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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저장고
인류학 총론 본문
인류학은 특정 대상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이라기보다는, 특정한 방식으로 연구하는 사회과학에 더 가깝다. 인류학이 연구하는 문화와 인간은 다른 수많은 분야에서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참여관찰과 인문학적인 틀로 연구하는 학문은 인류학이 유일하다.
인류학은 많은 경우 객관적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결과가 주관적인 경우도 많고 재현도 힘들다. 때문에 인류학적 연구는 항상 비판적인 관점에서 독해해야 한다.
신화학
https://tsi18708.tistory.com/376
신화학은 신화를 수집하고 해석하며 연구하는 사회과학으로, 종교학의 하위분과이면서 인류학의 하위분과이기도 하다. 신화학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심리의 구조를 보여주면서도, 그 구조가 문화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켈트 매듭
https://tsi18708.tistory.com/331
켈트 매듭은 켈트족이 가진 고유한 상징체계다. 이 상징체계는 후대 유럽 문화와 오컬트에도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켈트 매듭은 종류가 아주 다양하며, 개중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것도 일부 있다.
예언의 역사
예언은 유사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미래의 일을 짐작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 기반이 유사과학인데다가, 예언 자체도 상당히 두리뭉술하여 실제로 예언이 맞는지 검증할 길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유사과학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예언의 역사는 깊지만, 정부와 분리되어 민간에서 활동한 예언가는 후삼국시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예언가는 기본적으로 풍수지리를 사용해 예언을 했는데, 이 중 경보를 비롯한 도선의 제자들이 왕건과 결탁하여 고려를 옹호하면서 도선에 대한 신격화가 이뤄지게 되었다.
한국 예언의 시작은 선종 승려이자 지관이었던 도선으로 여겨진다. 도선은 견횐의 세력권에 거주하였지만, 도선의 제자가 고려 왕실과 결탁하면서 도선은 한국 예언의 시초로 여겨지게 되었다. 고려 시대에도 도선의 예언을 근거로 궁궐을 짓거나 수도 이전을 고려하는 논의가 지속되었고, 당시 술관들은 도선의 예언서를 위조하고 이를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였다. 또한 도선과 제자들의 영향으로 풍수지리를 정치와 연결시키는 전통이 형성되었고, 그 결과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풍수지리가 수도 이전과 같은 국가중대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조선 초에도 도선의 권위는 이어졌으나, 세조가 도선의 예언서를 모두 금지하면서 정부에서 도선의 권위는 사라진다.1 그러나 도선에 대한 신뢰는 민중 사이에서는 사라지지 않았고,2 후에 정감록에도 <도선비결>이라는 제목으로 도선이 지었다는 위서가 첨가되기도 하였다. 지금도 도선의 예언서라고 내려오는 일부 예언이 있지만, 현존하는 예언서와 기록된 예언 모두 교차검증 결과 모순되었기 때문에 알려진 도선의 예언 대다수는 조작이다. 한편 조선 민간에는 도선의 탄생 설화가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도선은 하늘이 점지한 사람으로, 옛날에 전남 영암에 사는 최씨의 오이밭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최씨의 오이밭에서 매우 기다란 오이가 열렸는데, 최씨의 딸이 몰래 오이를 따먹었다. 그러자 최씨의 딸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화난 최씨는 애비없는 자식을 낳았다고 질책하며 자신의 딸을 대나무숲에 버려두었다. 며칠 후 최씨가 딸을 찾아가자 비둘기가 날개로 아이를 감싸고 있었고,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겨 아이를 데려와 기르게 되었다.
