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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개론

과학주의자 2022. 8. 4. 14:59

과학은 인류가 만들어낸 지식체계 중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진리를 생산한다. 종교, 철학과 달리 과학은 관찰에서 지식을 찾고, 가설은 반드시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엄격히 검증되어야 하며 얻은 지식은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 지난 400년간 과학은 이 세상의 경이와 신비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몇몇 작가들은 과학지식을 단순한 공식 묶음으로 생각하며 딱딱한 책으로 여기지만, 그들중에 뉴턴의 법칙이나 세포의 구조에 대해 일말의 지식이라도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과학을 제국주의, 이성의 독재, 가부장제라며 깎아내리는 인문학자들 중에 인종의 동등성을 증명해내고, 인간이성의 한계를 파헤치며, 가부장적 신화들을 깨트리는데 있어 과학만큼 공헌한 이들이 누가 있으며, 그 공헌에 필요한 통계에 대해 1이라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과학은 현재 순수,응용 모두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과학의 공헌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현대과학이 쌓아올린 과학지식을 직관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다 드립이고 그냥 아는거 메모할 데가 없다.

 

과학의 주요 학술지는 다음이 있다.

 

<Nature>

<Science>

 

과학적 방법론

https://tsi18708.tistory.com/201

과학적 방법론은 주장과 근거를 적절하게 결합하기 위해 과학에서 쓰이는 원리들을 말한다. 과학은 내용이 아니라 바로 이 방법론에 의해서 다른 분야와 구별된다. 과학적 방법론은 가장 중요한 실험을 필두로 여러가지 연구방법을 포괄하지만, 모두 객관성을 확보하는데 유용한 도구들이다. 

 

유사과학 문제

https://tsi18708.tistory.com/172

유사과학은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연구나 증명과는 일절 관계가 없거나, 관계 없는 내용이 포함되었으면서도 마치 과학적인 것인 양 주장되거나 수용되는 대상, 또는 이러한 대상의 수용을 유도하는 이론이나 주장을 말한다. 유사과학은 과학의 신뢰성을 떨어트리고 사회의 적절한 기능을 방해하며, 과학자들의 관심이 필요한 주제이다.

 

 

1.과학이란?

과학은 합리적이고 경험적인 방법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세상에 대한 귀납적인 탐구에 따르면, 세상에는 인간의 인식과 관계없이 현존하는 진리가 존재하는 듯이 보이며 이들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가령 사과가 밑으로 떨어진다거나, 복권을 사지 않으면 복권 당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옳은 사실로 보인다. 과학은 이러한 개개의 사실을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고도로 압축된 이론의 형태로 체계화하는 과정이다. webstar는 과학을 실험과 가설에 따라 규명되고 체계화된 사실과 원리, 방법과 연관된 지식 및 연구분야라고 정의했다. 비슷하게 교육학용어사전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목적의 탐구행위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들은 모두 과학이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체계화된 지식인 동시에 지식 생성 과정임을 의미한다.

 

과학은 특유의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4가지의 목표를 추구한다.[각주:1] 먼저 과학은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여 기술해야(describing) 한다. 모든 과학의 시작은 관찰이다. 연구하는 대상을 관찰하여 지식을 축적하지 않는다면 그건 과학이 아니다. 과학에서의 관찰은 직접관찰과 간접관찰로 나눌수 있는데, 연구자가 직접 관찰을 수행하는 직접관찰도 많지만 이를 논문과 같은 문헌을 통해 접하는 간접관찰도 많다. 그리고 과학은 현상을 설명해야(explaining) 한다. 과학의 목표는 관찰한 사실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드는 것이다. 과학자의 목표는 최대한 적은 요인으로 최대한 많은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과학 연구에는 정확한 이론과, 그런 이론을 만들기 위한 많은 추론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또 과학은 예측할수 있어야(predicting) 한다. 현상을 잘 설명하는 이론이라면 정확한 예측을 내놓아야 한다. 예측은 두루뭉실해선 안되고 검증이 가능하도록 엄격하고 정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학은 유용해야 하며, 우리가 과학지식을 통해 환경을 통제할 수 있어야(controlling) 한다. 과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앎으로서 무언가를 통제할 수 있다. 의학자들이 병의 원인을 이해하자 항생제가 나타났고, 유체의 특성에 대한 유체역학의 성과를 기반으로 비행기가 개발되었다. 비록 순수과학이 무엇에 유용한지는 알기 쉽지 않지만 과학지식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새로운 환경을 창조하도록 하는데 수없이 기여했다.

 

과학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과학이 인과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즉 과학은 단순히 현상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서 현상의 원인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는 현상이 어떠한 원인에 의해 부분적으로라도 결정된다는 가정(determinism)이 있다. 하지만 인과를 밝히는 것 만큼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현상을 기술하는 연구(자연주의)와 현상을 설명하는 연구(실증주의)는 항상 병존해왔다. 또한 과학은 검증을 위해 대상을 직접 조작하는 조작성을 가지고 있으며, 소수의 표본을 통해 전체 대상이 가지는 특성을 밝히는 모수성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학은 반복성(replication, 재현성)과 응용성(application)을 가지는데, 즉 과학에서 밝힌 지식은 특별한 시간적 제약이 없다면 항상 반복가능해야 하며, 과학 이론은 다른 현상을 발견하거나 설명하는데도 응용될 수 있어야 한다.(이는 예측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과학은 연구자간 철저한 검증을 통해 공유된 표준적 절차를 가지고 연구가 시행되는 표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표준적인 절차로 나타난 결과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특성을 과학자들은 객관성이라고 통합하여 부른다. 즉 과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객관적, 즉 그것이 지식을 생성하는 과정과 생성된 지식이 특정 사람의 주관에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모든 인간이 이성적으로(즉 감정과 선입견을 배제할 때) 동의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성을 바로 확보하는 것은 일부 분야에서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분야의 과학자들은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 between-subjectivity)을 통해 객관성을 구축한다. 간주관성을 사용하는 과학자들은 주관적인 면이 있는 주장과 연구를 서로 합쳐서 모두가 동의할 만한 이해를 산출하며, 이 패러다임도 다른 비판과 검증을 수용하여 발전하면서 객관성에 매우 근접하게 된다. 이러한 예로서 통계를 사용하는 과학자들은 모집단의 일부만을 반영할 뿐인 표본을 통해 연구를 수행하는데, 이러한 연구가 계속 축적되면 표본이 섞이면서 각 연구의 주관적 요소가 사라지고 점점 객관성을 확보하게 된다.

