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저장고

다크 히어로, 혹은 자경단과 사적제재에 대한 옹호 본문

자료실

다크 히어로, 혹은 자경단과 사적제재에 대한 옹호

과학주의자 2024. 4. 30. 19:06

다크 히어로라는 용어가 생소할지라도, 다크 히어로의 예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경찰 대신 범죄자를 체포하는 배트맨이나, 법망을 빠져나간 가해자를 처단하는 비질란테가 다크 히어로의 예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혹은 현실에서 범죄자의 집을 테러하거나, 갑질로 논란이 된 가게에 온오프라인 상에서 공격을 가하거나, 자신의 돈을 훔쳐 달아다는 도둑을 잡아 경찰에 넘기는 사적제재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치안공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운영되는 자경단도 비슷한 경우로, 사실 다크 히어로는 모두 자경단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크 히어로와 자경단, 사적제재는 모두 법질서 이외의 영역에서 나름의 정의를 구현하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자력구제의 원칙을 실천하고, 법이나 행정적 원칙에 기초하는 대신 자신의 양심에 기초한다. 이들이 행동하는 근거는 절차에 따른 사회 대다수의 동의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근거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무고한 이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현행 법체계와 비교할 때 이들의 판단원칙은 유죄추정에 보다 가까우며, 그만큼 악한을 잘 처단하는 대신 무고한 피해 또한 발생하기 쉽다. 이러한 점이 사회 일반에서 이들을 비판하는 주된 이유이다. 특히 법치주의자들이 보기에, 자신의 애매한 정의를 위해 합의에 기초한 법질서를 위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원론적으로 법치주의에 동의하면서도, 이들 소위 다크 히어로들의 행동을 옹호하고자 한다. 마치 무정부주의자나 극단적인 사상가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필자는 법치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법치주의는 우리 문명의 근간이며, 많은 이들의 복리에 공헌하는 제도이다. 필자는 오히려 이러한 법치주의와 현대문명을 긍정하고, 다크 히어로가 법치주의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들을 옹호할 것이다.

 

 

맹점과 보완

일반적으로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들(특히 지식인)은 법치주의를 긍정한다. 법치주의는 권력의 폭정을 방지하고,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여, 기본권의 실현과 사회복리의 증대에 기여한다. 확실히 인치주의 시대나 무정부주의 시대에 비하면 법치주의 사회의 안정성과 생활수준, 인권 보장 모두 높다. 그러나 법원에 갇혀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법치주의가 완전무결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간 가해자는 여럿이 알려져 있다. 또한 법 자체로 인해 피해자가 양산되는 경우도 수도없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법치주의를 부정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제도는 결점을 가지고 있고, 맹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맹점이란 우리 눈에서 신경세포가 빠져나가는 통로로, 눈의 각지에서 시각정보를 습득한 시신경이 그 정보를 눈 밖으로 전달하는 지점이다. 이처럼 맹점은 우리 시각에 중요하지만, 정작 거기에는 어떠한 시신경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맹점이 위치한 곳은 보이지 않고, 맹점이 있는 곳에 맺힌 시야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시야에 검은 구멍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반대쪽 눈에서 들어온 정보를 통해 빈 부분을 채워넣기 때문이다. 맹점으로 인해 우리의 눈은 항상 시야에 놓치는 부분이 생기며, 오직 다른 눈을 통해서만 완전해질 수 있다.

 

임상심리학자 매들린 헤케는 자신의 저서 <블라인드 스팟>을 통해 맹점의 개념을 사회 저변으로 확장하였다. 불완전한것은 우리 눈만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제도, 우리의 문화에도 맹점은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문화권에서 보기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제도의 모순으로 인해 타국과의 경쟁에서 패하기도 한다. 헤케는 이러한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문화를 제안했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여러 개의 문화가 공존함으로서 서로가 가진 맹점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미 우리 사회는 이러한 보완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은 일견 서로 모순되는 듯이 보이지만, 그 둘이 함께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자유로우면서도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적대한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서 자본주의는 공산 진영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도 자본주의적 요소를 흡수하여 미국과의 경쟁이 가능해졌다. 사실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인 권력분립도 이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예에서 그렇듯이, 법치주의도 다른 대안을 통해 보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완으로서의 반법치주의

사실 자경단, 사적제재, 혹은 만화 속의 다크 히어로 등 이러한 '반법치주의' 세력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사회의 일부분은 비법치적인 질서에 의해 돌아간다는 사실은 인정할 것이다. 전세 제도는 아주 최근에야 법의 틀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한국인이 집을 구하는 하나의 약속이자 제도로 기능해 왔다. 사실 지금은 법의 틀에 들어와있는 어음, 환전, 심지어 화폐의 가치도 관련 법이 생기기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자본주의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사실 지금도 신용등급은 사회 대다수의 절차적 동의가 아니라 신뢰를 쌓은 일부 기업에 의해 매겨지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법치주의 밖에서, 혹은 법치주의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사회의 질서안정과 풍요에 기여해 왔다. 사실 법치주의는 이러한 질서와 풍요 위에서 세워질 수 있었다.

