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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시대 총설

과학주의자 2026. 6. 21. 16:30

사회보험 시대에 주요국가들은 사회보험을 도입했지만, 모든 나라가 동일한 정도로 도입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정책의 형태도 나라마다 달랐고, 사회보험 이상으로 쉽게 확대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급변하여 대규모 복지 체계가 도입되면서 복지국가 시대가 시작되었다.

 

 

1.복지국가

복지국가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복지국가는 광범위한 사회보장 정책을 통해 국민의 가난과 경제적 불평등, 산업재해, 실업 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체제를 말한다. 기본적으로 복지국가는 수정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적 삶에 기초한다고 여겨지는데, 이러한 견지에서 일부 학자는 미국 정부가 개인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며 미국을 복지국가라고 부르기 거부하기도 하였다.[각주:1] 더 명확한 정의는 늘 그렇듯 학자들마다 다르며,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각주:2]

 

  • 윌렌스키(wilensky): 복지국가의 핵심은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수입, 영양, 건강, 주택, 교육을 보장하는 것이며, 이는 자선이 아니라 권리의 충족이다. 
  • 헥셔(heckscher): 복지국가는 자국에 거주하는 사람의 삶에 집합적 책임을 지는 국가로, 복지국가는 빈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빈곤에 처한 국민을 위해 적절한 사회보장을 제공한다.
  • 미쉬라(mishra): 복지국가란 국민의 삶에 최소한의 기준(national minimum standard)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책임을 제도화한 것이다.
  • 코르피(korpi): 복지국가는 민주주의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보장을 갖추고 있으며, 상대적 빈곤의 감소와 결과적 평등의 실현 정도가 복지국가의 발전 정도를 보여준다.
  • 에스핑-안데르센(esping-andersen): 복지국가의 정도는 사회권이 탈상품화된 정도를 의미한다. 에스팅-안데르센은 이에 따라 복지체제를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회민주주의로 구분하였다.
  • 이준상과 동료들[각주:3]: 복지국가는 1)산업화에 의한 경제적 불평등, 빈곤, 산업재해, 실업 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국가이고, 2)정치에서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며, 3)정부가 모든 국민의 최저수준 이상을 보장한다.

 

복지국가라는 단어는 빈민법 시대 공공복지를 의미하는 commonweal과 19세기 독일의 wohlfahrtstaat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지금과 같은 의미로 등장한 것은 30년대 후반 영국의 대주교 윌리엄 템플이 저서 <시민과 성직자>에서 영국의 복지 체제를 나치의 '전쟁국가'와 대비시키면서였다.[각주:4] 이러한 의미부여는 이후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더 명확해졌다.

 

복지국가의 형성 배경에 대해 학자들은 주로 경제적 요인, 정치적 요인, 국가 요인이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있다. 수렴이론에서 보듯 경제구조의 변화는 복지 제도의 형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참정권 확대와 노동자 계급의 조직화도 복지국가 형성에 기여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요인은 국가의 자체적인 역사적 경험과 국가의 사회구조 및 성격과 함께 작용하여 복지국가 형성에 기여한고 여겨진다.

 

노동자의 조직화와 정치화는 복지국가를 낳은 주요한 정치적 요인 중 하나이다. 20세기 초부터 급격히 조직화된 노동자 계급은 정치권에도 프록시를 두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노동자의 강한 지지를 받았고,[각주:5] 반대로 집권한 사회민주주의 정당 또한 노조에 협조적이었다. 노조의 권력 증대는 복지국가를 이끈 또 하나의 축이었다.[각주:6] 여기에 60년대부터 활발해진 민권 운동 또한 복지국가의 유지에 기여하였다.

 

복지국가의 시초는 기본적으로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로 여겨진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영국뿐만 아니라 스웨덴 등 다른 유럽에서 영향을 끼쳤고, 미국도 여기에 일부 영향을 받았다. 반면 독일은 이전의 사회보험 체제가 전후 복지국가 체제의 주요 토대가 되었고, 프랑스 또한 혁명 전통에서 자라나온 나름의 복지 전통이 사회보장제도의 기초가 되었다. 

