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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랑의 상상계 이론 총요

과학주의자 2026. 2. 5. 19:43

뒤랑은 가장 덜 주목받는 인류학자이면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류학자이기도 하다. 질베르 뒤랑은 신화를 해석하는 거대한 체계를 스스로 창안하였고, 그 신화체계는 매우 방대하다. 바슐라르의 적통을 이은 뒤랑은 그 방대함과 체계성에서 다른 이론에 필적한다. 비록 레비스트로스나 캠벨의 신화학 이론에 비하면 가장 비주류에 위치한 이론이긴 하지만, 가장 관찰자료에 충실하게 부합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이 분야의 주요 저서는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가 있다. 다만 이 책은 오류가 넘쳐나 도저히 읽을 수준이 안되기 때문에, 최대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1.개괄

질베르 뒤랑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인류학자로, 자신의 상상계 이론을 통해 신화학과 문학에 기여하였다. 그는 바슐라르의 상상력 연구를 이어간 학자 중 하나인데, 뒤랑은 신화를 포함해 문학, 미술 등 인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이미지들의 체계(상상계)에 대한 이론을 주장하였다. 뒤랑은 여기에 철학은 물론 과학까지 넣었는데, 비록 그의 주장은 오류가 있지만 그의 상상력 연구는 후대 인문학자들을 통해 계속 이어져 갔다.

 

뒤랑은 신화 체계를 죽음에 대한 상징적 극복으로 보았다. 그는 신화의 실존적 기능을 강조해서, 죽음은 신화를 만드는 가장 근원적인 동기이며 죽음을 상징적으로 다루고 극복하는 것이 신화의 주요 테마라고 주장하였다. 이어 그는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과 그에 따른 구조의 배열에 따라 신화적 상징이 낮의 체제와 밤의 체제로 나뉜다고 주장하였다. 낮의 체제에서 사람은 죽음과 투쟁한다. 밤의 체제에서 사람은 죽음을 수용한다.

 

2.낮의 체제

낮의 체제는 명과 암이 극명히 나뉘는 체계이다. 낮의 체제에 속하는 이미지는 아주 좋거나(상승 이미지), 아주 나쁜 이미지(하강 이미지)들이다. 하강 이미지는 죽음을 상징하고, 상승 이미지는 죽음에 대한 초월을 나타내며, 낮의 체제의 신화는 상승 이미지가 하강 이미지를 무찌르는 형태를 가진다.

 

뒤랑은 낮의 체제에 있는 상승 이미지와 하강 이미지의 구분을 논증하기 위해 이전의 다양한 연구를 인용한다. 보두앵[각주:1]은 빅트로 위고의 작품 속에서 이미지들이 빛과 어둠의 대립이라는 구조를 따라 상호작용한다고 보고하였고, 루즈몽[각주:2]은 음유시인과 수피교의 신비주의 시인들,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대표되는 브로타뉴의 소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신비주의 시들을 분석한 후 서구문학에서 밤과 낮이 서로 대비되는 이원론 구조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기로[각주:3]는 발레리의 작품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두 주제어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그 주제어는 순수(pur)와 어둠(ombre)이다. 발레리의 작품에서 이 두 단어는 서로 대비되는 두 극이라고 그는 보고하였는데, 이들은 각자 존재와 비존재, 부재와 현존, 질서와 무질서를 상징한다. 또한 '순수'는 '하늘,' '황금' '낮', '태양', '빛', '커다란', '막대한', '신성한', '단단한', '장식된' 등의 단어와 연관되는 반면 '어두움'은 사랑, 비밀, 슬픈, 창백한, 무거운, 느린 등과 관련되어 있다. 20세기 중반의 정신의학자 민코프스키[각주:4]는 조현병과 관련된 인격이 추상적이고, 움직이지 않으며, 단단하고 경직된 것을 좋아한다고 주장한다. 이외에 뒤랑은 u나 i가 모음들 중 가장 날카로운 반면 on은 가장 낮은 음성이라는 점을 들어 pur와 ombre가 서로 대립한다고 보고하였다.

 

상승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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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체제는 상승이미지와 하강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영원한 삶을 이뤄내는 상승이미지로 죽음을 상징하는 하강이미지를 무찌르는 것이 낮의 체제의 기본적인 구도다. 빛, 산, 검 등 세상을 초월한 신성을 나타내는 이미지가 주로 상승이미지다.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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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이미지는 대표적인 하강 이미지 중 하나이다. 뒤랑의 철학에서 밤의 동물의 특징은 우글거림, 재빠름, 물어뜯는 아가리다. 동물은 혼돈처럼 우글거리고, 피할 수 없는 죽음처럼 재빠르게 다가오며, 아가리로 우리를 물어뜯어 죽인다. 그 결과 이들은 죽음의 상징이 된다. 때로는 태양도 여기에 포함되기도 한다.

