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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 다수가 기독교인이라는 말이 사실인가?

과학주의자 2022. 6. 29. 15:06

언젠가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적이 있다.

 

비단 네이버 지식인 만이 아니라, 카페나 신문같은 다른 곳에서도 이런 글이(토씨하나 변하지 않고) 반복된다. 보통 이 글의 인용자는 이 글을 통해 '기독교인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으니 기독교인이 더 똑똑하고 명철하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에 대해서는 60년대까지(미국은 심지어 지금까지도) 무신론이 서구사회에서 금기시되었다는 사실, 노벨상에 접근할만한 과학시설이 대부분 서구 기독교사회에 위치한다는 사실 등을 들어 반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과연 저 통계가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고자 한다.

 

일단은 존 풀리(죤 훌리는 상당히 옛날 명칭이다)가 썼다는 위의 "유대인과 기독교(Jews and christian)"라는 책이 있는지 찾아보자. 일단 책이니까 아마존에 검색하면 존재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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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J Fully로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니 다시 한번 검색해보자.

...

놀랍게도 그런 책은 없다. 혹시 몰라서 구글 스칼라에도 검색을 해 보았지만 John Fully가 썼다는 Jews and Christian이란 책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지금 생각해보니 fully란 말도 속임수 같다는 느낌이 든다) 노벨상 수상자를 분석했다는 저 책은 창조과학회가 그러듯 아예 날조이거나, 최소한 정식 출판되어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공신력 있는 책은 절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럼 아래에 있는 책은 어떨까? '과학 엘리트:미국의 노벨상 수상자들'이란 책은 다행히 실제로 존재했다. 단지 약간의 이상한 점이 있을 뿐이다.

 

필자는 구글 스칼라를 검색하여 이 책을 찾아내었다. 책은 원래 장 수가 많으니까 핵심만 찾기 위해 christian을 검색하고, 나온 8개 결과 중 기독교인과 관련된 72,79페이지를 살펴보았다.

얼핏 보면 위의 주장이 정말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밑줄친 religious background에 주목하자. 저 단어는 해석하면 '종교적 배경'이 되는데, 이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적 주변환경, 즉 어떤 종교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묻는 것일수도 있다. 그럼 둘 중 무엇이 진짜 뜻인가? 필자는 후자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같은 책의 이 구절 때문이다.

강조한 문장을 해석하면 "그들의 기원이 어떻든, 수상자들은 자주 자신들을 불가지론자로 묘사하며 종교에 관한 공식적인 견해를 가지지 않는다."정도 된다. 여기의 origin이라는 단어는 위에서도 계속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religious background는 종교적 배경으로 보는게 합리적이다. 만약 religious background가 종교를 말하는 것이라면 '자기를 불가지론자라고 한다'라는 설명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적 배경과 실제 신앙이 다른 경우나, 심지어 공식적인 종교관과 개인적 신앙이 다른 경우는 종종 보인다. 무신론에 대한 국제조사를 보면 덴마크 국민의 80%는 개신교인이지만, 실제 덴마크의 무신론자는 전국민의 70%에 육박한다. 비슷하게 프랑스의 카톨릭 신자도 전체 국민의 90%를 차지하지만 프랑스 국민의 50%는 무신론자다. 이는 개인적 신앙이 무신론인 사람들 상당수가 문화적 이유로 성당에 등록하거나 교회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무신론의 거두인 리처드 도킨스도 자신을 '문화적 기독교인(cultural christian)'이라 밝힌 바 있으며, 서구의 많은 무신론자들이 교회/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결국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맨 위의 주장도 거짓으로 밝혀졌다. 아마 악의적으로 곡해했거나, 책을 덜 읽은 게 오류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실제 노벨상 수상자들은 어떤 종교를 믿을까? 위의 사기꾼들의 주장처럼 기독교가 다수일까? 아니면 무신론자들이 그러하듯 무신론자가 다수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행히 이미 사서 루이스 셸비(Louis Sherby)가 "The Who's who of Nobel Prize Winners, 1901-2000"에서 정리된 바 있다. 저자는 문헌 부족이나 애매한 표현으로 인해 종교적 견해가 드러나지 않거나 여러 종교가 혼합된 경우가 많다고 밝히고, 종교적 입장이 확실한 경우만 수집했다고 언급했다. 이 책에는 노벨상 수상자의 Religious affiliation, 즉 종교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베이트-할라미의 "Psychological Perspectives on Religion and Religiosity"에서 표로 정리된 바 있다.

