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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저장고
심리학 통사 본문
고대부터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에 대해 탐구해왔다. 그러나 본격적인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19세기 분트가 심리학 실험실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고전심리학에서는 구조주의와 기능주의, 정신분석 등의 패러다임이 공존했으나 행동주의가 부상하면서 20세기 전반기는 행동주의가 심리학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터 행동주의는 그 한계로 인해 무너져버리고 인지과학적 관점이 빈 자리를 메우게 된다. 이후 심리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분야들이 생겨난다.
1.심리학 이전
인간심리에 대한 관심은 과장하면 철학의 시작과 같이한다. 마음에 대한 관심은 철학의 3가지 대주제인 인식론과 연관되어 수천년 동안 철학에서 다뤄져 왔다. 고대 그리스의 경우, 그리스철학의 두 거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음에 관심이 많았다. 이 두 학자는 각자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식을 타고난다는 생득설(플라톤)과 인간이 빈 백지에서 출발해 경험을 통해 지식을 쌓아나간다는 경험론(아리스토텔레스)을 주장했는데, 이 두 주장은 현대까지 형태만 바꿔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지금도 심리학의 큰 주제중 하나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관상학>에서 인간의 성격을 얼굴 모양을 통해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비록 그의 주장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는 최초로 학문적인 영역에서 인간의 심리를 측정하는 방법을 제안하였다. 비슷한 시기 의사 히포크라테스도 정신질환에 대한 분류법을 제시한 바 있다. 1
이데아의 창시자 플라톤은 인간이 내면의 진리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우리는 감각으로 무언가를 경험하자마자 우리의 감각 경험과 우리 마음 속의 개념을 비교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앞에 놓인 빵을 보면 우리가 본 빵의 모습,냄새,촉감(감각경험)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빵의 형상,관련 기억,지식(개념, 표상)을 비교하여 이것이 빵이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이 감각경험과 표상을 같다고 여기는 이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빵의 촉감이나 소리에 대한 지식이나 느낌은 자라면서 배워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다는 생각은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일까, 아니면 경험 이전에 알게 된 것일까? 플라톤은 여기서 그러한 생각이 경험 이전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감각 경험은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시작되지만, 같음이란 개념은 아무래도 감각경험을 하기 전,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으니까 영혼의 차원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플라톤이 '이데아'라 명명하는 이 개념은 수학적 진리나 특정한 도덕법칙 등 절대불변의 진리를 포함하는데, 플라톤은 본래 모든 영혼이 이데아를 가지고 있으나 환생하는 도중 레테의 강(망각의 강)을 건너면서 전생의 기억과 함께 잊어버린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가진 어떤 지식들(이데아)은 선천적으로 존재하며 단지 우리가 떠올리지 못할 뿐이라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이 주장을 토대로 플라톤은 여러 주장을 전개해 나가는데 이 중에는 마음의 구조에 대한 철학도 있다. 플라톤은 영혼이 계층을 이루는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낮은 부분은 욕망이다. 욕망은 육체의 욕구를 느끼는 부분으로 욕망을 통해 인간은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여 생존한다. 그보다 높은 부분은 의지로, 의지는 이성을 통해 욕망을 적절히 억제하여 인간다운 삶을 유지한다. 플라톤은 두려움을 떨치고 전쟁터로 나아가는 군인의 용기도 의지라고 주장했다. 가장 높은 부분은 이성으로, 이성은 생각하고 사고하여 이데아를 인식하는 능력이며 철학자에게 이성이 발달했다. 플라톤은 욕망은 절제해야 하기 때문에 욕망이 추구해야 할 덕은 절제이고, 의지의 가장 뛰어난 결과물은 용기이기 때문에 의지의 덕은 용기이며, 이성은 결국 이데아에 이르는 지혜가 목적이기 때문에 이성의 덕은 지혜라고 말했다.
이렇게 플라톤이 말한 덕인 절제, 용기, 지혜에 더해, 이들 세 개의 덕이 이성에 의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플라톤은 정의라 불렀으며, 정의를 포함한 4개의 덕을 사주덕이라 칭했다. 그리고 이 사주덕을 기반으로 자신의 정치철학을 전개한다. 사주덕 철학은 이후 플라톤의 주장과 대치하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용어만 바꿔 계승된다. 이에 더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신적 능력을 품성과 도덕과 관련된 oresix와 이성과 관련된 dianoia로 나누었는데, 후일 키케로는 dianoia를 intelligentia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intelligentia를 '지능'이라고 부른다.
이후 로마의 실용적 경향과 암흑시대가 도래하면서 철학에 대한 관심이 잊혀졌다가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 심리에 대한 관심이 부활한다. 계몽주의자들은 기존의 종교적 질서에 반대하여 인간 중심, 이성 중심의 질서를 구축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들의 목표는 이들의 생각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들이 보기에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합리적 존재였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이성을 통해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이성의 기능을 통해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인간은 고귀한 이성을 가지거나 최소한 신에게 천부인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인정하나 당대의 잔인한 형벌에 반대했고 이들의 이상이 훗날 실현되어 수많은 고문과 가혹한 형벌이 폐지된다.
이러한 계몽주의자 중 하나는 플라톤의 지적 계보 밑에 있었던 데카르트이다. 17세기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자신이 애용하던 방법적 회의주의를 통해 인간의 정신(특히 이성)이 신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존재이며 영원하다고 믿었다. 그런 그에게 인간의 몸과 정신이 하나라는 현대 심리학자/심리철학자의 주장은 매우 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영원한 신의 영역에 속하는 정신(영혼)은 물질에 기반한 몸과는 서로 다른 존재라는 심신 이원론을 주장했다.
심신 이원론의 문제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성질의 존재가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는지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당시 막 발달하기 시작했던 해부학의 지식을 끌어와, 뇌 안의 작은 부위, 뇌 안에서 텅 비어 있어(뇌척수액을 빼면 비어보인다) 다른 존재가 들어오는게 가능한 송과선(pineal gland)이 영혼과 몸을 서로 이어준다고 주장했다.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유압을 통해 비행기를 조종하듯 영혼이 송과선을 흐르는 뇌척수액으로 유압을 일으켜 몸을 조종한다는 게 데카르트의 주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동기는 영혼의 의지였고 따라서 데카르트는 의지를 동기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이런 주장은 인간 동기의 형성이나 달성에서 단순 정신력보다 목표, 책략 등 인지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주는 점, 해당 주장이 개인차나 동기의 구조 및 상황의 영향을 설명하지 못하는 점으로 현대에는 배제된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여러 반대에 직면했다. 사회계약설의 대부 토마스 홉스는 데카르트의 주장에 반대하여 마음과 몸은 하나이고 마음은 뇌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이처럼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주장을 심신 일원론이라 한다) 당시 상업을 통해 발달하던 영국은 실질적, 실용적인 것에 관심을 두는 경험주의 학풍이 발달하고 있었고, 경험주의 학풍 밑에서 흄과 밀, 하틀리와 같은 다양한 철학자들이 인식론 연구의 일환으로서 자극과 자극의 연결과 같은 심리학적 주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학풍은 정신적인, 추상적인 것을 중시하는 프랑스, 독일 등의 학풍과 충돌하여 심리철학 영역에서 대립하고 있었다. 2
이 중 경험주의 학풍을 계승한 대표적인 예시가 미국의 실용주의인데, 실용주의자들은 심리학적 주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대표적인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반사행동을 '종의 번식, 삶의 보존, 특정 장소로의 이동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본질적으로 적응적인 행위의 순서'로 정의하여 기능을 분석하고자 하였고, 3교육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여 당대의 인식과 달리 암기보다 참여학습을 옹호하는 진보주의적 교육관을 최초로 주장했다. 듀이는 많은 제자를 두었는데 기능주의의 창시자인 윌리엄 제임스도 그중 하나이다. 4
심리학의 여명기
19세기 프랑스의 의사 프란츠 조셉 갈은 홉스처럼 뇌와 마음은 하나이며 이는 뇌의 크기에 의해 매개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뇌에서 범죄 담당부분이 크면 범죄자가 되고 지능 담당이 크면 지능이 좋다는 얘기다. 그는 동물이나 여러 방식으로 죽은 인간의 뇌를 관찰하여 뇌손상이 정신적인 능력을 떨어트린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비약하여 19세기 최대 유사과학중 하나인 골상학(phrenology)을 탄생시켰다. 갈은 두뇌에 인간의 성격과 행동을 결정하는 32개의 부분들이 골고루 분포해 있고, 이 부위들의 크기나 형태에 따라 성격 및 행동 양식의 세부적인 형태가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두뇌 부위의 크기 및 형태는 두개골의 크기 및 형태를 결정하므로, 두개골을 관측하면 인간의 행동 양식 또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과학적인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여 일찍이 과학계에서 방출되었다. 5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단순한 사실로 인간의 모든 행동을 설명하려드는 풍조와(혈액형 성격설처럼), 때마침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여 어떻게든 외부의 야만인들을 깎아내리려고 했던 시대정신이 결합하여 골상학은 대중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각지의 사교클럽에서 사람들은 골상학을 주제로 떠들어댔고 그 유명한 <셜록 홈즈>에서도 골상학을 통해 상대의 심리를 추리하는 장면이 자주 묘사된다. henry Lavery는 psychograph란 기계를 만들었는데, 이 기계는 두상의 울퉁불퉁함을 측정하여 골상학적으로 사람의 성격을 예견하는 기계였다.
