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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호수들1

과학주의자 2022. 6. 14. 18:57

이따금 인간 사회에 염증이 나고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는 것도 지겨워지고, 심지어 마을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싫증이 나면, 나는 살고 있는 곳보다 훨씬 서쪽으로 걸음을 옮겨, 마을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는 '신선한 숲과 새로운 목장'[각주:1]으로 산책을 가곤 했다.
 
때로는 해가 저무는 동안 페어헤이븐 언덕에서 월귤을 따서 저녁을 때우고 며칠 먹을 식량을 마련하기도 했다. 월귤은 그것을 사서 먹는 사람이나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재배하는 사람에게는 그 참맛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맛을 보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지만 그 방법을 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월귤의 참맛을 알고 싶으면 목동이나 자고새한테 물어보라. 월귤을 손수 따보지 않은 사람이 그 맛을 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또한 보스턴에서는 월귤을 맛볼 수 없다. 한때는 보스턴의 세 언덕[각주:2]에서 월귤이 자란적이 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월귤의 향기롭고 맛있는 부분은 시장의 짐수레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과분이 떨어져 나갈 때 함께 사라지고, 그래서 월귤은 단순한 여물이 되어버린다. 영원한 정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한, 순수한 월귤은 단 한 알도 시골 언덕에서 도시로 수송될 수 없다.
 
때로는 하루치 김매기를 끝낸 뒤, 아침부터 성급하게 호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나서기도 했다. 친구는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나 나뭇잎처럼 꼼짝도 않고 낚시에 몰두했다. 그는 여러 종류의 철학을 실천해 본 뒤, 내가 도착할 때쯤에는 자신이 옛 수도회에 소속된 수도사라는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이 친구보다 나이 많고 솜씨 좋은 낚시꾼에다 온갖 종류의 목공에도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내 집을 낚시꾼들의 편의를 위해 지어진 줄 알았다. 그래서 내 집 문간에 앉아 낚싯줄을 정리하곤 했는데, 나도 그게 싫지는 않았다. 이따금 우리는 함께 보트를 타고 호수로 나가서 앞뒤 끝에 앉아 있곤 했지만, 그가 지난 몇 년 사이에 귀가 어두워졌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가 이따금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찬송가는 내 철학과 조화를 이루었다. 우리 사이에는 그런 조화로운 상태가 방해를 받지 않고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에, 언어를 통해 교제를 유지한 경우보다 훨씬 즐거웠다.
 
흔히 그랬지만,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을 때면 나는 노로 뱃전을 두드려 메아리를 일으키곤 했다. 그 소리는 원을 그리면서 점점 팽창하여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숲을 가득 채웠는데, 동물원에서 사육사가 맹수를 자극하듯 숲을 휘저어서 결국에는 나무 우거진 모든 골자기와 산비탈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끌어냈다. 
 
따뜻한 저녁이면 자주 보트를 띄우고 앉아 피리를 불었다. 그러면 농어들이 피리 소리에 홀린 듯이 나타나 내 주위를 맴돌며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숲의 잔해로 온통 뒤덮인 이랑진 호수 바닥 위를 달이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전에 나는 캄캄한 여름밤에 가끔 친구와 함께 모험심에 부풀어 이 호수에 오곤 했다. 그리고 물고기를 유인할 작정으로 물가에 불을 피워놓고 실에 매단 지렁이를 미끼로 메기를 잡았다. 밤늦게 낚시질이 끝나면 불타는 나무토막을 꽃불처럼 하늘 높이 던져 올렸고, 불붙은 나무토막은 호수에 떨어져 요란하게 피시식 소리를 내면서 꺼졌다. 그러면 우리는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으며 길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휘파람을 불면서 어둠을 뚫고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다시 나왔다. 하지만 지금 나는 호숫가에 내 집을 마련했다.
 
때로는 마을의 어느 집 응접실에 늦게까지 앉아 있다가, 그 집 식구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숲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튿날의 점심거리도 마련할 겸 한밤중에 달빛 아래에서 보트 낚시를 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올빼미와 여우가 세레나데를 부르고, 이따금 이름 모를 새가 멀지 않은 곳에서 날카롭게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은 나에게 잊지 못할 아주 소중한 것이었다. 물가에서 100미터나 150미터쯤 떨어진, 수심이 10미터쯤 되는 곳에 닻을 내리고, 때로는 달빛 속에서 꼬리로 수면에 잔물결을 만드는 수천 마리의 새끼 농어와 피라미 떼에 둘러싸인 채 아마실로 만든 긴 낚싯줄을 통해 10미터 아래에 사는 신비로운 야행성 물고기들과 교신을 나누었고, 때로는 부드러운 밤바람 속에서 20미터의 낚싯줄을 끌며 떠돌다가 이따금 낚싯줄을 타고 전해지는 가벼운 진동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어떤 생명체가 목표물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낚싯줄 끝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침내 내가 천천히 손을 번갈아 줄을 잡아당기면, 뿔이 난 메기가 파닥거리며 수면 위로 끌려나왔다.
 
캄캄한 밤, 내 생각이 지상을 떠나 다른 별들의 광활하고 우주론적인 주제에 가 있을 때 물고기가 낚싯줄을 홱 잡아당기는 것을 느끼고 문득 몽상에서 깨어나 다시 자연과 연결되는 것은 참으로 야릇한 체험이었다. 나는 공기보다 밀도가 더 높지도 않은 물속으로 낚싯줄을 던질 뿐만 아니라, 다음에는 공중을 향해 위쪽으로도 낚싯줄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리하여 나는 말하자면 하나의 낚싯바늘로 물고기 두 마리를 낚았던 것이다.

  1. 존 밀턴의 시 <리시다스> 中 [본문으로]
  2. 보스턴은 콥스, 비컨, 포트 언덕 위에 세워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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