새가 날개로 아이를 감싸는 구도는 주몽 설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오이는 땅을 상징하는 작물이기 때문에 도선은 신화학적으로 지모신 계통의 신에 속한다.3
도선 이후 한국에는 다양한 예언이 등장하다가, 19세기 즈음에 정감록이라는 하나의 예언서로 귀결되었다. 정감록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예언서로, 익명의 여러 오컬티스트가 주장한 예언을 그러모은 것이다. 정감록에는 도선, 이지함, 이득윤 등 다양한 예언가의 예언이 수록되어 있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그들의 이름을 빌려 쓴 것에 불과하며, 정감록에는 유효립이나 허균이 반란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예언 또한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4
격암유록
격암유록(유록)은 1975년에 한국의 신흥종교 천부교에서 만들어진 예언서이다. 유록을 처음 공개한 이들은 유록이 몇백년전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하며, 국난을 맞아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시중에 공개한다는 명목으로 70년대에 처음 유록을 공개하고 국가에 기증하였다. 유록은 기독교와 도교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가령 유록은 궁궁(弓弓)의 이치를 깨달아야 난리를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궁에 대한 신성시는 한국 민간신앙에서 내려왔으며 십승과 같이 정감록에서 가져온 어휘도 많다. 반면 유록은 궁궁을 합치면 십자가 된다는 등의 표현을 통해 궁극의 이치가 십자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면서 기독교를 찬양하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5
전반적으로 격암유록은 정감록에 내용을 보다 추상화하고 기독교적 색채를 입힌 찌라시로 보인다. 이는 동양에서 태어나서 기독교 장로를 역임한 바 있는 천부교 교주 박태선의 행적에 비추어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록에는 '정감'과 같이 정감록에서 사용했던 대부분의 어휘가 같이 사용되며, 어떤 경우에는 뜻도 일치한다. 또한 '鄭堪先師'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정감록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직접적으로 유록이 정감록의 후계라고 주장하고 있다.6
하지만 정감록과 달리 유록에서는 지시하는 바가 더 추상화되는데, 가령 정감록과 달리 유록에서는 십승이나 계룡, 삼풍이 특정 지명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신령한 무언가를 의미한다.7 그리고 이러한 추상적인 이치의 예시로 십자가 지속해서 등장한다.8 이를 통해 본다면 유록은 기독교와 도교가 융합된 천부교가 정감록의 권위에 기대면서도 예측 오류를 없애기 위해 작성한 찌라시라고 볼 수 있다.
일본 문화의 이해
일본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는 인류학자 베네딕트에 의해 처음 시도되었다.9 베네딕트는 2차대전에서 일본군이 보인 특이한 행동에 집중하였고, 일본의 역사적 기록물과 일본계 미국인 및 일본에 거주했던 미국인의 증언을 토대로 일본 문화를 연구하였다. 이를 통해 베네딕트는 일본 문화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를 완수할 수 있었다.
베네딕트가 보고한 일본은 상당히 집단주의적이고 문화적 경직성(tightness)이 강한 나라이다. 일본인은 사회 전반에 서로의 의무와 지위, 역할을 규정하는 상세하고 복잡하며 철저히 차별적인 규범을 따르며 산다. 모든 일본인은 이것을 따라야 하고, 따르지 않는 일본인은 사회적 비난에 직면한다. 대신 이러한 규범에서 허용하는 일탈이나, 나에게 주어진 권한 내에서의 행동, 남에게 들키지 않은 규범 위반은 얼마든지 허용된다. 이러한 규범은 에도 시대부터 형성된 긴밀하게 조직된 봉건제 하의 지역사회 구조에서 기인하였으며, 봉건사회가 그랬듯이 서로의 의무와 권한을 지정하면서도 상당히 억압적이고 차별적이다.
베네딕트는 일본의 집단주의적 특성을 상세하게 정리한 최초의 학자 중 하나이다. 일본인은 사회에서 설정한 규범을 중시하며, 도덕의 근본은 내면의 양심이 아니라 외부에서 정해준 규범이다. 그조차도 타인에게 들키지 않는다면 위반해도 괜찮은데, 왜냐하면 타인의 시선과 평판이 도덕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인은 행동과 판단의 기준으로 타인의 시선과 여론, 규범을 중시하고, 타인과 주고받은 온정(義理,의리)의 정도를 상세하게 따지며, 서로에게 준 의리를 충족하는 것을 상당히 중시한다.
