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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저장고
따뜻함주의 제안 - 인간적 따뜻함의 근대적 현황 본문
필자는 이전 글에서 따뜻함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따뜻함이 어느 정도로 충족되고 있는지, 잘 충족되고 있는지, 이전 시대에 비해 충족된 정도가 어떠한지 판단하는 것은 힘들다. 사람들이 따뜻함을 느끼는지 측정할 수 있는 지표는 현재로서 social support나 quality of relation, lonliness밖에 없으며, 앞의 2개는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시행할만큼 타당화되지 않았다. 외로움을 측정하려는 시도는 종종 있으나 그것 또한 국가간 비교를 할 만큼 정확한지 미지수이고, 역사가 짧아서 여러 시대를 비교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때문에 필자는 객관적인 근거를 통해 현 시대를 진단하는 대신, 다소 불명확한 추론을 통해서 현 시대에서 따뜻함의 충족을 진단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식은 특성상 객관성이 많이 떨어질 수 있으며, 정확한 설명과 예측을 도출하는 것에서도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따뜻함의 시간적/공간적 변천을 객관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서 있어 많은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적어도 장담하건데, 아래의 분석이 여느 인문학 담론과 비교해도 객관성과 사실성에서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자부한다.
이 글에서는 역사를 근대와 전근대로 나누고, 근대에서 따뜻함의 충족 여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근대화가 사람들에게 가지는 심리적 영향을 개괄하고, 전근대와 근대의 인간관계를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의 틀에서 비교한다. 이후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를 근대사회가 어떻게 대응했으며, 그것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논하고자 한다.
근대의 심리학적 이해
근대성에 대한 논의는 사회과학에서 널리 찾아볼 수 있지만 심리학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다. 심리학은 실제 인간을 대상으로 한 과학이고, 당연히 그 대상은 대부분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심리학에서 근대화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문화심리학에서만 간헐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문화심리학에서만 유일하게 비서구인, 즉 근대화가 덜 진행된 문화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화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심리학자들은 근대의 주요 특성으로 개인주의를 발굴해 냈다. 개인주의란 문화적 사고방식의 일종으로, 자신을 집단 및 세상과 분리된 존재로 보고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중시하는 사고방식 및 행동경향을 말한다. 개인주의자들은 우선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다른 무엇보다 중시한다. 이들에게 있어 세상은 여러 개체가 모인 집합체이고, 집단의 목표보다는 개인의 목표 중요하다. 또한 사회적으로 행동할 때 자신의 기준에 따르고, 자신에게 득이 되는 사람과 친하려고 하고 해가 되는 사람과는 관계를 끊는다.
여러 연구는 개인주의가 근대화와 관련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근대화가 진행된 국가는 개인주의가 강하고, 근대화와 관련된 여러 지표(인간개발지수, GDP, 자유 지수 등)가 클수록 개인주의도 강하다. 물론 이것이 근대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완벽한 개인주의자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고, 그들이 모든 면에서 개인주의적 면모를 보인다는 걸 의미하지도 않는다. 많은 근대시민은 타인과 관계맺기를 즐기고, 많은 상황에서 타인의 기준에 순응한다. 그러나 근대인은 전근대에 비해 더 강한 개인주의 성향을 보이고, 사회적 규범 또한 거기에 더 호의적이다.
근대를 이해하는데 있어 개인주의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개인주의 사회는 개인을 중시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모든 개인을 동등하게 대하려고 한다. 모든 사람은 중요한 '개인'이며,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중요한 '개인'으로서 평등하게 대우되어야 한다. 후술하겠지만 이에 따라 개인주의 사회는 모든 개인을 공정하게 대우하고, 그만큼 개인적인 특혜나 위로는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개인주의만큼 근대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성이 근대 특유의 현상은 아니지만, 근대에 두드러진 현상이다. 특히 현대로 올수록 불확실성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부모세대의 신기술이 지금은 구닥다리가 되었고, 20년전 음악이 '레트로'로 불리고 있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할때 불었던 중국어 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꺼졌고, 10년 사이에 셀럽의 자리를 유튜버가 대체하였다. 과학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경제는 빠르게 변화하며, 우리 삶의 안정성도 그만큼 불안하다.