 

서양 인식론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은 크게 이성주의와 경험주의로 나뉘었다. 이성주의는 사고와 이성을 통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플라톤에 의해서 대표되고, 경험주의는 인간의 감각을 통한 직접적인 탐구가 진리의 발견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근래의 실용주의로 대표된다. 인식에서 이성주의가 적절한지 경험주의가 적절한지에 대해 현재까지 철학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데, 과학은 체계적인 이론을 통해 사실을 이해하는 동시에(이성주의), 이론의 검증과 사실의 발견을 실제 자연에 대한 경험적 탐구로 수행하기 때문에(경험주의), 과학은 이성주의와 경험주의, 이론과 현실을 조화시킨 가장 이상적인 방법론을 보유하고 있다.

 

과학은 보통 3가지로 나뉘는데,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회과학이 그것이다. 자연과학은 인간을 제외한 자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으로, 물리학, 생물학, 화학, 지구과학 등이 포함된다. 인문과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철학, 윤리학, 문학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사회과학은 인간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으로,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등이 포함된다. 이중 인문과학은 과학이 가지는 특성이 적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만이 자료에 근거하여 이론을 제시, 검증, 반증하기 때문에 경험과학(empirical science), 즉 과학으로 분류된다.

 

과학적 설명[각주:2]

과학의 목표는 현상을 관찰하고, 설명하며, 예측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이중 설명은 관찰한 현상을 실제 사실에 맞게 잘 설명하여 현상을 바르게 이해하게 해주고 또한 대상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틀을 마련해준다. 과학적 설명은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thoery)을 만들어 내는데, 이론은 자연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말한다. 이론은 자연현상에 대한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가설(hypothesis)을 입증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학자들은 특정 주제에 대한 질문인 연구질문(research question)을 던지고 가설을 고안해낸다. 이론은 관찰된 현상과 요소들의 관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제공하며, 오직 자신이 내놓은 예측이 실제 사실과 부합해야만 이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론이 규정하는 두 요소간의 관계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로 나눌 수 있다.

 

상관관계

상관관계는 어떤 한 요소가 변하면 다른 요소도 같이 변하는 관계를 말한다. 이를 수학적으로 말하면 확률변수 a와 b의 공분산 Cov(a,b)>0인 관계를 말한다. 이를 쉽게 말하면 한 요소가 갑자기 감소하거나 증가하면 다른 요소도 같이 증감하거나, 반대로 증감하는 관계를 말한다. 필자의 노트북은 오래되어서 오래 쓸수록 발열이 심해지는데 노트북 사용시간이 늘어날 수록 노트북의 온도도 올라가기 때문에 노트북 사용시간과 노트북의 온도는 상관관계에 있다. 과학에서 연구하는 상관관계는 대개 자연상태로 존재하는 자연 상관(natural correlation)인데, 상관관계는 통계적인 방법으로 구해지며 보통 상관계수를 통해 상관된 정도를 숫자로 표현한다. 성관관계는 다시 정적 상관과 부적 상관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요소 a가 요소 b를 억제하거나 감소시키는 경우 둘을 부적 상관이라고 하고, 두 요소가 같이 증가하고 감소하면 이를 정적 상관이라고 한다. 두 요소가 상관관계에 있으면 한 요소로 다른 요소의 양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상관관계는 학계에서 매우 많은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상관관계는 그 특성상 두 요소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만 기술하고 둘이 서로 어떤 관계로 엮여있는지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단순한 관계를 넘어 두 요소가 원인과 결과로 엮여있는지, 아니면 둘 다 같은 원인의 결과인지처럼 관계의 본질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선 인과관계를 알아야 한다.

 

인과관계

인과관계는 두 요소가 서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을때 한 요소가 다른 요소의 원인이 되는 관계를 말한다. 인과관계로 묶인 요소들은 상대방 요소를 만들어내거나 영향을 끼치는 원인과, 원인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영향을 받는 결과로 나뉜다. 쉽게 말해 노트북 사용시간을 늘리면 노트북의 발열이 증가할때 사용시간은 원인, 발열은 결과이며 노트북 사용시간과 발열은 인과관계로 엮여있다. 인과율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인과관계로 얽혀있다는 가정으로 불교의 연기설에서 물리학적 가정까지 인간의 지식탐구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관찰된다. 철학자 칸트는 인과율이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가정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사람들은 가만히 있던 블록이 다른 블록과 부딫힌 후 움직이는 장면을 보고 자연스럽게 한 블록을 원인으로, 다른 블록을 결과로 분류하며[각주:3] 이런 경향은 유아에서부터 나타난다.[각주:4]

 

