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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사 총론

과학주의자 2022. 8. 17. 22:30

인간의 마음에 대한 탐구는 매우 오래전부터 지속되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마음에 관심을 가졌고, 인간의 덕성이나 지각 방식, 이기성(혹은 이타성) 등은 동서양 철학의 뜨거운 감자이다. 이러한 탐구의 노력 끝에 100년전 마음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여기서는 과학 이전의 노력들과, 마음을 향해 떠난 심리학의 배가 남긴 발자취들을 서술한다.

 

심리학 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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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에 대해 탐구해왔다. 그러나 본격적인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19세기 분트가 심리학 실험실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고전심리학에서는 구조주의와 기능주의, 정신분석 등의 패러다임이 공존했으나 행동주의가 부상하면서 20세기 전반기는 행동주의가 심리학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터 행동주의는 그 한계로 인해 무너져버리고 인지과학적 관점이 빈 자리를 메우게 된다. 이후 심리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분야들이 생겨난다.

 

임상심리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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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인 임상심리학은 19세기에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정신분석학이 우세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행동주의와 인지적 접근, 생물학적 접근 등 다양한 접근법이 정신분석을 밀어냈다. 그동안 임상심리학자들은 활동범위를 정신의학에서 점차 다른 분야까지 넓혀갔다.

 

 

 

심리학의 여성들 

어느 과학이 그렇듯 초기 심리학도 극소수의 여성과 다수의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른 분야와 달리 심리학은 여성을 굉장히 빠르게 수용했다. 2010년 여성 심리학 박사는 남성 심리학 박사를 추월했고,[각주:1] 다른 분야와 달리 여성 심리학자들은 고전심리학의 발전에도 상당히 기여했다.[각주:2] 아래 4명은 인간심리를 향한 탐구의 길을 닦은 위대한 학자들이다.[각주:3] 

 

메리 컬킨스(Mary Whiton Calkins,1863-1930)는 윌리엄 제임스의 동료이다. 비록 당시 대학의 부당한 관행에 의해 초청 대학원생으로서만 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는 여성 최초로 심리학 박사 과정을 이수했고[각주:4] 윌리엄 제임스와 함께 미국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을 완성했다. 이후 기억 연구에 매진하며 다수의 저술을 남긴[각주:5] 그는 1905년 APA 회장이 되었다. 최초의 여성 학회장이 취임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단일자아 가설을 설파하는데 열을 올렸다.

 

마가렛 워시번(Magaret Floy Washburn,1871-1939)는 1894년 코넬대학에서 미국여성 최초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1908년 <동물의 마음>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 거기서 여러 동물의 지각, 학습, 기억을 비교연구하고 동물의 의식적 경험에 대해 논하였다. 그는 연구공로를 인정받아 1921년 역시 APA 회장에 추대되었지만, 행동주의의 대가 존 왓슨은 동물의 의식을 연구하던 그의 연구를 쓸데없는 일로 치부했다.

 

헬렌 울리(Helen Thomson Wooley,1874-1947)는 남녀 성차를 연구한 선구자 중 하나이다.[각주:6] 1900년 시카고대학에서 실시했던 그의 박사학위 연구주제는 남녀 25명의 지능과 정서비교였다. 울리는 연구를 통해 남녀의 차이가 사회적 경험에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자극받은 다른 심리학자 레타 홀링워스(Leta stetter Hollingworth)는 기존의 성차연구에 문제를 제기하고, 창의성과 지능에서 여성이 열등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지능의 양 극단에 위치한 정신지체아와 영재아에 대한 연구를 개척했고, 뉴욕의 학교에서 최초의 과학적 영재교육을 시작했다. 하여튼 이들의 공로는 현재까지 이어져 현재는 많은 심리학자들이 사회적 성역할 구분이 성차를 만들어냄을 인정하고 있고, 진화심리학이 예측한 소수의 영역을 제외하면 남녀간의 성차는 없거나 미미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울리는 남자들이 만들어낸 성차별적인 연구들을 '개인적 편향, 편견을 위한 논리적 순교, 감상적인 헛소리'라고 평한바 있다.[각주:7] 현재 일련의 진화심리학자들과 다수의 우생학자,유사과학자들에게 이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노인심리학의 역사[각주:8]

노인심리학은 1944년 미국노년학회(gerontological society of america)가 결성되어 학술지 <Journal of gerontology>를 발간하기 시작하면서 탄생했다.[각주:9] 이미 1920-30년대에 아동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던 장기 종단연구들의 피험자가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학자들도 성인발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피험자가 노년기에 접어드는 80년대부터 많은 양의 노인심리학 연구가 국내외에 나타났다. 이러한 배경의 종단연구는 다음과 같다.

 

  • 1921년 루이스 터먼(Louis Terman)이 천재를 대상으로 한 연구와 30년대의 버클리 종단연구 및 오클랜드 종단연구
  • 1938년 하버드대 신입생들을 중년기까지 연구한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의 Grant 연구
  • 1950년대 중반 시카고대학 교수 neugerten의 중년기 연구
  • 1956년 셰이(Schaie)의 성인기 지적발달에 대한 시애틀 종단연구
  •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진행된 Costa와 McCrae의 성인기 성격연구
  • 1969년 예일대 레빈슨(Levinsin)의 중년기 남성 연구

 

한국의 경우 1978년에 한국노년학회가 설립되어 1980년대부터 학술지 <한국노년학>을 발간하기 시작했고, 이외에도 전남대 심리학과를 중심으로 설립된 한국노년학연구회에서 발간하는 <한국노년학연구>도 1992년 이래 주요한 노인심리학 학술지가 되었다.

 

 

동기이론의 역사

통합된 동기이론을 만들려는 노력은 30년대부터 있어왔다. 다른 과학에서 만들었던 거대 이론(grand theory)이 부러웠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에서도 인간의 동기와 행동의 관계를 설명하는 거대 이론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 일환으로 클라크 헐은 추동 이론을 주장했고, 케네스 스펜스(Kenneth Spence)[각주:10]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초기 동기이론가들은 행동이 추동(drive)과 습관(habit)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산출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후에 톨먼[각주:11]이나 줄리언 로터(Julian Rotter)[각주:12] 등으로 이어졌고, 레빈과 앳킨슨으로도 이어졌다.

 

쿠르트 레빈[각주:13]은 행동이 기대(expectancy)와 가치(value)의 값에 의해 산출된다고 주장했던 최초의 학자였다. 여기서 기대란 그 행동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을 의미하고, 가치는 목표가 유기체에게 가지는 효용성이었다. 이러한 가설은 이후 앳킨슨(Atkinson)[각주:14]에 의해 계승되었다.

 

추동 이론[각주:15]

추동(drive)은 생리적 결핍에 의해 나타나는 심리적 불편감이다. 무의식 차원에서 일어나는 생리적 결핍이 심리차원으로 넘어오면서 추동이 형성되는데, 몸의 대리자인 이 추동이 행동을 일으켜 생리적 결핍을 해소한다. 추동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다. 프로이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허기, 갈증과 같은 생리적인 결핍이 의식 수준으로 올라오면서 추동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결핍이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면 추동은 강화되고 강화된 추동은 욕구를 충족시킬 대상으로 찾도록 인간을 동기부여한다. 욕구가 해소되어야만 추동이 사라진다는게 프로이트의 주장이었다.

 

프로이트의 다른 주장이 그렇듯 이 주장도 후대에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추동이라는 개념은 후에 행동주의 심리학자 클라크 헐(Clark L. Hull)에게 계승된다. 헐은 추동을 모든 생리적 결핍으로 구성된 종합적인 에너지원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욕구 박탈 시간으로 추동의 발생가능성을 예측해 추동을 과학적 연구대상으로 끌어왔고, 추동은 본능적으로 발생하나 행동과학적 원리에 따라 형성된 후천적 습관에 맞춰 동기를 발생시킨다고 하여 프로이트의 추동과 행동주의를 결합했다. 그는 추동->환경의 단서->행동->충동 감소->강화라는 틀을 만들어 조건형성 과정을 개선했고, 자신의 이론을 수식으로 정리했는데 이는 아래와 같다.