일본이 현세중심적이라는 점도 베네딕트가 처음 보고한 바 중 하나였다. 일본은 최근까지 중심이 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없었고 선과 악에 대한 추상적이고 엄밀한 철학적 논의도 많지 않았다. 베네딕트는 일본에 선과 악이 없으며, 환생이나 사후세계와 같이 추상적인 종교적 관념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일본 문화에서 선악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주어진 규범을 따르는지 여부로 결정되는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였고, 모든 행동의 기준은 구체적인 현실에 있었다. 이러한 주장은 후쿠시마 료타에서도 반복된다.10
베네딕트는 성실을 일본 문화의 핵심으로 보았다.11 이는 minkov-hofstede 모델에서 일본이 flexibility가 강한 문화로 분류된 바와 부합한다. 일본 문화에서 성실이란 주어진 사회적 역할에 부합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학생은 공부를 하고, 직장인은 일을 하며, 군인은 전쟁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일본 문화에서 말하는 성실이다. 반대로 학생이 열심히 밴드를 하거나, 직장인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거나, 군인이 새로운 전술을 주장하는 것은 성실하지 않다. 일본 문화에서 성실이란 철저히 규범에 부합해야 한다.
베네딕트의 통찰은 지금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놀랍지만, 그럼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베네딕트가 일본의 특성이라고 주장한 많은 것은 미국인 또한 가지고 있는 특성이었다. 미국인 또한 상황에 따라 다른 규범이 존재하고, 유럽에 비해 현세중심적이다. 또한 베네딕트의 주장과 달리 일본에도 성리학처럼 절대적인 윤리를 주장하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했으며, 존왕양이는 바로 그 성리학에서 유래하였다. 무엇보다 베네딕트의 연구 이후 80년 가까이 지나면서 일본도 개인주의화가 진행되었고, 베네딕트가 묘사한 일본의 모습은 지금의 일본과 여러 부분에서 다르다.
다테마에와 혼네
다테마에와 혼네는 일본인의 겉마음과 속마음을 뜻한다. 이러한 개념에는 일본인의 겉마음과 속마음이 상당히 다르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어느 사회든지 겉마음과 속마음이 같은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일본의 경우 겉마음과 속마음의 차이가 더욱 크다는 인식이 있다. 이는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으로 보인다.
베네딕트12는 다테마에와 혼네의 차이를 일본의 양육방식에서 찾고자 하였다. 일본의 양육방식은 20세기 초 서구에 비해 상당히 유화적이었고, 당대 일본인은 동시기 서구인에 비해 아이들의 요구에 더 잘 반응하였다. 베네딕트는 이러한 양육방식이 자기주장적인 자아를 낳았고, 이 자아가 집단주의 사회에 적응하면서 원래 마음(혼네)과 페르소나(다테마에)의 이원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의 애착유형은 회피애착이 더 많다는 점에서 이는 사실과 달라 보인다.
일본인의 여성관
베네딕트가 보고한 일본사회는 전형적인 성차별사회였다.13 여성은 남성보다 아래로 취급되었고, 남성보다 더 많은 사회적 제약에 시달려야 했으며, 여성을 차별하는 갖가지 규범이 존재하였다. 물론 다른 사회에서 그러하듯이 여성에 대한 젠더 압력은 남성보다 약하고, 베네딕트는 허용된 범위와 권한 내에서는 여성이 많은 자유를 누린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일본사회는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였다.
일본 문화에서 여성은 수많은 제약을 받아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 여성은 남성과 물리적으로 분리되고,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하도록 교육받는다. 베네딕트는 이때부터 일본 여성이 남성이 여성보다 우선되고, 남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사회화된다고 보고하였다. 여성의 자기주장은 매우 제한적이며, 식사와 목욕은 철저히 남성중심적으로 이뤄지고 가정사의 결정 권한에서 밀려난다.