과학은 본질적으로 인과관계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물론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지만 과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상관관계의 근원이 되는 인과관계를 밝혀내 세계의 존재들이 서로 어떻게 엮여있는지 알아내는 학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암묵적으로 인과율을 가정하며, 인과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실험을 사용한다. 최근 양자역학의 발견은 인과율의 절대성을 의심하게 하고 있지만 아직 인과율은 세계를 관찰하고 설명하는데 유용한 도구이다. 하지만 인과관계에 기반한 설명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선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명백히 다르다. 상관관계에서 두 요소는 서로 연관되어 있기만 하면 되지만 인과관계에서 두 요소는 반드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어야 한다. 자연에는 두 요소가 서로 원인인 동시에 결과인 경우도 매우 흔하지만 이 경우에도 하나 이상의 요소가 원인으로써 다른 하나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관관계를 인과관계와 혼동하여 잘못된 추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흄 사후 30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수많은 인문학자가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하는 것처럼, 아직도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한다. 이중 대표적인 사례가 소아마비 예방을 위한 아이스크림 규제이다. 1949년 미국의 의사 벤자민 샌들러는 아이스크림 소비량이 늘어날수록 소아마비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가 발견한 것은 아이스크림 소비량과 소아마비 발병률의 상관관계이다. 하지만 샌들러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여 아이스크림 소비가 과도한 설탕 섭취를 통해 소아마비를 증가시키는 원인이라고 추론했고, 이 추론은 미국 정부에 받아들여져 한동안 아이스크림이 소아마비를 일으킬수 있다는 경고문이 발행되었다. 그러나 후에 학자들이 면밀히 조사한 결과 둘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었는데, 단지 소아마비 발병이 증가하는 여름이 되면 아이스크림 소비도 늘기 때문에 이같은 일이 발생했음이 밝혀졌다. 

 

위 사례를 보면 아이스크림 소비와 소아마비 발병은 서로 상관관계에 있다. 하지만 소아마비가 아이스크림 소비를 증가시키거나, 아이스크림이 소아마비를 일으키진 않았다. 대신 둘은 '여름'이라는 제 3 요인에 의해 같이 늘어났다. 이처럼 두 요인의 관계 외부에서 2가지 요인에 동시에 영향을 주는 변인을 제 3변인(third-variable correlation)이라 한다. 제 3변인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으면서도 두가지 요인에 동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두 요인은 서로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변하면 다른 하나도 같이 변하게 된다.

 

인과관계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제 3변인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론적으로 거의 무한한 수의 3변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 사례에서는 여름이 제 3변인이었지만 겨울, 봄, 기후변화 등 다른 요인들도 제 3변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임을 입증하려면 해당 요인이 제 3변인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런 증명은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충분히 할 수 있지만 3변인 후보가 무한으로 늘어나면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인지 밝혀내기란 불가능하다.

 

선택 편향(selection bias)도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시킬 수 있다.[각주:5] 선택 편향은 서로 다른 집단이 서로 다른 환경을 선택하면서 만들어지는 상관관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머문 장소와 사망률의 관계를 조사한다고 하자. 사망자의 대부분은 병원에 있었으며, 병원 밖에 있던 사망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즉 사망과 병원은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는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의 위기에 있던 사람들이 병원으로 후송된 후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즉 특정 집단(사망자)이 특정 환경(병원)을 선택하면서 발생하는 상관관계를 선택 편향이라 하며,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할 수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하여 사물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며, 그렇기 때문에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신중히 분리된다.

 

 

2.과학윤리, 연구윤리

과학의 역사는 조금만 뒷장을 들춰보면 피비린내와 시체 썩은내가 진동한다. 또한 사기꾼, 선동가의 감언이설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것들이 과학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다짐한 의사들 중 몇몇이 뒤에서 조폭과 결탁하여 장기매매를 실시하는 것처럼 과학에서도 직업윤리에 위배되는 일을 행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나쁜 일을 방지하기 위해 과학윤리를 세우고 논의하고 있다. 비인도적인 인체실험을 금지한 헬싱키 선언 이후에도 연구윤리에 위배되는 실험이 가끔 발각되지만,[각주:6] 동시에 많은 과학자들이 그런 문제를 고발하고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연구윤리는 소극적 연구윤리와 적극적 연구윤리로 나눌 수 있다. 소극적 연구윤리는 표절, 연구사기 등 과학 내적으로 문제되는 행동을 다루는 반면, 적극적 연구윤리는 비인도적 실험, 피험자의 피해 등 과학 외적으로 문제되는 행동을 다룬다.

 

인간실험의 윤리[각주:7]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최근까지 윤리적 고려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치에서 의사 요제프 멩겔레 주도로 행한 잔혹무도한 실험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이를 규제하기 위한 실험윤리가 필요해졌다. 이에 과학자들은 1947년 뉴렘버그 헌장을 만들고 1964년 헬싱키 선언을 제정하였다. 이후 1979년 미국 (구)보건교육복지부에서도 벨몬트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준수해야 할 3가지 기본 원칙을 제정하였다. 이 3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연구는 인간에 대한 존중을 표시해야 한다.  즉 피험자에게 부당한 영향력이나 강압없이 실험과 관련하여 결정한 권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 연구는 이익이 되어야 한다.  즉 인간 대상 연구는 참여자에 대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위험은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연구는 공정해야 한다.  즉 모든 피험자에게 동등한 권리와 위험이 주어져야 한다. 실험집단과 통제집단의 위험이 일시적으로는 다르더라도 이를 벌충해야 한다.