한편 이탈리아의 의사인 체자레 롬브로조는 골상학에 기반하여 범죄적 자질이 유전되며, 마찬가지로 머리 부위의 크기나 형태로 이를 알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사진 이마, 비정상적인 크기의 귀, 비대칭적인 얼굴, 앞으로 돌출된 턱, 평균 이상으로 긴 팔, 두개골의 비대칭 등 유색인종에게 두드러진 특성들을 포함한 몇가지 특성을 범죄적 자질로 해석했고, 이러한 인종차별적인 주장은 흑인, 동양인이 두개골이 작기 때문에 백인보다 멍청하다는 당대 지식인의 주장과 함께 별다른 과학적 증거없이 사회에 받아들여져 인종차별의 주된 논거가 되었다.
그러나 비과학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집단적 무지가 전유럽을 휩쓰는 가운데서도 몇몇 학자들은 과학적 정신을 유지해 나갔다. 당시 많은 해부학자들은 동믈의 특정 뇌부분을 손상시키면 해당 동물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점을 관찰하였다. 이러한 점은 인간에게서도 관찰되었다. 프랑스의 외과의사 폴 브로카는 어느날 뇌의 왼쪽 일부분이 손상된 환자를 보게 되었는데, 이 환자는 다른 부분은 모두 멀쩡하였으나 말을 할 수 없었고 오로지 tan이라는 음절만 낼 수 있었다. 환자를 관찰하던 브로카는 손상된 뇌 부분이 언어구사를 담당한다는 주장을 발표했고 이를 토대로 마음이 뇌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실증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도 이런 뇌손상 환자가 나타났는데, 겸손하고 사려깊었던 공사장 인부 피니어스 게이지는 공사장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로 인해 이마쪽 머리부분이 철근에 관통되었다.# 의술의 도움으로 그는 극적으로 철근을 빼냈지만, 전두엽의 손상으로 인해 감정 조절을 못하고 폭력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전두엽의 기능에 대한 실마리가 풀렸고 뇌에 대한 연구를 촉발시켰다. 한편 브로카가 발견한 이 뇌영역은 오늘날 브로카 영역(Broca's area)으로 부르고, 브로카의 이 업적은 뇌과학의 시작이자 심리학 탄생의 모태가 되었다. 6
동시대에 유럽에서 발흥한 진화론도 심리학에 영향을 주었다. 다윈은 인간의 정서, 인지 등 다양한 고등 기능을 설명하려 한 최초의 과학자였다. 다윈은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했으며 해부학적, 정서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동물을 연구하듯이 인간의 행동도 진화론적으로 연구가 가능함을 제안했다. 다윈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여러 행동을 논했고 이를 <인간의 유래>라는 책을 퍼냈다. 또한 다윈은 어떤 표정은 본능적으로 감출 수 없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7
그러나 진화론이 사회적 논란이 되던 시대에 인간의 동물적 측면을 강조하는 다윈의 주장은 빅토리아 시대의 고명한 신사님들께 무시당했고 인간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은 1960년대까지 기를 펴지 못했다. 그러나 윌리엄 제임스는 진화론적 설명이 심리학에서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후에 보울비도 애착이론을 진화론의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했다. 비록 사회적으로는 편견과 행동주의가 다윈을 억눌렀지만 다윈이 제시한 개념은 계속 살아남았고 마침내 현대에 이르러 진화심리학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진화론과 유전자가 발견되고 사회에서 우생학 광풍이 불자, 어떤 학자는 이 셋을 융합해서 인간심리를 들여다보고 싶어했다. 유전학자이자 우생학자였던 프랜시스 골턴 경(Sir Francis Galton)은 다윈의 열렬한 지지자였는데, 동시에 다윈이 그토록 싫어했던 우생학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골턴은 백인 부자들이 다른 사람보다 유전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을 증명하고 싶어했고, 이를 위해 다양한 심리학적 측정을 시도하였다. 그는 지능은 선천적이며 잘사는 백인들은 지능이 우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는 개인의 반응속도(RT)와 sensory discrimination task(SDT)를 사용했다. sensory discrimination task는 서로 거리가 가까운 점을 변별하는 시지각 과제로, 골턴은 RT와 시각적 정확성이 지능의 척도라고 믿었다. 8
이외에 그는 유전자와 개인의 성공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상관분석의 전단계에 해당하는 기법을 고안했으며, 이외에도 성격을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비록 상관분석을 제외하면 그의 심리학적 유산은 오직 영미의 인종차별주의 멍청이들에게서만 계승되고 있지만, 동시에 골턴은 심리측정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생리학자들도 인간심리에 접근하는 다른 문을 열고 있었다. 당시 측정기술의 발달로 생리학자들은 신경 충동의 속도와 같은 것들을 측정하는게 가능해졌다. 에너지물리학자이자 과학적 생물학을 주장했던 헤르만 헬름홀츠는 발전된 기술로 개구리 다리의 신경 충동 속도를 측정했고 후에 이를 인간 연구에 적용하였다. 헬름홀츠는 피험자의 다리의 여러 부분에 자극을 주었을때 피험자가 반응하도록 훈련시켰고, 각각 피험자들의 반응 시간을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 헬름홀츠는 허벅지보다 발가락을 자극할때 반응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밝혀냈고 이 시간차로 신경충동이 뇌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계산해 냈다. 이 사실은 마음이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육체에 기반하여 움직인다는 주장을 다시한번 증명하고, 동시에 과학적인 방법으로 마음을 연구하는게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이후 헬름홀츠는 영국의 의사이고 빛의 회절을 발견한 토마스 영과 함께 빛의 3원색 이론을 제시했고 이후 실험으로 증명했다.
동시기 정신물리학자인 헤링(Hering)도 opponent process 이론을 발견하여 색지각에 대한 연구의 문을 열었고, 안과의사 donders도 인간 정신에 대한 실험을 최초로 실시하였다. 생리학자인 베버와 물리학자인 구스타프 페히너(Gustav Fechner, 1801-1887)는 생리적 측면을 벗어나 행동을 직접적으로 연구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연구끝에 차이역치에 관해 유명한 법칙인 베버-페히너 법칙을 발견했는데, 이 발견 이후 여러 과학자들이 행동과 정신의 직접적인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 과학은 페히너를 통해 9 정신물리학(psychophysics)으로 발전한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은 이러한 정신물리학 연구가 인간의 정신을 저울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종교를 모독한다는 이유로 정신물리학 실험실의 설치를 반대했는데, 이러한 사변적이고 무의미한 반대는 21세기에도 찾아볼 수 있다. 10 11
19세기에 들어 인간을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되면서 다양한 사회과학이 탄생했고, 심리에 대한 연구도 이중 하나였다. 이미 의학에서는 에밀 크레펠린에 의해 정신의학이 탄생한 직후였다. 당시 유럽을 여행하던 윌리엄 제임스는 1867년 베를린에서 이러한 과학의 물결을 맛보았고, 심리학의 창시자 빌헬름 분트는 이미 거기에 매료되어 이를 이용한 심리연구에 빠져들었다. 12
동물은 마음이 있는가?
동물의 마음에 대한 논쟁은 동양의 성리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 동물에게 마음이 있는지 여부는 중요한 문제였는데, 왜냐하면 성리학에 따르면 모든 존재가 세상의 근원적 진리인 리(理)를 내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성리학자들은 궁극적이고 선한 진리인 성(性)이 동물에게도 있는지 논쟁했고, 인간과 동물이 리가 같기 때문에 동일하다는 인리동론과, 인간과 동물이 기가 다르기 때문에 다르다는 인기이론으로 나뉘어 논쟁했다. 이러한 논쟁의 존재는 정약용이 당대 성리학이 무의미한 논쟁에 빠졌다며 비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동물의 마음에 대한 논의는 여러 문명에서 존재했고 심리과학이 정착되기 전까지 철학적 논쟁의 대상이었다. 서양의 경우 데카르트가 대표적인 논의의 시초로 여겨진다. 데카르트는 심신이원론을 주장하며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동시에 신체는 동일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동시대의 다른 철학자 드 라 메트리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서 영혼도 빼서 아예 인간이 동물과 같다는 인간기계론을 주장했다.
