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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봄이 오다2

과학주의자 2024. 7. 14. 16:32

오래지 않아 이 철로둑만이 아니라 모든 언덕과 들판과 구덩이에서, 굴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네발짐승이 밖으로 기어나오듯, 땅속에 숨어 있던 서리가 빠져나와 노래를 부르며 바다를 찾아가거나 구름 속으로 올라가 다른 기후를 찾아 이동할 것이다. 온화한 설득력을 지닌 해빙의 신은 망치를 휘두르는 토르보다 힘이 세다. 해빙의 신은 얼음을 녹이는 반면, 토르는 얼음을 산산조각 낼 뿐이다.

 

땅을 덮었던 눈이 군데군데 녹아서 사라지고 따뜻한 날씨가 며칠 이어지면서 지표면의 습기가 어느 정도 마르자 봄의 첫 징후인 연약한 새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을 견디느라 쇠약해지고 시들어버린 식물들의 당당한 아름다움과 막 세상에 태어난 어린 새싹들의 싱그러움을 비교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예컨대 보릿대국화, 미역취, 쥐손이풀같은 우아한 들풀들은 지난 여름까지도 아름다움이 무르익지 않았던 것처럼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또렷하고 흥미로울 때가 많다. 황새풀, 부들, 우단현삼, 물레나물, 조팝나무, 터리풀, 그밖에 강한 줄기를 지닌 식물도 눈에 띄는데, 이것들은 가장 일찍 찾아온 새들에게는 무진장한 곳간이고, 과부가 된 자연의 여신이 입고있는 점잖은 상복이다.

 

나는 윗부분이 이삭 다발처럼 고개숙인 골풀에 특히 마음이 끌렸다. 이 풀은 겨울에 대한 추억을 여름에 상기시키고, 예술가가 모방하고 싶어하는 형상들 가운데 하나다. 또한 골풀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여러 유형들과 천문학이 맺은 관계를 식물의 왕국에서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그리스 양식이나 이집트 양식보다 더 오래된 양식이다. 겨울에 일어나는 많은 현상은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깨지기 쉬운 섬세함을 암시한다. 우리는 동장군이 거칠고 사나운 폭군으로 묘사되는 것을 듣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사실 그는 연인처럼 상냥하게 여름의 머리를 치장해준다.

 

봄이 다가오자 붉은다람쥐 두 마리가 동시에 내 집 마루 밑으로 들어왔다. 내가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으면 녀석들은 바로 내 발밑에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을 만큼 이상한 소리로 낄낄거리거나 찍찍거렸고, 어떤 때는 혀를 잽싸게 굴리며 꼴꼴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가 발을 굴러 소리를 내면 녀석들은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짹짹거렸다. 장난에 열중하여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도 모두 잊어버리고, 자신들을 막으려면 어디 한번 해보라고 도전하는 것 같았다. 제발 그만해, 녀석들아! 하지만 다람쥐들은 내 요구를 무시하거나, 내 요구에 담긴 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참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봄의 첫 참새가 왔다! 어느 때보다 젊은 희망과 함께 새해가 시작되었다. 파랑새와 멧종다리와 개똥지빠귀가 은방울처럼 낭랑하게 지저귀는 소리가 군데군데 헐벗고 축축한 들판을 넘어 희미하게 들려왔다. 겨울의 마지막 눈송이들이 떨어지면서 방울처럼 딸랑딸랑 울리는 것 같았다! 이런 때, 역사와 연대기와 전통, 문자로 기록된 계시 따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시냇물은 봄의 찬가와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 개구리매는 강가의 풀밭 위를 낮게 날면서 겨울잠에서 처음 깨어나는 미끈미끈하고 끈적끈적한 생명체를 찾고 있다. 골짜기에서 눈이 녹아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고, 호수에서도 얼음이 빠르게 녹고 있다.

 

언덕 비탈에서는 풀들이 봄날의 들불처럼 타오르고, "이른 봄비의 재촉을 받은 풀들이 파릇파릇 돋아난다."[각주:1] 마치 대지가 돌아오는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내부의 열을 발산하는 듯하다. 그 불길의 색깔은 노란색이 아니라 초록색이다. 영원한 젊음의 상징인 풀잎은 초록색 리본처럼 흙에서 나와 여름을 향해 흘러가다가 찬 서리에 제지를 당하지만, 곧 땅 밑에서 솟아나는 새로운 생명력으로 지난해의 건초에서 새싹을 밀어올린다. 풀잎은 실개천이 땅속에서 흘러나오듯 꾸준히 자란다. 풀잎과 실개천은 거의 같다. 낮이 점점 길어지는 6월에 실개천이 바싹 마르면, 풀잎 자체가 실개천이 되어 수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가축들은 영원한 초록색을 띤 이 물줄기에서 물을 마시고, 꼴을 베는 사람들은 여기서 가축의 겨울 먹이를 때맞춰 얻는다. 우리 인간의 생명도 결국에는 뿌리만 남고 다 말라버리지만, 그래도 영원을 향해 초록색 풀잎을 내민다.