 

한가지 고민해봐야 할 문제는 64년 이전에 수행된 실험들을 어떻게 평가하냐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비인도적인 생체실험에서 나온 결과라면 그것을 과연 신뢰해야 할까? 이러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각주:8] 예를 들어 일본군의 731 부대에서 실시한 실험은 대부분 조잡했으나, 생물병기 연구의 면에서는 충분한 효과를 보여주었다.[각주:9] 비인도적 결과를 제외하더라도 나치에서 포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나치는 포로들을 극한의 추위에 노출시켰는데 그 실험으로부터 급속한 냉각이 고열을 치료하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관찰했다. 이 결과를 공표하여 후속 연구와 나은 치료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할까? 생물윤리학자 아서 캐플란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거기 동의한다. 하지만 명예훼손반대연합의 대표인 에이브러햄 폭스맨은 그러한 공표가 사악한 행위를 합법화시킨다고 비판한다.[각주:10] 필자는 전자의 결론을 지지하며 다만 사악한 행위의 정당화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동물실험[각주:11]

동물실험이 윤리적으로 타당한지 아닌지는 아직 많은 논쟁이 있다. 유명한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저서 <Animal Liberation>에서 동물실험이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며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했다.[각주:12] 이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이 있지만[각주:13] 사회적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각주:14] 동물권 옹호론자는 대개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반면, 미국인의 2/3는 동물실험이 비윤리적이지 않으며 정부가 동물실험을 금지해선 안된다고 응답했다.[각주:15] 과학자 대부분은 동물실험을 허용하는 대신 윤리적 기준을 만들고 이를 준수한다. 심리학자는 4가지 기준을 충족할 경우에만 동물실험을 실행하며,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피험체 동물을 '인간 이외 연구참여자'라고 부른다.

 

연구부정행위[각주:16]

2001년 물리학자 얀 헨드릭 쇤은 자신이 분자수준의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2015년에야 실현된 기술이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이 발표에 흥분했다. 그러나 쇤이 제시한 방법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자들은 분자 트랜지스터를 만드는데 실패했고, 마침내 쇤이 사실 데이터를 왜곡해서 연구결과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각주:17] 쇤의 논문은 즉시 게제 철회되었고, 쇤은 박사학위를 박탈당했다.  

 

과학자는 진실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인슈타인은 진리에 대한 열망에 빠져든 사람만이 과학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각주:18] 그러나 쇤뿐만 아니라 황우석, 마크 스펙터, 후지무라 신이치 등 세상에는 진리를 알기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만드는데 치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처럼 과학자가 자기 연구에서 나온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숨겨서 발표하는 현상을 연구부정행위라 한다. 과학의 목표는 진리지 스펙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자사회는 이러한 일을 막고자 노력한다. 조작된 연구가 공인되지 않도록 많은 학자들이 주목할 만한 다른 학자의 연구를 재현하여 실제로 그런 현상이 재현되는지 확인하며, 연구사기가 의심되면 자체적으로 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한다. 이와 관련하여 과학자들은 3가지 기준을 세워 연구부정행위를 막고자 한다.

 

  1.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발표할때 오로지 진실만을 발표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연구를 발표할때 결과를 날조해선 안되고, 조작해선 안되며, 일부 데이터를 생략하여 결과를 왜곡해선 안된다.
  2. 과학자들은 연구에 공헌한 연구자들을 적절히 언급해야 한다. 직접 연구를 도운 동료는 저자로 명기해야 하며 연구에서 참고한 다른 연구들을 적절힌 인용양식을 통해 인용해야 한다.
  3. 연구데이터는 공유되어야 한다. 데이터가 공유되어야 다른 학자들이 데이터해석에 문제가 있는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할 수는 없는지, 데이터가 이상하지 않은지 검토할수 있다. 불행히도 2010대 초까지 이 기준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과학전쟁(science wars)

과학전쟁은 90년대 말 과학의 본질을 두고 일련의 인문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충돌을 빚었던 사건이다. 60년대 이후로 상대주의 열풍이 불어오면서, 인문학에는 과학을 주관적이고 이념적인 구성물로 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먼저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 과학의 확실성에 의문을 불어넣었고, 여기서 더 나아가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이 종교나 유사과학과 같은 다른 지식체계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사회학에서는 과학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과학지식사회학이 발흥했고, 프랑스에서는 과학이 주관적인 활동이라는 바슐라르의 학통을 이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류가 되었다. 이들은 서로 가지는 배경과 주장이 다르지만, 과학이 객관적이지 않으며 다른 지식체계와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80년대 들어 상대주의 열풍이 잠잠해지면서 과학자들은 이러한 인문학적 움직임에 반대하기 시작했고, 곧 소규모 충돌이 이어졌다. 과학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인문학자들에 반대해 과학자들은 과학지식이 객관적이며, 사회적 구성물이 아니라 자연 탐구의 결과라고 옹호하였다. 그 와중에 생물학자 폴 그로스(Paul Gross)와 수학자 노먼 래빗(Norman Levitt)이 <Higher Superstition>을 출간하면서 이러한 인문학적 움직임을 공격하자, 이에 반발하여 포스트모더니스트 앤드류 로스(Andrew Ross)는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던 듀크 대학의 <Social Text>에서 'science wars'라는 특집호를 창간하기로 했다. 특집호의 목적은 과학자들의 공격에 반박하는 것이었으며, 여기에는 포스트모더니스트뿐만 아니라 과학사회학자인 도로시 넬킨도 참여하였다.

 

