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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문화 차원과 문화의 대통합 이론에 대해

과학주의자 2023. 9. 6. 17:57

전세계의 문화를 몇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려고 하는 움직임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단순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타인을 단순한 틀로 이해하려고 해왔고, 이는 문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문화를 서구 문화/동양 문화로 파악하거나, 문명사회/야만인으로 파악하였으며, 농경사회/유목사회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비록 이러한 구분이 여러가지 세부적인 문화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간단한 구분이 제공하는 단순성과 명료함, 그리고 우아함은 많은 연구자들을 매료시켰다.

 

본 글은 현재 세계의 문화를 소수의 축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여러 문화심리학 및 사회학 이론들이, 사실은 하나의 사실에 대한 서로 다른 측면의 묘사라고 주장한다. 그 하나의 사실은 세계의 문화가 2개의 차원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한 차원은 개인주의-집단주의이고 다른 차원은 농경-유목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문화 이론들

세계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고 이 문화들은 저마다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어떤 문화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공통점을 통해 문화의 대분류를 할 수 있다는 의견이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가령 한중일은 서로 다른 의복과 음식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개인의 노력을 중시하고 집단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프리카와 남미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떨어져 있지만, 작은 집단(가족, 부족)에 충성하고 명예를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점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전세계 문화의 차이가 어떤 특정한 차원에서의 차이의 결과일 수 있으며, 개인주의-집단주의와 같은 차원에서의 차이를 통해 문화간의 차이를 모두 설명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러한 성과 중 하나는 개인주의-집단주의[각주:1].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사회적 패턴의 차이이다. 개인주의자는 자신이 타인과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목표를 중시하며, 자신의 태도를 중심으로 행동하고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관계를 단절한다. 반면에 집단주의자는 자신이 타인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집단의 목표를 중시하며, 집단의 규범을 중심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이득까지 희생해서라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는 개인주의자는 자신이 다른 세상과 별개로 존재한다고 믿고, 집단주의자는 자신이 다른 세상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가장 성공적인 문화 차원으로, 거의 모든 문화 이론이 이 차원을 포함한다.

 

한편 schwartz[각주:2]는 전세계에서 공유되는 10가지 가치가 있으며, 이 가치들을 정리할 때 전세계의 문화를 2개 차원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르면 전세계의 문화를 분류할 수 있는 차원 하나는 openness to changeconservation인데, openness to change는 자신만의 새로운 지식이나 감각을 추구하고 변화를 지향하는 경향으로 자기지향성(self-direction, 자신만의 독립된 생각과 행동)과 자극(stimulation, 삶에서 느끼는 흥분과 도전)과 관련되었고, conservation은 기존의 질서와 전통을 추구하고 변화를 반대하는 경향으로 안전(security, 안전과 조화, 안정)과 동조(conformity, 자신을 억제하고 사회의 기준에 순응), 전통(tradition, 기존의 문화와 종교에서 주장하는 관습과 사상 존중)와 관련되어 있다. 다른 차원은 self enhancementself transcendence인데, self enhancement는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쾌락(hedonism)과 성취(achievement), 권력(power)과 관련되었고, self transcendence는 타인의 이익 또한 중시하는 경향으로 보편주의(universalism, 모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와 감사 및 관용)과 자비(benevolence, 내 주변의 모든 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와 관련되어 있다.

 

잉글하트-웰젤 모델(inglehart-welzel model)100여개 국가에서 국가당 1000명 가량의 표본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여 문화적 상태를 파악하는 WVS의 자료를 기반으로 산출된 모형인데, 이 모형에서도 전세계의 문화를 2개 차원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전세계의 문화는 전통 가치(traditional value)-세속-합리적 가치(secular-rational value)의 축과 생존 가치(survival value)-자기표현 가치(self-expression value)의 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세속가치 축은 종교나 전통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축으로, 여기서 전통 가치가 높으면 종교나 전통, 국가주의에 호의적인 문화이고 세속가치가 높으면 그러한 것에 대한 선호가 낮다. 자기표현 가치 축은 문화에서 중요시하는 요소와 관련되어 있는데, 생존 가치가 높으면 물질적인 생존과 이득을 중시하는 반면 자기표현 가치가 높으면 비물질적인 요소를 더 중시하며 성적 다양성과 환경보호, 그리고 정치참여가 높게 나타난다. 후속연구에 따르면 세속가치와 자기표현 가치 모두 일종의 근대화(modernization) 가치라는 하나의 차원의 두 하위차원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근대화 가치는 말 그대로 정치경제적으로 발전된 나라에서 강하며 개인주의와도 관련되어 있다.