근대의 높은 불확실성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 정도는 어쩌면 개인주의보다 더 클 수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을 싫어하며, 특히 자신과 관련된 영역에서의 불확실성을 더욱 싫어한다. 불확실성을 경험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고, 위협감을 느끼며,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행동을 시행한다. 그렇다면 지속적인 사회변화가 일반화되고 기본적인 삶의 안정성도 흔들리는 지금 시대에는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위협감, 대응이 더 많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개인주의와 불확실성은 근대인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많은 요소(가령 지능 상승)가 현대인의 심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히 근대인은 이전보다 개인주의화되었으며, 더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조상은 마을 안에서 평생 농부로 살았지만, 우리는 핵가족이나 1인가구로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에 취업하고 안할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차이는 아래에 서술할 인간관계 양상의 변화와 맞물려 여러 현상을 일으킬 것이다.
전근대와 근대의 인간관계
근대적 인간관계가 전근대와 다르다는 주장은 근대가 시작되던 때부터 나타났다. 사회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철학자 퇴니스는 인간관계를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로 나누었다. 게마인샤프트는 가족, 마을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소속되고, 구성원 상호간의 애정을 통해 유지되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게젤샤프트는 회사, 정당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조직하거나 참여하고, 구성원 각자의 이익에 의해 유지되며, 조건이 맞으면 언제든지 해체될 수 있다.
전근대와 근대의 기본적인 차이는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의 차이로 봐도 무방하다. 전근대사회의 주된 인간관계는 게마인샤프트고, 근대사회의 주된 인간관계는 게젤샤프트이다. 물론 근대에도 친구나 동호회처럼 많은 인간관계가 게젤샤프트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전근대에도 군대나 조정처럼 게마인샤프트 조직이 존재했다. 그러나 전근대의 많은 사람들은 가문이나 마을 공동체에서 주로 살아갔으나, 현대인은 회사나 학교처럼 게젤샤프트적 조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차이는 인간관계의 형태와 영향에서 여러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전근대의 인간관계
전근대사회의 인간관계는 지리와 시간에 따라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현대보다 안정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의 전근대인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혈연 공동체의 성격이 강한 마을 공동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이후에는 마을을 구성하는 여러 명의 성인에게 공동 양육되었고,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마을에서의 지위와 의무가 부과되었다. 많은 경우 전근대인은 자신이 태어난 바로 그 마을에서 죽었으며, 친구와 배우자, 자식 모두 마을 공동체에 속했다.
이러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집단주의를 발달시킨다. 전근대사회의 마을 공동체는 협소한 범위의 고정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들이 긴밀히 협동해야 했다. 이런 경우 인간관계의 목표는 협력관계의 도모와 유지가 된다. 그러기 위해 사람들은 집단 내부의 조화를 중시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규범을 발달시키며, 동시에 서로에게 강한 의무를 부과한다. 이를 통해 마을 공동체는 집단을 중시하고, 서로의 마음을 세심히 배려하면서, 동시에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규범을 준수하도록 강요하는 문화를 발달시킨다.
이러한 사회는 여러 특성을 가지는데, 여기서는 그 중 2개를 주목하고자 한다. 전근대사회에서는 인간관계가 안정적이다. 많은 전근대인은 인생의 대부분을 부모와 함께 보낸다. 친구와 배우자는 높은 확률로 마을 내부에서 형성되며, 역시 높은 확률로 죽을때까지 유지된다. 물론 전근대사회의 높은 사망률로 인해 그러한 관계가 쉽게 깨질 수는 있지만, 적어도 마찬가지로 짧은 개개인의 기대수명에 비추어 볼 때 친구관계와 가족관계가 장기간 유지되었다. 전근대사회에서 한번 친구는 죽을때까지 친구였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시도 가족과 떨어지지 않았다.