 

E=HDK 

E=행동강도

H=습관강도(강화된 정도)

D=욕구 박탈 시간

K=외적 유인 동기

 

이렇게 수학적으로 정리된 추동이론은 다시 부활해 심리학계를 휩쓸었으나 행동주의가 퇴조하면서 추동이론은 다시 비판받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사카린이 어떠한 욕구도 해소해주지 않지만 동물이 사카린을 먹는 행동을 학습함을 지적했다. 배고프지 않아도 음식 사진을 보고 돈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유로 추동 이론의 입지는 약화되고 빈 자리를 외부 요인을 강조하는 유인(incentive) 이론이나, 중간 정도의 각성이 접근동기를 낳고 극단적인 각성이 회피동기를 낳는다는 각성(arousal) 이론이 채웠으나, 현재는 동기를 설명하는 많은 이론이 추동 이론보다는 작은 이론들이다.

 

 

범죄심리학의 역사

범죄심리학도 인간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강조하는 시대적 요구에서 태어났다. 1872년 에빙(Ebing)의 저서 <Outline of Criminal Psychology>에서 처음 범죄심리학이란 용어가 언급된 이후 Gross는 범죄수사의 기법이나 증거, 목격자 증언의 신뢰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심리학자 에빙하우스(Ebbinghaus)와 뮈테버그(Munsterberg)는 범죄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에빙하우스는 목격자 증언의 신뢰성 연구에 공헌했고 뮈테버그는 사법분야에 심리학을 작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법정심리학의 초석을 마련했다. 또한 그는 생리적 변화를 거짓말 탐지에 응용하자고 제안했는데, 약 100년 뒤 이 발상은 거짓말 탐지기로 실현되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양차 대전기간에는 쇠약했지만 세계대전이 끝나자 다시 고개를 들어 사회학적 관점과 함께 성장해 갔다.

 

범죄심리학이 발전하면서 심리학적 지식을 법정에 응용하는 법정심리학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뮈테버그 이후 1919년 독일은 처음으로 수사영역에서 심리학자를 활용했고 이어 1968년 로스엔젤레스 경찰(LAPD)은 교육심리학자 Martin Reiser를 전일제 심리학자로 고용하였다. 이처럼 경찰을 보조하는 경찰심리학은 초기엔 유능한 경찰을 만드는 지적 능력을 알아내려고 노력했지만, 경찰 대부분이 지능이 낮다는 사실이 보고된 이후 지적 능력보다는 경찰에 적합한 성격에 관심을 가져 성격검사를 통해 '경찰 성격'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업무 수행으로 스트레스를 겪는 경찰을 위한 심리치료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가 대두되었고 현재는 선발에서의 공정성을 보장하려는 노력들이 지속되고 있다.

 

한편 일반인이 좋아하고 궁금해하는 프로파일링도 범죄심리학과 동시기에 시작되었다. 1888년 영국은 악명높은 잭 더 리퍼 사건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잭 더 리퍼가 누구인지, 모든 범죄가 그의 소행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건이 미궁에 빠져있던 그때 스코틀랜드 야드 소속 의사 bond는 잭 더 리퍼의 범행 방식에 근거하여 범죄자의 상세한 특징을 기술하고 추론했다. 이것이 법 전문가에 의해 실시된 첫번째 프로파일링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1950년 일명 mad bomber 사건이라 불리는 연쇄 폭파 사건이 미국을 뒤흔들었다. 16년동안 폭파가 끊이지 않았건만 수사는 진전도 못하고 있었다. 이때 경찰이 1968년 의학자 브루셀(brussel)에게 자문을 요청하자, 브루셀은 범죄 현장 사진, 예고편지, 실제 사용된 폭탄 등을 분석하여 범인의 성격, 생활방식, 거주지, 패션을 추론하였다. 이는 경찰에 큰 도움이 되었고 폭파범이 잡혔을때 프로파일의 상당 부분이 맞아떨어졌다. 

 

이 시기까지 프로파일링은 개인이 직관과 경험에 의존하여 행했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했지만 70년대 이후 FBI가 산하에 행동과학부(Behavioral Science Unit)를 설치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프로파일링의 효과성을 느낀 FBI는 행동과학부를 통해 미제 사건 데이터베이스(violent criminal apprehension program,ViCAP)를 구축하고 앞으로의 범죄 가능성을 추론하기 시작했다. 1985년 영국 리버풀 대학에서도 비슷하게 범죄수사 심리학 센터를 열어 수사심리학 연구를 시작했고 A-C 등식을 정립했다.

 

초창기 범죄심리학자들은 주로 범죄자의 유형분류에 관심이 많았다. 범죄자의 유형을 알면 그에 맞는 사람을 추려내어 용의자 폭을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FBI 행동과학부에서 이분법적 유형론을 개발했고 이어 Holmes가 110명의 연쇄살인범의 범행동기, 범죄현장의 증거, 피해자 특징, 살해방법, 범인의 공간적 특성 등을 분석해 4가지 유형을 추려냈다. Holmes는 자료를 통해 범죄자가 환성에 의한 연쇄살인범, 사명감에 의한 연쇄살인범, 쾌락에 의한 연쇄살인범, 권력적-통제적 연쇄살인범으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에 Canter와 Wentink가 다차원 척도법(MDS)으로 검증한 결과 Holmes의 이론은 폐기되었다. 현재는 이분법적 유형론이 가장 기초적인 유형분류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여기에  mott가 수행한 미제사건 연구를 통해 몇가지를 더 분류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유명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나 유영철 살인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프로파일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2000년 2월 서울지방경찰청에 범죄분석실이 설치되고, 2004년 경찰청이 현장감식요원, 법최면 수사관, 거짓말탐지기 검사관, 범죄심리 관련 자격증 소지자, 지문 감식요원(대표적으로 권일용) 등 각계의 인물을 모아 범죄분석팀을 설치하면서 국내 1호 프로파일러가 탄생했다. 2005년부터는 심리학, 사회학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들을 범죄분석요원으로 선발해 3-40명 정도를 각 지방경찰청에 배치했고, 2012년 1월 과학수사센터 내에도 범죄행동과학계 행동분석팀이 신설되었다. 지금은 한국도 프로파일러를 수사에 활용하고 있으며 강남역 살인사건, 화성 연쇄살인사건 재수사 등 많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보편정서 논쟁

심리학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사람들은 정서가 인류보편적인지 아니면 문화마다 다른지 논쟁해 왔다. 심리학에서 이 논쟁은 정서와 관련된 얼굴 표현이 문화마다 일치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이 주제를 최초로 다룬 다윈[각주:16]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정서가 진화했고 그것이 일관적인 얼굴 표정으로 드러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고든 알포트[각주:17]나 솔로몬 애쉬,[각주:18] 톰킨스[각주:19]와 같은 저명한 학자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20세기 중반부터 문화상대주의가 득세하면서 반대의견도 등장하였다.[각주:20] 그 중 klineberg[각주:21]는 중국 문헌에 나오는 얼굴 표정 관련 묘사가 서구와 다르다는 이유로 보편적인 얼굴 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70년대에 폴 에크만이 오세아니아에서 보편적인 얼굴 표정을 식별하면서 현재 정설은 보편적인 얼굴 표정과 정서가 있다는 방향으로 굳어졌다.