 

minkov-hofstede 모델[각주:3]은 문화심리학의 고전이 되었던 호프스테드 모델을 최신 WVS 자료를 바탕으로 개량한 것으로, 여기서도 전세계의 문화를 2개 차원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이 중 하나는 개인주의-집단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monumentalismflexibility의 차원이다. FLX-MON 차원은 자신의 자아를 보는 관점의 차이로, flexibility에서는 자아가 쉽게 변할 수 있다고 믿으며 지금의 자신보다 미래의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monumentalism은 자신의 자아가 불변한다고 믿으며 미래보다 현재의 자신을 중시하고 특히 자신의 명예를 중시한다. 이 차원은 호프스테드가 제시한 유교적 노동역동성과도 관련되어 있는데, 유교적 노동역동성이란 기존 집단의 질서에 대한 존중과 노력의 강조와 관련되어 있다.

 

CuPs 이론[각주:4]은 실제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문화를 분류한 이론으로, 이 이론에서는 사람들의 상호작용 방식에 따라 문화를 존엄성(dignity) 문화, 명예(honor) 문화, 체면(face) 문화로 나눈다. 존엄성 문화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고유한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며 친절과 시장논리적인 방식으로 서로 상호작용한다. 반면에 명예 문화에서는 자신의 내집단 구성원에게는 호의적으로 대하는 반면 외집단 구성원은 공격의 대상으로 보고 경쟁적으로 대하며, 체면 문화에서는 기존의 사회적 질서에 따라 규정된 체면에 따라서 서로의 체면을 지켜주고 조화가 유지되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여기서 존엄성 문화는 개인주의와 상당히 관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채훈석은 개인주의-집단주의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주장을 개진하면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자기관과 타인에 대한 태도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기존에 심리학에서 다뤄졌던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가치적 개인주의와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 보는 개인주의 자기관을 같은 것으로 보았지만 사실은 다른 것이다. 이러한 주장 하에서 채훈석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지 모두의 이익 또한 추구하는지와 관련된 가치적 개인주의-가치적 집단주의 차원이 존재하며, 그와 별도로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 파악하는지 타인과 긴밀하게 연결된 집단의 구성원으로 파악하는지와 관련된 개인주의 자기관-집단주의 자기관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fog는 지금까지 제시된 여러 문화 이론들을 검토하고, 이론을 제시하면서 함께 제시되었던 자료들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 여러 이론의 차이가 요인분석에서 수행하는 rotating의 차이에서 온 결과라고 보고, 기존의 자료를 대상으로 rotating을 하지 않은 채로 요인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개인주의-집단주의로 대표되는 차원 하나와, 세속추구와 남성성 추구, 그리고 유교적 노동역동성과 관련된 차원 하나를 얻었다. 필자의 시도는 기본적으로 fog의 시도와 같은 것이며, 때문에 이러한 연구결과도 필자의 출발점이 되었다.

 

 

필자의 통합적 문화 이론

여러 이론들과 문화심리학 연구를 종합할 때, 비록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상당히 중요하지만 그것외에도 중시할 만한 문화 차원이 또하나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2개 문화 차원만으로 모든 문화 차이를 설명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정도의 문화적 차이는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여기서 문제는 2번째 차원의 존재로, 많은 이론들이 2번째 차원의 존재를 주장했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의 의견 또한 이 2번째 차원의 정체와 관련되어 있다.

 

필자의 주장은 2번째 차원이 농경-유목 차원으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조화를 추구할지 경쟁을 추구할지 여부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세계의 문화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평화와 조화, 그리고 자신과 타인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지, 경쟁과 승리, 그리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지 여부로 나눌 수 있다. 전자를 농경 문화, 후자를 유목 문화로 명명한다면, 타인과 어떠한 협상을 할 때 농경민은 타인과의 협상이 폭력 사태와 같은 나쁜 결과를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서로가 만족하고 다른 사람들도 용인할 만한 평화롭고 안정적인 결과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반대로 유목민은 타인과의 협상에서 자신과 자기 집단의 승리를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하고, 자신의 승리와 상대방의 철저한 패배를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농경민은 평화를 추구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모두의 이익이 중요하며, 나 혼자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큰 사회의 모두가 서로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친절하고 자비롭게 대해야 하며, 자신을 통제해서 모두 사회의 법과 규범을 잘 따르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해서 갈등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도발은 무례한 행위이고, 설령 도발을 당했다 하더라도 참고 인내해야 좋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경민은 사회에 순응하고, 상대방에게 친절하며, 이를 위해 자신을 얼마든지 낮추고 타인에게 양보한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자비와 보편주의, 안전, 동조를 추구하며, 안정적인 국가 안에서 성공하는데 유익하다.