또한 많은 전근대사회는 개개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여러 행동과 규범을 발전시켰다. 대부분의 집단주의 사회는 비언어적 단서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고 배려하도록 하는 눈치 규범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집단주의 사회의 규범은 잦은 사람간 접촉을 장려했고, 가족과 같은 정을 나누도록 하여(특히 혈연공동체라면) 사람들 간의 정서와 여론의 공유가 용이하게 하였다. 특히 한국에는 술자리와 같은 특정 조건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받도록 하는 규범 또한 존재해 왔다.
마을 공동체에서 공유하는 단일한 정체성도 상호간의 정서 교류에 기여하였다. 전근대의 대부분의 마을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비슷한 사람으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서로 비슷한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기 수월하고, 서로 좋아하고 맺어지며 관심과 지지를 주고받기에 수월하다. 특히 전근대 마을에서 사람들은 관심사와 의견을 상당부분 공유하였는데, 그렇지 않으면 마을에서 고립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통성은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맺어지는 비용을 줄여주었다.
관계성 욕구의 측면에서 볼 때, 안정적이고 끈끈한 인간관계(게마인샤프트)는 따뜻함을 제공해주기에 용이하다. 게마인샤프트적 인간관계는 안정적이고, 서로 다가가기 쉬우며, 의무나 이득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결속되어 있다. 때문에 이들은 서로 따뜻함을 주고받기 용이하다. 농촌에서 태어난 농부 한스는 한평생을 자신의 친구와 가족과 함께 살았으며, 서로를 놀랄만큼 잘 알고 관심을 가져주었다. 스트레스 사건이 발생하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온 마을이 다 알았고, 한스는 친구와 가족,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이해와 위로를 받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다만 전근대가 인간관계의 천국이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개개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규범도 존재하지만, 집단과 집단에서 주어진 규범을 강하게 중시하는 부분 또한 존재한다. 이해와 위로는 집단에 속해있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었으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집단에서 추방되는 경우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는 물론이고 간혹 물리적으로도 고립을 당해야 했다. 전근대인에게 규범과 눈치는 법이었고, 거기에는 철저한 위계 또한 포함되었다. 강한 의무와 위계의 존재로 인해 전근대인은 인간관계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고, 지금도 그러한 스트레스가 집단주의 문화에 만연해 있다고 여겨진다.
근대의 인간관계
근대인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환경은 전근대인과 상당히 다르다. 대부분의 근대인은 도시에서 태어난다. 도시는 대규모의 유동적인 인구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그 중 절대다수는 혈연으로 이어져있지 않다. 얼굴 한번 못본 대규모의 타인 속에서 태어난 근대인은 먼저 부모에게 양육되다가, 유년기의 상당 시간을 해마다 인간관계가 교체되는 학교에서 보내게 된다. 성인이 되면 그는 스스로 진로를 정해야 하고, 진로가 어떻게 결정되든 대부분 회사에서 성인기를 보내게 된다. 어느 회사에서 어느 일을 할지는 불확실하고, 어떤 사람과 만나 얼마나 이어질지 역시 불확실하며,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도 불확실하다.
이러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개인주의를 발달시킨다. 근대사회의 도시는 수많은 유동적인 개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로 다르고 독립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경우 인간관계의 목표는 자신의 물질적/심리적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사람들은 개인의 가치관과 결정을 중시하고, 개개인을 공정하게 대우하는 규범을 발달시키며, 집단의 암묵적 규범보다 개인의 의사와 개인들의 합의(법)를 중시한다. 이를 통해 근대는 관계보다 개인을 중시하고, 배려보다 공정을 강조하며, 사람들이 이익에 따라 쉽게 관계를 맺고 끊는 문화를 발달시킨다.