기독교 종말론
기독교는 인간세상의 역사가 끝나고 마침내 신(과 선함)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리라는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는 최후에는 질서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가 무질서의 신인 앙그라 마이뉴를 꺾는다고 주장하는 조로아스터 교14와 그 후신인 유대교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창설된 초기부터 곧 인간세상(로마제국)이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종말을 물리적 구원이 아니라 영적 구원으로 해석하자고 교리를 정립할 때까지 계속해서 성행하였다.15
기독교 종말론은 유대교 종말론의 후손이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기존의 국가가 망하고 하나님 나라가 성립된다는 주장이 있었으며,16 기독교가 탄생하기 전인 기원전 3세기에서 서기 1세기 사이에 유대교에서는 종말론적 주제를 담은 묵시문학이 상당수 유포되었다.17 이는 당시에 유대인이 처한 어려움이 가장 컸던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18 가장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는 기원전 165년경으로, 이 시기에 다니엘서와 에녹1서, 희년서, 제4에스라서 등이 저술되었다. 유대교 묵시문학은 익명 저자가 수많은 상징을 통해 천사와 다가오는 구원을 언급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70년 열심당 진압 이후 사그라들었지만, 기독교로 계승되었다.19
비록 종말 시점을 계산하거나 지금이 바로 종말의 시대라고 주장하는 움직임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추종자의 탄압으로 사그라들었지만,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지속해서 나타났다. 결국 요한계시록은 기독교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말론의 믿음은 십자군 전쟁과 페스트 이후 유럽사회가 급변하면서 다시 성행하였다. 당시 예언가들은 마침내 종말이 도래할 것이고 천사 교황이 내려와 세상을 통치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교황청과 많은 정치인이 이를 이용하였다.20 근세에는 종말론 신앙이 오컬트나 과학의 사상적 토양이 되기도 하였고,21 지금도 한국 개신교에서는 종말론 신앙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정당화하는 수많은 시도가 있다.22
꿈의 해석
꿈을 해석하는 방식은 문화마다 다르다. 서구에서는 대표적으로 정신분석학이 꿈을 해몽하는 방법으로 여겨지며, 이에 따라 꿈이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정신분석학 이외에도 점성술이나 타로처럼 다양한 해몽법이 존재한다. 뉴기니의 asabano족은 꿈을 진실을 반영하는 꿈과 거짓이 투영된 꿈으로 나누며, 어떤 꿈이 진실인지 여부는 그 꿈이 특정한 시나리오를 따르고 있는지 여부로 판단한다.23 마야에서는 샤먼이 해몽을 담당하는데, tedlock24은 전란의 시기에 마야인들이 자신의 조상과 고향과 접촉하는 꿈에 많은 강조점을 두었다고 보고하였다. 에콰도르의 아르추르족은 자신이 꾼 꿈에 대해 부족원들과 대화하면서 꿈을 '공유'하는데, 여기에는 꿈이 혼자의 것이 아닌 공동체의 것이라는 아르추르족의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한 믿음과 관행은 다른 수렵채집 부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25
인류학에서의 남자다움
남자다움이 나타나는 양상은 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러한 공통점 중 하나는 남자다움이 적극적인 활동을 타인에게 공공연하게 보여줌으로서 증명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26 삼부루(samburu)27와 마사이(masai) 사회28에서 남자아이는 스스로 숫소를 죽인 다음에야 진정한 남자로 인정받으며, !쿵족에서는 영양을 죽여야 한다.29 뉴기니의 심바리(simbari, sambia) 족에서는 남자가 되기 위해서 유혈이 낭자한 의식을 견뎌야 하고,30 오순절 섬(pentecost)에서는 지상에서 몇십 센티미터 떨어진 곳까지 번지점프를 해야하며,31 아마존의 마위(Mawe, Satere-Mawe) 족 소년들은 30분동안 총알개미의 공격을 참아내야 남자로 인정받는다.32 이처럼 많은 소년의 성인식은 일종의 남자다움을 공공연하게 증명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precarious manhood 이론33으로 이어졌다.
네미 숲의 사제왕 의식34
네미 숲은 로마 인근에 위치한 숲으로, 로마시대에 이 숲은 숲의 여신 디아나를 섬기는 종교적 의식의 무대였다. 이 의식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디아나를 숭배했는데, 이들은 디아나가 사냥꾼이자, 불의 여신이면서, 여성의 다산과 임신한 사람의 순산을 도왔다고 믿었다. 디아나 숭배 의식은 8월 13일에 열렸는데, 이때 로마인들은 숲을 무수한 횃불로 비추고 자신들의 집에서도 화롯불 근처에서 비슷한 의식을 거행했다. 이들은 불에 자신의 소원을 빌거나 로마의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황족의 평안을 기원했으며, 오른손에 횃불을 든 여신의 청동상이 이곳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프레이저는 당시 디아나가 로마의 베스타(vesta)와도 동일시되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의식은 디아나를 섬긴 동시에 에게리아 신도 섬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물의 정령인 에게리아는 마찬가지로 순산을 돕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졌으며, 누마 왕의 애인이면서 동시에 누마 왕이 에게리아와 결혼하면서 로마의 법이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플루타르크는 이 전설이 엔디미온 설화처럼 인간과 여신이 서로 사랑하는 신화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로마의 베스타의 성처녀들은 매일 에게리아가 거주한다고 여겨지는 샘에서 물을 길어 항아리로 운반하여 베스타의 신전을 씼었는데, 로마 말기에 가면 그 동굴은 대리석으로 감싸졌고 인근은 빈민가가 되었다고 한다. 프레이저는 둘의 기능적 유사성을 들어 에게리아가 디아나의 변종이라고 주장했다.