 

 

사회심리학의 역사

사회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19세기 초반부터 있어왔다. 실증주의의 창시자인 오귀스트 콩트(conte)는 사회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회학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며 이후 귀스타브 르 봉과 사회학자 뒤르케임, 타르드(tarde) 등 몇몇 학자들이 집단과 군중에 대해 연구했다. 비슷하게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심리학의 창안자인 빌헬름 분트도 역사적, 문화적, 국가적 특성이 인간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고 민족심리학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편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윌리엄 제임스가 여러 유형의 자기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으며 볼드윈(baldwin)은 개인은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심리학도 개인의 관계를 연구해야 한다며 사회심리학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런 배경속에서 마침내 사회심리학이 탄생했는데, 최초의 사회심리학은 사회학적 전통과 행동주의적 전통이 대세를 이루었다. 특히 행동주의 전통의 경우 초기 사회심리학자들은 집단역학에 대한 설명을 시도할때도 행동주의적 설명을 자주 시도하였다.

 

사회심리학은 사회학과 심리학이라는 이질적인 두 전통에 기반했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중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가 초기 사회심리학의 주 쟁점이었다. 유럽 사회학자의 영향을 받은 로스(ross)는 개인을 넘어서는 개인간의 정신적 상호작용이 사회심리학의 연구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동시기에 인간의 본능을 강조한 심리학자 McDougall은 사회적 행동에서도 개인의 본능이 결정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1920년대 전설적인 심리학자 고든 알포트(Allport)가 떠오르면서 종결되었는데, 알포트는 사회심리학을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개인'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하여 심리학 전통의 손을 들어주었다. 알포트의 영향으로 논쟁은 사그라들었고 현재까지 사회심리학은 사회학에 비해 개인을 더 강조한다.

 

한편 이 당시에 활동한 쿠르트 레빈의 장이론이 사회심리학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때 레빈이 도입한 실험 방법론은 60년대에 이를 활용한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연구가 꽃피면서 사회심리학의 주된 방법론이 되었다. 그리고 동조 실험으로 유명한 애쉬도 이때 활동했는데, 애쉬[각주:22]는 contrasting model을 통해 사회적 인지가 단순한 구성요소들의 산술적 합을 통해 이뤄진다고 주장하였다. 가령 얼굴을 평가하는 경우, 각 얼굴 부위에 대한 호불호 평가가 누적된 결과가 전체 얼굴의 평가로 나타난다고 애쉬는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의 환원주의적 전통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으며, 영미권과 대륙의 철학에서 갈라져온 환원주의 관점과 전체론적 관점은 사회인지 연구에도 이어져 나름의 관점을 형성하였다.[각주:23]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2차대전은 사회심리학의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먼저 대전기동안 미군은 심리학자를 대거 고용하여 군사연구에 종사하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2차대전이 끝난 후 나치의 참상이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독일이 왜 그런 폭압적이고 권위적인 정권을 지지했는지 의문을 품었는데, 사회심리학자들이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유명한 애쉬의 동조실험도 이 시기에 나왔다. 또한 전쟁 후 전쟁으로 인한 심리적 문제가 많아지면서 심리학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덩달아 사회심리학도 많은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인지혁명이 일어나자 사회심리학도 영향을 받아 인지적 과정이 사회적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사회인지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동시에 뇌영상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것이 사회심리학에도 적극 채용되었고, 90년대 후반 아시아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교류가 활발해지자 문화간 차이에 관심을 두는 문화심리학도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80년대부터 발흥하기 시작하던 진화심리학도 사회심리학에 영향을 미쳐 다양한 연구를 생산해 내었다. 

 

인지혁명의 초창기에 사회심리학을 이끌었던 이론은 인지부조화 이론과 사회비교이론이었다. 원래 사회비교이론을 주장한 레온 페스팅거(Festinger)[각주:24]는 사회비교가 주로 자신의 평가하기 위해 하는 것이며 때문에 유사비교가 가장 좋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연구에서는 하향비교나 상향비교와 같이 다른 종류의 비교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대부분의 사회심리학자들은 비교 각각의 기능을 서로 분리하여 연구하였으나, 일부 학자는 3가지 비교를 모두 포함하는 통합 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각주:25]

 

자아고갈 이론(ego depletion)

자아고갈 이론은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가 주장했던 가설로, 우리가 자기조절을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으며 때문에 자기조절을 하면 할수록 다음에 할 수 있는 자기조절 능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각주:26] 이 가설은 본 논문만 7700여회 인용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나, 2010년대에 들어 재현성 위기가 터지면서 타격을 받았다. 많은 연구자들은 자아고갈 현상이 재현이 안된다고 지적했고,[각주:27] 자아고갈에 긍정적이었던 연구들이 출판 편향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타났다.[각주:28]

 

심리학자들은 총 3건의 대규모 사전등록 연구를 통해 이론의 여부를 결정하려고 했다. 첫번째 연구[각주:29]는 APS에서 주관하여 실시하였는데, 자아고갈 효과를 관찰하기 좋다고 알려진  e task를 통해 자아고갈 효과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 실험군과 대조군 사이에 유의미한 성과 차이가 없었으며, 이는 곧 자아고갈 효과가 존재하지 않음을 시사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충격에 빠졌고, 자아고갈 이론은 안면피드백 가설이나 TMT와 같이 또 하나의 모래성으로서 무너져내렸다.

 

다른 두 건의 연구는 APS의 연구가 출판된 이후에 등장했다. 자아고갈 이론의 옹호자인 dang은 2021년 역시 대규모 사전등록 연구[각주:30]를 실시하였다. stroop task를 통해 자아고갈을 일으킨 이 연구는 유의미한 자아고갈 효과를 보였으나, 원 효과는 모두 marginal하게 유의했으며 사전등록되지 않은 추가분석을 한 이후에만 반응시간만이 유의했다. 다른 사전등록 연구[각주:31]는 오픈 사이언스 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앞의 두 연구보다 더 많고 넓은 표본으로 실험했는데, 이 연구도 자아고갈 현상의 재현에 실패했으며 추가분석을 한 경우에만 대안가설이 영가설과 설명력이 비슷했다.

 

아직 논쟁이 지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2016년 APS에서 주관한 연구가 발표된 이후 자아고갈 이론은 사회심리학에서 신뢰를 잃어버렸다. 많은 사회심리학자들이 자아고갈 이론을 재현이 불가능한 모래성으로 치부하며, 이제 자아고갈 이론은 재현성 위기의 희생양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다만 그 아이디어의 독특성으로 인해, 2023년에도 국외와 국내에 소수의 지지자가 남아있다. 특히 이 중에 사회심리학의 권위자가 있기 때문에 심리학 지식을 습득할 때 주의가 요구된다.

 

태도 이론의 발전

인지혁명의 영향으로 태도가 처음 사회심리학의 주제로 처음 떠오른 시기에 학자들은 태도가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입장이 반영된 게 초기의 다속성 모델(multi-attribute attitude model)인데, 이 이론은 모든 대상이 여러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대상에 대한 태도는 각 속성에 대한 생각과 중요도의 합이라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이러한 원리를 수식화하여 표현했는데, 각 속성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신념과 그 속성이 중요한지에 대한 평가를 곱한 후 더하여 태도를 계산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인간이 합리적 인간이라는 가정을 택하였는데, 그 가정의 결함과 더불어 실제로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다른 인지적 요소를 고려하지 못했다.

 

다속성 모델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나온 이론은 합리적 행위 이론(theory of reasoned action)이었다. 이 이론은 다속성 모델과 달리 인간이 비합리적인 다른 요소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제안했고, 그 요소로 사회적 영향을 들었다. 또한 수식을 통해 계산되는 태도 계산자가 있는게 아니라 특정 행동에 대응되는 태도가 존재함을 밝혔고, 이 태도가 사회적 영향과 함께 행동의도를 구성하여 행동을 일으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이론에서 사회적 영향을 나타내는 변수로 제시한 주관적 신념이 태도와 잘 구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행위의도와 행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다. 이러한 점은 후에 계획된 행동 이론에서 일부 수정되었지만 이 이론도 여러 한계를 가졌고, 21세기에 들어 태도가 그다지 행동에 중요한 요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태도 연구에 대한 인기는 약간 시들해졌다.

