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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위계에 대한 간단한 생각

과학주의자 2022. 5. 20. 22:44

최근에 불교와 도가에 많은 흥미와 호감을 가졌으나, 그럼에도 그들에게 동의하지 못하는 명제들이 있다. 논리법칙은 타당하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 하에서, 이등변삼각형의 두 변의 길이는 같다. 문화상대주의는 틀렸다. 지구는 태양을 돈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다. 코로나는 박쥐에서 유래한 바이러스이며, 현재 개발된 mRNA 백신으로 충분히 적은 부작용 하에서 위험도를 통제할 수 있다. 외향적인 인간과 내향적인 인간은, 여러가지 행동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결론적으로, 상대주의는 틀렸고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진리가 있다.

 

이 글은 우리가 이성을 통해 도출해내는, 일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지식들로 여겨지는 것을 정리한다. 이 지식들은 불교/도가적인 깨달음을 통해 마음의 때를 모두 씻어낸 이후에도 충분히 타당하다고 신뢰할 수 있는 사실들이다. 오히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불도의 사고방식을 현대적으로 이해하는 기반이 되어야 하며, 뿐만 아니라 다른 사상이나 생각을 판단하는 데에도 기준이 되어야 한다.

 

 

1.과학적 사실

과학적 사실은 자연과학을 통해 밝혀낸 사실들을 말한다. 과학적 사실들은 귀납적 관찰을 통해 도출되거나, 귀납적으로 도출된 법칙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유도된다. 귀납적 추론이 과연 합리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인정은 콰인과 그 반대파 모두를 만족시킨다. 현대물리학의 표준 모형과 양자역학, 진화론, 생리학적 지식, 판구조론 등이 여기에 속하며, 사회과학에서 밝혀낸 수요와 공급 법칙이나 베버-페히너의 법칙, 인지발달이론 등도 과학적 사실에 속한다.

 

어째서 우리는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먼저 우리에게는 과학의 근간이 되는 귀납적 사실을 진리로 믿을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 가령 아래와 같은 논증을 보자.

 

  • 전제1: 이재명은 죽는다
  • 전제2: 윤석열은 죽는다
  • (기타 등등)
  • 결론: 인간은 모두 죽는다.
 

위와 같은 논증에서, 전제들은 결론의 진리성을 보증하지 못한다. 하지만 결론을 지지하는 전제(근거)가 늘어날수록, 결론을 받아들일 때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오류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이재명이 죽는 것을 관찰했을 경우에, 우리의 관찰이 거짓일 확률은 50%이다. 윤석열이 죽는 것을 관찰했을 경우에, 이 확률은 25%로 떨어진다. 우리의 관찰을 지지하는 근거가 늘어날수록 오류 확률은 계속해서 하락한다. 정교한 통계학적 기법을 통해 심리학과 생물학에서는 오류 확률을 5% 이하로 유지하며, 물리학에서는 0.002%로 떨어진다. 이런 경우에도 우리는 우리가 관찰한 과학적 사실이 거짓일 가능성을 0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여도 될 만큼 충분히 작게 줄일 수 있다.

 

또한 과학은 연역추리를 위한 전제를 제공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을 버려질 수 없다. 연역추리는 타당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는 전제가 타당한 경우에만 해당한다. 그리고 연역추리의 기반이 되는 전제가 타당한지는 연역적으로 알 수 없으며, 연역논리 이외의 방법으로 알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과학은 다른 어느 지식체계보다도 적은 오류 확률로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뒤에서도 다루겠지만, 어느 논리체계가 현실과 잘 부합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도 이러한 과학적 관찰이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과학은 앞으로 다룰 2가지 지식과 함께 우리가 신뢰해야 할 지식으로 보인다.

 

2.논리적/수학적 사실

논리적/수학적 사실은 연역논증을 통해 밝혀낸 사실들을 말한다. 이러한 지식은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도출된다는 점에서 과학과 차이가 있으며, 엄밀히 말해서 기본 전제들이 명확하면 자연스럽게 모두 알게 되지만 실제로는 인간 능력의 한계로 인해 많은 내용들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지식에는 논리적 사실과 수학적 사실이 있는데, 이 둘은 서로 구분되는 성질을 가지지만 그 연역적인 특성으로 인해 필자가 같이 묶어놓았다.

 

수학적 사실은 특정한 전제에서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사실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적 사실들은 기본 공리들 하에서(그리고 1차 논리 하에서) 모두 타당하며, 어느 경우든 연역적으로 진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리가 실제 세상과 부합한다면, 그게 어디라도 절대적인 참이 된다. 5가지 공리에서 증명되는 피타고라스 정리가 여기에 해당하며, 모듈러 이론이나 소피 제르맹의 정리,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리만 가설은 귀납적으로는 참으로 여겨지지만, 아직 수학적 사실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수학적 사실은 과학적 사실보다 타당하나,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수학적 사실은 주어진 전제 하에서만 참이 되기 때문에, 전제가 틀리면 모두 참이 아니게 된다. 실제로 우리 우주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피타고라스 정리와 같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리들은 우주적 규모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수학적 사실의 바탕이 되는 전제들이 서로 모순된다면 자연히 그 결론들도 거짓이 되는데, 수학적 추론만으로는 수학의 전제들이 서로 모순되는지 알 수 없다. 결론적으로 수학적 사실이 현실적으로 타당한지 알기 위해서는 논리적 추론을 통해 전제들의 무모순성을 증명해야 하고, 전제가 현실과 부합하는지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논리적 사실은 연역논증을 하는 법에 대한 사실들이다. 우리는 a=b이고, b=c일때 a=c라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왜 꼭 그래야 하는가? 왜냐하면 =은 양 변의 항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기호이고, a=b=c일 경우 중간의 b를 생략해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3이 3+2와 동일한 이유는, 우리가 +에서는 교환법칙이 성립한다고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수학적 사실이 특정한 전제들에서 도출되는 지식이라면, 논리적 사실들은 전제에서 지식을 끌어내는 규칙에 대한 사실들이다. 퍼지논리와 직관주의 논리, 양상논리, 명제논리 등 논리체계에 대한 정의와 지식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1차논리도 논리적 사실의 일부지만 몇가지 이유로 인해 다른 곳에서 다룰 것이다.