none이 무신론/비종교이고 protestant(no denomination)는 확인되지 않은 개신교 교파, most probably christian은 아마 기독교인일것이라는 추측이고 from X background와 no record는 불명이거나 자료가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저 도표를 보면 몇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가장 많은 노벨상을 받는 사람들은 유대인이다. 그러나 여기서 '노벨상 수상자 중에 유대교 신자가 많다.'라는 결론으로 넘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유대인이라는 말은 혈통적인 요소도 개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유대인들이 무신론이나 비종교를 따르고 있지만 유대교의 풍습을 따르며 종교분류도 유대교로 분류된다. 그렇기 때문에 저 유대인들 사이에는 기독교,무신론이 섞여있을수 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종교관 분류가 의외로 어렵다는 것을 알수 있다. 자료불명, 아마 기독교인 같은 추측성 항목에 속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는 자료해독의 어려움에 있는 것으로, 노벨상 수상자들 대부분이 사회적 명사로서 종교관을 밝히는 것이 사회적 지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언급을 피한 것이 이유로 작용한다. 이외에 전세계의 종교인구 분포와 비교해보면 개신교, 유대교, 무신론/비종교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개신교인이 64%를 차지한다는 말은 없다는 것이다. 전체 통계에서 개신교인의 비율은 크게 잡아도 46%이고 과학 부문에서는 50%정도로 64%에는 못미친다. 게다가 이것도 개신교인들이 치를 떠는 유니테리언과 '아마도 기독교인'에 포함한 사람을 넣은 것으로, 명확히 개신교라고 명시된 것으로만 계산해보면 전체에서 22%, 과학에선 24%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가상의 책까지 만들어가며 해대던 주장이 결국 거짓임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섣불리 개신교인들을 선동꾼으로 몰아가기 전에, 다음을 고려하자. 현재 노벨상 수상자의 종교적 성향을 조사한 자료는 저것 이외에도 또 하나가 존재한다. 이스라엘의 유전학자 바루크 샬레브(Baruch Shalev)는 그의 저서 '100 Years of Nobel Prizes'에서 셸비와 마찬가지로 노벨상 수상자의 종교를 조사했는데, 여기서의 조사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중 기독교인(개신교+카톨릭)은 64%에 달한다! 거기다 유대교인은 21%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맨 처음의 기독교인이 제시한 수치와 매우 비슷해보이며, 뜬금없이 기독교인 항목을 모두 개신교인 항목으로 바꿔버린 일(다분히 의도가 의심되는)을 제외하면 사소한 수치 오류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둘 중 어느 데이터를 더 신뢰해야 할까? 

 

여기서도 우리가 봐야할 점은, 바루크가 정확하게는 수상자의 종교를 얘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바루크는 수상자의 religious preference, 즉 종교적 선호를 다루고 있다. 이는 셸비가 언급한 종교적 배경과 유사해 보이며, 사실 두 저자의 출간 연도가 크게 차이나지 않기 때문에 둘 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종교적 성향에 대한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자료들에 직면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에 대해 셸비는 종교적 성향의 모호성을 인정하고 많은 수상자를 from X background와 no record에 배정한 반면, 샬레브는 모든 수상자를 특정 종교적 성향에 배치하였다. 이러한 자료처리는 간단할수록 좋은 대중과학 저서를 저술하는 데에는 좋은 방법이지만, 필연적으로 오류가능성이 증가한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from X background와 no record로 분류된 57명이 무엇을 믿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과학적 자료처리는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를 유신론적 종교 항목에 배정하는 실수에 부분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바루크가 유신론자로 분류한 과학자 일부는 실제로 유신론자가 아니다. 바루크가 유대인의 선전을 크게 다루는 점(그리고 비교대상으로 이슬람을 제시하는 점)을 보면 바루크의 자료처리가 일신교(특히 유대교)를 추켜세우도록 일부러 편향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모호한 자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일어났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특히 부모의 종교적 배경(과 그로 인한 교적)을 통해 판단하는 일은 매우 합리적인 일인데, 바루크가 수상자의 종교를 부모의 종교적 배경을 통해 분류했다고 가정하면 인격신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으로 분류된 사례들이 잘 설명된다. 아래의 목록은 잘못 배정된 학자들의 일부로, 유대교나 이슬람으로 잘못 배정된 수상자의 목록이다.(샬레브의 책에서 저 두 종교의 리스트만 사용할 수 있었다.) 기준으로 삼은 셸비의 저서가 몇몇 무신론자를 종교인으로 잘못 분류하기 때문에, 실제 수는 더 많을 수 있다.