이후 19세기에 들어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 논쟁도 과학으로 옮겨왔다. 생물학자들의 입장은 대체로 인간과 동물이 동일하다인데, 다윈은 인간이 동물과 해부학적, 인지적, 정서적으로 같으며 정도의 차이만 있다고 주장했고 동시기의 생물학자 조지 로매니스도 인간과 동물이 연속선상에 있으며 동물에게 인간의 사고나 정서를 귀속시켜 이해할 수 있다는 신인동형론을 주장했다. 그러다가 심리학이 태동하면서 비로소 동물의 마음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가능해졌다. 초기 동물심리학자인 콘위 모건(Morgan)은 인간과 동물이 비슷하다는 로매니스에게 동의했으나 동시에 동물이 인간과 같은 고등 사고를 한다고 볼수는 없으며, 똑같은 행동이 더 수준낮은 사고로도 설명될 수 있다면 해당 행동이 그 수준낮은 사고에 의한 거라고 간주해야 한다는 모건의 공준을 발표했다. 그리고 심리학자 마가렛 워시번은 실험연구를 통해 동물에게도 의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건과 워시번 모두 실험연구나 엄밀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엄격한 동물심리 연구는 행동주의 심리학자 손다이크에 의해 비로소 시작되었다. 한편 모건의 공준은 인간에게도 적용되어 인간의 심적 과정을 무시하는 사조에 영향을 주었고, 손다이크가 발표한 효과의 법칙과 함께 행동주의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1879년 12월 어느날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의 한 건물 3층에서 시작되었다. 이 날 여기서 생리학자 빌헬름 분트가 최초로 심리학 실험실의 문을 열였다. 또한 분트는 1867년 생리심리학에 대한 최초의 대학강좌를 열었고 이후 강의내용을 모아 1874년 <생리 심리학 원리(Principles of Physiological Psychology)>라는 책으로 출판한다. 이후 본격적인 심리학 연구를 위해 분트는 전적으로 심리학 연구만을 위해 설계된 실험실을 설립하였다. 여기서 실시된 작은 실험은 최초의 심리학 실험이 되었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구조주의심리학으로 발전시킨다.
유럽에서 구조주의 심리학이 싹트는 동안 미국에서도 다른 기류의 심리학이 싹트고 있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분트의 심리학과, 특히 자연선택이론에 매료된 제임스는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대학에 심리학 강좌를 개설하고 14미국 고유의 심리학을 발전시켜 나간다.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파는 기능주의(functionalism)라 불린다. 제임스는 냄새 맡기나 생각하기와 같은 능력을 갖게 된 이유는 그것이 자연선택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생각하기와 냄새맡기가 수행하는 기능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제임스는 구조주의자도 관심을 가졌던 의식 역시 과거를 돌이켜보고, 현재에 적응하며, 미래를 계획하게 해주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제임스는 비록 내성법과 즉각적인 경험에 대한 분트의 생각에는 동의했지만 15동시에 실험만으로는 의식연구에 한계가 있으며, 이렇게 실질적인 정서, 기억, 의지력, 습관 등의 생물학 기능과 진화론적 이점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6제임스는 이러한 생각을 모아 출판업자 헨리 홀트와 함께 1890년 유명한 심리학 고전 <심리학의 원리>를 출판하는데, 집필에 2년정도 걸릴거라는 예상과 달리 12년을 소비한 끝에 대작을 집필할 수 있었다. 그의 책이 나온 이후 분트는 그의 심리학이 문학일 뿐이라며 폄하했지만 다른 이들은 거기 동의하지 않았고 기능주의는 북미 심리학계의 주류가 되었다. 17
또한 제임스는 자기개념이 여러 측면의 자기개념을 포괄한다고 처음 주장했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는 오늘날에도 살아있다. 제임스는 먼저 자기를 주체적 자기와 객체적 자기로 나눴는데, 주체적 자기는 현상을 관찰하는 관찰자 그 자체로, 하이데거의 현존재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적 자기는 관찰할 수 없고 따라서 심리학의 대상도 아니다. 반면 외부현실과 여러 연관을 가진 객체적 자기는 외부에서 관찰가능하기 때문에 심리학에서 연구될 수 있으며, 제임스는 객체적 자기를 다시 3개로 나누어 연구하였다. 그리고 제임스는 동기에 대한 본능 이론을 처음 주장하여, 인간의 동기가 모두 본능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18
분트나 제임스같은 대가들의 연구가 주로 고전심리학을 다룰때 부각되지만, 그들과 활동했던 다른 고전심리학자들도 그들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했다. 제임스 카텔(James McKeen Cattel)은 펜실베이니아대학에 미국 최초의 심리학 교수로 부임하였는데, 전반적인 정신적 능력(mental power)에 관심을 가진 학자였다. 분트가 지각 속도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을 너머 카텔은 전반적인 정신적 능력, 즉 지능을 측정할 검사를 만들고자 시도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다양한 지능검사의 개발과 지능 이론의 개발로 이어진다. 그러나 최초의 지능검사는 카텔의 작품이 아닌데, 최초의 지능검사는 프랑스의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에 의해 제작되었다. 비네는 아이들의 학업성취가 곧 지능이라고 주장했는데,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지능검사이자 세계 최초의 심리검사인 비네-시몽 검사를 제작하였다.
한편 카텔의 제자였던 위슬러(wissler)는 골턴이 개발한 SDT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는 SDT가 실제로 학업적 성공을 예측한다고 믿었다. 비록 그의 엄밀한 연구는 SDT가 학업과 1도 관련이 없음을 증명해 버렸지만, 심리적 측정의 타당성에 대한 최초의 검증 시도는 그를 심리학의 아버지 명단에 올리는데 공헌하였다. 비슷한 시기이 지능연구자 찰스 스피어만은 지능이 일반지능과 세부지능으로 구성된다는 2요인 이론을 제안했는데, 그는 지능검사의 통계적 기초에도 관심을 가져서 처음으로 observed score의 개념을 심리측정학에 제시하였다. 한편 역시 카텔의 제자였던 라이트너 위트머는 자신의 대학교에 처음으로 임상심리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센터를 개설하여 임상심리학과 학교심리학을 창시했다.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과학적 열망이 심리학을 결실을 맺은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전심리학자로서 활동하였다. 이들은 3가지를 실천적 사명으로 정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셀리그먼이 긍정심리학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하였다. 그 3가지 사명은 다음과 같다.
- 정신장애 치료
- 탁월한 재능과 천재성의 발견 및 육성
- 모든 이들의 보다 행복한 삶
구조주의심리학(분트)
구조주의심리학은 인간 마음의 구조에 관심을 가졌던 심리학파로, 생리학자이자 심리학의 창시자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 1832-1920)에 의해 시작되었다. 사실 이전에도 분트는 인간심리에 대한 실험적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분트는 1867년 생리심리학에 대한 최초의 대학강좌를 열었고 이후 강의내용을 모아 1874년 <생리 심리학 원리(Principles of Physiological Psychology)>라는 책으로 출판한다. 이후 본격적인 심리학 연구를 위해 분트는 전적으로 심리학 연구만을 위해 설계된 실험실을 설립하였다. 이들이 여기 처음 설치한 기계는 공이 특정한 장치를 치는 시점과, 기계에 연결된 버튼을 누르는 시점간의 시간차를 측정하는 기계였다. 분트는 이 기계를 통해 단순한 자극과 반응처럼 가장 단순한 심적 과정을 측정하여 연구를 시작하고자 했고 이 작은 실험은 최초의 심리학 실험이 된다. 19
분트는 새로이 탄생한 과학적 심리학은 의식, 즉 세계와 마음에 대한 사람들의 주관적 경험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관적 경험은 깊은 생각에서 단순한 느낌까지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당시 화학자들은 화합물을 각 원소로 분해해서 화합물의 구조를 알고자 노력하였는데, 분트의 제자 티치너는 심리학도 마찬가지로 마음의 기본요소를 분석하고 마음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이러한 주장을 구조주의(structuralism)라 하는데, 사실 이러한 주장은 심리학 이전에도 로크 등이 주장해 왔다. 대표자로 앞에서 말한 분트와, 1892년 코넬대학에 심리학 실험실을 연 분트의 제자 에드워드 티치너(Edward Titchener)가 있다. 21
구조주의자들은 이후 44000개의 마음의 기본요소를 확인했고, 22분트는 이러한 구조주의심리학이 자신이 고안한 심리학 실험과 문화적 관점을 통해 완전한 심리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분트는 사회문화적 현상은 과학적 방법이 아니라 해석학적 방법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심리학을 민족심리학이라 불렀는데 민족심리학의 경향은 도태되었다가 후일 토착심리학의 형태로 부활하게 된다. 23
실험심리학의 창시자인 분트는 생각의 신속성을 측정하기 위해 thoughtmeter를 발명했다. thoughtmeter는 눈금이 그려진 굽은 자와 그 위에서 흔들리는 진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피검사자는 검사자가 지시하는 순간 진자가 가리키는 눈금을 얘기해야 했다. 어찌됬건 진자가 사람보다 빠르기 때문에 사람이 말한 위치와 실제 위치는 조금 차이가 나는데, 검사자는 진자 위에 설치된 시계를 통해 본래 위치를 역산해서 둘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최초의 지각 속도 측정이라 할 만한 이 측정은 정신물리학적 측정과 비슷했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바로 정신물리학과 달리 지각속도에서의 개인차, 즉 심리학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차를 측정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외에 분트는 지각이 개개의 자극이 합쳐져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하여, 상향식 접근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한편 분트는 자신의 연구방법론으로 내성법(introspection, analytic introspection, 분석적 내성법)을 주장하였다. 내성법은 자기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자신이 직접 관찰하는 것으로, 넓게 보면 자신의 심리상태를 관찰하며 독백하는 여타의 문학작품 속 주인공도 내성법을 행한다고 볼 수 있다. 분트는 주로 연구에서, 피험자들에게 자극이 제시된 후 색의 밝기나 소리의 강도 등 그가 주관적으로 느낀 바를 얘기하게 하였고 이를 분석하여 주관적인 경험과 자극사이의 관계를 탐구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한 연구결과를 아이나 정신질환자, 동물까지 다른 대상까지 확대 적용하였다.