특집호에서 앤드류 로스는 과학자들의 반격이 단순히 냉전 종식으로 예산이 줄어들자 이를 남탓으로 돌린 과학자들의 추태라고 폄하하였다. 또한 과학자들이 자신들을 뉴에이지나 UFO 음모론, 점성술, 창조설, 나치과학, 리센코주의와 동일시하고 있으며,(사실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비판이 아니라 단순한 이름붙이기라고 비난하였다.[각주:19] 과학커뮤니케이션학자인 도로시 넬킨(Dorothy Nelkin)은 역시 특집호에서[각주:20] 과학자들의 반격이 과학과 국가의 실패한 결혼에 대한 공격적 반응이라고 주장하고, 역시 냉전 종식으로 줄어든 예산 탓을 포스트모더니즘에 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리학자 앨런 소칼(Sokal)은 그의 유명한 논문 <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s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에서 양자중력이 순전히 언어적/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유사과학인 형태형성장 이론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소칼의 논문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 내용 때문이라기보다 그것이 가진 함의 때문이었다. 해당 논문이 social text에 실리기로 결정된 2주 후 소칼은 잡지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에 <A Physicist Experiments With Cultural Studies>란 글을 기고하면서, 그 논문이 완전히 허황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과학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누구나 그것이 헛소리임을 알 수 있다고 폭로하였다. 사실 비슷한 시도가 이전에도 있었지만,[각주:21] 이 연구와 달리 소칼의 시도는 과학전쟁이라는 시기와 맞물리면서[각주:22] 큰 파문을 가져왔다. 앤드류 로스는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과학자들의 공격과 인문학자들의 반격이 줄지어 일어났다. 이때를 기점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쇠락하기 시작했고, 기성 언론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앤드류 로스와 편집진들은 그들의 멍청함을 기념하는 의미로 96년 이그노벨상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몇몇 사람들은 두 진영의 화해를 주선하였다. 97년 초에 열린 Science and Its Critics 컨퍼런스는 앨런 소칼과, 상대주의 과학사학자이자 창조설자인 스티븐 풀러(Steven Fuller)를 기조연설자로 초청하였다. 이 컨퍼런스는 과학전쟁에서 마지막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지만, 창조설자가 참여한 컨퍼런스답게 아무 합의도 내지 못하였다.[각주:23] 그리고 당해 5월 물리학자 마이크 노엔버그(Mike Nauenberg)는 과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참여한 소규모 컨퍼런스를 열었는데, 여기에는 소칼과 함께 과학사회학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머민(DAvid Mermin)과 과학지식사회학의 권위자인 해리 콜린스(Harry Collins)가 참여하였다. 이후 콜린스는 Southampton Peace Workshop을 조직하여 다시 과학자와 사회학자들을 모았고, 논의의 결과를 2001년 화학자 제이 라빙거(Jay Labinger)와 함께 <The One Culture?: A Conversation about Science>[각주:24]로 출간하였다.

 

한편 2002년에 보다노프 사건이 터지자, 이번에 인문학자들은 과학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동료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공격하였다. 여기에는 해당 사건이 터진 학술지를 비판하는 여러 물리학자들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코넬대의 물리학자 긴스퍼그(Paul Ginsparg)[각주:25]가 말했듯이, 저질 학술지에 쓰레기같은 논문이 실리는 일은 과학에서 흔한 일이다. 게재료만 주면 논문을 올려 주겠다는 쓸모없는 학술지가 널린 것이 과학의 현실이며, 과학자들이 SCI니 KCI니 공신력있는 학술지 목록을 만들고 또 자기들 분야에서 통하는 학술지를 따로 정해 놓는 것도 그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이후 보다노프 사건이 터진 <Annals of Physics>에 부임한 새로운 편집장은, 이전 편집장이 사망한 후 학술지의 질이 심각하게 떨어졌었다고 털어놓았다.

 

과학전쟁 이후

과학전쟁 이후에도 많은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과학관을 유지했고, 많은 과학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의 과학관을 유지했다.[각주:26] 그러나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99년 과학자들이 편협하다고 조롱했던[각주:27] 과학사회학자 브루노 라투르는, 과학전쟁 이후 자신들이 과학에서 사회적 힘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과학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과학사회학에서 과학지식의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였던 여러 사회적 힘(사회구조, 과학적 관행, 편견 등)이 실제로 객관적인 사실을 왜곡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였다.[각주:28] 이는 과학을 사회적 구성물로 본다는 과학지식사회학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드러내며, 동시에 라투르가 주장한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의 설득력을 키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이 보인 과학에 대한 몰이해는, 인류학이었다면 연구대상과의 인터뷰에서 수정되었을 문제였다. 그러나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은 해석학적 탐구에만 매몰되어 안그래도 객관성이 약한 질적 방법론을 더 취약하게 만들었고, 거친 논쟁을 거친 후에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포스트모던적 사고가 대안우파에 의해 역이용당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사상을 반성하는 인문학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라투르는 지구온난화 회의론자들이 과학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는데 토마스 쿤의 주장과 과학지식사회학을 사용하는 현실에 개탄하고, 과학이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던 인문학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각주:29] 이러한 주장은 깎아내려진 과학의 신뢰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라투르의 시도로 이어졌다.[각주:30] 라투르 이외에 다른 인문학자들[각주:31]도 비슷한 우려를 표했는데, 이들은 인문학자들의 소위 반과학적 태도들이 실제 반과학을 일으키고 비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이후 트럼프가 집권하고 딥스테이트와 코로나 음모론, 백신 반대운동이 창궐하면서 이들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한편 어느 분야나 그렇듯이, 과학전쟁은 한국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저 2010년대 후반 페미니즘 학문의 지적 무능함이 폭로되었을 때, 비슷한 예시로 잠시 거론되었을 뿐이다. 과학전쟁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룬 문헌은 대개 홍성욱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과학학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인문학적 배경에 알맞게 그들은 과학전쟁 중에 나타난 인문학 진영의 주장을 사실인양 수용하고 자신들의 오래된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러한 주장들 중 일부는 나무위키#에 반영되어 국내에서 과학전쟁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데 기여하였다.