 

월든 호수는 빠르게 녹고 있다. 북쪽과 서쪽 기슭을 따라 10미터 너비의 물줄기가 생겼고, 동쪽 기슭에는 그보다 더 넓은 물줄기가 있다. 커다란 얼음장 하나가 본체에서 떨어져나갔다. 호숫가 덤불 속에서 멧종다리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호릭, 호릭, 호리릭.... 틱, 틱, 틱, 체 차, 치, 히스, 히스, 히스." 멧종다리도 얼음을 깨는 것을 거들고 있다. 얼음 가장자리의 거대한 곡선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은 호숫가의 곡선과 얼마간 일치하지만, 그보다 더 규칙적이다. 최근에 일시적이지만 혹독한 추위가 닥쳤기때문에 호수의 얼음은 유난히 단단하고, 궁궐 바닥처럼 온통 물결무늬로 덮여 있다. 하지만 바람은 그 불투명한 표면을 건드리며 동쪽으로 미끄러져가지만, 얼음은 녹이지 못한 채 그 너머의 살아있는 수면에 닿는다.

 

리본처럼 길게 뻗은 이 물이 햇빛 속에서 반짝이는 것은 정말 멋진 광경이다. 환희와 젊음으로 가득 찬 호수의 민낮은 그 안에 사는 물고기들의 기쁨과 호숫가에 깔린 모래의 기쁨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황어 비늘처럼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은 호수 전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한 마리의 거대한 물고기 같다. 겨울과 봄은 그렇게 다르다. 월든 호수는 죽었다가 이제 되살아났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올봄에는 얼음이 더 꾸준히 착실하게 녹았다.

 

눈보라치는 겨울이 화창하고 온화한 날씨로 바뀌고, 어둡고 무기력했던 시간이 밝고 탄력적인 시간으로 바뀌는 과정은 만물이 선언하는 중대한 순간이다. 변화는 막판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다. 저녁때가 가까웠고, 겨울 특유의 구름이 아직도 내 집 위에 걸려 있고, 처마에서는 진눈깨비같은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햇빛이 쏟아져들어와 내 집을 가득 채웠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니, 세상에! 어제까지만 해도 차가운 잿빛 얼음이 있던 곳에 투명한 호수가 자리해 있는게 아닌가? 벌써 여름날 저녁처럼 잔잔하고 희망찬 모습이었다. 하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 떨어진 지평선과 교신이라도 하는지, 호수는 투명한 가슴에 여름의 저녁 하늘을 가득 담고 있었다.

 

멀리서 울새의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왔다. 내게는 그 소리가 수천년 만에 처음 듣는 소리처럼 느껴졌고, 나는 앞으로도 수천년동안 그 소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그것은 옛날과 다름없이 감미롭고 힘찬 노랫소리였다. 아, 뉴잉글랜드의 여름날이 끝날 무렵의 저녁 울새! 녀석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울새를, 그 나뭇가지를!

 