그러나 그의 후예들은 내성법에서 도출된 결과가 다른 피험자에게선 반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결국 내성법은 심리학계에서 서서히 퇴출된다. 역시 고전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자신이 지은 고전 <심리학 원리>에서 내성법이 신뢰성이 약하지만 그래도 유용한 방법이라며 당대 젊은 학자들에게 반대하는 주장이 나온다. 마르크스에게는 마르크스만의 무언가가 있다며 끊임없이 노동가치설의 검증을 거부하는 노동사회학자들, 아직은 마음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 중요하다며 심신이원론을 옹호하는 심리철학계의 몇몇 철학자들이 겹쳐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한편 분트가 심리학을 창시하기 전인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의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1825-1893)는 최면을 통해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보통 히스테리(histeria)라 불리는, 정서적으로 혼란스런 경험의 결과로 인지적 혹은 운동 기능을 일시적으로 상실하는 증상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환자가 최면에 빠졌을때 증상이 완화되는 현상을 보고 최면에 흥미를 가졌다. 최면에 대한 관심은 분트에게는 비과학으로 치부되었지만 25윌리엄 제임스는 히스테리 현상에서 현대 뇌과학에서 중요하는 여러 개의 자아라는 개념을 이끌어냈고 이 26런 연구가 마음의 작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름길이라 여겼다. 제임스 이외에도 최면에 관심있는 학자는 꽤 있었는데, 오스트리아 빈에서 온 젊은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도 그중 하나였다. 27
샤르코에게서 최면치료를 배운후 빈으로 돌아온 프로이트는 점차 샤르코와는 다른 독자적인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1895년 그가 Breuer와 함께 그 유명한 안나 O의 사례를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가 보기에 히스테리의 원인은 고통스러운 아동기 경험으로 보였고 이 경험이 무의식을 통해 작동했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처음으로 무의식(unconscious)의 존재를 주장하는데,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는걸 치료방법으로 삼았고, 이후 자신의 고유한 무의식 이론을 바탕으로 정신분석 이론을 발전시켜나갔다. 프로이트는 마음이 이드와 초자아, 자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드(id)는 오로지 본능만을 추구하는 쾌락의 원리를 따르고, 부모의 훈육이 내재화되어 사회에 따르기를 추구하는 초자아(super ego, 슈퍼에고)는 그 성질답게 사회적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도덕 원리를 따르며, 이 둘을 현실과 잘 조율하는 자아(ego)는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현실 원리(2차 과정)를 따른다고 주장했다.
이드는 삶을 추구하는 에로스(eros) 본능과 삶의 파괴를 추구하는 타나토스(thanatos) 본능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쪽이든 초자아와 사이가 안좋다. 그래서 초자아와 이드는 자아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데, 이드가 강할 경우 이드가 자아의 통제를 벗어나 사고를 칠수 있다는 신경증적 불안(neurotic anxiety)이 일어나고 반대로 초자아가 강하면 자신이 도덕을 언제 어길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도덕적 불안(moral anxiety)이 나타난다는게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실제 위협에서 오는 불안은 현실 불안(reality anxiety)라고 따로 불렀는데, 신경증적 불안이나 도덕적 불안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안됨은 명확하다. 따라서 자아가 이들을 적절히 처리해야 하는데, 프로이트는 자아가 억압과 투사라는 방법을 통해 불안을 통제한다고 하여 방어기제의 개념을 처음 제시하였다. 또한 프로이트는 어릴때 부모가 오냐오냐해준 아이들은 초자아가 발달하지 못해 참을성이 적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고, 이드와 초자아의 긴장이 너무 크거나 억압적인 양육으로 인해 초자아가 강한 사람은 억압된 이드가 폭발해 범죄나 정신질환을 일으킬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28
여기서 프로이트는 타나토스가 인류에게 나타나는 공격성의 근원이며, 타나토스에 기인한 공격성은 억제될 수 없고 반드시 언젠가는 분출하기 때문에 적절하게 타나토스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가장 강렬한 공격(대변 투척, 단순 폭력)이 어린 시절의 심리성적 발달단계를 반영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따라 공격성을 사람을 공격하게 하는 구순적 가학성과 자기에게 공격성을 표출하는 항문적 가학성으로 나누었다. 한편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격이 5단계를 거쳐 발달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자라면서 인간이 자아와 초자아를 발달시켜서 역동의 초기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가령 자아는 이드를 현실적으로 충족하기 위해 생겨나며, 초자아는 부모에게 처벌을 받기 전에 스스로 행동을 통제하여 처벌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다. 프로이트는 정신질환은 각 단계에서 생기는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가 고안한 발달단계는 다음과 같다. 구강기(oral stage, -18개월)는 인간이 처음 태어나면서 거치는 시기로, 입을 통해 성욕을 해소한다. 항문기(anal stage, 18개월-3세)에 인간은 항문을 통해 성욕을 해소하는데, 이들은 똥을 싸는 과정에서 성적 만족감을 느낀다. 또한 이 시기에 거치는 배변훈련이 앞으로의 자아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배변훈련을 받으면서 아기들은 자신의 욕구와 부모의 통제 사이에서 갈등하며, 수치심과 불안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자율성과 자기통제력을 기르게 된다.
남근기(phallic stage)에 아이들은 성욕을 성기로 해소하게 된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이성 부모에게 성욕을 느끼는데, 이때 아이들은 이성 부모를 유혹하면서 동시에 동성부모를 적대시한다. 그러나 동성부모는 너무도 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리어 남자아이들은 동성부모가 자신의 욕구를 눈치채고 자신을 거세시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시달리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 거세불안)이다. 한편 여자아이들은 아버지에게 있는 남근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고 그만큼 어머니를 질투하게 되는데, 이를 엘렉트라 컴플렉스(electra complex, 남근선망)라 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와 같이 여성의 경우 초자아를 형성할 압력이 적기 때문에 여성의 초자아가 더 약하다.
남근기가 지나면 사람들은 잠재기(latency stage, 잠복기, 6세-사춘기)에 이른다. 잠재기는 성욕이 은폐되는 시기로 자아와 초자아가 거의 확립된다. 이 시기에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한 적응능력과 현실적 취미, 지능, 창조성이 발달한다. 이후에는 성기기(genital stage, 사춘기-)가 오는데, 성기기에는 성욕이 다시 부활하여 성기에 고착되며 이성과의 연예를 통해 성욕을 충족하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이 시기에 서로 잘 사랑하는 능력과 일하는 능력이 발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잠재기와 성기기는 역동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초, 주류 심리학계는 프로이트의 과학적 방법론 결여를 들어 정신분석을 거부했다. 여기에는 성욕을 강조하고 성기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외설적인 설명도 한몫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수많은 추종자를 모았고 이들은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모여 정신분석(psychoanalysis)을 형성하였다. 이 중에 영향력있었던 제자로는 카를 융(Carl Jung)과 아들러(Adler, 1870-1937)가 있었는데 이들은 정신분석을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대표적으로 융은 집단무의식과 원형 개념을 강조한 분석심리학(analytic psychology)을 개발했고, 아들러는 열등감과 보상욕구, 라이프스타일의 개선으로 나타나는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을 개발했다. 이러한 독자적인 흐름과 프로이트가 충돌하면서 결국 융과 아들러는 정신분석에서 떨어져나가 독자적인 학파를 형성하고, 프로이트 사망 후 남은 제자들도 다른 학파로 나뉘어 서로 싸우게 된다. 이들 다양한 분파들은 임상심리학의 아버지들이었고 이들이 닦은 토대 위에서 후에 수많은 심리치료가 꽃피게 된다. 그리고 프로이트가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20-30년대에 정신분석의 대유행이 일어났고,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물론 사회학과 인문학에까지 프로이트의 주장이 수용되었다. 29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로,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학자이다. 그는 권위적인 아버지와 양어머니, 가난한 경제환경에서 성장했는데, 이러한 심적 어려움이 프로이트의 독창적인 견해를 개발하는데 기여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그가 양어머니에 대해 느낀 욕정이, 그가 나중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고안하는데 기여했다.(나무위키의 개소리는 무시하라)
프로이트의 주장은 3단계에 걸쳐 발달한다. 첫번째 단계는 심리적 외상론 시기라고 하는데, 1886년에서 1896년 사이의 시기를 말한다. 이때 프로이트는 샤르코가 최면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고, 신체적 질병의 원인이 심리적일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깊게 빠져들었다. 또한 이러한 히스테리의 발병의 근원이자, 동시에 최면이 작동하는 영역으로서 우리가 인지하지는 못하나 분명히 실재하는 우리의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고안하였다.