 

 

베타 아밀로이드 가설

베타 아밀로이드 가설은 치매의 원인에 대한 가설로, 치매가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 축적된 결과로 발생한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에 다르면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시간이 지날수록 플라크(plaque)의 형태로 뇌에 축적되는데, 이 플라크가 시냅스를 파괴하고 뉴런간 소통을 방해하여 치매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해당 가설이 제안된 연구가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이 가설은 폐기되었고, 더 나아가 학계에 엄청난 후폭풍 또한 가져왔다.#

 
 

이븐 알 하이삼(알 하젠)

이븐 알 하이삼(965-1039)은 중세 이슬람의 과학자이다. 이라크의 바스라에서 태어나 카이로에서 인생을 보냈으며 주요 관심분야는 광학이었으나 수학과 공학적 응용에도 관심이 있었다. 광학에서 그는 어떤 거울에서 광원과 눈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을때 거울면 위에서 반사가 일어나는 점을 구하는 '알 하이삼의 문제'로 유명하다. 또한 인간의 눈에서 사물로 빛이 나아가서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반해 역으로 사물의 빛이 우리 눈에 옴으로서 사물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했다.[각주:32]

 

 

전문가 증언

전문가 증언(expert testimony)은 과학분야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한 재판에서 판사나 배심원같은 비전문가가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경우를 말한다. DNA 감식 증거를 법정에서 해석하는 유전학자나, 형사사건 피의자의 정신감정을 실시하는 임상심리학자의 의견이 전문가 증언에 해당한다. 보통 전문가 증언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석/박사학위가 필요하며 이외에도 관련 자격증이나 증명서, 현장 경험이나 관련 분야에 대해 수행한 연구가 요구되기도 한다. 관련 분야의 범위를 확장되기도 하는데 20세기 중반까지는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만이 정신감정을 실시할 수 있었으나 1962년 후부터는 심리학자도 자격을 인정받았다. 보통 대륙법에서는 판사가 전문가 증언을 해석하고 효력을 결정하지만, 영미법에서 판사는 오직 신뢰할 수 없는 증거를 배제하는 역할만 맡고 전문가 증언에 대한 해석은 배심원들에 맡긴다. 

 

전문가 증언이 되려면 어떤 자격을 충족해야 하는가? 미국의 경우 연방증거법에서 다양한 판례에 기초해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보통 전문가 증언을 판단하는데 사용되는 판례는 Frye vs US 재판(1923)과 Daubert vs Merrell Dow Pharmacy 재판(1973)이다.  이들 판례가 등장하기 이전 미국의 전문가 증언은 대체로 증언하는 전문가가 얼마나 인기가 있나, 수입이 얼마인가 같은 외적 기준으로 판단했는데 이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소비가 많은 전문가는 그만큼 타당성이 있을거라는 당대 통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옳은 지식을 보장하진 못하고 오히려 유흥성과 비합리적 기대, 소망등이 전문가의 전문성을 훼손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Frye vs US 재판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문가 증언의 기준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1923년 살인죄로 유죄가 선고된 Frye는 항소하면서 그 증거로 거짓말 탐지기를 들었는데, 1917년 Marston이 제작한 폴리그래프 시험에서 자신이 통과했고 따라서 자신이 무죄라는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때 법정은 전문가 증언이 과학적인 원리 내지는 관련 분야의 일반적인 승인을 얻은 것으로 확정되어야 하며 폴리그래프는 그렇지 않다는 이유로 원심 판결을 인정했다. 이 판례는 전문가 증언의 기준을 '학계의 일반적인 인정'으로 설정하고, 학계의 수렴된 의견에 우위를 두고 전문가 개인의 명성의 중요성을 무시하여 전문가와 전문지식을 분리했다. 이것은 지식이 전문가들에게 소비되는 양상이 일반인보다 훨씬 신뢰롭고 일관되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사법계는 과학적 증거의 타당성을 법정 밖에서 결정한다며 사법판단의 독립성에 위배된다고 비난했고, 사회학이나 불교심리학처럼 엄격함이나 공정성이 떨어지는 학계도 있는 마당에 특정 학계의 의견이 과학적 타당성이 아닐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판례는 1973년까지 전문가 증언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었다.

 

그리고 1973년 한 임산부가 벤덱틴(Bendectin)이라는 약을 낳은 이후 자식 Jason Daubert를 기형아로 출산했다. 이 약은 탈리도마이드와 비슷하게 기형아를 유발하는 환경호르몬이었고 이 임산부는 약을 제조한 Merrell Dow 제약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과 2심에서는 Frye 판례를 따랐는데, 비록 환경호르몬이 각종 이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었지만 학계에 환경호르몬의 개념이 완전히 받아들여지진 않았기 때문에 법원은 그러한 연구들을 기각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에서는 이러한 판례를 뒤짚고 연방증거규칙에 따라 신용성 및 관련성 기준이 충족되는 한 과학적 연구가 학계 일반에 승인될 필요는 없다고 판시하여 사건을 파기환송하였다. 연방대법원은 훌륭한 과학적 지식도 학계 전반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학계의 인정이 없더라도 연구가 타당하다면 전문가 증언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Daubert vs Merrell Dow Pharmacy 재판은 판사가 과학지식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문지기(gatekeeper)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판사가 과학적 기준을 사용하여 과학지식의 타당성을 평가해야 하고, 사실 규명과 이해에 도움이 되는 과학지식만이 법정에서 수용된다고 정하였다.

 

한국의 경우 전문가 증언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한국은 대륙법을 따르기 때문에 판사가 전문가 증언의 증거능력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문가 증언은 감정인 제도와 전문심리위원 제도로 이뤄진다. 감정인 제도는 학식과 경험이 있는 자에게 감정을 명하는 제도로, 형사소송법 169조에 근거하며 감정인의 결과를 증거로 채택한다. 형사소송법 제 311조에 의거하여 법원 또는 법관의 면전에서 감정인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무조건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전문심리위원은 소송 관계를 분명히 하거나 절차를 원할히 하기 위해 검사, 변호인, 피고가 직권으로 신청하여 지정하는 전문가다. 상대측이 동의하여야만 위촉 가능하며 선발된 전문심리위원은 형사소송법 제 279조 2 제 2항에 의거하여 소송 절차에 참여가능하다. 전문심리위원의 기준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자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단순한 의견이나 설명은 증거능력이 없다. 대표적인 경우가 심리학자로, 이들은 피고의 범행 전과 후의 심리상태, 정신질환 여부, 재범 위험성과 치유대책 등을 평가하여 증거한다.