 

 

2.뉴딜과 사회보장법

대공황이 일어나자 미국인의 20%는 사회복지에 의존했다.[각주:7] 그러나 당시 미국의 복지 체제는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없었다. 미국의 사회복지는 민간 사회복지기관이 감당하고 있었는데, 이들 또한 대공황의 여파를 맞아 1/3이 자금 고갈로 운영을 못하고 있었다. 대통령 후버는 이런 상황에도 계속 자유방임주의를 주지하며 사태를 방치했다.[각주:8] 그 결과 후버는 재선에 실패하고, 뉴딜을 추진한 루스벨트가 본격적인 복지 정책을 도입하였다.

 

루스벨트는 1934년 6월 8일 경제보장위원회(Committee on Economic Security, CES)의 권고에 따라 사회보장법을 제안하였다. 이 법은 자본가의 반대로 부침을 겪다가 7개월 후 의회를 통과하고 35년 8월 14일에 발효되었다.[각주:9] 이 법은 소련(18년)을 제외하면 서구에서 최초로 '사회보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법이며, 사회보험을 넘어 공공부조와 사회복지서비스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복지 입법이었다.

 

사회보장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사회보장법은 1)연방정부에서 노령연금을 담당하고, 2)주정부가 실업보험을 운영하고 연방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며, 3)노인부조, 시각장애인부조, 빈곤아동부조 등 공공부조도 마찬가지로 연방정부의 재정지원 하에 주정부가 운영하고, 4)사회복지서비스도 주정부가 운영하고 연방정부가 보조하도록 하였다. 다만 여기 의료보험은 포함되지 않았고, 농부와 임시노동자, 비영리조직 근로자, 자영업자 및 주부와 같은 비경제인구는 포함하지 않았다. 또한 사회보장급여액의 최저수준도 규정되지 않았다. 이 법을 통해 실업자와 노인 및 빈민에게 현금이 지급되어 가난을 해소할 수 있었다.

 

사회보장법은 가난의 책임이 국가에 귀속되고 사적 복지를 공공복지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복지입법과 차이가 있었다.또한 자산조사를 제외하면 구제를 결정하는 기준이 없었는데, 수급자격과 급여 수준, 공공근로 여부를 사회복지사에게 결정하게 하여 국가와 따로 놀던 사회복지사를 본격적으로 국가의 복지 체계에 편입하였다. 사회보장법은 이후 다른 국가에도 널리 퍼져나갔으며[각주:10] 복지국가 시대의 효시가 되었다.[각주:11]

 

 

3.영국의 복지국가

미국의 복지국가 체제가 대공황으로 완성되었다면, 영국의 복지국가 체제는 2차대전으로 완성되었다. 대공황을 겪은 영국은 적용범위가 제한적인 빈민법과 국민보험으로 대공황의 여파를 전부 막아낼 수 없었다. 이에 26년 총파업 등 노동자의 반발이 거셌고 노동당이 두번에 걸쳐 집권하였다. 거기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계급투쟁이 약해지고 국가가 사회에 개입하는 것이 매우 당연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무르익어 2차대전기 거국내각은 복지국가 체제의 초석을 다졌고, 종전 후 애틀리 내각을 필두로 이를 현실화하였다.[각주:12]

 

이미 28년부터 <미망인, 고아 노령연금법>이 제정되어 사회보험의 적용범위가 확대되었고, 38년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대상자가 되었다. 위험보장의 범위도 거의 대부분의 위험을 커버할 정도가 되었다. 처칠 내각은 초중등 교육의 무상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러면서 기존의 사회보험 체제로는 복지를 통제할 수 없을만큼 복지 제도가 복잡해졌다.[각주:13] 이후 노동당의 애틀리가 총리로 취임하자, 그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를 작성하며 서유럽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졌다.[각주:14]

 

베버리지 보고서는 41년 6월 영국노총에서 전시 거국내각의 무임소 장관으로 전후 사회재건을 담당하던 그린우드(greenwood)에게 압력을 가해 만들어진 배버리지 위원회에서 발간되었다. 베버리지 위원회의 목적은 이미 폐지된 왕립노동자보상위원회의 업무를 계승하고, 전쟁 전에 진행중이던 의료보험 정비를 마무리하며, 재무부가 개전 직후부터 거세진 가족수당에 대한 요구를 위원회 활동을 통해 무마하려는 것이었다.