오랫동안 축 늘어져 있던 내 집 주위의 소나무와 떡갈나무들은 갑자기 본래의 특징을 되찾아 더 선명한 초록색을 띠었고 더 꼿꼿하고 싱싱해 보였다. 마치 빗물에 씻겨서 깨끗해지고 원기도 회복한 것 같았다. 나는 비가 더 내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숲속의 어떤 나뭇가지를 보아도, 집에 있는 장작더미만 보아도 겨울이 지나갔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날이 더 어두워졌을때 나는 숲 위를 낮게 날아가는 기러기들의 울음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 새들은 남쪽 호수에서 늦게 도착하여 제멋대로 불평을 늘어놓으며 서로 위로해주는 지친 나그네들 같았다. 문간에 서 있던 나는 그들이 요란하게 날개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기러기들은 내 집 쪽으로 날아오다가 집 안에서 나오는 불빛을 보고는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그치고 방향을 바꾸어 호수에 내려앉은 것이다. 그래서 나도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숲속에서 처음 맞은 봄날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에 나는 문간에서 안개 너머로 기러기를 관찰했다. 기러기들은 150미터즘 떨어진 호수 한가운데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기러기가 너무 많고 시끄러워서, 월든 호수가 마치 녀석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일부러 만들어놓은 놀이터 같았다. 하지만 내가 호숫가로 다가가자 기러기들은 우두머리의 신호에 따라 요란하게 날개를 퍼덕이며 일제히 날아오르더니, 대열을 정비하고는 내 머리 위를 한 바퀴 선회했다. 모두 스물아홉마리였다. 잠시 후 기러기들은 우두머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토해내는 소리에 따라 캐나다 쪽으로 곧장 날아갔다. 여기보다 탁한 호수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한 떼의 오리들도 날아오르더니, 자기네보다 더 시끄러운 사촌들의 뒤를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후 일주일 동안 홀로 남은 기러기 한 마리가 아침마다 친구들을 찾아 하늘을 맴돌면서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는 숲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생명의 소리로 숲을 가득 채웠다. 4월에는 비둘기들이 작은 무리를 지어 빠르게 날아가는 모습이 다시 눈에 띄었고, 오래지 않아 흰털발제비들도 내 밭 위에서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흰털발제비는 마을에도 별로 많지 않아 보였는데, 나한테까지 날아왔다면 녀석들은 아마 백인이 오기 전에 속 빈 나무에 살았던 별난 종족의 후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기후대에서 거북과 개구리는 봄의 선구이자 전령이다. 새들이 노래를 부르며 반짝반짝 빛나는 깃털로 날아다니고, 초목에 싹이 트고 꽃이 피며 바람이 부는 것은 지구 양극의 미세한 진동을 바로잡아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어느 계절이든 바뀔 때가 되면 우리에게 가장 좋게 여겨지듯, 봄이 오는 것은 마치 혼돈에서 질서가 창조되고 황금시대가 도래한 듯한 느낌을 준다.

 

동풍은 물러갔다. 에오스[각주:2]의 나라와 나바테아 왕국으로,

페르시아와 아침 햇살 비치는 산등성이로.

(생략)

인간이 태어났다. 더 나은 세상의 근원인 조물주가

인간을 신의 씨앗으로 만들었는가.

아니면 드높은 창공에서 최근에 갈라져나온 대지가

동족인 하늘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었는가[각주:3]

 

보슬비가 한 번만 내려도 풀은 더 한층 짙은 초록색을 띤다. 그와 마찬가지로 더 좋은 생각이 유입되면 우리의 전망도 밝아진다. 우리가 항상 현재에 살면서, 아무리 작은 이슬방울이 떨어져도 그 힘을 인정하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닥친 모든 사건을 유익하게 이용한다면, 그리고 과거에 좋은 기회들을 놓친 것을 속죄하느라 시간을 보내면서 그것으로 의무를 다한 양 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다.

 

이미 봄이 왔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겨울 속에서 빈둥거린다. 상쾌한 봄날 아침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용서받는다. 그런 날은 악덕과도 휴전하는 날이다. 그런 봄날의 태양이 타고 있는 동안은 가장 비열한 죄인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나 자신의 순수함을 되찾게 되면 우리는 이웃의 순수함도 알아볼 수 있다. 어제만 해도 당신은 이웃사람을 도둑이나 주정뱅이나 바람둥이로 생각하고 그 사람을 동정하거나 경멸하면서 세상에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봄이 찾아온 이 첫날 아침, 태양이 밝고 따뜻하게 빛나면서 세상을 다시 창조하고 있는 지금, 당신이 차분하게 일하고 있는 이웃을 만나, 방탕한 생활로 지치고 타락한 그의 혈관이 기쁨으로 부풀어오르고, 그가 새로운 날을 찬미하며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하게 봄의 기운을 느끼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순간 당신은 그의 허물을 모두 잊게될 것이다. 그에게는 선의의 분위기가 감돌 뿐만 아니라 갓 태어난 본능처럼 성스러운 기미까지도(아마 맹목적이고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밖으로 표출될 길을 탐색하고 있다. 그래서 한동안 남쪽의 언덕 비탈은 저속한 농담에 반응하지 않는다. 당신은 옹이투성이인 그의 껍질에서 순결하고 아름다운 새싹이 터져나와, 가장 어린 나무처럼 여리고 싱싱한 모습으로 또 한 해를 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런 인간조차 '주님'의 기쁨 속에 들어온 것이다. 왜 간수는 옥문을 열어놓지 않을까? 왜 판사는 사건을 기각하지 않을까? 왜 목사는 교회에 모인 신자들을 해산시키지 않을까? 그것은 그들이 신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신이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용서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남벌된 숲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매일 아침의 고요하고 자비로운 바람 속에서 새로 생겨나는 선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미덕을 사랑하고 악덕을 미워한다는 점에서 인간 본성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루 동안 저지르는 악덕은 다시 돋아나기 시작한 미덕의 싹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고 싹을 죽인다.