이러한 사회는 여러 특성을 가지는데, 여기서는 그 중 2개를 주목하고자 한다. 근대사회에서는 인간관계가 불안정하다. 근대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관계는 몇시간 안에 끝나고, 장기적 관계라고 해도 이익 여하에 따라 언제든 끊어진다. 물론 근대에도 가족과 친구처럼 이익이 아닌 애정으로 형성된 관계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근대인은 성인이 되면 가족에서 분리되고, 친구는 지리적 길이와 생업의 불일치로 인해 이전보다 상당히 취약해진다. 전근대의 농부 한스는 40년의 생애동안 같은 가족과 친구와 함께 살았지만, 근대의 회사원 존은 80년의 생애 동안 수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는다.
또한 근대사회의 인간관계는 배려보다 공정을 중시한다. 과거에 배려로 여겨졌던 많은 행동들, 가령 덤 얹어주기나 편의 봐주기, 편들어주기 등은, 공정하지 않은 행위로 여겨져 배척당한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공적인 장에서 모든 사람들은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현대윤리학과 법학은 특정인만을 대상으로 한 애정과 특혜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한 편파적 행위는 반드시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어야만 한다. 근대사회에서는 적선보다 기초생활비가, 개인적 위로보다 심리상담 바우처가, 편들어주기보다 법률구조공단이 선호된다.
다양한 정체성 또한 근대사회의 특징이다. 근대사회는 개개인의 가치와 독립성을 중시하며, 전근대와 달리 개인의 명확하고 독특한 주관이 장려된다. 여기에 사회의 세속화와 과학 및 철학의 발달은 사회에 다양한 의견과 이데올로기를 생성하였고, 여기에 전반적인 지능의 증가가 결합되어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과거에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관심사와 의견을 공유했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진 관심사와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관계성 욕구의 측면에서 볼 때, 유동적이고 차가운 인간관계(게젤샤프트)는 따뜻함을 제공해주기 힘들다. 게젤샤프트적 인간관계는 이익으로 맺어졌기 때문에 인간적인 이해나 위로를 요청하기 힘들고, 그마저도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해체될 수 있다. 이러한 인간관계에서 따뜻함을 제공받기는 힘들다. 자신의 회사 동료에게 사랑해달라고, 같이 있어 달라고, 관심을 달라고, 공감 달라고, 위로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부탁해보라. 그 요청에 응해줄 친구가 조금은 있겠지만, 대부분은 '회사는 그런 곳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회사는 가족이 아니다. 이 말만큼 근대를 잘 보여주는 말은 없다. 회사와 다른 많은 근대사회의 인간관계는 이익을 위해 일시적으로 형성되었으며, 거기서 따뜻함을 얻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당신은 친구와 가족에게서 그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친구관계는 각자의 사정에 의해 언제 해체될지 모르고, 가족 역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따뜻함을 제공해주기에 힘들다. 하나의 거대한 애정공동체였던 전근대의 마을 공동체와 비교할 때, 근대의 인간관계는 너무 협소하고 불안정하며 제한적이다. 그만큼 따뜻함을 제공받기는 힘들 수 있다.
근대의 대응과 실패
앞서 말했듯이 따뜻함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며, 사람들을 그것을 얻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따뜻함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는 근대사회에서는 따뜻함을 얻고자 하는 충동이 더욱 강할 것이다. 그러한 충동은 근대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사실 필자는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 서술하겠지만, 리버럴과 다시 부활한 전체주의 또한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이 어떠하든, 근대는 살아남았다. 2차 세계대전은 반파시즘 진영의 승리로 끝났고, 냉전은 자본주의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만약 근대사회에 따뜻함이 결여되었다면, 근대는 시민들의 반란으로 무너지고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그 빈 자리를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근대사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따뜻함의 제공에 성공하였다고 봐야 합당할 것이다.
핵가족
무엇이 근대인에게 따뜻함을 주었을까? 다음에 제시할 후보들은 필자의 가설이지만, 이 항목만큼은 다른 학자들의 동의를 얻으리라고 자신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가족, 특히 핵가족은 우리에게 따뜻함을 제공해주는 주요 원천이다. 앞서 필자는 회사에서 얻지 못하는 따뜻함을 가족에서 얻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 그대로 현대인은 과거에 사회에서 받았던 사랑과 공유, 관심, 공감, 위로, 도움을 지금은 받지 못하지만, 여전히 가족에게는 그것을 부탁할 수 있다.