 

반면에 유목민은 경쟁을 추구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피튀기는 전쟁이며,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히 남을 짓밟고 나와 나의 가족, 친구, 부족의 이익을 쟁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거나, 적어도 얕보여서는 안된다. 때문에 설령 법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공격하고 쓰러트려야 하며, 남이 나를 강자로 보도록 나의 위세를 자랑해야 하고 남이 나를 공격하거나 도발한다면 절대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 도발을 그냥 참는 것은 겁쟁이이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주어야 나를 보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목민은 자신(혹은 자기 집단의)의 가치와 이득을 중시하고, 상대방과 언제든 싸울 채비를 갖추며, 이를 위해서 자신의 명예를 내세우고 타인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성공과 권력, 순간적인 감각을 추구하며, 불안정한 국가 안에서 성공하는데 유익하다.

 

필자는 이러한 차원을 주장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차원이 역사의 흐름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즉 개인주의-집단주의와 농경-유목은 모두 역사적인 사건, 특히 물결로 일컬어지는 세계사의 흐름과 관련되어 있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제 2물결의 반영으로, 산업화를 빨리 이룩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가 반영된 것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기술과 사상의 발전은 상당히 빨라졌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인구이동 또한 많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전통이나 관습을 따르는 것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신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행동하고, 멀리 떨어진 가문이나 언제든지 이직할 회사의 이득이 아니라 나의 이득을 중시하는 태도가 훨씬 도움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화된 국가에서 개인주의가 발생했으며, 아직 모든 국가가 서구 수준의 산업화를 이루지는 못했기 때문에 개인주의화의 정도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개인주의-집단주의가 2물결을 반영한다면, 농경-유목은 1물결을 반영한다. 정확히 말하면 농경-유목 차원은 비옥한 토지를 통해 안정적인 농촌이 성립된 사회와, 생산력이 부족한 토지나 잦은 전란으로 인해 안정적인 농촌이 성립하기 힘들었던 사회의 차이를 나타낸다. 전자의 경우 비옥한 토지와 안정적인 식량생산이 가능했던 동아시아와 고대 이집트 및 수메르, 인도, 그리고 일부 인디언 부족이 해당하는 반면, 후자는 토지가 척박하여 상업이나 목축 등에 의존해야 했던 중앙아시아와 중동, 유럽이 해당한다.

 

농경사회의 경우, 풍부한 생산력으로 인해 딱히 다른 마을이나 국가와 싸우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높은 생산력을 바탕으로 일어난 제국은 막강한 힘을 통해 비교적 오랜 기간 존속하며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협동으로, 왜냐하면 사람들이 서로 잘 협력해야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으며 반대로 분쟁과 전쟁은 안정과 농사, 국가의 통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농경사회에서는 안정을 중시했으며, 보를 짓고 같이 농사를 짓기 위해 사람들 간의 조화를 중시하게 되었다. 특히 쌀농사의 경우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비교적 더 많은 작물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개인이 오랫동안 인내하여 노력하는 것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이 농경 문화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반대로 유목사회(혹은 상업사회)의 경우, 식량생산량은 부족했으며 자연환경의 영향 또한 많이 받았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목축이나 상업, 혹은 약탈에 의존해야 했으며, 그러한 산업에 기반한 국가도 비교적 불안정했기 때문에 잦은 반란과 전란으로 오래 존속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가족과 부족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족과 상업적으로 경쟁해서 이기거나 상대 부족을 패망시켜야 했다. 때문에 유목사회에서는 다른 집단을 공격하거나 적어도 그들에게 침략당해도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으며, 혹은 상대방이 자신의 집단에 대항할 엄두도 못 내도록 자기 집단의 위세와 명예를 드높여야 했다. 또한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아무리 강성해도 안정적인 식량공급을 보장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농경사회에 비해서는 미래보다는 지금 이 순간 필요한 자원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시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이 유목 문화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농경사회와 유목사회의 차이는 사회를 형성한 국가의 차이를 통해 더 확연해졌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건국된 중국은 국가의 안정을 중시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원전부터 정교한 규범을 확립하고 국민들의 조화와 순응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농경민들은 서로 경쟁하는 대신 국가에 충성하고 이를 위해 자신을 수련하는 문화를 발달시켜 왔다. 반면에 유목사회를 기반으로 건국된 중동 왕조나 유럽 국가는 100년을 넘기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불안정했고, 그렇기 때문에 정교하고 안정적인 규범을 만들기 힘들었으며 국민을 지속적으로 순응시키는 것 또한 힘들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유목민들은 국가에 충성하기 보다 옆 부족과 경쟁하는 것을 중시했으며, 자신을 수련하기보다 현재 자신의 명예를 긍정하고 이를 위협하는 세력과 싸우는 문화를 발달시켰다.

