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korean traditional medicine
- 상호독립적 자기
- 젠더 정책
- microaggression
- 빅토리아 시대
- farrell
- 연결주의
- complementary medicine
- #크립키
- ctm
- interdependent self
- collectivism
- sexdifference
- #산업및조직심리학
- 행동주의
- 테스토스테론렉스
- 도덕발달
- 집단주의
- #정신분석
- 개인주의
- 성평등 정책
- 워렌 패럴
- alternative medicine
- warren farrell
- traditional medicine
- independent self
- 상호주관적 자기
- 도덕발달단계론
- #정신역동
- individualism
- Today
- Total
지식저장고
월든 - 마을 본문
오전에는 김을 매거나 글을 읽고 쓴 다음, 대개는 호수에서 미역을 감고 작은 후미를 가로지르며 헤엄쳤다. 그렇게 해서 노동의 먼지를 몸에서 씻어내거나 공부로 인해 생긴 주름살을 말끔히 펴고 나면, 오후는 완전히 자유로웠다.
나는 날마다 또는 하루 걸러 마을로 걸어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신문에서 신문으로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그 이야기들을 동종요법처럼 적당량만 받아들이면 나뭇잎의 흔들리는 소리나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처럼 나름대로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나는 새나 다람쥐들을 보려고 숲속을 거닐듯, 어른과 아이들을 보려고 마을을 거닐었다. 소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 대신 마차들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내 집에서 한쪽으로 가면 강가 풀밭에 사향쥐 서식지가 있었고, 반대쪽 지평선에는 느릅나무와 플라타너스 숲 아래 바쁘게 살아가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이 내 눈에는 프레리도그처럼 신기해 보였다. 그들은 각자 자기 굴 앞에 앉아 있거나 잡담을 나누러 이웃의 굴로 달려갔다. 나는 그들의 습성을 관찰하기 위해 자주 마을에 갔는데, 내가 보기에 마을은 거대한 뉴스 열람실처럼 보였다. 안길 한쪽에는 옛날 보스턴의 스테이트 가에 있던 레딩 상회가 그랬던 것처럼, 마을을 먹여 살리기 위해 호두, 건포도, 소금, 밀가루 따위의 식료품을 팔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앞에 언급한 상품, 즉 뉴스에 대해 왕성한 식욕과 튼튼한 소화기관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 꼼짝도 않고 영원히 앉아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뉴스가 에테시안 계절풍처럼 그들의 머릿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그들에게 속삭이며 지나가게 내버려둔다. 그들은 에테르를 흡입하듯 뉴스를 빨아들였다. 하지만 뉴스는 의식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감각의 마비와 고통에 대한 무감각만 초래할 뿐이다. 그러지 않으면 뉴스는 듣기 괴로울 때가 많다. 1
내가 마을을 어슬렁거릴 때는 거의 어김없이 그런 양반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사다리 위에 앉아 햇볕을 쬐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신문 기사를 이리저리 훑어보거나, 아니면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창고 벽에 기대서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여인상이 조각된 기둥들이 창고를 떠받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대개 문 밖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바람에 실려오는 소리는 무엇이든 다 듣고 있었다. 그들은 곡식을 거칠게 빻는 맷돌 같아서, 모든 소문은 여기서 우선 대충 소화되거나 분쇄된 뒤에야 실내로 들어가 더 곱게 빻아주는 제분기 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관찰해보니 마을의 중추는 식료품점과 술집, 우체국과 은행이었다. 그리고 마을이라는 기계가 돌아가는 데 꼭 필요한 부품으로 교회종과 대포와 소방펌프가 저마다 편리한 장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집들은 인간을 최대한 이용하도록 좁은 골목길 양쪽에 서로 마주보게 배열되어 있어서, 이 마을에 들어선 여행자는 두 줄로 늘어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야 했고, 주민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여행자에게 한마디 뱉을 수 있었다. 물론 대열의 맨 앞에 배치된 사람들이 제일 잘 볼 수 있고 또한 남들 눈에 제일 잘 띄고 게다가 여행자에게 가장 먼저 한방 날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가장 비싼 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소수의 주민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변두리에서는 대열에 긴 간격이 생기기 시작했고, 여행자는 담벼락을 넘거나 소몰잇길로 들어가 도망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곳의 자릿세나 창문세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여행자를 유혹하기 위한 간판들이 사방에 여기저기 내걸려 있었다. 선술집과 식료품점은 식욕을 미끼로 여행자를 잡으려 했고, 포목점과 보석상은 화려함을 미끼로 여행자를 낚으려 했다. 이발사와 구두장이와 양재사는 여행자의 머리카락이나 발이나 치마를 잡고 늘어졌다. 게다가 그보다 훨씬 무서운 것은 그 가게들을 모두 방문해달라는 판에 박힌 초대였고, 이때쯤에는 나와 교제하기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길 양쪽에 늘어선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여행자들이 흔히 듣는 충고에 따라, 이것저것 생각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대담하게 나아가거나, 아니면 "칠현금을 켜면서 거기에 맞춰 신들에 대한 찬가를 큰 소리로 노래하여 사이렌들의 목소리를 압도하고 위험에서 벗어난" 오르페우스처럼 고상한 생각에 정신을 쏟는 방법으로 이런 위험에서 멋지게 벗어날 수 있었다.