 

밤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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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죽음을 상징하지만, 어둠과 밤은 더 직접적인 죽음의 상징이다. 뒤랑의 철학에서 밤과 물, 달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이나 죽음 그 자체를 상징한다. 이는 여성과 연결되어 성차별적 관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추락

하강이미지는 추락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마 이카루스의 추락이 가장 유명한 예인데, 이것은 끈적끈적한 물로 추락하는 악몽의 신화적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각주:5] 많은 신화와 전설이 추락과 현기증, 무게, 으스러짐을 표현하고 있다. 탄탈로스는 인육을 올림포스 신들에게 먹이려 한 후 타르타로스에게 삼켜졌다. 파이톤도 제우스의 벼락을 맞아 땅 위로 추락했다. 익시온(ixion)과 벨레로폰도 추락으로 사망했다. 믹틀란테쿠틀리는 개의 날의 주인이자 죽음의 날의 주인인데, 그가 머무는 북쪽은 추위와 겨울의 검은 나라이면서도 동시에 떨어진 태양이 머무는 북쪽이다.[각주:6]

 

추락은 처벌이다. 아담의 추방은 타천사들의 추락과 마찬가지로 추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에녹서에서는 타천사들이 땅으로 추락한 이후 여자들과 관계하여 거인을 낳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천사들은 나중에 무거운 바위로 짓이겨진 뒤 불의 심연 속으로 또 추락한다. 랑톤[각주:7]에 따르면 <분데헤시(bundehesh)>는 요한계시록에서 원형을 가져왔는데, 분데헤시에서 아리만은 하늘을 습격하려 했던 죄로 땅 위로 추락했다. 그의 추락은 훗날 어둠의 왕자가 살게 될 깊은 구덩이를 만든다.

 

추락은 처벌의 형태로 교훈화된, 죽음과 시간성의 표현이다. 그래서 묵시록 속 추락은 종종 간음과 질투, 분노, 우상 숭배, 살인 등과 혼동된다.[각주:8] 이 교훈은 시간이라는 배경 위에서 전개된다. 그곳에서 우리의 죽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에서 뱀은 항상 인간의 경쟁자로 나온다. 여러 신화에서 뱀은 불사를 훔치는 자의 역할을 하는데,[각주:9] 길가메시 서사시와 프로메테우스 전설 등 대부분의 전승에서 뱀은 인간의 불멸성을 빼앗아 인간을 죽음이라는 구덩이로 추락시킨다.

 

동물의 살(고기)을 먹는 행위는 언제나 죄악과 연결된다. 레위기에서는 월경혈에 대한 금기를 언급한 후, 피를 먹는 것에 대한 금지도 언급한다. 왜냐하면 육체의 영혼은 피 속에 있기 때문이다. <분데헤시>에서는 살을 먹는 행위가 성과 이상한 신화로 묶여 있다.[각주:10] 악의 상징인 아리만은 조하크(zohak) 왕의 요리사인데, 최초의 인간 부부에게 고기를 먹임으로써 그들을 유혹한다. 바로 거기에서 사냥이 탄생했고, 알몸의 남녀가 짐승의 가죽을 덮으면서 의복이 생겨났다. 마고 신화에서도 인간은 고기를 먹으면서 타락한다. 채식주의는 순결과 연결되어 있고, 인간은 동물을 죽이면서 타락한다. 이것은 일종의 추락으로, 우리의 배를 향한 정신적 추락이다.

 

는 심연이다. 바슐라르[각주:11]는 셰익스피어의 저작에서 배가 '악덕의 부대자루'라고 표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두앵[각주:12]도 위고의 작품에서 배나 하수도같은 움푹한 곳이 부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고 지적한다. 레미제라블에서 도시의 하수도는 혐오감과 심한 공포의 이미지들이 명확해지는데, '어둡고 구불구불한 용종이며 페스트가 풍겨나오는, 지옥을 뿜어내는 용의 아가리이다.' <파리의 노트르담>에 나오는 기적의 궁전은 도시의 하수구이고, <일꾼들>에서는 자크레사르드의 궁전에서 악취가 풍기고 우글거린다. 

 

하수도는 후각과 관련된 묘사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창자는 숨막히고, 악취를 풍기며, 구역질나게 한다. 벨제불(beelzeboul)은 불가타 성서의 벨제부브(beelzeboub)가 변형된 것인데, 히브리어로 '악취의 왕자'를 뜻하는 제벨(zebel)에서 왔다.[각주:13] 위고의 작품에서 정신적인 하류층은 모두 하수구의 상징이자 쓰레기의 상징이면서 소화와 항문에 관련된 이미지들을 불러온다. 살아있는 하수도인 창자는 레미제라블의 '리바이어던의 창자' 단락에서 신비하고 게걸스러운 용의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이 리바이어던의 창자는 동시에 죄악의 장소이자 악의 가죽부대, 바빌론의 소화기관이다. <웃는 사나이>에서도 하수도는 '구불구불한 창자'고, 위고의 시 <독수리>와 <신>에서는 검고 불길한 물의 두번째 상징이자 '영원한 쓰레기들이 비처럼 내리는 스틱스 강이라는 하수도'가 나타난다.

 

위고의 작품에서 미로는 창자와 비슷하게 용이나 '길이가 열다섯 발 되는 지네'로 나타난다. 이 미로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에 의해 꾸불꾸불한 창자로 된 '소용돌이'로 묘사된다.[각주:14] 아가리에서 시작하여 소화관을 지나 항문으로 떨어지는 배의 구조는 미로의 형태를 한 완전한 심연이며, 이것이 살과 동일시되면서 우리의 살에도 부정성이 부여된다.

 

한편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끔찍한 주제들은 완화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에리니에스는 에우메니데스로 대체되고, 간질이나 나병, 천연두 등도 '높은 병'이나 '아름다운 병', '축복'으로 표현된다. 죽음을 부르는 신들은 아름답고 매혹적인 젊은 여자로 변신하는데, 마라의 딸이나 칼립소, 북유럽의 요정들, <라마야나>의 라바나(ravana)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밤의 체제적 측면은 나중에 다루게 될 것이다.

 

3.밤의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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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체제에는 낮의 체제에서 보이는 빛과 어둠의 투쟁이 없다. 밤의 체제에서 모든 존재는 명과 암이 있으며,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순환한다.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순환하며 그 무한한 생명력을 발휘한다. 낮의 체제에서 속세의 초월을 목표로 한다면 밤의 체제에서는 세상의 근원으로 귀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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