 

Attitude toward women

60년대부터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자, 심리학에서도 성차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기 이뤄지기 시작하였다. 성차별에 대한 심리학의 접근은 우선 성차별주의 신념을 측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스펜스(Spence)와 Helmreich는 여성에 대한 태도를 묻는 척도 AWS(Attitude toward Women Scale)를 개발하여 성차별주의 신념을 측정하고자 하였다.[각주:32] AWS는 55개의 문항으로 이뤄진 설문지로, 주로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질문하는 문항으로 되어 있다. 이 설문지는 각광을 받아 심리학계에서 널리 사용되었고, 15문항의 짧은 버전도 개발되었다.[각주:33] 이 척도에서 사용된 문항은 다음과 같다.

 

  • It is inappropriate for women to try to work in a man’s field such as construction.
  • There are some professions or types of business that are more suitable for men than women.
  • I’m not sure it’s such a good idea for women to be competing fully in the job market.
  • The intellectual leadership of a community should be largely in the hands of men.

 

AWS를 사용한 연구에서는 성차별주의가 역차별 정책에 대한 반대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였다.[각주:34] 이외에 많은 연구에서도 AWS가 성차별주의 신념을 연구하는데 사용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성평등 가치관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AWS의 평균 점수가 계속해서 높아져 천장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각주:35] 그러자 한편에서는 성차별주의의 양상이 더 은밀하게 은폐되었다는 주장이 나타났고, 이는 성차별 연구를 계속해야만 했던 연구자들의 이해와 맞아떨어졌다. 이에 사회적 바람직성이 더 적은 새로운 척도가 나오면서 AWS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의 사회심리학

한국에서 최초로 발간된 사회심리학 논문은 1958년 잡지 <사상계> 12월호에 게제된 이진숙의 '팔도인의 성격에 대한 선입관념'이란 논문이다. 이 문헌은 당대 한국인의 지역감정에 대한 연구로, 사람들이 각 지역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다뤘으며 너무 오래되어 지금은 학술문헌에서 찾기 힘들다. 이후 김성태가 4.19 혁명에 참가한 학생의 심리적 동기를 조사한 문헌이 있지만, 한국에서 최초의 사회심리학은 페스팅거 밑에서 수학한 정양은(1937-)이 서울대에 사회심리학 교실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한국 심리학에 실험을 도입한 선각자 중 한명이며 당시에는 대인지각, 기억, 태도, 공격성 등을 연구했다.

 

사회심리학 연구는 시간이 지나면서 덩치가 커졌고 마침내 1975년 사회심리학회가 한국심리학회 분과학회로 개설되고 이윽고 1982년 사회심리학만을 다루는 학술지를 창간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심리학은 외국의 연구경향을 따라가는 경향이 크지만, 80년대에는 과거 이진숙의 연구전통에 영향을 받은 후학들에 의해 지역감정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각주:36] 1993년부터는 사회문제연구학회가 창설되고 학술지 <사회문제심리>를 발간하면서 정치, 여성, 환경에 대해 연구하는 등 사회참여적 성격이 짙었다. 그러는 한편 사회심리학과 성격연구를 떼놓기가 힘들다는 서구의 추세를 반영하여 한국 사회심리학회도 '사회 및 성격심리학회'로 변경되었다.

 

동시에 서구의 문화심리학 패러다임이 한국에도 넘어오면서 한국인심리학에 대한 연구경향도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 한국심리학회와 국제비교문화심리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 '개인주의-집단주의: 동서양 심리학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또한 국내 1세대 사회심리학자가 해외에서 범죄심리학을 도입하면서 한국에 처음으로 범죄심리학이 시작되었다. 21세기에 한국 사회심리학의 주된 연구주제는 긍정심리학과 다문화이다. 서구의 영향을 받아 긍정심리학, 특히 행복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동시에 이민이 증가하여 다문화사회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다문화에 대한 연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덕발달이론의 역사

도덕발달이론은 피아제에 의해 심리학에 인지적 관점이 도입되면서, 피아제와 함께 시작되었다.[각주:37] 피아제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들의 도덕적 사고가 3가지 측면에서 변한다고 주장했는데, 먼저 아이들의 도덕관념이 현실주의에서 상대주의로 변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어린 아이들은 부모나 어른들에 의해 주어진 도덕규칙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으나, 나이가 들면 도덕규칙이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또한 어린 아이들은 도덕규칙이 특정 행동에 대한 행동지침이라고 여기나, 나이가 들면 공정성이나 자유 등 추상적인 개념이 도덕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은 결과에 기초하여 도덕판단을 하는데, 가령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었더라도 나쁜 결과를 낳은 행동은 무조건 악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이전보다 의도를 더 고려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3단계로 일어난다고 피아제는 주장했다. 먼저 갓 태어난 아기는 4세까지 전도덕적 단계에 머무는데, 이 단계의 아이들은 도덕은 커녕 무언가에 대한 사고능력이 부족하여 도덕적 사고가 불가능하다. 이후 아이가 전조작기를 거쳐 사고능력이 생성되면 전도덕적 단계에서 도덕적 실재론 단계(moral realism)로 이행하는데, 이 단계의 아이들은 부모의 훈육을 통해 도덕을 익히면서 자연스레 힘있는 누군가에게 처벌을 받으면 부도덕, 보상을 받으면 도덕적이라고 간주하게 된다. 위에서 말한 현실주의와 규범으로서의 도덕, 결과중심 도덕관은 모두 2단계에서 나타난다.

 

도덕적 실재론 단계는 7세까지만 이어지고 그 이후에는 도덕적 상대론 단계(moral relativism)로 이행한다고 피아제는 주장했다. 도덕적 절대론 단계에서 도덕적 상대론 단계로 이행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교우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 지켜야할 규칙, 원리를 학습하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도덕 원리를 발달시킨다.[각주:38] 그러면서 아이들은 도덕을 사람들이 서로 공존하기 위해 만든 질서로 이해하기 시작하고 규칙의 원리와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피아제에 따르면 이 단계의 아이들은 도덕적 절대론 단계와 달리 도덕이 사회적 협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피아제의 이러한 주장은 문화상대주의에 눌려 기를 못 쓰다가, 후에 도덕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kohlberg)에 의해 비판적으로 계승되었다. 콜버그는 6단계로 구성된 도덕발달 이론을 제시했으며, 이후 6단계를 또 나눠서 아가페와 같이 종교적인 수준에서의 윤리가 나타나는 7단계를 주장하기도 했다.[각주:39] 이 이론은 다양한 방식으로 입증되어 학계의 정설이 되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콜버그가 주장했던 6단계와 7단계는 제외되었다. 한편 도덕발달 이론이 정설이 된 이후에도 이론에 대한 비판은 이어졌는데, Eisenberg[각주:40]나 캐롤 길리건(Karol Gilligan),[각주:41] Haan[각주:42]은 도덕발달이론과 비슷하나 약간 다른 이론을 주장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콜버그가 제시한 도덕적 딜레마가 현실적이지 않으며 현실적인 딜레마에서는 그의 이론이 잘 재현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각주:43] 그러나 이는 당연한 것인데, 왜냐하면 현실적인 딜레마에서는 새로운 해결책이나 비도덕적 고려도 당연히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트롤리 딜레마만 하더라도 새로운 해결책(기차를 탈선시키자)이나 비도덕적 고려(이거 누가 보고있나?)가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보통은 그렇게 한다.