 

그린우드는 '사회보험 및 관련 서비스에 관한 정부부처 간 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부처의 고위관료를 위원으로 임명하였다.[각주:15] 또한 워원회 외부의 페이비언협회와 지방정부, 노조, 경영자 단체, 여성단체, 기타 이익집단, 개인전문가의 자문 또한 구했다. 베버리지 위원회는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규칙, 검토할 내용의 범위와 권고 내용 등 운영에 대한 거의 전권을 의장에게 부여하였다. 

 

그린우드는 의장을 런던정경대 학장을 그만두고 노동부 촉탁으로 일하고 있던 실업보험 전문가 베버리지로 임명하였다. 베버리지는 식민지 인도의 랑푸르에서 판사로 있는 아버지와 전직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옥스퍼드의 balliol 칼리지에 입학하였는데, 수학과로 입학했던 그는 법학과로 전과하면서 옥스퍼드 학파의 일원이 되었다. 이후 변호사로 일하다 모닝포스트의 기자로 전업했고, 그러면서 노동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초기에 재무부는 위원회의 활동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보고서도 종전 후에나 발간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베버리지는 반대로 거의 기존의 모든 사회복지 제도를 다루고자 하였고, 아예 전후 재건의 청사진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에 각 부처에서 파견된 관료 위원들이 반발했으나, 베버리지는 반대를 무릅쓰고 혼자 보고서에 서명하여 42년 12월에 발간하였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내용과 영향

베버리지 보고서는 소수파 보고서의 영향을 받아, 기존의 복잡하고 산만한 사회보험들을 하나의 복지국가 체계로 통합하라고 권고하였다. 또한 선례의 참고와 함께, 사회보험 구상이 종합적인 사회개량의 일환으로 계획되어야 하고 국가와 개인의 협력을 통해 달성되어야 하며, 국가는 자산조사 없이 국민의 최저(national minimum, 국민최저한)를 보장해야 한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사회보장을 국민의 권리로 공식적으로 천명하여 영국인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각주:16]

 

베버리지 보고서는 향후의 사회보장계획에 대해 3가지 원칙을 천명하였다.

 

  1. 어떠한 제안도 이해관계자 집단에 의해 제약받아서는 안된다.
  2. 사회보험은 욕구(want)에 대한 공약을 뿐이다. 질병, 무지(ignorance), 불결(squalor), 태만(idleness)은 사회보험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를 위해 더 큰 사회진보 계획이 요구된다.
  3. 사회보장은 정부와 민간의 협력에 기초한다. 따라서 국민이 national minimum을 초과하는 삶을 살기 위한 인센티브나 기회, 책임감을 국가가 저해해서는 안된다.[각주:17] 이는 사회주의를 반대했던 베버리지의 의도가 반영되었다.[각주:18]

 

베버리지 보고서는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보장의 6개 원칙과 6개 대상자층, 그리고 8개의 욕구를 제시하였다. 사회보장의 6개 원칙은 아래와 같다.

 

  • 충분한 급여(adequacy of benefits): 급여는 일상을 영위하기에 충분해야 한다.
  • 정액급여(flat rate of benefit): 급여 수준은 소득에 상관없이 동일해야 한다.
  • 정액갹출(flat rate of contribution): 갹출액도 소득에 상관없이 동일해야 한다.
  • 통합 행정(unification of administrative responsibility): 사회보장 정책의 운영은 지방에 사무소들을 둔 단일한 사회보험 금고가 담당해야 한다.
  • 포괄성(comprehensiveness): 복지는 공공부조와 사회보험 및 사보험을 포함한 각종 방법으로 달성해야 한다
  • 분류화(classification): 사회보장의 대상은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그에 맞는 보장이 제시되어야 한다.