심리학자 바우마이스터(Baumeister)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가족이 보살핌과 애정의 공간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과거에 가족은 일종의 작업공동체였고, 다른 장소보다 특별히 사랑이 가득하다고 볼 여지가 적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가족은 따뜻함의 표상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 정점이 되었고, 아버지도 돌아온 탕아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부모가 되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여겨지고 있다. 가정에 대한 담론에서 가정은 많은 경우 안락한 장소로 여겨지고, 따뜻함의 표상 또한 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모든 가족이 따뜻함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많은 근대인은 장기간 지속되는 가족 공동체 내에서 따뜻함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사실 가족치료에서 주로 논의되는 가족 문제도, 가족 구성원에게 비현실적인 따뜻함을 요구하여 발생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제도를 통해 근대인은 가족이라는 쉘터에서 따뜻함을 제공받을 수 있었고, 가족의 품에서 근대를 헤쳐나갈 수 있었다.
대안공동체
개인주의 사회의 도래는 인간관계의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사람과 빠르게 친해질 필요가 있다. 실제로 개인주의자는 일반적으로 모르는 타인과 더 쉽게 친해지고, 관계를 쉽게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개인주의자의 인간관계는 집단주의자와 달리 자신의 호감에 기초하는 경향이 강하며, 마음이 맞는 사람으로 자신의 인간관계를 채울 가능성도 더 크다. 이러한 특성은 취미단체나 정치결사 등 대안공동체의 잦은 형성으로 이어졌다.
취미공동체와 정치결사는 아주 근대적인 현상이다. 전근대사회에서 사람들의 취미는 마을 공동체에 의존적이었고, 정치결사는 많은 경우 불법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도래하고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무수한 이데올로기와 취미가 등장하였다. 적지 않은 현대인은 어떠한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며, 정기적으로 만나 활동과 사고, 정서를 공유한다. 특히 일본과 서구에는 이러한 취미 문화가 매우 발달하여, 삶의 의미를 취미에서 찾는 사람들을 통해 매우 다양한 취미활동이 나타난다. 정치결사는 다소 결이 다르지만, 인간관계의 측면에서는 비슷한 기능을 보인다.
이러한 대안공동체는 핵가족과 마찬가지로 따뜻함을 제공하기에 용이하다. 사실상 게마인샤프트인 이러한 단체는 근대인에게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를 제공하고, 장기적이고 친밀한 인간관계의 형성을 돕는다. 취미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쉽게 찾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따뜻함을 제공받을 수 있다. 다른 후보와 비교할 때 이 방안은 가장 근대적인 따뜻함의 제공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
복지는 따뜻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복지는 개별 개인이 아니라 조건에 부합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주어지며, 공유와 관심, 이해, 위로가 결여되어 있다. 그럼에도 복지는 근대인의 행복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복지는 개인의 삶의 최저한을 보장하여 삶의 안정성을 보장한다. 노동조합은 경제생활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기초생계비와 의료보험는 생존의 위협을 경감시켜준다. 또한 근래에 실시되고 있는 친노동형 복지는 사람들이 사회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은 모두 위의 3가지를 발전시켰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핵가족 제도가 보편적으로 정착되었고, 기본적인 복지 또한 마련되었다. 그리고 취미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활동도 많아졌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서 불확실성이 경감될 수 있었고, 삭막한 사회에서 따뜻함을 구할 피난처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피난처는 피폐해진 사회인들의 피난처인 동시에 근대이성의 피난처였다.