 

한국에서 전문가 증언은 간접증거에 해당한다. 증거재판주의를 따르는 한국 법원은 증거를 자백이나 증언같은 직접증거와 사실을 추론하게 만드는 여러 단서들 같은 간접증거로 나눈다. 지문, DNA 감식, 심리평가 등이 이러한 간접증거인데 이들은 대부분 해석하는데 전문성이 요구되어, 과학지식이 전무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에 감정인에게 감정을 의뢰한다. 감정인은 전문지식을 활용해 감정한 결과를 서면으로 형사사법기관에 증거로 제출해야 하며, 앞서 말했지만 법원 또는 법관의 면전에서 감정인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무조건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하지만 전문가 증언은 다른 증언과 달리 의견과 추론이 개입하기 때문에 최종 증언에 대한 판단은 판사가 실시한다. 전문가가 최종 의견 증언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일부 비판자는 법적 결정에 전문가가 너무 지나치게 개입한다고 우려하지만 찬성측은 최근 판사와 변호사는 능히 전문가의 오류를 밝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화론의 역사[각주:33]

생물이 시간에 걸쳐 변화한다는 생각은 다윈 이전에도 있었다.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수많은 박물학자들이 세계 각지를 탐험하면서 학자들은 생명체가 매우 다양함과 동시에 놀랄 정도로 사는 환경에 적응해있음을 발견한다. 이러한 생각은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해서 변화한다는 아이디어로 이어졌고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진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싹트기 시작했다. 진화에 대해 본격적인 이론은 독일에서 시작되었는데, 독일의 자연철학자들은 모든 생물들이 일종의 원형으로부터 변형되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의 손과 다른 포유류의 손은 모두 다섯 손가락을 가진 원형의 손이 변형된 결과물이다.[각주:34] 이런 생각은 후에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오언에게 계승된다.

 

한편 프랑스의 학자 보네는 과거에 여러 번의 전 지구적 재앙이 생태계를 몰살시켰는데 그때마다 생명체들이 후대를 잇기 위한 배자를 만들어 생명의 멸종을 피해 갔다고 주장했다. 재앙이 끝나면 배자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나 다시 생태계를 구성하는데, 보네는 배자가 새로 생성될 때마다 배자에서 나타나는 생물은 인간에 더 가까운 종으로 재탄생한다고 주장했다.[각주:35] 이처럼 인간을 정점으로 한 모든 생물의 위계서열을 가정하고 다른 생물이 인간을 향해 진보해 나간다는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중 생물이 진보한다는 주장은 후에 박물학자 장 B. 라마르크(Jean Baptiste Pierre Antonie de Monet Chevalier de Lamarck,1744-1829)에게 계승된다. 피카르디의 작은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라마르크는 보네의 직선적인 진화 개념을 거부하고 대신 자신의 용불용설을 주장했다. 용불용설에 따르면 종은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데, 경쟁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기관을 크게 만드는 물질을 분비한다. 라마르크는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는 더 높은 가지에 달린 잎을 따먹으려한 노력이 반영된 결과이며, 이처럼 노력으로 습득된 획득 형질이 유전되면서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비록 라마르크는 종의 멸종을 부정했고, 생명의 진보가 인간을 향한다는 보네의 생각은 버리지 못했지만 라마르크의 주장은 한동안 프랑스에서 각광을 받았다. 과학사가들은 여기에 정치적 변화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용불용설은 인간의지를 통한 진보를 찬양한 혁명가들의 주장과 비슷했다. 아마 그래서 과학자의 목을 처형하며 출범한 프랑스 혁명정부는귀족 출신인 라마르크를 공직에 기용했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혁명을 신뢰하지 않았던 나폴레옹은 라마르크는 거부했을 것이다.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라마르크를 싫어했고, 때마침 비교해부학의 창시자 조르주 L 퀴비에(Georges Lepold Chretien Frederick Dagobert Cuvier,1769-1832)는 진화에 대한 모든 개념을 거부했다. 권력에서 밀려난 라마르크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다윈의 출현까지 프랑스 학계에서 진화론은 금기사항이 되었다.

 

진화론의 발전에 획기적인 변화는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에 의해 일어났다. 신학교에 다니면서 진로를 고민하던 다윈은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추천으로 1831년에서 1836년까지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 호에 박물학자의 자격으로 승선하여 세계 각지를 항해하였다. 항해 동안에 다윈은 수많은 생물 표본을 채집했는데, 그 중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물의 표본에 흥미를 가졌다. 갈라파고스코끼리거북은 사는 섬에 따라 입 모양이 달랐는데, 모두 해당 섬에 풍부한 먹이에 가장 알맞는 모양이었다. 이는 흉내지빠귀에서 더 두드러졌다.[각주:36] 다윈은 이러한 미묘한 변이를 보고, 이 동물들이 원래는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으나, 서로가 처한 생태적 환경에 의해 서로 달라졌다고 추리했다. 이처럼 지리적 변이가 진화를 일으킨다는 생각은 다윈에게 새로운 진화의 개념을 불어넣었다.

 

문제는 이유였다. 왜 서로 다른 환경이 종을 변하게 하는가? 다윈은 이 메커니즘을 발견하고자 고심하였다.[각주:37] 해답은 다윈이 무심코 읽은 토마스 맬서스(Thomas Malthus)의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ation>(인구론)에서 나왔다. 맬서스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머지않아 식량부족으로 인한 무한경쟁이 닥친다고 주장했다. 비록 그의 예측은 틀렸지만 다윈은 자연이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했음을 직감했다. 항상 생물의 증식은 환경적 조건에 비해 빠르기 때문에 생물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경쟁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 생물은 불리한 특성을 가진 생물을 이기고 보존될 수밖에 없었다.