에게리아와 달리 비르비우스는 확연히 디아나와 대비된다. 비르비우스는 순결하고 잘생긴 청년인데, 켄타우로스 키론에게 사냥을 배우고 아르테미스(디아나)와 함께 산에서 사냥꾼으로 살았다고 전해지는 존재로 그리스의 히폴리투스의 변종으로 여겨진다. 신화에 따르면 아프로디테의 모략으로 비르비우스의 계모 파에드라가 그에게 구애했는데, 그가 거절하자 파에드라가 아버지 테세우스에게 비르비우스를 벌해달라고 빌었고, 마침내 포세이돈에 의해 마차에서 떨어져 그가 죽게 되었다. 그러나 아르테미스의 부탁을 받은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로 그를 되살리면서 그는 부활하고, 주피터의 눈을 피해 도망치다가 네미 숲까지 와서 에게리아의 가호 아래 숨고 디아나의 신전을 지었다. 이후 비르비우스는 아이네이아스와 싸우는 라틴 군에도 가담했다고 한다.
비르비우스 신앙은 캄파니아에도 존재했으며, 아리키아에서는 말이 비르비우스를 죽였다는 이유로 말을 숲과 성소에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비르비우스 조각상을 만지는 것은 불법이었고, 비르비우스를 태양과 동일시하는 신앙도 존재했다. 이러한 신앙은 로마 이후에도 이어져서, 카톨릭이 퍼진 후 비르비우스는 8월 13일에 말발굽에 밟혀 사망한 성 히폴리투스로 추앙받게 된다. 또한 비르비우스는 디아나와 결혼한 존재로도 여겨졌으며, 사제이자 왕으로 추앙된 특정 인물이 비르비우스의 화신으로 여겨져 숭배되었다.
이 의식이 특이한 점은, 사제왕은 숭배받으면서도 동시에 의식을 통해 죽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에 네미 숲에서 의식이 거행되면 그는 다른 이들이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을 맞이해야 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칼을 들고 공격해왔을때, 그가 이기면 그는 계속해서 사제왕으로 남고, 그렇지 못하면 도전자의 칼을 죽고 도전자가 새로운 사제왕이 된다. 이렇게 사제왕에게 도전하기 위해서는 네미 숲의 성소에 위치한 성스러운 나무의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야 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허락되지 않았으나 도망노예들에게는 허용되었다.
프레이저는 오레스테스 신화가 이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오레스테스 신화에 따르면 오레스테스는 크림 반도의 왕 토아스를 살해한 후 누이와 함께 이탈리아로 도주했는데, 그 때 크림에서 숭배되던 디아나의 조각상을 장작 속에 숨겨서 가져왔다. 그가 죽은 후 그의 뼈는 아리키아(구 라티움 동맹의 일원)에서 로마로 옮겨졌고, 카피톨린 동산의 콩코드 신전 곁, 사투르누스 신전 앞에 묻혔다.
유대교의 영혼
유대교에서 주장한 영혼은 현대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영혼과 비슷하거나 다른 부분이 있으며, 심지어 현대 유대교와도 일부 다른 부분이 있다. 기원전 2세기경 모세5경이 막 편찬되었던 시기에 유대교에서는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지 않았다. 당시 유대교에서는 영혼이 신의 일부분이라고 믿었는데, 때문에 인간의 영혼도 신에게서 온 것이며 인간이 죽으면 다시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또한 모든 영혼이 신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인간은 원칙적으로 육식을 해서는 안되나, 노아의 홍수 이우 맺어진 약속으로 인해 육식이 허용되었다고 믿었다.35 이처럼 유한한 영혼 관념은 이후 그리스의 영지주의가 들어오면서 불멸하는 영혼 관념으로 대체된다.