 

이렇게 미덕의 싹이 자라는 것을 거듭해서 방해하게 되면 저녁의 자비로운 바람도 그 싹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저녁 바람이 더이상 미덕의 싹을 지켜주지 못하면 사람의 심성은 금수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게 된다. 금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본래부터 선을 행할 재질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어찌 사람이 타고난 본래의 성정이겠는가."[각주:4]

 

황금시대가 처음 열렸을 때는 벌주는 자도 없었고

자연히 법도 없었지만 성실과 정직을 소중히 여겼다.

형벌도 두려움도 없었고, 위협하는 말이

내걸린 동판 위에 적혀 있지도 않았다.

탄원하는 군중은 재판관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벌주는 자가 없어도 안전했다.

산에서 베어진 소나무는 아직 바다로 내려오지 않아서

낯선 세상을 보지 못했고

사람들은 자신의 해안밖에는 알지 못했다.

(생략)

그곳은 늘 봄이었고, 잔잔한 서풍은

씨앗도 없이 태어난 꽃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다.[각주:5]

 

4월 29일 나는 '나인에이커코너' 다리 근처의 강둑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사향쥐들이 숨어있는 버드나무 뿌리 위에 서 있었는데, 그때 달그락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갖고 노는 딱따기에서 나는 소리같았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쏙독새처럼 조그맣고 우아하게 생긴 매 한 마리가 잔물결처럼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재주를 넘으며 5-10미터쯤 내려왔다. 이런 동작을 되풀이하는 과정에 매의 날개 아래쪽이 드러났는데, 공단으로 만든 리본처럼 또는 조개 속에 든 진주처럼 햇빛에 번득였다. 그 광경을 보자 매사냥이 떠올랐고, 매사냥이야말로 고상하고 시적인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새는 쇠황조롱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름이 무슨 상관인가.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가뿐한 비행이었다. 그 매는 나비처럼 단순히 날개를 펄럭이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매처럼 무작정 하늘로 치솟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만만한 자태로 하늘 들판에서 놀고 있었다. 묘한 웃음소리를 내며 끝없이 하늘로 올라가서는 연처럼 공중제비를 돌며 자유롭고 아름답게 떨어지다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단단한 땅에는 한 번도 발을 디딘 적이 없는 것처럼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에서 그렇게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새는 이 세상 천지에 친구가 하나도 없고, 같이 놀아주는 아침과 하늘 말고는 어떤 친구도 필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 새는 외롭지 않았지만, 그 밑에 있는 대지를 외롭게 만들었다. 녀석을 낳은 어미와 친척과 아비는 하늘의 어디쯤에 있을까? 하늘에 사는 그 새는 언젠가 바위틈에서 부화했다는 것 말고는 대지와 아무 관계도 없는 듯했다. 아니, 그가 태어난 둥지도 구름 귀퉁이에 지은 둥지, 무지개 조각과 저녁놀을 씨실과 날실로 삼아서 엮고 땅에서 집어올린 한여름의 푹신한 안개를 바닥에 깐 둥지가 아니었을까? 지금 그의 둥지는 벼랑 끝에 걸린 구름이다.

 