 

문화심리학의 역사[각주:44]

문화심리학은 단순히 심리학에서 파생된 분과학문이 아니다. 문화심리학은 서로 다른 두 관점이 겹쳐지면서 탄생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심리학의 역사는 1870년대의 분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문화심리학은 심리인류학과 비교문화심리학의 시대를 거쳐 토착심리학으로 이행해왔다.

 

프란츠 보아스가 역사적 특수주의를 제창한 이후 문화인류학자들은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데이터를 해석하려는 이론적 작업도 활발하였다. 때마침 당시 인류학에서도 레비스트로스를 필두로 한 구조주의가 발흥하고 있었는데, 구조주의자들은 문화가 하나의 구조이며 일부는 모든 문화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마음의 구조가 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사회학에서 맹위를 떨치던 기능주의는 인류학에도 지지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문화가 수행하는 기능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시적 기능과 암묵적으로 일어나는 잠재적 기능으로 나누었다. 이들중 문화가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구조라는 주장은 구조기능주의, 문화의 개별 요소가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기능을 한다는 주장이 심리기능주의였는데, 심리 기능주의에서는 문화의 기능을 인간 욕구의 충족으로 보았기 때문에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일을 중요시했다. 심리 기능주의자들은 성격을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정형화된 방법으로 정의한 후 문화가 확대된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즉 한가지 욕구를 충족하는 다양한 성격이 문화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을 가진 심리 기능주의자들은 1차 대전 이후 집단보다 개인을 더 중시하는 문화와 성격 학파를 창립하게 된다. 여기에는 초기 심리학자 rivers[각주:45]의 공헌도 일부 있었다. 이 학파는 문화를 개인 외부에 위치하지만 동시에 개인에게 내재화된 것으로 보고 인류학이 문화와 사람간의 관계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문화를 각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생태환경과 인문적 상황의 영향으로 인해 성격이 특정한 방향으로 사회화된 산물로 보았고, 특정 환경에 잘 적응하게 한 행동이 문화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개개인의 성격은 개인의 욕구와 교육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며, 이 성격에서 나오는 행동이 다시 문화를 재생산한다고 주장했다.  즉 문화와 성격 학파에서 문화는 개인의 욕구가 반영된 투사체계였다. 문화와 성격 학파는 나중에 심리인류학으로 발전했고, 심리인류학자들은 과학적 방법이 아닌 해석적 방법(주로 정신분석적 방법으로)으로 문화와 인간심리의 관계를 탐구하였다.

 

심리인류학이 협의의 문화심리학으로 존재하는 동안 심리학은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심리학의 창시자 분트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민족심리학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며 사회적 측면에 대해서는 해석학적 방법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분트의 제자 티치너는 이러한 관념을 거부했고, 정신분석이 기승을 부리던 유럽 심리학계를 제외하면 이후 심리학은 행동주의가 지배하면서 문화와 같은 거시적이고 모호한 구조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꺼져갔다. 인지혁명이 일어나던 50년대 말까지도 심리학자들은 심리인류학적 주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인지혁명이 무르익은 이후 몇몇 인지과학자들은 인지체계의 '내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또한 니스벳을 비롯한 몇몇 학자가 문화가 인지적 구조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혔고, 이때부터 동서양에 따른 인지적 특성의 차이를 발견되면서 본격적으로 비교문화심리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비교문화심리학은 기존의 심리학 연구가 통칭 WEIRD로 대표되는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만 진행되었음을 지적하고, 다른 문화권의 사람을 연구함으로서 기존의 연구를 재검증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이를 통해 문화가 인지에 끼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이를 통합하여 심리학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비교문화심리학에 대한 최초의 개괄은 jahoda의 저서[각주:46]에서 나오는데, jahoda는 문화심리학의 위치를 학제적, 역사적, 제도적 맥락에서 찾고, 주요 가정과 연구주제, 주요 공헌자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정서, 자기, 사회인지, 건강에 관련된 문헌 중 일부를 선정하여 문화심리학의 경계를 확정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문화심리학에 대해 jahoda와 다른 방식으로 정의했으며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더보기

Howard, A. (1985). Ethnopsychology and the Prospects for a Cultural Psychology. Person, Self, and Experience: Exploring Pacific Ethnopsychologies. Geoffrey M. White and John Kirkpatrick, eds, 401-420.

Lutz, C., & White, G. M. (1986). The anthropology of emotions.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15(1), 405-436.

Cole, M. 1 990. Cultural psychology: a once and future discipline? In Cross-cultural Perspectives. Nebraska Symposium on Motivation. 1989. ed. J. J. Berman. Lincoln: Vniv. of Nebraska Press. pp227 

Bruner, J. (1990). Acts of meaning. Harvard university press.

Miller, P. J., Potts, R., Fung, H., Hoogstra, L., & Mintz, J. (1990). Narrative practices and the social construction of self in childhood. American ethnologist17(2), 292-311.

Shweder, R. A., & Sullivan, M. A. (1990). The semiotic subject of cultural psychology.
Markus, H. R., & Kitayama, S. (1991). Culture and the self: Implications for cognition, emotion, and motivation. 
Psychological review98(2), 224

Wertsch, J. V. (1992). Keys to cultural psychology. Culture, Medicine and Psychiatry16(2), 273-280.
Markus, H. R., & Kitayama, S. (1992). The what, why and how of cultural psychology: A review of Shweder's thinking through cultures. Psychological Inquiry3(4), 357-364..

 

 

그러나 어떤 심리학자들은 비교문화심리학에서 가정하는 인류 보편적인 특성을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어떤 특성들은 특정 문화에만 존재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덕발달 5단계나 섭식장애는 서양에만 존재했으며, 비서구 세계에 그와 견줄만한 양적 차이를 가지는 실체가 없었다. 다른 많은 심리적 실재들도 특정 문화에만 존재하는 듯이 보였다. 이러한 비판 속에서 토착심리학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기존 심리학 이론을 모든 상황에 끼워맞추기 보다는 특정 문화의 구성원들을 잘 설명하는 토착적인 심리학을 개발하고자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구사회에서 연구된 심리학이 자신들 사회에 잘 맞지 않는다고 고민한 비서구 심리학자들의 반성에서 출발했는데, 토착심리학자들은 문화가 특정 맥락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각 문화를 양적인 차이로 비교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심리인류학의 그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토착심리학자는 과학적 방법과 기존의 심리학을 반대하는 심리인류학과 달리 기존 심리학 이론을 적용하거나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은 꽤 최근에 나타났기 때문에 아직 축적된 연구성과가 적지만 앞으로가 많이 기대되는 학파이다.

 

 

인지과학의 역사

인지과학이 탄생하기 이전에 인간의 인지에 대한 연구는 주로 철학에서 수행되었다. 대개는 관념적이었고, 실제 인간의 인지에 대한 소득은 별로 없었다. 인간 인지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근세에 들어 인기있어졌으며, 로크나 칸트 등이 인간의 이성에 대해 탐구하였다. 실험적 방법을 통해 최초의 탐구는 네덜란드의 안과의사 donders에 의해 시행되었다.

 

네덜란드의 안과의사 franciscus donders는 인간이 결정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알아내고 싶었는데, 그는 1868년 실험적인 기법을 통해 이를 알아내고자 하였다. 그는 피험자들에게 2가지 과업을 수행하도록 했는데, simple RT task는 불빛이 울릴때 최대한 빠르게 버튼을 누르는 과제이고, 반면에 choice RT task는 양쪽에 각기 다른 전등과 버튼이 있어서 불빛이 들어오는 쪽의 버튼을 누르는 과제이다. donders는 choice RT task에 걸린 시간에서 simple RT task에 걸린 시간을 빼면 인간이 결정을 내리는데 걸리는 시간을 알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험을 통해 그 시간이 0.1초라고 제안한다. 이 실험은 인간 인지에 대해 최초로 이루어진 실험으로 여겨진다.