한국의 영혼
한국인의 영혼관이 지금과 비슷해진 시기는 오래되지 않았다. 사실 카톨릭 전파 이전에 한국인은 영혼의 불멸성을 믿지 않았고, 영혼이라는 독립적인 존재도 믿지 않았다. 성리학자들은 인간 정신의 본질이 성이라고 믿었고, 인간의 영혼은 리와 기의 결합인 혼백으로 사람이 죽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었다. 동양의 일부였던 한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영혼도 시간이 지나면 소멸된다고 믿었다.36 이러한 믿음은 카톨릭이 전파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특히 기독교 전반의 확산과 함께 불멸하는 독립된 영혼 개념이 한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유령
현대 한국에서 유령은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을 가졌다고 여겨지지만, 전근대 유럽에서 유령은 사람보다는 훨씬 모호한 형태를 가졌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서구권에서 유령은 모호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며, 특이한 색깔이나 빛(주로 푸른 빛) 등의 흐리멍텅한 형태를 가졌다고 믿어졌다. 이러한 유령은 대부분의 경우 1분 이내로 사라졌으며, 벽이나 문을 통과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바로 사라졌고 간혹 강한 향기를 남기는 경우도 있었다.37 38
이렇듯 유령의 형태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만, 유령이 하얀 보자기를 쓰고 있다는 믿음은 전근대에서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 이는 당시 영국의 빈민층은 관을 살 돈이 없어 하얀 천으로 시체를 감싼 채 묻어야 했고, 부유층도 하얀 셔츠를 입힌 채 묻었기 때문으로 보인다.39 때문에 밤에 하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전근대 영국에서 유령으로 자주 오해되었는데, 한 일화40에서 벽돌공 토마스 밀워드(Thomas Milward)는 하얀 작업복을 입고 밤에 퇴근하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령으로 오인받았다. 이로 인해 밤중에 유령이 돌아다니고 이걸 본 사람들이 병에 걸렸다는 루머가 퍼졌고, 결국 술에 취한 특별세 징수관(excise officer) 프랜시스 스미스(Francis Smith)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한편 빛이나 점에 불과했던 유령 목격담은 점차 사람 모양의 유령을 보았다는 주장으로 대체되었고, 그 수도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은 정령 신앙이 약해지는 것에 동반되었는데, 실제로 shropshire에서 떠돌았던 하얀 여성(white lady) 전설에서 하얀 여성은 처음에는 정령으로 간주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유령으로 여겨졌다.41 이러한 추세는 과거에 정령으로 인식되었던 현상이 정령 신앙의 격하를 거치면서 유령이라는 새로운 대상으로 지각된 결과로 보인다.42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유령의 목격은 유령을 믿는 사람에게서 더 자주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유령을 보았다는 빈도는 해당 사회의 믿음과도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근세 잉글랜드에서 유령에 대한 보고가 줄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중세 카톨릭에서는 연옥을 믿었고 유령도 모종의 이유로 연옥에서 돌아온 영혼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헨리 8세에 의해서 세워진 성공회와 다른 개신교에서는 연옥을 부정하였고, 이와 연결된 유령에 대한 믿음도 이단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교리의 변화로 인해 성공회 설립 이후 잉글랜드에서의 유령 보고는 급격히 감소하였으며,4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않은 보고와 관심이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유포 족의 물체 구분 방식(yupno)44
유포(yupno) 족은 뉴기니에 거주하는 부족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물체 구분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만물을 뜨거움(hot)과 차가움(cold)으로 나누는데, 뜨거운 사물은 매우 활동적이며 차가운 사물은 매우 안정적이고 변화가 없다. 유포 족에서는 만물이 뜨겁거나 차가운 연장선상에 있다고 믿으며 마법사가 이러한 상태를 변경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또한 완전히 뜨겁거나 차가워서는 안된다고 믿는데, 왜냐하면 너무 뜨거우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해지고 반면에 너무 차가우면 죽은듯이 가만히 만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포 족에서는 뜨거움과 차가움 중간에 위치한 시원한(cool) 상태가 이상적이라고 여겨진다.
