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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겨울의 월든 호수 본문
고요한 겨울밤을 보낸 뒤, 나는 꿈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 언제, 어디서'같은 질문을 받고 대답하려 애쓰다가 부질없다는 느낌을 안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모든 생물의 보금자리인 자연이 평온하고 흡족한 얼굴로 내 집 창문을 들여다보면서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입술에는 어떤 질문도 담겨있지 않았다. 나는 한가지 질문에는 대답이 이루어졌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자연과 햇빛이었다. 어린 소나무들이 점점이 흩어져있는 땅 위에 깊이 쌓인 눈과 내 집이 서 있는 언덕 비탈은 "앞으로!"라고 말하는 듯 했다. 자연은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우리 인간이 묻는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는다. 자연은 오래전에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오, 왕이시여, 우리의 눈은 이 우주의 경이롭고도 다양한 광경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그것을 영혼에 전합니다. 물론 밤은 이 찬란한 피조물의 일부를 장막으로 가리지만, 낮이 와서 지상에서 드넓은 하늘 평원까지 뻗어있는 이 위대한 작품을 우리 앞에 드러내 보입니다." 1
이어서 나는 아침 일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도끼와 양동이를 들고 물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춥고 밤에 눈까지 내렸다면 수맥 탐지용 막대가 필요하다. 가벼운 바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모든 빛과 그림자를 반사하는 호수의 수면은 해마다 겨울이 되면 30-40센티미터 두께로 꽁꽁 얼어붙어, 아무리 무거운 마차가 지나가도 끄떡없다. 게다가 눈이 얼음과 같은 두께로 쌓이면 호수와 평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호수를 에워싼 언덕들에 살고 있는 마멋들처럼 호수는 눈꺼풀을 내리고 석달넘게 겨울잠을 자게 된다.
나는 언덕으로 에워싸인 풀밭에 서있는 것처럼 이 눈덮인 평원에 서서 우선 30센티미터 높이의 적설을 뚫은 다음 다시 30센티미터 두께의 얼음을 뚫어 내 발밑에 창문을 낸다. 그런 다음 물을 마시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 물고기들의 조용한 거실을 내려다본다. 호수 속은 마치 젖빛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듯한 부드러운 햇살로 가득 차 있고, 바닥에는 여름처럼 반짝이는 모래가 깔려 있다. 이곳도 해질녘의 호박색 하늘처럼 잔잔한 평온함이 지배하고 있어서, 호수 주민들의 차분하고 한결같은 기질과도 잘 어울린다. 천국은 우리의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우리의 발밑에도 있는 것이다.
만물이 추위로 얼어붙어 바삭거리는 이른 아침에 사람들이 낚싯대와 도시락을 들고 호수에 와서는 눈덮인 호수에 구멍을 뚫고 낚싯줄을 내려트린다. 강꼬치고기와 농어를 잡으려는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유행을 따르고 다른 권위를 신봉하는 야성의 인간들이다. 그들이 오가는 덕에 마을 간에 교류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들은 두툼한 외투를 입고 호숫가에 떨어져 바싹 말라버린 가랑잎 위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도시 사람들이 인공 지식에 정통하듯, 그들은 자연 지식에 해박하다. 그들은 그런 지식을 책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경험은 많아도 남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훨씬 적다. 그들이 습관적으로 행하는 일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예컨대 다 자란 농어를 미끼로 써서 강고치고기를 낚는 사람이 있다. 그의 양동이를 들여다보면 마치 여름 호수를 들여다본 것처럼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여름을 집에 가두어둔 것 같기도 하고, 여름이 어디로 물러났는지를 아는 것 같다. 아니, 대체 이런 물고기들을 한겨울에 어떻게 잡았을까? 그랬다. 땅이 얼어붙은 뒤에는 썩은 통나무 속에서 벌레를 잡아 그것을 미끼로 물고기를 잡았던 것이다. 그 사람의 삶 자체가 박물학자의 연구보다 더 깊이 자연을 꿰뚫고 있다. 박물학자는 곤충을 찾기 위해 이끼와 나무껍질을 칼로 들추는 반면 이 사람은 도끼로 통나무를 찍어서 나무속까지 연다. 그러면 이끼와 나무껍질을 사방으로 멀리까지 날아간다. 그는 나무껍질을 벗겨 생계를 꾸린다. 그런 사람은 물고기를 잡을 자격이 있다. 그래서 나는 자연의 섭리가 그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싶다. 농어는 굼벵이를 삼키고, 강꼬치고기는 농어를 삼키고, 낚시꾼은 강꼬치고기를 삼킨다. 그래서 존재의 서열 사이에 있는 틈새가 모두 메워지는 것이다.
안개낀 날 호수 주변을 거닐다보면 어떤 서투른 낚시꾼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낚시하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되는데, 나는 그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는 호숫가로부터 20-25미터 간격을 두고 작은 얼음구멍을 여러 개 뚫은 뒤 그 위에 오리나무 가지를 걸쳐놓았다. 그리고 낚싯줄이 끌려가지 않도록 줄 끝에는 막대기를 묶어놓고, 늘어진 낚싯줄은 얼음판에서 30센티미터 정도 높이에 있는 오리나무 가지에 걸쳐놓았다. 낚싯줄에는 마른 떡갈나무 잎을 하나 매달아서, 그것이 아래로 끌려 내려가면 물고기가 미끼를 문 것을 알 수 있었다. 호수 주변을 반 바퀴쯤 돌다보면, 안개 속에서 이런 오리나무 가지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어렴풋이 보이곤 했다.
아, 월든 호수의 강꼬치고기들! 강꼬치고기가 얼음판 위에 누워 있거나 얼음구멍 우물에 누워있는 것을 보면, 나는 그들이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물고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 희귀한 아름다움에 놀라곤 한다. 우리 콩코드에서 아라비아가 머나먼 이국이듯, 강꼬치고기도 길거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숲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다. 그들은 눈부실 만큼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콩코드 거리에서는 송장같은 대구나 그 사촌인 해덕의 명성이 자자하지만, 강꼬치고기는 그것들과는 아예 비교도 안될 만큼 아름답다. 강꼬치고기는 소나무처럼 초록색도 아니고 돌처럼 회색도 아니며 하늘처럼 푸르지도 않다. 내 눈에는 강꼬치고기가 꽃이나 보석처럼 진귀한 색깔로 보인다. 그들은 월든 호수의 동물성 결정체인 진주와도 같다. 물론 강꼬치고기는 겉과 속이 모두 철저하게 월든이고, 동물의 왕국에서는 작은 월든의 거주자다. 그들이 여기서 잡힌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마차나 가축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다니고 썰매가 딸랑거리며 지나는 월든 가도에서 까마득히 밑에 있는 이 깊고도 넓은 샘 속에 황금빛과 에메랄드빛을 띤 이 커다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나는 어떤 시장에서도 강고치고기 종류를 본 적이 없다. 시장에 나온다면 만인이 주목하고 찬미하는 대상이 될 것이다. 물 밖으로 끌려나오면 강꼬치고기들은, 천명을 다하기 전에 하늘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 옮겨가는 인간처럼, 두세 번 경련하듯 꿈틀거리고는 쉽게 삶을 포기해버린다.
- <하리밤사> 2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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