대응은 어떻게 실패하였는가
만약 근대의 대응이 완벽했다면 이 글이 쓰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일부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20세기 중반의 안정된 사회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확실히 이러한 대응이 잘 먹혔다는 점에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근대는 여러 방안을 통해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발흥을 막아냈고, 인권의 증대와 경제적 자유를 꽃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은 90년대부터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10년대부터 다시금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는가? 만약 위의 3가지를 통해 근대가 따뜻함의 제공에 성공했다면, 반대로 근대의 실패는 위의 3가지 방안이 잘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위 3가지 방안의 기본적 토대가 허물어지지는 않았지만, 필자는 3가지 방안 모두가 20세기 후반부터 잘 작동하지 못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저 중 핵가족과 복지는, 20세기 후반에 출현한 신좌파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제도이다.
복지는 가장 큰 타격을 맞은 제도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균형재정과 시장을 외치면서 복지를 공격적으로 삭감하였고, 그 결과 거의 복지 붕괴에 가까울 정도로 복지가 축소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장되던 삶의 최저한이 무력화되었고, 사람들은 다시금 경제적 불안정성에 처하게 되었다. 비록 신자유주의 이후에도 여러번 호황(클린턴, 오바마-트럼프 시기)이 찾아왔지만, 복지의 부재로 인해 경제적 불확실성은 전혀 해소되지 못했다.
핵가족은 신좌파 이데올로기가 확산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페미니즘을 필두로 온갖 비판 이론이 담론을 장악하면서, 단란한 가정이라는 이미지는 비판과 해체의 대상이 되었다. 가족은 애정이 아니라 권력투쟁의 장소로 바뀌었고, 이혼이 해방으로 제시되었다. 그 결과 20세기 후반부터 이혼율이 급증하였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1인가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신좌파 이데올로기는 가족 해체로 이어졌다. 그리고 따뜻한 보금자리인 가족이 불안정한 협상의 장소가 되면서 안정적인 따뜻함의 제공이라는 핵가족의 기능도 약화되었다.
대안공동체는 가장 약한 타격을 입은 방안이다. 적어도 필자가 알기로 대안공동체는 21세기에 들어 더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약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가지 간접적인 요인이 대안공동체의 형성을 방해했을 가능성도 있다. 일련의 경제위기로 야기된 중산층의 약화는, 취미의 기반이 되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약화시켰다. 또한 불황과 정치적 극단화로 인한 사회적 신뢰의 저하가, 서로 모르는 타인이 공동체를 형성할 유인을 약화시켰을 수 있다. 취미의 형태가 여럿이 즐기는 취미에서 혼자 즐기는 취미로 변하고 있는 것 또한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무엇보다 대안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소수였기 때문에, 대안공동체를 통한 따뜻함의 제공은 현재 시점에서 한계가 있다.
신자유주의와 신좌파가 득세하면서 따뜻함을 제공하기 위한 근대의 노력은 약화되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복지가 사라지면서 중산층이 약해지고 경제적 불확실성이 증대되었다. 이는 불확실성의 증가와, 취미 기반의 약화, 사회적 신뢰의 저하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파급을 감당하기에 대안공동체는 아직 작았으며, 핵가족은 신좌파의 공격으로 사실상 해체되었다. 그 결과 현대인은 따뜻함을 제공받는 일이 힘들어졌고, 현대의 불확실성과 스트레스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나
글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사회 전반의 따뜻함을 측정할 방법은 적다. 그러나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외로움이 증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그러한 외로움의 증가가 근대의 본질적 현상이며, 서로 잘 아는 폐쇄적이고 끈끈한 게마인샤프트가 이익에 따라 합치고 흩어지는 게젤샤프트로 대체되면서 발생한 필연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우리는 핵가족과 복지, 대안공동체를 통해 불확실성을 경감하고 따뜻함을 제공받았지만, 신자유주의와 신좌파로 인해 그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다.
여러 제도적 해결책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사상적이고 문화적인 해결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것은 이 글을 쓰는 목적이기도 하며, 공이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필자의 주장에 따른다면, 실제로 시도되었던 방안이다. 우리 시대를 주름잡고 있는 2가지 이념, 리버럴과 대안우파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향력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 그 동력에는 이들이 근대의 문제를 부분적으로라도 해결했고, 일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제공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고, 어떻게 성공했으며, 그럼에도 어떻게 실패했는지가 다음 글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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