 

자경단은 지금이야 수많은 비난에 직면해 있지만, 수많은 세월동안 자경단 조직은 공동체의 안정은 물론 인류의 발전에도 기여해 왔다. 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마을 공동체를 통한 자체적인 해결이 사유재산권 확립이나 국가의 개입보다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해결하는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전근대사회에서 치안은 주로 소규모 공동체에 의해 유지되었고, 공권력이 정비된 현대에도 우범지대나 인간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는 공권력의 공백을 자경단 조직이나 무장한 개인이 매우고 있다. 비록 현대사회에서(특히 한국에서) 사적제재의 범위를 극히 제한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사적제재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 가게에 발생한 도둑을 잡아야 할 때, 범죄자에게 쫓기고 있을때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공적 권한이 없는 개인들의 도움으로 일차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그럼으로서 단지 법적 절차만을 기다렸다면 감내했어야 할 수많은 불행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특히 이러한 자경단의 예에 잘 부합한다. 이들이야말로 자신들의 문제(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서슴치 않고, 기성 법질서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 실제 공권력과 충돌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노동조합의 활동을 통해 노동자들은 보호받을 수 있었고, 오히려 이들의 활동을 발판삼아 노조를 인정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 이는 비단 노조의 경우만은 아니다. 전쟁을 위한 세금을 거부한 소로, 불복종 운동을 이끌었던 간디, 인종분리를 거부했던 킹까지 정말 수많은 사회운동가들은 사회 대다수의 동의가 반영되었다는 법을 어겼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독단을 비난하는 대신, 그들의 양심을 추앙한다.

 

반법치주의의 핵심적인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법의 바깥에서 폭력을 행했던 이들은 오히려 기존의 그릇된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데 공헌하기도 하였다. 불행히도 우리의 법은 느리고, 보수적이며, 법을 알만큼 똑똑하거나 그런 사람을 고용할 만큼 돈이 많은 자의 편이다. 때문에 민심이 법에 반영되어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매우 길거나 아예 그것을 기약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그럴때 우리는 사적제재, 비공식 규약과 이를 위한 자경단, 법치를 향한 폭력을 통해 그 간격을 매우고 사회가 새로운 법을 만드는 기간을 앞당겼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오히려 법치질서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도왔다. 노동조합의 격렬한 쟁의는 수정자본주의의 도입을 불러왔고, 이 수정자본주의의 도입을 통해 자본주의 진영은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버텨내고 승리할 수 있었다. 어음에서 노조까지 법치주의 사회는 오히려 반법치 세력의 도움을 통해 시대에 적응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이들은 법의 견제자이자 법의 동반자였다.

 

 

법치주의의 맹점과 보완

이것이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사적제재와 자경단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필자는 법치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반법치주의는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대신 오히려 법치주의의 유지와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좋다고 옹호하였다. 반법치 세력은 법의 바깥에서 사람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했다. 또한 법의 폭력에 맞서기도 하였고, 법의 변화를 이끌어 법치주의 질서의 발전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법치질서 못지않게 비법치적 질서에 의해 건설되었고, 앞으로도 그러한 질서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이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법치 세력을 법치주의를 위반한다고 무조건 공격하는 대신, 그들이 활동하는 맹점을 법으로 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디지털 교도소를 비난하는 대신 신상공개 제도를 활성화하고, 생계형 범죄자를 공격하는 대신 사회복지망을 확충하고, 철거민연합을 진압하는 대신 철거민 관련 제도를 정비할 수 있다. 혹은 현재 법의 빈틈을 매울 수 없는 곳에서 반법치적 질서를 용인하고 그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정당방위 제도는 위급상황에서의 사적제재를 규정하며, 현대 시위는 경찰의 보호 하에 계획된 장소와 인원으로 실시된다. 이렇게 법에 수용된 사적제재와 자경단 활동은 법을 위배하지 않으면서도 법치를 보호하는 위업을 동시에 달성하였다.

 

이 글의 첫 제목에 다크 히어로가 들어가는 이유는 반법치 세력의 대표적인 예시로 배트맨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만화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좋아하는 이들 중 일부는 배트맨이 법치 질서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 배트맨은 법이 외면한 고담 시민을 보호하여 치안을 세우고 법의 빈틈을 매웠다. 설사 배트맨을 비난하는 이들도, 배트맨이 없는 고담보다는 배트맨이라도 있는 고담에 살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법치를 내세우며 배트맨의 공로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배트맨과 함께 법의 빈틈을 매울 수 있도록 법의 발전을 도모하는 일일 것이다. 배트맨은 제거되어야 할 악이 아니라, 고담의 법치가 가진 맹점을 매워주는 또 하나의 눈이기 때문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