 

마지막 원칙에 따라 베버리지 보고서는 복지의 대상을 피고용자, 자영업자, 전업주부, 기타 노동인구, 취업전 청소년, 노동불가 고령자로 나누었다.[각주:19] 그리고 라운트리 조사를 참고하여 이들이 어려움에 처하는 8가지 원인을 제시하고 각각에 맞는 보장 정책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였다.[각주:20]

 

  • 실업-실업급여
  • 장애-장애인 연금
  • 생계수단 상실-직업훈련 급여
  • 은퇴-연금
  • 기혼여성의 욕구-결혼수당, 출산수당, 미망인수당 등
  • 장례-장제비
  • 유아-아동수당
  • 질병-치료 및 재활지원

 

베버리지 보고서는 사회 전체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보험이 빈곤에 대한 합리적 대책이고 중앙정부가 이를 지휘해야 한다는 베버리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노동계는 베버리지의 갹출제 사회보험과 관료주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였고, 일부 기업인은 기업경영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리적 보완책이 될 수 있다며 이를 지지하였다. 처칠을 중심으로 한 정부 관료들은 이것이 전쟁 동력을 낭비하지 않을지 걱정했지만, 사회복지의 확대라는 당시 시대적 추세에는 큰 틀에서 동의하였다. 좌파는 베버리지 보고서의 보편주의 함의에 찬성했고, 우파는 반대하였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주장은 전후 애틀리 내각에서 실현되었다. 전후 치러진 첫 선거에서 노동당은 연정을 개고 처칠의 보수당과 경쟁하는 모험수를 두었는데,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위협 아래 서로 정치적 동맹관계에 놓인 노동자와 중산층의 표가 노동당으로 몰리면서 노동당은 당선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노동당이 생산수단 국유화가 아닌 재분배를 표어로 내건 덕도 있었다. 새로 집권한 노동당의 애틀리 내각은 지지자의 의사를 반영하여 대대적인 복지입법을 추진하였다.[각주:21]

 

베버리지 보고서는 복지국가의 초석이 되었지만, 그 내용이 원안 그대로 반영된 것은 아니었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소득에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천시했지만, 이후에는 그것이 실질적으로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운다는 비판이 있었다. 같은 돈이라도 그 무게는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이후 조세는 누진세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옮겨갔으며 연금도 소득연계 형태로 변했다.[각주:22] 한편 베버리지 보고서에 따라 영국은 의료비를 전면 무료화했는데(NHS), 이로 인해 의료비가 폭증하자 정부는 이후 일부 부문에서는 본인이 의료비를 부담하도록 조치하였다.

 

 

4.복지국가의 전성기

2차 대전 종전 후 복지국가 체제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기조가 되었다. 70년대까지 서구 선진국들은 복지와 완전고용을 근간으로 하여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였다.[각주:23] 시민권 이론의 주창자 토마스 마셜은 복지국가가 보수주의자는 물론 자유주의자와 급진주의자, 온건 사회주의자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는 복지국가에 대한 이론적, 실증적 근거를 끊임없이 뒷받침한 학계와, 사회복지의 확대를 지지하는 시민의 지지가 있었다.[각주:24]

 

복지국가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배경에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있었다. 전쟁을 막 끝낸 서구사회는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기록하여 50년대 OECD의 성장률은 4.4%였고, 60년대에는 5%로 더 높았다.[각주:25] 이는 전시경제와 전후 경제복구에 따른 높은 고용률과 낮은 인플레이션을 동반하였다. 게다가 전쟁의 여파로 높은 출산율 및 낮은 고령화가 나타났고, 많은 생산자와 상대적으로 적은 피부양자는 복지 지출의 부담을 최소화하였다.[각주:26]

 

복지국가는 국가와 자본가, 노동자가 서로 타협하여 형성한 '화해적 정치구조'의 기반 위에서 가능했다. 복지국가의 정치적 행위자들은 자본가의 특권적 지위를 용인하고, 노동자 계급은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경영과 분배에의 참여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러면서 경제성장은 두 계급 모두가 협조해야 가능하며, 경제성장이 자본가에게는 이익을, 노동자에게는 완전고용과 복지 확대를, 국가에게는 재정수입을 보장한다는 인식 하에 경제성장과 복지 확대에 모두가 동의하였다.[각주:27] 실제로 영국에서 노동당과 노조는 73년 사회협약을 체결하여, 물가와 임대료에 대한 공적 통제와 복지급여 인상, 부의 재분배, 완전고용, 그리고 경제성장을 약속하였다.

 

큰 틀에서 복지국가에 동의한 것은 서구 선진국의 공통된 추세였으나, 세부적인 면에서는 유럽과 미국이 달랐다. 유럽은 복지의 유지를 위해 세율을 높이는 것에 호의적이었다. 반면 미국은 과거부터 조세저항이 강했고, 복지세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일본도 비슷했다. 그 결과 복지로 인한 재정적자는 미국과 일본에서 크게 나타났다.

