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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낙원을 위하여

과학주의자 2024. 3. 11. 22:02

많은 신화에서는 대체로 조화롭고 행복한 과거를 상정한다. 에덴동산 설화에서 원시공산주의 사회까지 많은 신화는 악이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이상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신화학에서는 ‘실낙원 의식’이라 한다. 이러한 실낙원 의식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학설은 존재하지 않으나, 심리학적으로 볼 때 실낙원 의식은 미화된 유년기 기억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행복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그 기억을 미화하고 다른 모든 과거 시간대로 확대 적용하면서 실낙원 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중 하나이다. 인간의 자존감은 어린 시절에 가장 높고, 이후 자라 현실에 부딫히면서 점점 하락한다. 또한 영아기 인간은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여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는 세상과의 일체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안정적인 애착을 구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세상은 따뜻하고 나를 위로하는 세상이다. 이 2가지가 결합되면서 유아에게 이 세상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이 두 가지는 당연히 나이가 들어 현실을 인식하면서 약해지지만, 아이들은 상상을 통해 부족분을 벌충한다. 동화 속 공주와 왕자 이야기, 마음을 가진 인형과 상상속 친구들, 만화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상상의 산물이면서도, 아이들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 빠져서 자존감을 대리충족하거나 따뜻함을 느낀다. 이러한 아이들의 낙원은 아이들이 자라 현실을 직시하면서 자발적으로 이를 포기할 때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그럴 만큼 자라게 되면,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낙원에서 추방한다. 동화 속 공주는 환상이고 이누야샤는 이제 그림일 뿐이다. 상상의 낙원이 제공하던 자존감과 따뜻함은 어린 시절과 함께 소멸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금 그 시절을 누리려고 노력한다. 이야기 속 용사를 잃어버린 우리는 할리우드 히어로에서, 위인의 성공담에서, 자신의 성공에서 자존감을 충족하려 한다. 인형 친구들을 잃은 우리는 연예인, 친구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대신 위로받고자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현실을 직시한다. 우리는 점점 우리가 보잘것없는 존재이고, 인생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박탈당한 자존감과 잃어버린 따뜻함을 갈구하면서도 인간의 한은 해소되지 못한 채 늙어 죽게 된다. 에스파냐의 극작가 우나무노는 ‘인생은 비극이고 죽음은 그 슬픈 결말이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잃어버린 행복을 영원히 포기해야 하는가? 우리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행복을 바라만 보며 죽어야만 하는가?

 

신화학에서는 저승이나 다른 이상향이 우리의 결핍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탈주술화가 시작되기 전 사람들은 닿을 수 없는 세상을 통해 잃어버린 '어릴 적의 이상향'을 대체했다. 물론 행복한 환상을 위해 근대문명을 버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서 관점을 약간만 전환한다면 어떨까? 우리가 낙원에서 추방되어 행복을 잃어버렸다면 다시 낙원을 되찾아오면 어떨까?

 

어린 시절 우리를 즐겁게 했던 동화속 공주, 요술지팡이를 휘두르는 마법소녀, 항상 신나는 모험을 제공하는 판타지 세상은 또다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 형태는 이미 늙어버린 우리에 맞게 변해야 하며, 엉성한 스토리와 유치한 결과는 좀더 정연하고 잘 만들어진 것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화와 소설이라는 형식을 유지하면서 그들이 다가온다면 우리는 다시금 잃어버린 낙원에 도달할 수있지 않을까? 우리가 현실에 지칠때, 바닥을 친 우리의 행복이 무언가를 갈구할 때 잠깐이라도 낙원에도 쉴 수 있다면, 우리는 차가운 현실에서도 예전과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유아퇴행을 경계할 정신의학자들과, 현실도피를 외칠 몇몇 자만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잃어버린 낙원, 우리의 아름다웠던 실낙원의 문을 다시 열어야 할 지 모른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시 환상속 세상에 빠져들고, 환상의 세계를 탐구하며, 세상의 탈을 쓴 거대한 판타지 속을 모험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은, 우리가 갈구했던 어린 시절이 지금 여기임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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