 

논리적 사실은 연역논증을 구성하는 토대이며, 가장 절대적인 지식이다. 아무도 a=c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설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은 논리적 사실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논리적 사실들은 왜 우리가 그러한 논리 규칙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 의미를 안다고 해도, 왜 우리가 a=c가 진리라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은가? 실제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고전 논리는 정답이 예/아니오로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사용하기 힘들고, 교환법칙은 행렬을 계산할 때는 통용되지 않는다. 양자역학에서도 교환법칙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어떤 논리규칙(논리적 사실)을 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규칙이 타당하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수학에서 고전 논리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수학에 가장 적합한 논리체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답이 0/1로 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다양한 값을 허용하는 퍼지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퍼지 논리의 지지자들은 입을 모은다. 반면에 영자역학자들은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학의 연산 규칙들을 아직도 사용한다. 결론적으로 어떤 논리적 사실들이 참이 되기 위해서는 그 논리규칙이 적용될 대상에서 해당 논리규칙이 타당한지 먼저 증명되어야 하며, 대상이 논리적 추론으로 알 수 없는 현실세상인 경우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3.1차논리

1차논리는 논리적 사실의 일종으로, 우리가 통상적으로 하는 연역논증의 규칙들이다. a와 b가 모순되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거짓이어야 한다던가,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참이라던가 하는 지식들이 1차논리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1차논리의 추론규칙은 9개로 정리할 수 있으며, 1차논리는 논리적 사실과 수학적 사실, 과학적 사실들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1차논리는 예/아니오 이외의 답은 도출할 수 없기 때문에, 좋다/나쁘다 처럼 답이 0과 1로 떨어지지 않는 분야에는 적용할 수 없다.

 

왜 1차논리는 다른 논리적 사실들과 떨어져 특별 취급될까? 왜냐하면 1차논리는, 논리에 기반한 지식들을 평가하는 데 가장 적합한 논리규칙이기 때문이다. 괴델의 완전성 정리에 의해 1차논리는 가장 완전하고 건전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즉 1차논리의 논리규칙을 사용하면 우리는 항상 전제에서 참인 모든 사실을 추론할 수 있고, 반대로 어떤 전제에서 추론된 모든 사실은 그 전제 하에서 참이다. 그래서 1차논리를 논리규칙으로 받아들인 경우, 전제에서 연역적으로 이끌어낸 결론은 모두 참이다. 이는 과학 이론도 해당되며, 직관주의 논리와 같은 다른 논리규칙들도 1차논리의 논리규칙들을 통해 그들의 건전성이나 완전성이 입증되었다.

 

즉 1차논리는 연역논증에서 논리규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규칙들 중 최고의 규칙이며, 1차논리를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는 연역논증이 전제에서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는 점을 완벽히 보장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차논리는 수학이나 과학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리규칙으로 가장 적합하다. 무엇보다 1차논리는 우리가 만든 어떤 논리규칙이 논리규칙으로서 적합한지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논리규칙들을 평가하는 데에도 과학적 관찰과 함께 중요하다. 즉 1차논리는 모든 논리 위의 메타논리이며, 우리의 합리적 사고의 기반이자 굳건한 토대이다.

 

물론 그런 1차논리도 한계를 가진다는 점을 기억하라. 1차논리는 정답이 예/아니오로 떨어지지 않거나 불확실한 미래와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경우 통하지 않는다. 또한 논증이 제대로 되었는지는 정해줄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수학적 가설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려주지 못한다. 무엇보다 1차논리는 논증의 바탕이 되는 전제가 참인지를 말해주지 못한다. 결국 우리의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퍼지 논리나 양상논리처럼 다른 상황에서 적용가능한 논리 규칙이 필요하고, 논증의 바탕이 될 공리체계가 필요하며, 전제가 타당한지 입증해 줄 과학이 필요하다.

 
 

이상의 3가지 부류의 사실들은 우리가 탐구의 바다를 항해하는 데 우군이 되어줄 가장 든든한 친구들이다. 1차논리를 통해 우리는 각기 상황에 적합한 논리규칙을 알아내어 사용할 수 있다. 이 논리규칙들은 수학의 바탕이 되어서, 우리가 어떤 전제들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논리규칙이 우리가 다루려는 대상에 적합한지, 우리의 전제를 타당한지, 그리고 우리 논증의 바탕이 되어야 할 전제들을 발견하려 할 때 과학은 우리의 등불이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3가지 지식은 확실성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과학은 귀납적 관찰에 기초하기 때문에 가장 취약하다. 반면에 전제가 참이면 1차논리에 의해 결론도 참이 보증되는 수학적 사실들은 전제가 맞는 한 절대적 참이며, 논리적 사실들은 그 규칙들이 대상에 적절하다면 진리를 만들어내는 최고의 진리이다. 그리고 1차논리는 그 논리규칙들과 다른 과학/수학이론들에서 논증을 시행하고 평가하는 데에 최고로 적합하기 때문에, 그 어떤 지식보다 절대적인 참이다. 하지만 그러한 1차논리도 제대로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다른 논리규칙이나 과학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라. 결국 우리는 3가지 형태의 지식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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