 

이후 donders의 의식을 계승한 분트가 심리학을 창시하였고, 분트에 의해 인간 정신의 구조와 개인차에 대한 연구가 실시되었다. 동시기 구조주의심리학 이외에도 인지에 대한 탐구는 이뤄졌는데, 에빙하우스는 망각 곡선을 처음 발견하였고, 미국에서도 윌리엄 제임스가 인간 정신에 대해 탐구하였다. 이 시기 인지에 대한 연구에는 실험 못지않게 내성법이 중요성을 차지했다. 그러나 왓슨이 내성법을 비판하고 나섰고, 이후 행동주의가 부상하면서 인지에 대한 연구는 비주류에 머물게 되었다. 게슈탈트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나, 이들은 인지과정 자체보다는 인간의 지각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인지에 대한 관심이 부활한건 20세기 중반이었다. 이미 1938년 행동주의 연구자였던 톨먼이 미로실험을 통해 인지의 존재가능성을 제안했다. 그가 미로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은 쥐가 마치 머릿속에 미로에 대한 지도가 들어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었고, 이는 행동주의 패러다임에 들어맞지 않았다. 이후에 언어학자 촘스키도 행동주의에 반대하여,[각주:47] 조작적 조건화가 언어의 학습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며 본능의 존재를 옹호하고 행동주의를 공격하였다. 한편 2차대전 중 미군의 요청으로 군사적 연구에 참여한 심리학자들은 비행기조종사는 정보처리 역량 제한이 많은 실수를 유발하며 활발하게 초점을 이동시켜야 이를 극복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비슷하게 인간이 7가지 이상의 정보는 기억하기 힘들다는 연구는[각주:48] 인간의 인지적 역량도 행동 못지않게 중요함을 보여주었다.

 

그 시기 다른 심리학자들은 컴퓨터의 출현 이후 마음을 컴퓨터와 같은 정보처리 장치라는 관점에서 지각, 사고, 기억, 언어 등 인간의 인지과정을 연구하고자 하였다.[각주:49] 이는 심리학에만 국한된 사항이 아니었고, 곧 심리학,언어학,심리철학,뇌과학,생물학자들이 뭉쳐 인지과학이 탄생하였다. 인지혁명의 주역인 이들은 행동주의자와 달리 심적 과정이 인간행동을 이해함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심적 과정이 능동적이고 복잡하게 자극과 반응을 중재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고전심리학보다는 엄격한 방법론을 사용하여 인간의 인지과정을 연구하였다.

 

초기 인지심리학자들은 게슈탈트 학파와 피아제의 영향을 받아 인간을 '순전한 과학자(naive scientist)'로 바라보았다. 이들은 인간의 인지적 과정이 인지적 일관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세상을 최대한 해석하려고 하는 과학자적 자세를 취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현재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인간을 일종의 정보처리 컴퓨터로 가정한 이들의 information-processing approach는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이 시기에 cherry와 broadbent가 선택적 주의를 발견하였고, 이중 broadbent는 현재 인지심리학에서 자주 쓰이는 flow diagram을 도입하였다. 한편 neisser는 1960년 최초로 인지심리학 교재를 출간하였고, 이후로 인지과학에 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앳킨슨과 shiffrin이 이때 기억의 구조에 대한 이론을 제안했고, tulving은 장기기억을 의미기억과 일화기억, 절차기억으로 나누어 최초로 기억의 세분화를 시도하였다. 

 

80년대에 카너만과 트버스키[각주:50]가 휴리스틱을 발견하고, 휴리스틱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학자들은 사람을 과학자라기 보다는 최대한 간편하게 세상을 이해하려고 드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로 보기 시작했다. 또한 뇌영상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 인지의 생물학적 기반을 알아보기 위해 신경과학자들이 인지과학에 본격적으로 끼어들었다. 이후 90년대에 인지과정의 과학자적 면모와 인지적 구두쇠의 면모가 둘다 공존한다고 이해한 학자들은 사람을 상황적 요인이나 동기에 따라 어렵게 처리할지 간편하게 처리할지 선택하는 '동기적 책략가(motivated tatician)'로 보았다. 21세기 이후에는 이중처리과정 이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점화의 기능이 알려지면서 책략가의 선택이 무의식적 요인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는 '활성화된 행위자(activated actor)'라는 관점이 주류가 되었다.

 

제임스-랑게 이론 논쟁

19세기 말 윌리엄 제임스와 카를 랑게가 제임스-랑게 이론을 발표하자, 제임스-랑게 이론은 곧 학계의 정설이 되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항상 노인들에게 불만을 품는 법이다. 신진 신경과학자였던 월터 캐논(cannon)은 윌리엄 제임스의 제자였는데, 그의 스승에 이론에는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학계에 자리를 잡은 이후 그는 자신의 제자인 필립 바드(bard)와 함께 캐논-바드 이론(cannon-bard theory)을 정립했는데,[각주:51] 캐논-바드 이론은 정서가 신체활동의 부산물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 캐논은 제임스-랑게 이론을 다음과 같이 반박했는데, 먼저 자율신경계 반응(얼굴홍조)은 정서적 느낌보다 늦게 나타났고,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자율신경계 반응을 탐지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며, 정서의 다양성에 비해 자율신경계 반응이 너무 제한적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온도와 같은 비정서적인 자극이 정서를 유발한다면, 왜 사람이 열이 날때 특정 정서를 느끼지 않는지 반문했다.

 

캐논-바드 이론이 제임스-랑게 이론의 대항마로 등장한 이후 논쟁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1962년 스탠리 샤흐터(schachter)와 제롬 싱어(singer)가 둘을 절충한 대안 이론을 제시하였다.[각주:52] 이 가설은 이요인 이론(tow-factor theory)이라고 하는데, 이요인 이론은 정서가 생리적 각성을 해석한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얼핏 이 말만 들으면 제임스-랑게 이론과 같아 보이지만, 이요인 이론은 해석의 차이가 다른 정서를 부른다고 강조하여 인지적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똑같이 교감신경계 반응이 나타나도 사람이 눈앞의 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석하면 반응이 공포로, 복권 당첨때문에 그렇다고 해석하면 반응이 흥분으로 해석된다고 이들은 주장하였다. 실제로 이들의 연구에서 샤흐터와 싱어는 피험자에게 에피네프린을 주사했는데, 같은 신체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피험자의 정서는 주어진 맥락에 따라 달라졌다.

 

샤흐터와 싱어의 원래 실험은 후속연구에서 재현이 되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수행된 많은 연구[각주:53]들이 이요인 이론을 부분적으로 지지했다. 덕분에 이요인 이론은 정서의 기원에 대한 그럴듯한 후보로 여겨졌으며,[각주:54] 제임스-랑게 이론이나 캐넌-바드 이론에 비해 약간 우위를 가지는 이론으로도 여겨졌다. 그러나 후에 수정된 제임스-랑게 이론에서 이들을 포괄하는 틀을 제시하면서 2010년대 이후 논쟁은 제임스-랑게 이론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지능연구의 역사[각주:55]

지능에 대한 연구는 1905년 프랑스의 심리학자 비네(binet)가 부진아를 골라내기 위해 binet-simon 검사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비네 이전에도 골턴이 감각운동과제(시력/악력 측정, 단순반응시간)를 이용하는 지능검사를 고안한 적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검사를 만든건 비네이다. 당시 비네의 조국 프랑스는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단행하여 근대적인 공교육 시스템이 만들어졌는데, 각자 학습능력이 다양한 아이들을 대규모로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는 아동의 학습능력을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이들은 비네와 의사 테오도어 시몽에게 학습능력을 알아볼수 있는 검사의 제작을 의뢰하였다.