 

이후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로 인해 개인주의자라는 새로운 인간관이 출현했다. 그리고 경제적 주체로서의 개인이 중심이 된 선진국이 개인주의 국가가 되었고, 경제발전이 덜 진행되어서 경제적 주체로서의 개인보다는 경제공동체로서의 대가족과 집단을 중시하는 국가가 집단주의 국가가 되었다. 한편 전세계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었지만 그렇다고 2물결이 사라지진 않았으며, 그래서 과거 농경국가였던 나라는 타인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농경문화 국가로 남았고, 유목국가였던 나라는 타인과의 경쟁을 추구하는 유목문화 국가로 남았다.

 

 

이론의 평가

이 가설에 따르면 기존의 문화 이론에서 주장했던 2번째 차원은 농경-유목 문화라고 할 수 있다. self enhancement 일부와 monumentalism, 명예 문화, 낮은 유교적 노동역동성, 가치적 개인주의는 유목문화라고 할 수 있고, self transcedence 일부와 flexibility, 체면 문화, 높은 유교적 노동역동성, 가치적 집단주의는 농경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차원들은 기존에는 서로 다른 것이거나 연관성이 없다고 여겨져 왔지만, 필자는 이 차원들이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가설의 장점은 이 가설이 문화의 차이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그것이 왜 발생했는지도 설명한다는 점이다. 가령 기존의 가치 이론은 왜 가치를 선호하는 데에서 문화적 차이가 발생하는지 설명하지 못했지만, 이 가설에서는 그것이 역사적 사건에 의해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개인주의는 경제적으로 발전된 국가에서 두드러지고, 집단주의는 개발도상국에서 두드러지며, 농경문화는 국가의 성립기간이 길고 농업생산량이 좋았던 국가에서 두드러지고, 유목문화는 국가의 성립기간과 통치력이 약하고 농업생산량이 적었던 국가에서 두드러진다.

 

이러한 분석은 문화를 변화하는 것으로 파악하며, 사회가 처한 환경을 통해 해당 사회의 문화를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가령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취업을 위해 무한경쟁해야 하는 중국은, 전근대 중국에 비해 더 개인주의적이고 유목문화적일 것이다. 한편 한국은 농경문화가 우세한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지만, 반도라는 지형적 특성상 유달리 전쟁이 많았던 한국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 비해 유목문화가 더 우세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경제발전이 지속된다면 미래 한국의 개인주의는 현재 한국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 가설은 기존의 심리학적 사실은 물론이고, 기존에 제시되었던 신화 이론과도 부합한다.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이라는 고전을 남긴 질베르 뒤랑은 전 세계의 신화가 선악의 분리와 투쟁을 강조하는 낮의 신화와, 선악의 모호함과 조화를 강조하는 밤의 신화로 나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그는 낮의 신화가 유목사회와 유럽에서 두드러지며, 밤의 신화는 농경사회와 마르크시즘 하 유럽에서 두드러진다고 강조하였다. 실제로 가설에서 제시된 농경문화는 밤의 신화가 두드러진 곳과 일치하고, 미국에 비해 마르크시즘이 강한 유럽은 동시에 밤의 신화적 관념이 강한 곳이며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를 가르는 환경 조건인 안정된 생계가 더 보장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이 이론은 잉글하트-웰젤 모형과는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잉글하트-웰젤 모형에서 제시한 두 차원은 모두 개인주의와 관련되어 있고 농경-유목 차원과 관련된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자면, 이러한 차이는 WVS가 주로 국가의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부분과 관련된 가치를 조사한 결과일 수 있다. 이러한 지표는 주로 산업화와 연관되었기 때문에, 산업화와는 큰 관련이 없는 농경-유목 차원은 WVS 자료에 잘 반영되지 않았을 수 있다.