두번째 단계는 1896년에서 1923 사이의 추동심리학 시기이다. 이 시기에 프로이트의 주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들이 발전했다. 당시 프로이트는 최면술로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계속해서 실패했고, 접근방식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최면술의 접근법 대신 인간이 어떤 정신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 에너지가 움직인다는 추동의 개념이 발달시켰고, 추동의 개념에 기반하여 이드/에고/슈퍼에고의 삼분법과 의식/전의식/무의식의 지형학적 모델, 그리고 자신의 심리성적 발달이론을 발달시켰다. 또한 그는 환자의 내면적 욕망과 공상이 무의식의 지표이며 정신질환의 주된 심리적 원인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파헤치기 위해 자유연상법을 고안하였다.
이 시기의 프로이트는 심리학뿐만 아니라 신화학에도 관심을 가져,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신화를 해석하는데 사용하였다. 그는 신화가 신경증적 사고가 발현된 인간 무의식의 표출이라고 주장했고, 특히 각종 신화에서 나타나는 아버지 살해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표출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주장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자신의 이론을 계승한 융이 분석심리학을 창안하면서 정신분석학은 신화학의 주요 패러다임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세번째 단계는 1923-1939년의 자아심리학 시기인데, 이 시기는 별 관심을 받지 못한다. 추동심리학 시기에 프로이트는 견해의 차이를 버티지 못하고 아들러와 융과 결별했다.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학문에 대한 그의 기여는 적어졌다. 이 시기 프로이트는 자아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드와 초자아를 조절하고 환경에 대응하는 자아가 적응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방어기제의 창시자이자 자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의 딸 안나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프로이트는 비록 신뢰성과 객관성에 끊임없는 의심이 제기되지만, 심리학에 잊혀지지 않을 중요한 공헌을 남겼고, 임상심리학에 특히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은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했으며, 이는 신체에도 영향을 주어 시도때도 없는 흡연처럼 악영향을 주었다. 결국 그는 구강암에 걸려 1939년 생을 마감하였다.
이렇게 19세기 말 다양한 심리학파가 심리학계를 지배하였다. 이 시기에는 다른 한편에서 발달과학이 싹트고 있었고 에밀 크레펠린의 정신의학이 부흥하고 있었다. 이 당시 가장 강성한 패러다임이었던 구조주의와 기능주의의 공존과 정신분석의 성장은 행동주의가 심리학의 주류로 부상하는 20세기 초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 탄생한 심리학은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1901년 영국에 심리학회가 창설되었고 1904년에는 <British Journal of Psychology>가 발간되었다.
1892년 7월 윌리엄 제임스는 다른 6명의 심리학자와 함께 클라크대학에 모였다. 전문적인 심리학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은 그대로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의 아버지가 되었고, 이리하여 그 유명한 APA가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창립 이후 APA의 회원은 많아봐야 31명이었지만 이 단체는 이후 15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거대 단체가 되었고, 가장 영향력있는 과학단체 중 하나이자, 3대 인용양식 중 하나인 APA 양식을 제정하여 모든 학술계에 이름을 날린 단체가 되었다. 1970년 미국 정부는 APA를 심리학자 인증 대행기관으로 지정하였다.
APA는 이후 심리학의 흐름을 주도하는 명망있는 단체로 자라났다. 1915년 행동주의자 존 왓슨이 APA 회장에 취임하였고, 그때부터 심리학에 행동주의가 부흥하였다. 1970년에는 흑인 심리학자 케네스 클락이 APA 회장에 임명되었고, 사회 소수자 문제에 사회심리학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이 APA 회장에 취임했고, 그 즈음부터 시작된 긍정심리학 열풍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APA는 90년대에 우생학을 부활시켰던 벨 커브 논쟁에 대해 논평을 냈고,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성명을 발표하였다. 지금도 APA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몇몇 대안우파들이 심리학을 좌파 학문으로 왜곡하고 있다.
APA는 원래 기초심리학을 강조했고, 응용심리학자는 부분만을 차지했다. 그러나 양차대전 이후 응용심리학이 부상하면서 APA도 이에 발맞춰 변화하였다. 1944년 APA가 17개 분과를 설립하면서 APA 내부에 응용심리학자들의 학회가 만들어졌고, 이는 현재 54개 분과로 늘어났다. 동시에 1946년 임상심리학 수련위원회에서 임상가 수련과정의 표준화를 시도했고, 이는 후에 볼더 모형과 베일 보형으로 결실을 맺었다. 1955년 APA 대의원회는 심리학자의 등록과 면허에 대한 기준을 마련했고, 54년에는 <교육 및 심리검사의 표준>을 발간해 심리검사의 사용을 일부 규제하였다. 최근에는 임상심리학의 비중이 너무 커져서, 기초심리학자 일부가 이에 반발하여 기초심리학 단체인 APS를 따로 만들기도 하였다.
창립이후 APA는 어느 단체보다 사회문제에 깊게 개입하여 권리개선에 기여하였다. 1905년 APA는 가부장적이던 당대 분위기에 이례적으로, 4권의 책과 100편의 논문을 저술한 31여성 심리학자 메리 컬킨스(Mary Calkins)를 회장으로 추대했고, 1970년에는 역시 누구보다 빠르게 흑인 심리학자 케네스 클락(1914-2005)을 APA 회장으로 추대했다. 최초의 흑인 심리학 박사인 프랜시스 섬너(1895-1954)는 아프리카계 미국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32그에게 수학한 아프리카계 미국 청년 중 하나인 케네스 클락은 연구활동을 통해 공공교육에서의 인종분리에 막을 내리는데 공헌하였다. 현재 심리학자는 미국의 경우 67%의 여성과 15%의 비백인을 포함하고 있고, 현재도 인종문제나 여성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33
3.행동주의의 시대(Behavio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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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와 기능주의, 정신분석이 득세하던 심리학계는 20세기 초에 큰 전환점을 맞는다. 파블로프의 파블로프 반사 발견을 필두로 동물행동에 대한 연구가 증가하면서 행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후 왓슨, 스키너 등 기능주의를 계승한 걸출한 심리학자가 나타나 행동주의심리학을 창안했고, 이들의 성과를 바탕으로 행동주의의 시대가 열린다. 이들의 노력으로 심리학에 처음으로 제대로된 과학적 방법론이 정착되었고 과학적 성과 아래 행동주의는 20세기 중반까지 심리학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각종 반례가 쏟아져나왔고 결국 행동주의는 인간의 본성과 내적 심리를 중요시하는 인지과학과 생물학적 관점에 의해 물러나게 된다.
비록 행동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지만, 잔존한 정신분석학파를 제외하더라도 행동주의에 반대한 심리학자가 당시에도 존재했다. 그 중 하나는 게슈탈트심리학이었다. 이들은 인간이 게슈탈트라는 틀을 통해 감각을 지각한다고 주장하여 자극-반응의 틀을 넘어선 설명을 도입했다. 지각이나 인지에서 인간의 해석을 강조한 게슈탈트학파는 후에 인지과학의 출현에 공헌했고, 게슈탈트 치료를 개발했으며 사회심리학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체적 지각을 강조한 게슈탈트심리학과 개별 연합을 강조한 행동주의를 조화하려 했던 심리학자 에드워드 톨먼은 결국 인지과학의 토대를 쌓게 된다. 1930년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사회심리학은 전체를 중요시하는 게슈탈트심리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나치즘의 광풍에 충격을 받아 복종 현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발전했다. 흑인 운동시기 알포트(Allport)가 편견이 착시처럼 자연스럽고 피하기 힘든 지각 오류임을 밝혀낸 이후 사회심리학의 성과는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주된 무기가 되어 현재도 고정관념 위협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34
게슈탈트학파가 활동하던 시기에 독일의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1890-1947)도 세계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이해해야 해당 개인의 행동을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리학의 실험 방법론을 계량하고 가다듬어 심리학에 정착시켰고 물리학의 장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심리를 하나의 장으로 설명하는 장 이론을 개발했다. 그는 장이론에서 경험, 기억, 감정 등 개인이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주관적인 심리적 요소들이 심리적 장을 구성하여 특정 순간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모든 심리적 요소(이를 심리적 사실이라 부른다)들이 장을 구성하는데 참여하며, 설사 영향력이 작은 요소라 하더라도 인간행동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20세기 초에 카오스 이론을 연상하는 가설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레빈이 위상수학(topology)이라 이름붙인 이 주장은 이후 다니엘 카너먼에게 발전되어 계승된다. 35
게슈탈트심리학과 다른 방향에서도 고전심리학에 대한 비판이 나타났다. 고전심리학에서는 제임스-랑게 이론이 정설이 되었지만, 윌리엄 제임스의 제자 월터 캐논에 의해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가 학계에 자리를 잡은 이후 그는 자신의 제자인 필립 바드(bard)와 함께 캐논-바드 이론(cannon-bard theory)을 정립했는데, 캐논-바드 이론은 정서가 신체활동의 부산물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 캐논은 제임스-랑게 이론을 다음과 같이 반박했는데, 먼저 자율신경계 반응(얼굴홍조)은 정서적 느낌보다 늦게 나타났고,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자율신경계 반응을 탐지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며, 정서의 다양성에 비해 자율신경계 반응이 너무 제한적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온도와 같은 비정서적인 자극이 정서를 유발한다면, 왜 사람이 열이 날때 특정 정서를 느끼지 않는지 반문했다.
