와 지방의회 의원을 지낸바 있는 그의 '거래 장부'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기록되어 있다. 1742-43년 1월 18일. '존 멜빈, 회색 여우 한 마리, 2실링 3펜스.' 회색 여우는 이제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다. 1743년 2월 7일자 장부에는 헤스카이어 스트래튼한테 고양이 가죽 절반을 담보로 1실링 4.5펜스를 빌려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고양이는 물론 살쾡이일 것이다. 스트래튼은 프렌치-인디언 전쟁에 하사관으로 참전한 사람인데, 그런 그가 고양이처럼 하찮은 동물을 사냥해서 담보로 맡기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또 사슴 가죽을 외상으로 사들였다는 기록도 있다. 사슴 가죽은 거의 날마다 팔렸다. 콩코드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사냥한 사슴의 뿔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마지막 사슴 사냥에 자기 삼촌도 참여했다면서 그 사냥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해준 사람도 있다. 이곳 사냥꾼들은 전에는 수도 많았고 모두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유난히 깡말랐던 사냥꾼 한 사람은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는 길을 가다 종종 풀잎을 따서 풀피리를 불곤 했는데, 내 기억에 그 소리는 어떤 사냥 뿔나팔 소리보다도 멋지고 아름다웠다.
달이 뜬 한밤중에 나는 이따금 오솔길을 걷다가 숲속을 배회하는 사냥개들과 마주치곤 했다. 그러면 녀석들은 나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슬며시 길에서 벗어나 내가 지나갈 때까지 덤불 속에 조용히 서 있곤 했다.
다람쥐와 들쥐들은 내가 저장해둔 호두 때문에 서로 다투었다. 내 집 주위에는 지름이 3센티미터에서 10센티미터에 이르는 리기다소나무가 수십 그루나 서있는데, 지난 겨울에 들쥐들이 많이 갉아먹었다. 눈이 오랫동안 두껍게 쌓여있어서 들쥐들에게는 노르웨이의 겨울만큼이나 혹독했기 때문에, 나무껍질이라도 갉아먹어 모자란 식량을 보충해야 했던 것이다. 이 리기다소나무들은 나무껍질이 고리 모양으로 완전히 벗겨졌지만 한여름에는 싱싱했고 겉보기에는 잘 자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도 같은 일을 당한 소나무는 예외없이 모두 죽어버렸다. 작은 들쥐 한 마리가 소나무를 위아래로 갉아먹지 않고 고리 모양으로 빙 둘러 갉아먹어,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먹이로 삼는 것이 허용된다는 사실은 놀랍다. 하지만 번식력이 강해서 빽빽이 자라기 일쑤인 이 나무들을 솎아내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멧토끼도 나와 아주 친해졌다. 한 녀석은 내 집 마루 밑에 굴을 파고 겨우내 살았다. 녀석과 나를 갈라놓고 있는 것은 마루판 뿐이었다. 아침마다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녀석은 밖으로 나가려고 서두느라 머리를 마루판에 쿵쿵쿵 부딪혀 나를 놀라게 했다. 해질녘이면 멧토끼들은 내가 내다버린 감자껍질을 먹으려고 문 앞으로 몰려들곤 했다. 멧토끼는 땅 색깔과 너무 비슷해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분간하기 어렵다. 이따금 한 녀석이 어스름 속에서 내 창문 밑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금세 사라지기도 했다. 저녁때 문을 열고 나가면 녀석들은 찍찍 소리를 지르며 깡충깡충 뛰어서 달아나곤 했다. 가까이서 바라보면 토끼들은 내 동정심을 자극할 뿐이었다.
어느날 저녁, 토끼 한 마리가 내게서 두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문간에 앉아 있었다. 처음엔 무서워서 덜덜 떨었지만 움직일 마음은 없는 듯했다. 깡말라서 뼈만 앙상한 데다 축 늘어진 귀와 뾰족한 코, 짧은 꼬리에 가느다란 앞발을 가진 불쌍한 녀석이었다. 자연이 이제 더는 고귀한 혈통을 포용하지 못한 탓에 녀석도 마지막 남은 발가락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토끼의 커다란 두 눈은 어리고 병약해 보였다. 마치 수종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한 발짝 다가가자 녀석은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더니 몸과 네 다리를 우아하게 쭉쭉 뻗으면서 눈밭 위를 질주하여 순식간에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자신의 활력과 자연의 위엄을 과시하는 자유로운 야생동물의 모습이었다. 그 토끼가 그렇게 날씬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멧토끼의 본모습이었다.(멧토끼를 뜻하는 라틴어 lepus가 빠른 발이란 뜻의 levipes에서 유래했다는 사람도 있다)
시골에 멧토끼와 자고새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가장 소박하고 가장 토착적인 동물이다. 그들은 고대에도 지금만큼이나 잘 알려진 오래되고 존중받는 동물 가족이다. 그들은 자연 그 자체의 색깔이며 본질이다. 나뭇잎이나 대지와도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고, 자기네끼리의 관계도 밀접하다. 하나는 다리가 달렸고 하나는 날개가 달렸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길을 가다가 멧토끼나 자고새가 불쑥 나타나 달아나는 모습을 보면 야생동물을 본 것 같지 않다. 그것은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처럼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구상에 어떤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도 자고새와 멧토끼는 대지의 진정한 토박이로서 여전히 번성할게 분명하다. 숲의 나무들이 베어져도 새로 돋아나는 새싹들과 덤불은 그들의 은신처가 될 테고, 그러면 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가 많아질 것이다. 멧토끼 한 마리 먹여 살리지 못한다면 그곳은 참으로 가난한 시골일 것이다. 아이들이 잔가지 덫을 놓고 말총 올가미를 설치해놓는다 하더라도, 우리 숲에는 자고새와 멧토끼가 넘쳐나, 모든 늪지 주변에서 녀석들이 한가로이 거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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