실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물체 구분 기준을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포 족 내의 여러 인구집단에서 5명씩을 선발해서 물체를 구분하는 과제를 시킨 결과, 오직 유포 족의 마법사만이 자발적으로 뜨거움-차가움 기준으로 물체를 나누었다. 노인들도 비슷하게 물체를 나누긴 했지만 물체를 뜨거움-차가움으로 분류하는 방식이 개인마다 달랐으며, 여성들은 일상생활에서의 쓰임을 기준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대개 색깔로 물체를 나누었다. 가장 유포 적인 물체 구분은 오직 유포 족 사회의 사회화 중심인 마법사들만이 하고 있었다.
필자는 뜨거움-차가움 분류가 동양의 음양 구분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전세계에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유포 족의 주된 물체 구분 기준이 마법사들의 것이라는 점은, 마법사들이 유포 족 사회에서 유기적인 지식인 역할을 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인류 식성의 진화
인류는 잡식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이 초식동물로 진화했는지 육식동물로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이 문제는, 특히 과거 인류가 어떤 식성을 가졌는지와 연관된다. 벤 도르는 인류세 이전에는 적어도 호모 속에서는 육식이 우세했다고 주장한다.45 일단 고고학적 증거들46은 과거 인류종들도 전분을 비롯한 식물을 자주 섭취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수렵채집 부족(hunter-gather) 가설과 연계되어, 많은 학자들은 인류가 육식과 채식을 병행하며 살아왔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육식이 주된 식습관이었다는 주장이 나타났다. 이들47에 따르면 과거 인류는 주로 대형동물을 사냥하는 육식동물이었으며, 이는 다양한 영양학적 흔적들과 육식동물과의 행동적 유사성을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빙하기 이후 대형 동물이 꾸준히 감소하면서 대형 육식동물을 사냥하는 것만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들었고, 이 과정에서 인류가 생존을 위해 최근에 진화시킨게 잡식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이에 기초하여 수렵채집(hunter-gatherer) 부족 가설을 공격하는데, 실제로 많은 연구들이 여성 사냥꾼이 가능할수 있다는 다양한 증거를 아래처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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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야의 주요 연구자로는 미키 벤 도르(Miki Ben-dor)가 있다. 벤 도르는 인류가 육식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을 밀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48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트리나 루돌프와 마찬가지로 비기독교적이고 다소 이교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본래 로마의 동지로,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의 동짓날이자 태양의 탄생일로 정해졌다. 이 날 시리아와 이집트에서는 갓난아기 인형을 만들고 이것이 처녀에게서 태어났다고 신성시하며 태양을 숭배했는데, 마찬가지로 12월 25일에 아기를 낳은 여성 또한 셈족에게서 '하늘의 처녀' 내지는 '하늘의 여신'이라 불리며 아스타로트와 동일시되고 신성시되었다. 이후 로마에서 발흥한 신흥종교 미트라 교도 이를 받아들여, 그들이 숭배하는 태양의 탄생일로 여겨졌다.
반면 본래 예수의 탄생일은 1월 6일로 여겨졌다. 성경에 예수의 생일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긴 세월 동안 예수의 탄생일은 오리무중이었지만, 이집트에서 1월 6일을 예수의 생일로 정하고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관습이 생겨나면서 4세기 경에는 소아시아 전역에 이러한 신앙이 퍼졌다. 그러나 당시 빠르게 교세를 확장하던 기독교는 현지인들의 민심을 사기 위해 그들의 풍습을 포용할 필요가 있었고, 때문에 레오와 같은 일부 기독교도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방 교회를 중심으로 예수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옮겨 기념하게 되었다. 이때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12월 25일로 하고 현현제만은 1월 6일로 지정했지만, 현대 주류 기독교에서는 그러한 흔적을 찾기 힘들다.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폴터가이스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인해 가만히 있던 물체가 움직이거나 소음이 발생하는 현상으로, 일반인들에서는 심령 현상으로 믿어지나 그에 대한 근거는 없다. 대부분의 폴터가이스트는 10대 여성에 의한 조작극이었으며, 특히 폴터가이스트가 발생하는 집안에 거주하는 딸이거나 하녀인 경우가 많았다. 이는 사회적 특성상 그들은 자신의 불만을 외부에 표출할 수 없었고, 이에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기 위해 택한 방식이 폴터가이스트 조작이었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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