이따금 나는 마을에서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에, 아무도 내 행방을 알지 못했다. 나는 체면도 차리지 않고 울타리에 좁은 틈새라도 보이면 주저 없이 그곳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데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무단으로 침입했는데도 그 집에서 환대를 받고, 체로 걸러낸 알짜 뉴스, 말하자면 앙금 같은 요점을 듣고, 전쟁과 평화에 대한 전망과 세상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더 오래 유지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소식을 들은 뒤, 뒷길로 빠져나와 다시 숲으로 달아나곤 했다.
특히 캄캄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늦게까지 마을에 머물다가 호밀가루나 옥수수가루 한 자루를 어깨에 둘러메고 불을 밝힌 마을의 어느 응접실이나 강연장을 떠나 숲속에 있는 나의 아늑한 항구를 향해 밤의 어둠 속으로 출항하는 것은 사뭇 유쾌한 일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외면적 자아만 조타수로 남겨두고, 항해가 순조로우면 키를 고정시켜 외부 세계를 완전히 차단한 채, 생각이라는 유쾌한 선원들과 함께 갑판 아래 선실에 틀어박혔다. 이렇게 바다를 떠돌 때면 선실 난롯가에 앉아서 이런저런 기분 좋은 생각을 떠올리곤 했다. 이따금 심한 폭풍우를 만나기도 했지만, 어떤 날씨에도 표류하거나 조난당한 적은 없었다.
보통날 밤에도 숲속은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둡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숲 한복판을 지날 때면 항로를 확인하기 위해 나무들 사이의 터진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아야 했고, 수레바퀴 자국도 없는 곳에서는 내가 전에 다니면서 남긴 희미한 발자국을 발끝으로 더듬어 찾아야 했고, 가령 간격이 50센티미터밖에 안되는 두 소나무 사이를 지날 때는 특정한 나무들과의 익숙한 관계를 양손으로 확인하며 나아가야 했다.
캄캄하고 후텁지근한 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길을 발로 더듬어가며 이렇게 늦게야 집에 도착하면 문빗장을 벗기려고 손을 올려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비로소 정신이 들 때까지 줄곧 꿈을 꾸면서 멍하니 길을 걸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내가 내디딘 발걸음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렇듯 주인의 무관심 속에서도 몸이 저 혼자 집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은 손이 아무 도움 없이도 입을 찾아가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찾아온 손님이 밤늦게까지 머물러 있다가 돌아간 적이 몇 번 있었다. 캄캄한 밤이어서 나는 집 뒤에 나 있는 마찻길까지 손님을 배웅한 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어야 했는데, 그럴 때는 눈보다 발을 길잡이로 삼으라고 말해주었다. 어느 깜깜한 밤에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두 젊은이에게도 그런 식으로 길을 가르쳐주었다. 사실 그들은 숲을 지나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살기 때문에 평소 그 길에 익숙한 편이었다. 며칠 뒤에 두 젊은이 가운데 하나를 만났는데, 그날 밤에 그들은 집 근처까지 갔지만 길을 찾지 못해 밤새 헤매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고 털어놓았다. 길을 헤매는 동안 몇 차례나 소나기를 만났고, 그래서 집에 도착했을 때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고 한다.