매의 비행을 보는 것 말고도 나는 황금색, 은색, 구리색의 희귀한 물고기들을 두루 낚았다. 이 물고기들은 줄에 꿴 보석 같았다. 아! 봄이 찾아온 첫날 아침이면 나는 목초지로 나가서 작은 언덕에서 언덕으로, 이 버드나무 뿌리에서 저 뿌리로 건너뛰며 돌아다녔다. 그럴 때면 세차게 흐르는 강물과 골짜기와 숲에는 너무나 순수하고 밝은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혹자들이 생각하듯 죽은 자들이 무덤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라면, 그 순수하고 밝은 빛을 받고는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영혼의 불멸을 증명하는데 이보다 더 강력한 증거는 필요없다. 세상 만물은 모두 그런 빛 속에서 살아야 한다. "오, 죽음이여, 너의 독침은 어디에 있느냐? 오, 무덤이여, 너의 승리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 마을은 아직 탐험되지 않은 숲과 초지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런 숲과 초지가 없다면 우리 마을의 삶에는 활기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야생이라는 강장제가 필요하다. 때로는 알락해오라기와 뜸부기가 숨어있는 늪지를 걸어서 건너거나 도요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더 야성적이고 더 고독한 새들만 둥지를 짓고 밍크가 땅바닥에 배를 대고 살금살금 기어다니는 곳, 그런 곳에 가서 바람에 살랑거리는 골풀 냄새를 맡아볼 필요도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탐험하여 알아내려고 열심인 동시에 모든 것이 신비에 싸인 채 미답의 상태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또한 육지와 바다도 높이와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그래서 무한히 야성적이고 탐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우리는 자연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충분치 않다. 자연의 고갈되지 않는 활력, 광활하고 웅장한 지형, 난파선 잔해가 흩어져 있는 해안, 살아있는 나무들과 썩어가는 나무들이 공존하는 원시림, 천둥을 몰고 오는 먹구름, 3주 동안 계속되어 홍수를 일으키는 비, 이 모든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원기를 회복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우리가 발도 들여놓지 않는 곳에서 어떤 생명체가 자유롭게 풀을 뜯는 것을 목격할 필요가 있다. 구역질을 일으키고 용기마저 잃게 하는 동물의 시체를 독수리가 뜯어먹고 거기에서 건강과 힘을 얻는 것을 보면 우리도 힘이 솟는다.

 

언젠가 집으로 가는 길가 웅덩이에 말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웅덩이를 피해서 다녀야 했고, 특히 하늘이 음산한 밤에는 길을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나는 죽은 말을 보면서 자연의 왕성한 식욕과 침해할 수 없는 건강을 확신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불편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나는 수많은 생명체가 서로 먹고 먹히며 살아도 될 만큼 생명체로 가득 차 있는 자연을 보고 싶다. 연약한 유기체가 곤죽처럼 짓이겨져 죽어도, 왜가리가 올챙이를 꿀떡 삼키거나 길에서 거북과 두꺼비들이 바퀴에 깔려 죽어도, 때로는 살과 피가 비오듯 쏟아져도 괜찮지 않을까. 사고는 언제든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법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하찮게 여길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현명한 사람은 그런 현상에서 세상 만물이 보편적으로 결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독이란 것도 결국은 유독하지 않고, 어떤 상처도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동정이 설 자리는 없다. 동정은 순간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둥정에 따른 변론은 판에 박은 듯 진부해서는 안된다.

 

5월 초가 되자 월든 호수 주변의 소나무들 사이에서 자라고 있던 떡갈나무와 히코리나무, 단풍나무, 그 밖의 나무들이 새싹을 틔워 주변 풍경을 햇빛처럼 환하게 밝혀주었다. 특히 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태양이 안개를 뚫고 여기저기 언덕 비탈을 희미하게 비춰주었다. 5월 3일인가 4일에는 호수에서 되강오리를 보았고, 5월 첫 주에는 쏙독새와 지빠귀, 갈색지빠귀, 딱새, 되새, 그 밖에 여러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개똥지빠귀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은 한참 전이었다. 딱새의 일종인 피비도 벌써 다시 찾아와 출입문과 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며, 내 집이 자기가 살 수 있을 만큼 동굴과 비슷한지 어떤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피비는 내 집을 조사하는 동안, 마치 공기를 움켜잡듯 발톱을 오므리고 윙윙 소리가 날 만큼 날개를 빠르게 움직여 공중에서 정지 상태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리기다소나무의 유황같은 송홧가루가 호수만이 아니라 호숫가의 돌과 썩은 나무까지 뒤덮었다. 그것을 모으면 큰 통 하나는 가득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흔히들 말하는 '유황 소나기'였다. 칼리다사의 희곡 <샤쿤탈라>에도 "연꽃의 황금색 꽃가루로 노랗게 물든 시냇물"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리고 사람이 점점 높아지는 풀밭 속으로 들어가듯, 계절은 여름을 향해 흘러갔다.

 

내가 숲속에서 보낸 첫해의 삶은 이렇게 끝났다. 이듬해도 첫해와 비슷했다. 1847년 9월 6일, 나는 마침내 월든을 떠났다.

  1. 바로의 <농업론> 中 [본문으로]
  2. 그리스의 새벽의 여신 [본문으로]
  3.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본문으로]
  4. <맹자>의 오역 [본문으로]
  5. <변신이야기> 中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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