 

비네는 지능을 '잘 판단하고 이해하고 추리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를 판단하기 위해 논리문제, 단어기억, 그림외우기, 각운 만들기, 상식적인 질문에 답하기 등을 사용했는데, 비네는 이 과제에서 우등생이 열등생보다 낫고 나이든 아동이 어린 아동보다 낫다고 했다. 이러한 과제 30문항을 통해 11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binet-simon 검사가 개발되었으며, 이후 1911년에는 성인용이 개발된다. 1년 뒤에는 kuhlmann과 협력하여 3개월된 유아에게 사용할 수 있는 kuhlmann-binet 검사가 만들어졌으며 1914년에는 William Stern이 비율지능과 지능지수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하였다. 

 

당시에 제안된 지능지수는 지금과 약간 달랐다. 그들이 내는 지능지수는 지금 비율 IQ라고 불리는데, 정신연령을 실제 나이로 나눈 후 %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5살인데 18살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지능지수는 120이다. 그러나 지능은 보통 20세 이후에 정체되기 때문에, 비율 IQ는 성인이 된 후에는 계속 감소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능지수를 정상집단의 지능에 대한 이탈치로 정의하는 편차 IQ가 도입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비네가 만든 검사는 1908년 헨리 고다드(Henry Goddard)가 이민자를 가려내는데 사용할 목적으로 처음 미국에 도입되었다. 헨리 고다드는 정신박약이 대부분의 사회문제를 일으키며, 따라서 비네의 검사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열등한 인자들을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사를 통해 유대인과 헝가리인, 이탈리아인, 러시아인이 정신박약인 인종이며, 이처럼 열등한 민족이나 미국 내의 정신박약인들은 격리하고 통제하면서 산아제한까지 해야한다고 열을 올렸다.[각주:56] 아마 비네가 보면 한탄했을 것이다.

 

이후 비네의 검사는 1916년 미국의 루이스 터먼에 의해 스탠포드-비네(stanford-binet) 검사로 번안되었고, 2005년에 5판이 제작되었다. 이후 세계대전동안 효율적인 인사선발을 위해 미 육군의 알파/베타 검사(Army Alpha/Army Beta)같은 집단용 지능검사가 만들어지면서 지능검사 연구가 활발해졌다. 알파/베타 검사는 육군 선발을 위해 만들어진 검사인데, 지필검사인 알파 검사와 문맹용 검사인 베타 검사로 구성된 이 검사는 후에 ASVAB로 개정되었다. 

 

이처럼 지능검사가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동안, 지능에 대한 이론도 곳곳에서 출현하였다. 지능연구자 찰스 스피어만(spearman)은 1927년 이요인 이론(two-factor theory of intelligence)을 발표했는데, 2요인 이론에 따르면 지능은 보편적인 지적 능력인 일반지능과 특수요인(s)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피어만은 특수요인을 언어능력, 수리능력, 공간능력, 기계적 능력의 5가지를 제시하였다. 이후 서스턴(thurstone)이 1941년 지능의 다요인설을 주장하였고, 20세기 중반에는 길포드(guilford)가 SI 모델을 제안하였다. 엎치락 뒤치락 하던 지능이론들은 CHC 이론이 등장하면서 일견 정리되었으며, 이후 지능검사들은 모두 CHC 이론에 기반하여 제작된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지능 이론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지능검사인 WAIS는 20세기 초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웩슬러(David Wechsler)에 의해 개발되었다. 웩슬러는 지능을 '개인이 합목적적으로 행동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며 환경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능력'으로 정의했으며, 당시에 등장한 2요인 이론을 받아들여 하나의 일반지능과 여러 개의 하위능력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웩슬러는 성격, 정서, 사회성, 운동능력, 감각까지도 지능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기반하여1939년 Wechsler-bellevue intelligence scale이 제작되었고, 이것이 1949년 WISC와 1955년 WAIS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이후 CHC 이론이 주류가 되면서 WAIS도 CHC 이론에 맞게 변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지능연구의 역사에서는 우생학자들이 매우 잦게 출현하였다. 20세기 후반 지능연구를 이끈 대표적인 학자인 아서 젠슨은 우생학자였으며, 그는 인종간 지능차이를 확인한 후 이를 바탕으로 유색인종이 열등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벨 커브라는 문제작으로 출판되었고, APA가 공식성명을 낼 정도로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유전자 결정론의 부활에 힘입어 우생학이 지능연구에서 비주류 입장으로서의 입지를 가지게 되었고, 특히 이들이 LCI를 설립한 이후 이들의 활동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 대다수는 주류 학계에서 거부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광복 후 1963년부터 KWIS, K-WISC(1974), 고대 비네 검사(1970, 4-14세 대상)등 다양한 검사가 번역되었으나 잘 쓰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7년 KEDI-WISC가,1992년 K-WAIS가 번역되면서 이 검사들이 종종 쓰이기 시작했고, 1996년 K-WPPSI가 표준화되면서 매우 자주 쓰이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미군의 알파 검사를 모티브로 한 집단용 지능검사가 도입되어 학생들의 지능을 평정하는데 사용되었는데, 학교현장에서의 전문성 부재와 관리부실로 신빙성은 낮았다. 이후 K-WAIS의 한계(제한된 표본)를 보완한 K-WAIS-4(2012년)와 K-WISC-4(2011년)가 등장하면서 이 둘이 2012년 번안된 K-WPPSI-4(K-WPPSI-3는 2002년 번안)와 함께 임상 장면에서의 진단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사용되면서 익숙해진 K-WAIS를 사용하는 임상가도 아직 남아 있다. 2014년에는 K-WISC-5가 출판되었으나 임상가들은 아직 잘 수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 심리학의 역사

이미 일제시대에도 몇몇 사람들은 심리학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심리학은 1946년 조선심리학회가 창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조선심리학회는 1953년 한국심리학회로 개칭하였고, 현재 15개 분과를 지닌 단체로 성장하였다. 1961년에는 육군과 협력하여 임상심리장교 제도가 신설되었으나, 6년만에 폐지되었다. 초기 한국의 심리학은 서울대와 중앙대, 이화여대를 주축으로 발전하였는데, 이들 대학은 50년대에 심리학과를 개설했던 몇 안되는 대학이다. 서울대학교는 기초심리학, 중앙대학교는 임상심리학에 주로 집중했고, 이화여자대학교는 발달심리학에 집중하였다.

 

임상가에 대한 자격규정은 1972년에 처음 제정되었다. 이후 긴 기간 동안 법제적 노력은 없었으나,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되면서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고 1997년부터 정신보건 임상심리사 제도가 시행되었다. 그러다가 2003년에 문제가 많은 임상심리사 자격증이 신설되었고, 2016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공적 지원이 확대되었다. 임상 수련과정은 60년대에 성모병원에서 처음 개설되었고, 이후 한양대 병원이나 서울대 병원 등으로 확대되었다.

 

1962년에는 국립병원에서 처음 임상심리과가 편성되었다. 한국의 초기 임상심리학은 주요 심리검사를 번안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1952년 웩슬러-벨뷰 검사가 도입되었고 1963년에는 한국판 웩슬러 지능검사(KWIS)가 번안되어 1992년에 K-WAIS로 개편되었다. 1962년에는 이정균에 의해 MMPI가 번안되었는데, 당시에 저작권자인 미네소타 대학의 허락을 받지 않아 논란이 되었지만 APA에서 후진국 배려 차원으로 묵인하였다. 이후 세계 15위권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한국은 2005년 저작권자에게 정식으로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MMPI-2를 번안하였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해 한국에서 심리학의 위상이 증대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피해자들을 후속 지원하는데 심리학자들이 적극적으로 투입되었고, 이들이 성과를 내면서 국내에서 심리학의 위상과 인지도가 올라갔다. 그러나 아직도 정치사회 분야에서 심리학의 목소리는 약하다. 2018년 보건복지부는 임상심리사에 대해서는 CBT 처치 시 보험을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2020년에는 대중사회에 MBTI가 유행하며, 혈액형 성격설의 뒤를 이어 대중심리학을 퍼트렸다. 