 

한편 WVS 차원 중에 세속가치 차원은 일정 부분 농경-유목 차원과도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세속가치가 강한 국가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국가이고, 세속가치가 약한 국가는 보통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국가는 농경문화의 특성을 가지기 쉬우며, 특히 전체 사회의 안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회구성원이 보편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준(합리성, 법 등)이 중시될 수 있다. 반면에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는 유목문화의 특성을 가지기 쉽고, 사회구성원이 보편적으로 합의할 만한 기준보다는 자기 집단만의 전통(신앙 등. 특히 신앙은 불안 해소에 도움이 된다)이 중시될 수 있다. 실제로 세속가치는 FLX-MON 차원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r=.78), 이를 볼 때 세속가치 차원이 농경-유목 차원을 일부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해법을 채택할 때 문제는 잉글하트-웰젤 모형이 슈워츠의 가치 이론과 다소 불일치한다는 점이다. 슈워츠의 openness to change-conservation 차원은 자기표현 차원과 관련되어 있지만, 그 상관관계가 크지는 않으며 다른 2개 차원은 서로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는 두 이론이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한다기보다는 요인분석 상의 문제일 수 있다. 두 이론은 상대방의 자료를 요인분석해도 재현되며, 요인축을 45도만 돌리면 서로 일치한다. 즉 개인주의가 openness to changeself trancedence의 절충이고, 농경문화는 self trancedenceconservation의 절충이라고 보면 두 이론의 차이는 사라진다. 실제로 유목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만한 남아메리카는 현재 쾌락을 추구하고 높은 예술적 성취를 가진 문화라고 평가받고, 농경문화의 대표격인 동아시아 문화는 self trancedence의 특성과 conservation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 가설은 여러 방식으로 검증될 수 있다. 먼저 이 가설에서는 self enhancement 일부와 monumentalism, 명예 문화, 낮은 유교적 노동역동성, 가치적 개인주의를 유목문화로 정리하고, self transcedence 일부와 flexibility, 체면 문화, 높은 유교적 노동역동성, 가치적 집단주의를 농경문화로 정리한다. 그렇다면 실제 조사를 통해 이러한 문화 차원들이 가설에서 제시한 방식으로 서로 상관관계를 보이는지, 이들을 대상으로 요인분석을 실시했을 때 농경-유목 차원의 1차원 구조가 나타나는지 검증함으로써 가설의 타당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가설의 장점을 살려서, 사회의 환경적 특성이 가설대로 해당 사회의 문화 성향을 예측하는지 검증해 볼 수도 있다. 가령 현대 폴란드는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전에 비해 타인과의 경쟁도 점점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폴란드의 문화가 과거에 비해 개인주의적이고 유목문화적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또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복지 축소와 경제적 불안정 증대는 유목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복지예산의 감소와 같은 복지 관련 지표의 변화로 해당 국가의 유목문화 수준과 관련 현상(사회적 신뢰 저하, 민족주의의 준동, 기부 감소 등)을 예측할 수도 있다. 혹은 경제적으로 정체되어 있고 사회가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점을 들어, 니제르가 유목문화 수준이 높고 그렇기 때문에 폭력의 사용도 빈번하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단순한 경제원조보다는 경찰력 지원이나 현지 정권에 대한 원조 및 빈민층 지원을 통해 니제르의 정국 안정을 꾀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정책은 가설에 대한 검증은 물론이고, 실제 인류사회의 복리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결국 이 가설은 개인주의-집단주의 이외에 2번째 문화 차원이 있으며, 그것이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이 핵심이다. 동아시아의 농경문화는 조화와 평화를 강조하고 개인의 순응과 수련을 요구하며, 남아메리카의 유목문화는 명예와 투쟁을 강조하고 개인의 자신감과 당당함을 요구한다. 이는 해당 사회의 자연/사회환경에 의한 결과이며, 자연 및 인문환경을 통한 예측이나 기존 자료의 재분석을 통해 검증될 수 있다.

 

뒤랑은 전세계의 신화가 낮의 신화와 밤의 신화로 나뉘지만, 동시에 모든 문화권이 양쪽의 신화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가장 높은 존재는 낮의 상징과 밤의 상징 모두를 가지고 있다. 농경문화와 유목문화 모두 나름의 장점이 있으며, 그러한 장점을 통합할 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이상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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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chwartz, S. H. (2012). An overview of the Schwartz theory of basic values. Online readings in Psychology and Culture, 2(1), 11 [본문으로]
  3. Minkov, M. (2018). A revision of Hofstede’s model of national culture: Old evidence and new data from 56 countries. Cross Cultural & Strategic Management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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