어둠이 칼로 자를 수 있을 만큼 짙은 밤에는 많은 사람이 마을 안길에서도 길을 잃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읍내에 장을 보러 왔다가 하룻밤 묵어야 했던 적도 있고,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언제 모퉁이를 돌았는지도 모른 채 발로만 밤길을 더듬으며 가다가 길에서 수백 미터나 벗어난 적도 있다. 언제든 숲에서 길을 잃는 것은 놀랍고도 기억할 만한 경험인 동시에 소중한 경험이기도 하다. 대낮에도 눈보라가 몰아칠 때는 평소 잘 아는 길로 나왔더라도 어느 쪽으로 가야 마을에 이르게 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 길을 수천 번 지나다녔으면서도 그 길의 특징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그에게는 마치 시베리아의 거리처럼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밤에는 당혹감이 훨씬 더 크다.
가까운 곳을 잠깐 걸어다닐 때도 우리는 무의식중에 언제나 수로 안내인처럼 잘 알려진 등대나 곶을 길잡이 삼아 배를 조종하고, 평소의 항로를 벗어나더라도 가까운 곶의 위치를 염두에 두고 나아간다. 따라서 우리는 완전히 길을 잃거나 한 바퀴 빙글 돈 뒤에야(이 세상에서 길을 잃으려면 눈을 감고 한 바퀴 돌기만 해도 충분하다) 비로소 대자연의 광활함과 기이함을 깨닫게 된다. 잠에서 깨어나든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든, 사람은 깨어날 때마다 나침반 바늘을 다시금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길을 잃은 뒤에야, 바꿔 말하면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하고, 우리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세상과의 관계는 얼마나 무한한지를 깨닫기 시작한다.
첫번째 여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오후, 나는 구둣방에 수선을 맡긴 구두를 찾으러 마을에 갔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다른 글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나는 의사당 앞에서 남녀노소를 가축처럼 버젓이 사고파는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았고, 그런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물론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 사람이 어디를 가든 다른 사람들은 그를 쫓아와 자신들의 더러운 제도를 강요하며 괴롭힐 것이고,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이상한 공제조합에 가입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사실 나는 힘껏 저항하여 다소 성과를 거둘 수도 있었고, 사회를 상대로 미친 듯이 날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사회가 나를 상대로 날뛰게 하는 쪽을 택했다. 미친 것은 사회 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튿날 석방되었다. 그래서 수선한 구두를 찾아서 숲으로 돌아온 뒤 페어헤이븐 언덕에 올라가, 한창 제철을 맞은 월귤을 따서 점심을 때웠다.
나는 소위 정부를 대표한다는 자들 외에는 누구한테도 시달림을 당한 적이 없다. 원고를 넣어둔 책상 말고는 어디에도 자물쇠나 빗장을 채우지 않았고, 빗장이나 창문에 못을 박지도 않았다. 밤이든 낮이든 문을 잠근 적도 없다. 며칠 집을 비워야 할 때도 그랬고, 이듬해 가을에 메인 주의 숲속에서 보름을 보냈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내 집은 호위병들에게 빈틈없이 둘러싸여 있는 경우보다 더 사람들의 존중을 받았다. 숲을 산책하다가 지친 이들은 내 집 난롯가에서 쉬면서 몸을 녹일 수 있었고,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은 탁자에 놓인 몇 권의 책으로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면 찬장 문을 열어 내가 점심 때 무엇을 먹고 남겼는지, 저녁 식사로는 무엇을 먹을 작정인지를 알 수 있었다.
온갖 부류의 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거쳐 호수로 갔지만, 나는 그들 때문에 불편을 겪은 적도 없었고, 작은 책 한 권(어울리지 않게 금박을 입힌 호메로스의 작품)말고는 잃어버린 것도 없었다. 그 책도 지금쯤은 우리편 병사가 찾아서 잘 보관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모든 사람이 당시의 나처럼 소박하게 산다면 절도와 강도는 사라질 거라고 확신한다. 이런 사건들은 재물을 남아돌 만큼 가진 자들과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한데 섞여 사는 공동체에서 일어난다. 포프가 번역한 호메로스의 책들도 조만간 적절하게 배포되어야 할 것이다.
너도밤나무 그릇만 필요했던 시절에는
정치를 한다는 분이 어째서 형벌을 내리십니까? 그대가 덕을 베풀면 백성들도 덕을 베풀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서민의 덕은 풀잎과 같아서, 바람이 불면 풀잎들은 절로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