 

영국에서 복지국가 체제는 30년 가까이 유지되었다. 전후 양당제도 하에서 주류 좌파정당에 등극한 노동당은 40% 이상의 지지율을 등에 업고 소득보장 정책, 완전고용 장려, NHS, 무상교육을 실시하였다. 노조는 국가의 동반자로 격상되었고, 이는 보수당에도 점차 수용되었다. 영국인들은 빈민을 원조하는 것이 정부의 제 1 의무고, 복지는 계속 확대되어야 하며, 복지의 확충을 통해 평등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데 동의하였다. 특히 좌파 학자들은 복지의 개발 및 유지에 공헌하며 복지서비스 담당자들을 교육하여 여기에 기여하였다.

 

대립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복지국가 체제에 대한 지지는 보수당에도 받아들여졌다.[각주:28] 이러한 기조를 정치적 버츠켈리즘(butskellism)이라 불렀는데 이 명칭은 50년대 초 이코노미스트 지에서 보수당 내각의 재무장관인 버틀러(butler)와 노동당 그림자 내각의 재무장관이면서 후에 노동당의 수정주의를 주도했던 게이츠컬(gaitskell)의 이름을 합쳐서 지었다.[각주:29] 실제로 아래에서 보듯이, 복지의 확대는 노동당뿐만 아니라 보수당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 노동당 내각(애틀리, 45-51): 가족수당법, 국민보건서비스법, 국민보험법, 국민부조법 제정
  • 보수당 내각(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맥밀란, 흄, 51-64): 가족수당 증액, 국민보험법 개정, 사회보장급여 인상, 소득비례연금 제정
  • 노동당 내각(헤럴드 윌슨, 64-70): 가족수당 증액, 국민부조의 보조급여 전환, 단기급여 소득보조, 사회보장부(DHHS) 설립
  • 보수당 내각(히스, 70-74): 세대소득보조(FIS) 제정, 연금생활자에 크리스마스 보너스 지급
  • 노동당 내각(헤럴드 윌슨, 캘러헌, 75-79): 신연금법 및 아동급여 제정

 

 

5.사회복지실천의 발전

대공황이 지나간 후, 사회복지에서 진단주의와 기능주의는 50년대에 들어 통합을 시도한다. 사회복지계 전반에서 심리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을 함께 중시하려는 바람이 붐과 동시에,[각주:30] 진단주의와 기능주의의 접근법을 혼합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펄먼[각주:31]은 진단주의의 관점에서 기능주의를 받아들인 문제해결 접근을 제시하였다. 60년대에는 인문학의 비판이론 관점이 들어오면서 관점과 모델, 이론, 기법, 기술이 더 다양해졌다. 

 

위기개입 접근은 60년대에 출현하였다. 이들은 단기치료와 정신위생을 중시하며 지역사회정신건강운동에 영향을 끼쳤고, 시스템 이론을 받아들여 개인과 가족, 집단이 기능 수준에서 보이는 불균형 상태에 초점을 두었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복지에서 단기치료에 영향을 끼쳤으며, 문제해결접근과 결합하여 70년대 레이드(reid)와 앱스타인(epstein)의 과제중심 접근의 탄생에도 기여하였다.

 

이 시기부터는 개별사회복지실천뿐만 아니라 집단사회복지실천도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미 이전의 인보관과 듀이의 진보적 교육운동에서부터 그 뿌리가 보였지만, 본격적인 집단사회복지실천은 집단치료로 처음 시작하였다. 집단사회복지실천은 집단치료뿐만 아니라 각종 프로그램과 활동으로 내담자에게 개입하는 레크리에이션 운동과, 사회적 기술의 학습에서 소집단의 유용성을 주장한 진보적 교육운동의 영향도 받았다. 또한 재활적, 예방적, 조직적 접근은 진단주의와 심리사회적 접근에서 유래하였다. 집단사회복지실천과 가까운 가족치료는 40년대에 기능주의에서 도입하였으며 50년대에는 진단주의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집단사회복지실천은 50년대에 코노프카(konopka), 프랭클(frankl), 코일(coyle), 코르시니(corsini)가 개인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으로 도입하였다. 상호작용적 모형은 사회적 목표 모형과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아 60년대에 슈워츠(schwartz)에 의해 개발되었다. 슈워츠는 실존주의와 인본주의 관점을 보이면서 사람과 사회제도 간의 상호적 욕구을 중심으로 하며, 기관의 기능과 관련된 집단 활동과 과제중심의 집단활동을 강조하였다. 60년대 후반에는 상호작용적 모형과 사회적 목표 모형, 그리고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아 개인의 발달과 발달과업에 초점을 둔 발달적 접근이 탄생하였다.