행동주의의 도입으로 심리학이 도약을 이루는 동안 정신분석학도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프로이트 이후 다양한 정신분석가들이 프로이트의 주장을 비판하고 자신들만의 치료이론을 새로이 쌓아갔다. 일찍이 아들러와 융은 프로이트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학파를 만들어 프로이트와 차별점을 두었으며,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와 하르트만(Hartman)도 방어기제를 세분화하고 성욕이나 무의식만큼이나 자아의 기능을 강조한 자아심리학파(ego psychology)를 창안하였다. 비슷하게 코헛(kohut)도 부모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아의 발달은 중점적으로 살펴본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을 창안하였으며,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ine)과 도널드 위니캇(winnicott)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이전의 부모-아이관계에 초점을 둔 대상관계학파를 창시하였다. 이외에 설리번(Sullivan), 카렌 호나이(Horney), 에리히 프롬(Fromm) 등 여러 정신분석가가 자신만의 관점으로 정신분석학을 대했으며, 이들 신프로이트 학파를 비롯한 많은 정신분석가가 정신분석학의 지형을 좀 더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게슈탈트심리학
행동주의의 시대에도 모든 학자가 행동주의를 따르진 않았다. 잔존하던 정신분석학파는 차지하더라도 어떤 심리학자들은 행동주의에 반대되는 패러다임을 세우고 있었다. 행동주의가 시작되던 20세기 초 독일의 심리학자 막스 베르트하이머(Max Wertheimer, 1880-1943)는 가까이 있는 두 불빛을 교대로 반짝이게 하면 사람들이 두개의 불빛이 아닌 자리를 이동하는 하나의 불빛을 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파이 현상(phi phenomenon)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당시 독일을 지배하던 구조주의로는 설명할수 없었다. 구조주의에 따르면 단순히 번갈아 반짝이는 빛은 빛 두개로 인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베르트하이머는 이에 착안해, 1920년대에 당시 독일의 주류였던 구조주의에 반대하여 인간이 두 개의 불빛을 별개의 두 불빛이 아닌 전체로 지각한다고 설명했다. 36
이들의 이론은 나중에 인간이 자극을 부분의 합이 아니라 응집된 전체로 지각한다는 게슈탈트심리학(형태심리학, Gestalt psychology)으로 발전한다. 구조주의를 대체하여 독일에서 번성한 게슈탈트심리학자들은 나치즘이 득세하자 미국으로 피신했고, 코프카와 쾰러가 미국에 게슈탈트 심리학을 소개하면서 게슈탈트 심리학은 미국 심리학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코프카는 함축성의 원리를 발견했고, 쾰러는 유인원 연구소장으로 있던 시절 침팬지 술탄을 연구하여 게슈탈트심리학을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게슈탈트심리학자들은 당시 미국의 주류였던 행동주의에 반대하여 개인의 주관적 해석이 행동이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또한 행동주의가 강조했던 행동학습을 비판하고 게슈탈트적 원리에 기반한 통찰학습이 행동학습보다 이해력의 증진, 기억의 공고화 등 여러 면에서 더 뛰어나다고 했다.
게슈탈트심리학은 특성상 하향식 접근을 선호했다. 이들은 전체적으로 해석하는 틀이 지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보며, 인간행동을 연구할때도 행동을 자극-반응 연합으로 나누는 행동주의와 반대로 행동을 하나의 목표를 위한 여러 행동중 하나로서 분석했다. 또한 이들은 게슈탈트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인간의 게슈탈트가 동물까지 확장될 수 없다고 말하여 행동주의와 대립했다. 그리고 게슈탈트가 드러나게 되는 인간의 주관적 경험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성법을 사용하여 인간의 인지적 구조를 연구하려고 했다.
이들은 기억흔적(memory trace)이라는 개념으로 학습을 설명했다. 기억흔적은 현대의 기억과 동의어로, 코프카는 경험이 뇌에 남기는 흔적이 기억흔적이며, 기억흔적은 해결하려는 문제가 완결되었을때 생기며 강하면 강할수록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기억흔적은 개개의 경험이 저장되는 개별흔적(individual memory trace)과 개별흔적이 하나의 전체로 조직화되어 만들어지는 흔적체계(trace system)로 나뉘는데, 게슈탈트심리학자들은 흔적체계가 개별흔적을 지배하여 학습의 효과성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행동주의자 거스리가 제시한 최신의 원리가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의 문제해결 방법만이 기억흔적으로 남아 생기는 일이라고 해석했고, 학습은 기억흔적이 점차 강화되어 행동에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에 이들의 방법론적 약점이 비판되었고 인지과학이 부상한 후 게슈탈트학파는 빠르게 잊혀져 갔다. 그러나 지각에서 인지의 중요성을 주장한 게슈탈트심리학은 후에 인지과학의 출현에 공헌했다. 또한 이들이 남긴 게슈탈트 치료는 아직도 사용되고 있으며, 이들의 업적은 사회심리학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다.
장 피아제
행동주의를 따르지 않았던 학자는 게슈탈트심리학자만이 아니었다. 행동주의가 기틀을 잡아가는 동안 스위스의 한 생물학자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는 11세에 참새의 백피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21세에 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천재였다. 그러나 그 천재는 곧 생물학보다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비네의 연구소에서 일하며 지능을 연구하였다. 그러다가 아동의 지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1929년 제네바대학 아동심리학 교수로 취임한 이후 죽을때까지 자신의 아이를 관찰하며 인지발달에 대한 이론을 쌓아갔다. 인지발달 외에도 도덕발달, 지능, 생물학, 과학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발달심리학자라면 모두가 아는 장 피아제(Jean Piajet, 1896-1980)였다.
피아제는 연령이 증가하면서 아동의 지성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왜냐하면 아동의 지성 발달을 통해 과학발전을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동의 사고방식이 발전하는 양상을 과학적 지식의 진보에 적용하고자 했다. 이런 관심은 피아제가 아동의 인지발달을 연구하게 이끌었고,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관찰하여 아동의 발달과업을 찾고 과학발전의 원형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심은 인지발달이론으로 이어졌고, 피아제는 인간의 인지적 능력과 도덕적 사고능력의 발달 연구에 기여했다.
그는 인간의 지성이 균형을 향해 조직화된다고 주장하여 게슈탈트심리학과 뜻을 같이했지만, 정보를 조직화하는 능력을 타고난다는 게슈탈트심리학파의 주장에 반대하여 인간이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고 조절하면서 정보를 조직화하는 능력도 같이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모습은 과학이 발전하는 모습과 매우 유사한데, 실제로 피아제는 개개인의 인지발달의 과학의 발전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피아제는 개개인이 적절하게 인지발달 단계를 올라갈 수 있도록 개인별 맞춤교육을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후에 인지과학의 출현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편 그는 인지발달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도덕발달에도 적용하였다. 피아제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들의 도덕적 사고가 3가지 측면에서 변한다고 주장했는데, 먼저 아이들의 도덕관념이 현실주의에서 상대주의로 변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어린 아이들은 부모나 어른들에 의해 주어진 도덕규칙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으나, 나이가 들면 도덕규칙이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또한 어린 아이들은 도덕규칙이 특정 행동에 대한 행동지침이라고 여기나, 나이가 들면 공정성이나 자유 등 추상적인 개념이 도덕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은 결과에 기초하여 도덕판단을 하는데, 가령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었더라도 나쁜 결과를 낳은 행동은 무조건 악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이전보다 의도를 더 고려하게 된다. 37
이러한 변화는 3단계로 일어난다고 피아제는 주장했다. 먼저 갓 태어난 아기는 4세까지 전도덕적 단계에 머무는데, 이 단계의 아이들은 도덕은 커녕 무언가에 대한 사고능력이 부족하여 도덕적 사고가 불가능하다. 이후 아이가 전조작기를 거쳐 사고능력이 생성되면 전도덕적 단계에서 도덕적 실재론 단계(moral realism)로 이행하는데, 이 단계의 아이들은 부모의 훈육을 통해 도덕을 익히면서 자연스레 힘있는 누군가에게 처벌을 받으면 부도덕, 보상을 받으면 도덕적이라고 간주하게 된다. 위에서 말한 현실주의와 규범으로서의 도덕, 결과중심 도덕관은 모두 2단계에서 나타난다.