 

 

패러다임 이론

패러다임 이론은 과학사학자 토마스 쿤이 제안한 과학사 이론이다. 쿤에 따르면 과학적 연구는 단순히 사실을 관찰하고 이론을 세워 검증하는게 아니다. 과학적 연구 대부분은 사실->이론이 아니라 기존에 정립된 패러다임으로 관찰된 사실을 해석하는 활동이다. 패러다임은 어떤 과학분야의 지배적인 기초이론, 사실, 법칙, 방법론, 관점의 집합으로 해당 분야의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이 자기 분야를 보는 유용한 인식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학연구는 새롭게 관찰된 사실이나 패러다임에 반대되는 사실을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활동이다. 과학 분야가 형성되면 해당 분야의 과학자들이 해당 분야에 유용한 패러다임을 정립하고, 이후의 연구들은 패러다임에 기반하여 사실을 해석하는 활동이 된다. 실제 물리학 연구들도 많은 경우 기존의 이론적 모델로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가 보여주듯 패러다임은 완벽하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계 내에 패러다임에 반대되는 사실들이 쌓이거나, 어느 사실이 기존 패러다임으로 해석될 수 없음이 드러난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패러다임은 무너지게 되고 학자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데 이를 과학혁명이라 한다. 기존의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의 발전이 점진적이라 주장했지만 실제 과학사는 무수한 패러다임 혁명사로 점철되어 있다. 과학사학자 버나드 코언은 과학혁명에서 패러다임이 새로 탄생하는 과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패러다임의 탄생. 사람이 귀엽게 그려졌다.

패러다임 이론은 훌륭한 이론이지만 어느 패러다임이 그렇듯 패러다임 이론도 반대되는 사실들이 있다. 과학사회학자들은 과학이 점진적으로 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비슷하게 생물학자들은 자신들이 패러다임이 없으며 생물학의 발전은 점진적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집단선택설에서 유전자 결정론으로의 이행, 단백질-DNA-RNA로 이어지는 분자생물학의 테마 변화는 생물학에도 패러다임이 있음을 보여준다. 심리학자도 자신들이 패러다임이 없다고 주장하나, 비록 과거의 패러다임이 잔존하긴 하지만 심리학도 행동주의-인지과학-신경과학으로 이어지는 패러다임 변화가 존재한다. 

 

이 이론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공약불가능성이다. 공약불가능성은 쿤이 언급한 개념으로, 쿤에 따르면 두 패러다임은 각기 다른 기초를 가지기 때문에 서로 소통할 수 없다고 한다. 물리학을 예로 들면 고전역학은 고정된 시공과 무한한 속도를 가정하기 때문에 유동적인 시공과 광속을 가정하는 상대성이론과 소통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을 해도 애초에 기초적 가정이 다르기 때문에 실험으로 어느 패러다임이 맞는지 알 수 없고, 따라서 두 패러다임 중 어느 쪽이 진보했는지 말할 수 없다고 쿤은 주장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보다 고전역학이 진보했다거나 사실과 가깝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많은 비판을 받았고, 과학에 대해 몰지각한 자칭 과학학자, 인문학자들에 의해 오용되어 무수한 모순을 낳았다. 

 

현대 과학사학은 공약불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본다. 사실 쿤 본인도 과학자사회가 동의하는 어떤 기준을 통해 두 패러다임을 비교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정확성,일관성,적용 범위,단순성,생산성은 과학이론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종의 과학적 덕목인데, 쿤은 과학적 덕목들이나 물리학자가 말하는 아름다움 등을 통해 두 패러다임을 비교할 수는 있다고 언급했다.[각주:38] 사회적 가치도 개입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쿤이 이론을 발표한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그는 이를 매우 조심스럽게 언급한다. 이 논의를 받아들인 과학철학자 장하석은 과학적 덕목이 패러다임을 평가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끓는점에 대한 연구를 통해 패러다임이 바뀌어도 모든게 바뀌진 않음을 발견했다. 끓는점의 개념과 측정은 18-19세기에 정립되었는데, 이후 끓는점과 관련된 여러 인식틀이 대두되었지만 모두 끓는점을 설명하려고 시도하였고 끓는점에 관한 법칙, 사실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이는 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대립해도 둘 다 동의하는 사실이나 이론을 통해 패러다임을 비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각주:39]

 

이는 두 패러다임이 기초한 인식틀이 달라도 둘을 충분히 비교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일찍이 쿤이 공약불가능성을 주장한 후 과학철학자 임레 라카토슈는 두 패러다임의 생산성을 비교해 우열을 가릴 수 있으며, 보통 생산적인 패러다임이 이기기 때문에 과학은 진보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시 과학철학자인 래리 라우든도 패러다임이 해결한 문제 개수로 우열을 가리자고 주장했다.[각주:40] 그러나 이들 철학자들은 생산성이란 개념이 모호하거나, 문제해결 개수라는 개념이 취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가장 주목받는 이는 떠오르는 과학사학자 피터 갤리슨이다. 갤리슨에 따르면 과학은 이론-실험-실험기구가 상호작용한다. 이론 수준에서 일어나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과학에 큰 영향을 주겠지만 다른 두 세력이 버티고 있다. 끓는점 연구는 이론만큼이나 실험도 과학에 큰 영향을 줌을 드러낸다. 과학은 이론과 실험, 실험기구가 동등한 행위자로 참가하며 이들 각각의 패러다임이 상호작용하여 과학의 합리성을 보장한다는게 갤리슨의 이론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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