더보기

아돌프 폰 베이어(Von Baeyer) - 노벨 화학상(1905), 복음주의개신교 혼재

앨버트 아인슈타인 - 노벨 물리학상(1921), 범신론(무신론으로도 분류되나, 본인은 거부함)

닐스 보어(Niels Bohr) - 노벨 물리학상(1922), 무신론

구스타프 헤르츠(Gustav Hertz) - 노벨 물리학상(1925), 가정배경(유대교)만 나옴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 노벨 생리의학상(1930), 카톨릭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 - 노벨 물리학상(1945), 이신론, 신비주의, 범신론(본인이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따른다고 밝힘)

허먼 멀러(Hermann Muller) - 노벨 생리의학상(1946), 유니테리언

막스 보른(Max Born) - 노벨 물리학상(1954), 냉담자(유대교)

일리야 프랑크(Ilya Frank) - 노벨 물리학상(1958), 기록없음

레프 란다우(Lev Landau) - 노벨 물리학상(1962), 무신론?#

리처드 파인만 - 노벨 물리학상(1965), 무신론

머레이 겔만(Murray Gell-mann) - 노벨 물리학상(1969), 무신론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 노벨 경제학상(1976), 불가지론

허버트 사이먼(Hebert Simon) - 노벨 경제학상(1978), 유니테리언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 - 노벨 물리학상(1979), 무신론

바루 베나세라프(Baruj Venacerraf) - 노벨 생리의학상(1980), 비종교

세사르 밀스테인(Cezar Milstein) - 노벨 생리의학상(1984), 불가지론

헤럴드 바머스(Harold Varmus) - 노벨 생리의학상(1989), 가정배경(유대교)만 나옴

해리 마코위츠(Harry Markowitz) - 노벨 경제학상(1990), 기록없음

로버트 포겔(Robert Fogel) - 노벨 경제학상(1994), 가정배경(유대교)만 나옴

마틴 로드벨(Martin Rodbell) - 노벨 생리의학상(1994), 비종교

앨프리드 길먼(Alfred Gilman) - 노벨 생리의학상(1994), 기독교가 확실

에드워드 루이스(Edward Lewis) - 노벨 생리의학상(1995), 냉담자(유대교)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 - 노벨 경제학상(1997), 기록없음

아메드 즈웨일(Ahmed Zewail) - 노벨 화학상(1999), 기록없음

앨런 히거(Alan Heeger) - 노벨 화학상(2000), 아마 기독교

 

어느 논점에서나 양쪽의 의견을 모두 들어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한쪽의 의견을 아예 무시하는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슬프게도 그중 하나가 개신교로, 정말 많은 유언비어와 유사과학이 개신교에서 발생했다. 창조설과 같은 개신교의 핵심과 관련된 주제부터, 늙은 독수리가 자신의 부리를 뽑는다는 자기개발식 유언비어까지 그 범위는 매우 방대하다. 너무 많은 헛소리가 소위 개독들의 소행이기 때문에, 우리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개신교에서 나온 주장은, 그것이 정립된 신학적 논변에 근거하거나 제 3자도 같은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그냥 헛소리라 치부하고 무시해도 된다.

 

이 사례는 그나마 선동이 적은 사례였다. 왜냐하면 어떤 책을 보고 오해하는 일은 필자를 포함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오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안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는 존 풀리의 출현, 통계에 대한 무지하고 엉성한 해석, 사실을 왜곡하여 얻는 자기 신앙의 정당화, 뜬금없는 카톨릭 폄하까지, 억지와 왜곡, 선동이 나타났다. 분명 100년 전에 개신교는 새로운 지식의 보고였는데 어쩌다 반지성주의와 멍청함의 산실이 되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결국 개신교에서 절차부심하여 상호비판을 통한 자기교정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개신교적 주장을 그냥 헛소리로 무시하는 전략은 계속해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전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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