도덕적 실재론 단계는 7세까지만 이어지고 그 이후에는 도덕적 상대론 단계(moral relativism)로 이행한다고 피아제는 주장했다. 도덕적 절대론 단계에서 도덕적 상대론 단계로 이행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교우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 지켜야할 규칙, 원리를 학습하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도덕 원리를 발달시킨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도덕을 사람들이 서로 공존하기 위해 만든 질서로 이해하기 시작하고 규칙의 원리와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피아제에 따르면 이 단계의 아이들은 도덕적 절대론 단계와 달리 도덕이 사회적 협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피아제의 이러한 주장은 문화상대주의에 눌려 기를 못 쓰다가, 후에 도덕심리학자 콜버그에 의해 비판적으로 계승된다. 38
응용심리학의 탄생과 발전
심리학이 탄생한 직후,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간 정신에 대한 이론적이고 실증적인 탐구에 집중하는 사이 어떤 학자들은 다른 방향의 연구를 추구하였다. 심리학자 브라이언은 심리학자들이 '일상생활 속의 구체적인 활동과 기능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지지한 학자들은 심리학이 기초적이고 이론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산업 영역을 비롯한 실제 사회에서 응용가능한 심리학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응용심리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응용심리학 중 역사가 짧은 산업심리학은 이때 처음 탄생하였다. 산업심리학은 심리학자 월터 딜 스콧(Walter Dill Scott)에 의해 창시되었는데, 스콧은 광고와 인적자원 운용에 대한 연구를 처음으로 개척하였고 그 자신도 기업에 컨설팅을 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산업심리학의 창시에 공헌한 또다른 학자는 산업공학자 프레드릭 테일러로, 경영학에 과학적 관리론을 도입한 테일러는 처음으로 경영에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였다. 그는 실제 측정을 통해 경영학의 기초를 다졌고, 근무 중 휴식시간의 개념도 그가 고안하였다. 비록 그의 경영기법이 인간소외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론은 실제 높은 생산성으로 스스로를 입증하여 산업계 전체에 보급되었으며 산업심리학의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산업심리학자 Lillian Moller Gilbreth는 인간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최초로 주장하였다. 그는 시간관리에 대한 인적 측면에 관심이 많았는데,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론에 기반한 경영이 노동자의 인간소외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테일러식 경영은 노동자의 업무를 초단위로 통제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신이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 그저 기계 부속품 중 하나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소외는 직무 스트레스로 이어지는데, gilbreth는 최초로 이러한 직무 스트레스가 노동자에게 끼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졌다.
이처럼 인간을 중요시하는 입장은 1차대전 이후 조직심리학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전쟁 이후 그 유명한 호손 실험이 실행되는데, 호손 실험 결과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단지 대학 연구자들이 보러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생산성이 개선되었으며, 그냥 고충을 들어주는 게 노동조건이나 보너스보다 더 효과가 좋았다. 또한 실험을 진행한 연구자의 예상과 달리 지능이 높은 노동자보다 협동을 지향하는 노동자가 더 생산성이 높았다. 이는 학자들이 기존의 테일러식 관리를 넘어서 인간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고, 조직심리학의 탄생을 촉발하였다.
응용심리학이 점점 발전하자, 이들은 기초심리학에 기반한 APA와 점차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이윽고 응용심리학자들은 응용심리학 단체를 만들기로 하였고, 다양한 단체가 나타난다. 1917년에는 임상심리학자들이 AACP를 창설하였고, 1937년에는 응용심리학자들이 미국 응용심리사협회(AAAP)를 창설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창설된 뉴욕자문심리사협회(ACP)에서는 <Journal of Consulting & Clinical Psychology>를 발간했는데, 이 학술지는 오늘날 임상심리학 3대 저널에 속한다. 암튼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 1944년 APA가 17개 분과를 만들어 이들을 수용하게 된다.
전쟁과 심리학
1917년, 치머만 전보 사태로 인해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당시 APA 회장은 여키스였는데, 그는 심리학의 응용에도 관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미군은 도움을 청했는데, 당시 미군은 창군 이래 처음으로 대규모 군대를 조직하여 운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미군은 군인을 효율적으로 선발하고 교육, 운용하는 법, 프로파간다를 하고 적군을 회유시키는 법을 잘 몰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을 동원하였다. 이리하여 지능검사가 개량되고 산업심리학과 조직심리학, 커뮤니케이션심리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였다. 39
1차대전 시기에는 이러한 분야들의 발전이 더뎠다. 왜냐하면 미국 기준으로 1차대전은 2년만에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이 2년동안 심리학자들은 징병대상을 가려내기 위한 지능검사인 알파/베타 검사를 개발했는데, 전자는 일반인 대상이었고 후자는 문맹자를 위해 개발되었다. 또한 직무기술서의 개념을 처음 군에 도입하였으며 장교 수행평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복무 부적격자를 가리기 위해 1917년 woodworth personality data sheet를 개발했는데, 비록 이 검사는 실패했으나 세계 최초의 자기보고식 성격검사로 기록되어 있다.
심리학의 발전은 2차대전기에 더 두드러졌다. 2차대전기에 심리학자들은 징병대상을 평가하기 위해 더 나은 검사인 군대일반 분류검사(Army General Classification Test)를 개발했고, 1200만명의 병력과 대부분의 전투기 조종사가 이 검사에 따라 배치되었다. 이 검사는 종전 이후 ASVAB라는 더 나은 형태로 발전한다. 또한 심리학자들은 극한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OSS 직원들을 선발하기 위해 극한상황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상황적 스트레스 검사를 개발했다. 아울러 커뮤니케이션심리학도 이때 발전하였고, 특히 프로파간다로 대표되는 선전/선동 기술이 발전하였다. 결국 전쟁 동안 많은 지원을 받으면서 산업심리학과 조직심리학, 커뮤니케이션심리학은 폭발적으로 발전하였고, 커뮤니케이션심리학은 대전기에 활약한 학자들이 연구에 집중하면서 더 크게 발전하게 된다.
행동주의자들은 60년대까지 학계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현재 심리학자들은 행동주의자들의 1)전제에는 동의하나 2)전제를 부인한다. 현대심리학자들은 심리연구에서 심적 과정은 필히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장은 일찍이 행동주의학파 내부에서 제시되었는데, 에드워드 톨먼은 미로실험을 통해 자극-반응 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비연합학습을 발견했다. 이후 촘스키를 비롯해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행동주의의 한계에 의구심을 가졌고, 특히 2차대전 중 미군에 협력한 심리학자들은 41비행기조종사는 정보처리 역량 제한이 많은 실수를 유발하며 42활발하게 초점을 이동시켜야 이를 극복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43그 시기 다른 학자들은 컴퓨터의 출현 이후 마음을 컴퓨터와 같은 정보처리 장치라는 관점에서 지각, 사고, 기억, 언어 등 인간의 인지과정을 연구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인간 마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심리학,언어학,심리철학,뇌과학,생물학자들이 뭉쳐 인지과학이 탄생하였다. 44
인지혁명을 주도한 인지심리학자들은 행동주의자와 달리 심적 과정이 인간행동을 이해함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심적 과정이 능동적이고 복잡하게 자극과 반응을 중재한다고 보았다. 이전에 기능주의나 구조주의에서 그랬듯이, 그러나 고전심리학보다는 엄격한 방법론을 사용하여, 인간의 인지과정을 연구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혁명이라 부르며 이들의 업적은 신경과학, 인공지능에도 영향을 주었고, ctm 이론을 탄생시켰으며, 정서연구에서도 이요인 이론을 탄생시켰다. 임상심리학에서는 기존의 행동주의 치료와 융합하여 현존하는 가장 효과적인 심리치료인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를 탄생시킨다.