 

심리학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는 별개로, 한국의 심리학 수준도 해외보다 더 뛰어나거나 동등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비록 2015년 이후로 수많은 한국인 심리학자들이 SCI 저널에 연구를 등재했으며, 이러한 부분에 있어 한국의 심리학 수준은 해외와 동일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저널의 경우 연구데이터에서의 비의도적인 변조나 통계적 처리의 미비가 자주 일어나며, 특히 재현성 위기 이후로도 한국 학술지의 연구윤리에는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 심리학계는 여전히 여러가지 왜곡에 더 취약하다.

 

사회심리학

한국에서 최초로 발간된 사회심리학 논문은 1958년 잡지 <사상계> 12월호에 게제된 이진숙의 '팔도인의 성격에 대한 선입관념'이란 논문이다. 이 문헌은 당대 한국인의 지역감정에 대한 연구로, 사람들이 각 지역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다뤘으며 너무 오래되어 지금은 학술문헌에서 찾기 힘들다. 이후 김성태가 4.19 혁명에 참가한 학생의 심리적 동기를 조사한 문헌이 있지만, 한국에서 최초의 사회심리학은 페스팅거 밑에서 수학한 정양은(1937-)이 서울대에 사회심리학 교실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한국 심리학에 실험을 도입한 선각자 중 한명이며 당시에는 대인지각, 기억, 태도, 공격성 등을 연구했다.

 

사회심리학 연구는 시간이 지나면서 덩치가 커졌고 마침내 1975년 사회심리학회가 한국심리학회 분과학회로 개설되고 이윽고 1982년 사회심리학만을 다루는 학술지를 창간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심리학은 외국의 연구경향을 따라가는 경향이 크지만, 80년대에는 과거 이진숙의 연구전통에 영향을 받은 후학들에 의해 지역감정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각주:57] 1993년부터는 사회문제연구학회가 창설되고 학술지 <사회문제심리>를 발간하면서 정치, 여성, 환경에 대해 연구하는 등 사회참여적 성격이 짙었다. 그러는 한편 사회심리학과 성격연구를 떼놓기가 힘들다는 서구의 추세를 반영하여 한국 사회심리학회도 '사회 및 성격심리학회'로 변경되었다.

 

동시에 서구의 문화심리학 패러다임이 한국에도 넘어오면서 한국인심리학에 대한 연구 경향도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 한국심리학회와 국제비교문화심리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 '개인주의-집단주의: 동서양 심리학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한편 한국인 심리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온 최상진[각주:58]은, 사회과학에서의 한국문화 연구가 체계적인 이론화나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가령 당시에 화병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화병의 주된 심리기제인 화에 대한 이해는 별로 진척되지 않았다.[각주:59]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최상진은 한국인의 심층심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자고 제안했고, 정과 한으로 된 심층심리와 이를 연결하는 우리성,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 방식인 체면, 눈치, 핑계, 의례성이 포함된 한국인 특성적 심리사회구조 모델을 제시했다.

 

최상진 이전에도 한국인의 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문학자나 문화인류학자에 의해 행해진 조사였기 때문에, 그 비체계성으로 인한 한계가 존재했다. 그러다가 심리학자 이수원이 90년[각주:60]에 정이 이해관계를 초월한 사회적 관계라고 주장했지만, 별다른 체계적인 모델은 내놓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을 최초로 설명하고 모델을 제시한 사람이 최상진으로, 그는 정을 '성격특질로서의 정'과 '대상지향적 정'으로 나누고 전자는 성격, 후자는 대인관계와 관련된 개념이라고 제시했다. 이때 정의 기본은 대상지향적 정이며, 사람들이 대상지향적 정과 관련된 경험이 풍부해지면 이러한 경험이 성격특질로서의 정으로 일반화된다는게 최상진의 주장이었다. 또한 정이 사람 간의 친밀함을 나타내는 지표이고,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다고도 최상진은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정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주는 것인 지향적인 상태이고, 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 타인에게 '정을 줄' 때 정이 가지는 심리적 효과가 커진다고 주장했다.

 

문화심리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발전이 이뤄졌다. 국내 1세대 사회심리학자가 해외에서 범죄심리학을 도입하면서 한국에 처음으로 범죄심리학이 시작되었다. 21세기에 한국 사회심리학의 주된 연구주제는 긍정심리학과 다문화이다. 서구의 영향을 받아 긍정심리학, 특히 행복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동시에 이민이 증가하여 다문화사회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다문화에 대한 연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H.M의 사례[각주:61]

헨리 모라슨(환자명 H.M)은 기억심리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사내이다. 그는 원래 정상인이었고 최소한 기억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릴적 자전거에 머리를 치인 이후 지속적으로 간질을 앓았고 27세가 되자 간질이 너무 심해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각주:62] 간질이 계속 심각해지자 결국 의사들은 뇌수술을 하기로 결심했고 마침내 1953년 좌우뇌의 해마와 근처 측두엽 부위를 절개하였다. 해마를 절개한 결과 간질은 극도로 줄어들었지만 대신 HM은 큰 병을 앓게 되었다.

 

그는 수술 이후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했다. 그의 아이큐는 정상이었고 언어능력도 일부만 손상되었으나[각주:63] 다른 문제가 있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나 익히 알고 있던 지식은 정상적으로 기억했으나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가 불가능했다.[각주:64] 특히 일화기억이 치명적이어서 그는 만난 사람, 방금 일어난 일들을 약간 동안은 기억했으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어버렸다. 그를 관찰하는 의사는 그와 면담할 때마다 자신을 새로 소개해야 했다. 현대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해마가 절개되어 단기기억 능력이 상실되었다.

 

다만 그가 잃어버린 능력은 외현기억 능력으로, 그의 암묵기억 능력은 정상이었다. 연구자는 그에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림의 선을 따라 선을 긋는 mirror-drawing task를 교육했는데, 그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신이 그 과제를 배웠는지 기억하지 못했지만 정상인처럼 mirror-drawing task를 숙달할 수 있었다. 어찌됬든 그가 외현기억 능력을 잃은건 사실이고, 이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이 HM을 대상으로 연구했고 기억에 관한 수많은 사실들이 발굴되었다. HM을 연구하면서 외현기억과 암묵기억의 구분이 제시되고 기억을 인출하는 기제가 기억을 저장하는 기제와 다르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기억심리학은 비로소 개화하여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기억을 다루는 대부분의 전공 서적에 HM이 언급된다. 한가지 슬픈 사실은 HM은 단기기억 상실로 인해 이 유명세를 알수 없다. 

 

비슷한 환자로 클라이브 위어링(Clive Wearing)이 있다. 위어링은 BBC에 소속된 작곡가이자 성가대 지휘자이다. 1985에 뇌가 부어오르는 질병인 encephalitis를 앓아 병원에 입원한 후 그는 병으로 인해 코마 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했고 이 과정에서 해마가 망가졌다. 위어링도 HM과 마찬가지로 단기기억이 불가능하지만 HM과 달리 그는 여전히 BBC에서 일하고 있다. 한편 또다른 뇌손상 환자 KF는 교통사고로 두정엽을 다쳤는데, HM과 달리 단기기억은 망가졌으나 새로운 기억을 습득하는게 가능했다. 그는 digit span 검사에서 항상 낮은 점수를 받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사실을 학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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