 

지역사회복지는 이 시기에 더 전문화되었다. 1962년 사회복지교육위원회의 승인으로 지역사회복지실천이 하나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지역사회복지는 60년대 민권운동 시기에 그 바람을 타고 매우 흥행했다. 그러나 민권운동 붐이 약해지면서 지역사회복지에 대한 관심도 70년대부터 시들해졌고, 사회복지행정과 묶이는 경우가 매우 많아지게 되었다.

 

 

6.복지국가의 종말

한동안 지속되었던 복지국가 체제는 73년 오일쇼크를 계기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오일쇼크로 OECD의 경제성장률은 5%에서 2%로 떨어졌고, 반면 인플레이션(5%에서 8-10%)과 실업(2%에서 5%)은 심해졌다.[각주:32]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사람들은 정부를 불신하게 되었고, 복지 지출의 확대와 공공정책의 성공여부 및 영향에 대한 의심이 사회에 만연했다.[각주:33] 이는 복지비 증가에 대한 반대로 이어지고,[각주:34] 이는 경제성장 둔화로 심해지던 정부의 부채 압박을 가중하였다.

 

당시 대두되기 시작하던 신자유주의자들은 복지국가가 자유를 제한하고 시장을 왜곡하여 경제를 망가뜨리고 재정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하였다.[각주:35] 그리고 복지국가를 위한 정치적 동맹의 한 축을 담당하던 노동계급의 마르크시스트는 복지국가가 노동자를 포섭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을 존속해야 한다는 모순에 빠져있다고 비난하면서[각주:36] 복지국가의 위기에 냉담하였다.[각주:37] 반면 실용주의자들은 복지국가의 위기가 복지의 문제가 아닌 오일쇼크에 의한 단기적인 문제라고 주장했고,[각주:38] 그들의 말대로 복지의 축소는 후에 사회의 문제를 없애긴커녕 더 심화시켰다.[각주:39]

 

결국 대처와 레이건을 필두로 신자유주의가 정치권에 받아들여졌고, 이들에 의해 복지가 대대적으로 축소되기 시작한다. 그 정도는 나라에 따라 약간씩 달랐다. 미국은 가장 강도높은 신자유주의 개혁을 실시했지만, 스웨덴은 지금도 강력한 사회복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주선미와 유애현은 이러한 차이가 복지국가의 위기를 개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는지, 아니면 급진적인 개혁이 아니면 국가가 망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지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대응 방식은 달랐지만, 모두 결과적으로는 재정적자가 늘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등 영미권 국가는 신자유주의에 가장 호의적이었다. 이들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앞장서고 실질 최저임금을 줄였다. 그 결과 고용이 2-3배 증가하고 거시경제는 회복되었으나,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고 사회안전망도 약해졌다. 특히 미국은 가장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졌는데, 미국은 누구보다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의 삭감에도 앞장선 나라이다. 이들 나라는 신자유주의의 힘이 퇴조한 지금도 가장 사회보장이 약한 나라로 남아있다.

 

반면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는 지금도 복지 제도가 상당히 건재하다.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는 북유럽은 노조가 적극적으로 기업가 및 정부와 타협하여 복지를 유지하였다. 이들은 노조와의 협업 하에 실질임금 인상을 낮추거나 고용 유연화를 달성하였고, 그 대가로 직업소개소의 구축이나 고용유지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복지를 통한 급여대체율도 지속적으로 낮췄다. 한편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유럽 대륙의 국가는 복지 수준을 늦게까지 높게 유지하였고, 그 후에도 유연하게 잘 대처하지 못했다. 그 결과 실업률이 증가하였고 경제성장과 재정부담에도 악영향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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