초기 인지심리학자들은 게슈탈트 학파와 피아제의 영향을 받아 인간을 '순전한 과학자'로 바라보았다. 이들은 인간의 인지적 과정이 인지적 일관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세상을 최대한 해석하려고 하는 과학자적 자세를 취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휴리스틱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학자들은 사람을 과학자라기 보다는 최대한 간편하게 세상을 이해하려고 드는 '인지적 구두쇠'로 보기 시작했다. 이후 90년대에 인지과정의 과학자적 면모와 인지적 구두쇠의 면모가 둘다 공존함을 이해한 학자들은 사람을 상황적 요인이나 동기에 따라 어렵게 처리할지 간편하게 처리할지 선택하는 '동기적 책략가'로 보았다. 21세기 이후에는 이중처리과정 이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점화의 기능이 알려지면서 책략가의 선택이 무의식적 요인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는 '활성화된 행위자'라는 관점이 주류가 되었다. 45
인지혁명 이후
인지행동치료가 임상심리학의 스타로 새롭게 떠오른 동안 또다른 기류가 심리치료계에서 싹텄다. 2차대전 이후 젊은 정신분석 치료자였던 칼 로저스는 비록 자신이 정신분석학파에 속해 있었지만 인간의 과거와 무의식, 욕망을 중시하는 정신분석학에 의문을 가졌다. 그가 보기에 인간에게는 성취동기, 성장 잠재력과 같은 긍정적인 특성도 중요했다. 이후 칼 로저스는 정신분석학에서 독립하여 인간의 긍정적이고 인간적인 특성에 초점을 둔 인간중심치료를 창안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심리학계에서도 에이브러햄 매슬로우(1908~1970)와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가 등장하여 심리학계의 행동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긍정적이고 밝은 특성에 주목하였다. 이처럼 인간의 긍정적 잠재력을 강조하는 사조를 인본주의 심리학(humaistic psychology)이라 부른다. 이들은 처음으로 "환자"라는 용어를 "내담자"로 대체하였고 인간의 잠재력에 높은 관심을 가졌는데, 이들의 기본적인 사상은 현재 긍정심리학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우(maslow)는 대표적인 인본주의 심리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욕구가 동물적인 욕구들밖에 없다는 기존의 행동주의적/정신분석적 주장을 부정하였다. 그는 인간에게는 자기실현 욕구와 같은 긍정적 욕구도 있다고 제안했으며, 이러한 욕구들이 피라미드처럼 계층화 되어서 46하위 욕구가 채워지면 다른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는 욕구계층이론을 주장했다. 또한 그는 심리학에서는 드물게 인터뷰와 전기 연구라는 질적 연구를 통해 많은 역사적 위인들이 가진 공통점을 통찰하고자 하였다. 그의 이론은 동기연구와 긍정심리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그의 욕구계층이론 47을 포함한 많은 주장이 반박되었다.
인지행동치료, 인간중심치료가 심리치료의 새로운 기류로 부상했지만 이들이 전부는 아니었다. 어쩌면 20세기 중반은 심리치료의 산파기, 심리치료의 군웅할거 시대라고 보아야 할지 모른다. 정신분석 치료와 행동주의 치료가 자리를 잡고 인지치료, 인간중심치료가 부상할때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살아나온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이 인간의 실존적 상태에 관심을 둔 실존주의 치료를 정립하고, 게슈탈트심리학파의 학자였던 fritz Pearls도 게슈탈트 치료를 창안했으며, 인간중심치료에서 주장한 진실하고 공감에 기초한 상담이 심리치료계 일반에 수용되었다. 이들 실존주의 치료와 게슈탈트 치료는 인간중심치료와 함께 인본주의적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20년 뒤에는 William Glasser에 의해 현실치료가 탄생했고 인지치료와 행동주의 치료가 융합된 인지행동치료가 나타났다. 이후 가족 역동에 초점을 두어 치료하는 가족치료가 70년대부터 대두되었으며(탄생은 50년대) 당대 뉴에이지 운동의 영향으로 성장한 자아초월심리학자들이 심리과학의 영역에 발을 들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심리치료가 20세기 중반에 출현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MMPI가 개발되고 효과적인 정신과 약물이 개발되면서 심리치료에 대한 관심이 늘어갔다. 그러자 APA는 임상심리학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관련 제도를 정비하였다. 1946년 APA 산하 임상심리학 수련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임상심리학 수련과정의 표준화를 시도했고, 이는 1949년 볼더 모형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면서 APA의 영향력이 커지자, 1970년 미국 정부는 APA를 심리학자 인증 대행기관으로 정식 승인하고 1969 뉴저지에서는 정신과 의사의 감독이나 의뢰 없이도 심리서비스에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안을 제정하였다. 이후 심리치료에서 임상심리학자들의 권위와 권한이 본격적으로 증대되었다.
행동주의가 물러나자 주류에 올라선 건 인지과학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윌리엄 제임스가 진화를 통해 인간심리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생물학의 입김은 심리학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생물학적 설명은 다윈이 인간행동에 대해 발표한 <인간의 유래>가 무관심 속에 잊혀진 바와 같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위 분야에서 세력을 키우던 생물학적 관점은 행동주의가 물러난 이후 본격적으로 주류심리학에 발을 디딘다. 60년대부터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동물행동학이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몇몇 동물행동학자들은 인간 행동을 동물에서 나타나는 '고정된 활동유형'으로 보고 연구하였고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저서 <털없는 원숭이>를 발표해 이를 표현하기도 했다. 종교인은 옛날에 그랬듯이 이단을 외치며 이 책을 불태웠지만 동물행동학적 관점과, 그들이 기반한 진화론적 관점은 점점 심리학에 스며들었다. 48
결국 1980년대 코즈미디스 부부와 연구자들이 진화심리학을 창시하여 오늘날까지 이른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진화심리학과 반대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화심리학도 이즈음 탄생했다는 것이다. 90년대에 들어 아시아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교류가 잦아지면서 동서양의 차이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었고 이는 문화에 의한 심리의 차이를 연구하는 문화심리학을 탄생시켰다.
주류 심리학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동안 하위 분야에서도 개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젊은 심리학자 한스 아이센크(Hans Eysenck)는 정신분석과 행동주의가 지배하던 성격심리학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정신분석을 혐오했던 그는 고든 알포트(Allport)의 주장을 계승하여 성격 유형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마다 정도가 다른 성격 특질이 있다고 했다. 그는 생물학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성격 특질이 성격을 결정한다고 주장했고 그 성격으로 외향성, 신경성, 정신병질(Pshchoticism)을 제시했다. 그리고 높은 외향성과 신경성이 범죄와 연관되어 있으며, 정신병질은 아예 '범죄자 성격'으로 정신병질이 높으면 범죄를 저지른다고 주장했다. 49
이후 여러 요인들이 단일한 요인인지 서로 다른 요인인지를 측정하는 요인분석이 개발되면서 심리학은 모든 성격에 적용되는 다섯 개의 성격 특질을 발견했고 이를 Big5로 개념화했다. 아이센크가 다섯 개 요인 중 외향성과 신경성을 예측한 점은 칭찬받을 만하지만, 정신병질은 그가 너무 오버한 경향이 있었다. 정신병질이라고 정의할 만한 성격 특성은 연구결과 존재하지 않고, 정신병질은 그냥 범죄자의 특성을 그러모은 것에 불과하다.
기초심리학이 변혁을 겪으며 변화한 반면, 산업 및 조직심리학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점진적이었다. 종전 이후 산업심리학과 조직심리학은 APA의 정식 분과로 독립하였으며 1962년 둘의 연관성이 깊다고 느껴져 하나의 분과로 통합되었고, 동시에 공학, 인사, 조직 등 세부 연구분야도 다양해졌다. 한편 20세기 중반 일어난 민권 운동은 산업심리학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산업심리학자들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기존에 자신들이 개발한 검사가 사회적 소수자의 성과를 잘 평가하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후 공공 영역에서 신좌파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평가의 공정성과 다양성이 산업 및 조직심리학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21세기에 들어 정보화시대가 시작되면서 산업 및 조직심리학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정보화는 지식에 기반한 연공서열을 흔들었고, 직원의 상호작용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에 전통적인 능력은 조직심리학에서 별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역량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job crafting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나타났으며, 유연근무제, job crafting, 직장 내 다양성에 관한 논쟁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또한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문화에 대한 이해도 이들의 관심사가 되었으며, 현재 산업 및 조직심리학자들은 세계화와 경쟁, 인간소외, 고령화, 다양성, job crafting, 워라밸 등이 주요 연구 키워드이다.
한편 건강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바뀌면서, 건강심리학도 새로이 떠오르게 되었다. 지난 몇천년간 인류를 지배했던 세균성 질환들이 항생제에 의해 퇴치되면서, 감염의 위협은 크게 감소했고 인류의 기대수명은 크게 증가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인류가 겪는 주된 질병은 암이나 심장질환 등 만성적이고 예방과 관리가 중요한 질병으로 변하였다. 동시에 학자들은 이러한 질병이 스트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특히 정신신체(psychosomatic) 질환으로 알려진 위궤양, 류마티스 관절염, 고혈압, 천식, 갑상선 항진증, 궤양성 대장염 등은 심리적 요인이 발병 경과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또한 질병 이외에 다른 만성 통증을 완화하는 것도 스트레스와 같은 심리적 요인을 고려해야 했다.
이러한 발견은 생물심리사회 모델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새로 출현한 생물심리사회 모델은 질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질병의 생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심리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일환으로 만들어진 학문 중 하나가 심리신경면역학으로, 심리신경면역학은 행동, 특히 스트레스가 면역과 관련 질병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주로 연구하였다. 그리고 이런 모든 움직임이 결실을 맺어 건강심리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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