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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자기의 역사 정리

과학주의자 2026. 7. 15. 11:20

한국은 고려시대부터 도자기가 발달했고, 고려에서는 청자가, 조선에서는 백자가 유명하다. 한국에서 도자기의 명칭은 도자기의 종류와 문양을 새기는 방법, 문양의 종류와 도자기의 모양을 조합하여 지어졌다. 가령 분청사기 박지연어문병의 경우, 도자기의 종류(분청사기)와 문양을 새긴 기법(박지), 문양 종류(연어문), 도자기의 형태(병)를 따 이름이 붙혀졌다.

 

이 분야의 주요 저서로 <한국문화유산 산책(개정판,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새문사,2019)이 있다.

 

 

도자기의 분류

한국에는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가 있었다. 청자는 푸른 도자기로, 철분이 약간 섞인 청자 태토에 2-3%의 철분이 함유된 유약(투명유)를 바르고 환원염에서 구워 제작했다. 반면 백자는 하얀 도자기로 철분이 없는 정제된 백자 태토에 투명유를 씌워고 재벌하여 제작했다. 흑유자는 검은 도자기고, 철화청자는 청자에 유약을 바르기 전 철분이 많은 안료로 표면에 그림을 그린 청자인데 보통 국화나 당초 등의 초화무늬가 많이 그려졌다. 철채청자는 비슷하게 태토를 철사 안료로 칠한 후 그 위에 유약을 바른 검은 도자기다.

 

흑유자
철화청자
철채청자. 청자 철채퇴화삼엽문매병

 

철유자는 유약에 철분이 많아 갈색이나 흑갈색을 띄는 도자기로, 철채처자보다 붉으며 상감을 하거나 백토로 무늬를 그린 퇴화(堆花) 기법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화금청자(金彩磁, 금채자)는 상감무늬 주변을 약간 파고 틈을 금니(金泥)로 매운(금채) 청자로, 화려해서 특수 사용자를 위한 용도로 제작되었으며 순 청자에 금채하거나 상감청자에 금채하였다. 진사채청자는 청자를 초벌구이한 후, 전면에 진사(辰砂)를 바르고 투명유로 덮은 다음에 재벌구이한 것으로 밝은 적갈색이다.

 

금채자

 

연리문청자는 청자 태토에 백토와 적토를 반죽하여 구운 청자다. 3가지 태토를 섞어 구우면 목리문(木理文) 비슷한 문양이 나오는데, 이 상태에서 투명유를 바르고 구우면 청자 태토는 회색으로, 백자 태토는 하양으로, 적토태(赤土胎)는 검은색으로 구워진다.

 

연리문청자. 청자 연리무늬합.

1.고려청자

초기 청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청자는 보통 해무리굽(일휘문굽) 완이 뽑힌다. 해무리굽 완은 둥근 굽 안쪽을 깎아 모양이 원형(해무리굽)인 청자로 표면에 내화토(耐火土) 자국(비짐눈)이 있고 굽의 옆면(측사면)이 바닥에 수직이다. 청자 밑바닥 안쪽(내저)에 원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으며 굽 밑면의 넓이가 매우 큰 것과 약간 큰 것이 있다. 주로 황해안과 남해안 일대에서 발굴되며 전남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와 사당리 일대의 해무리굽 완은 장보고의 해상활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해무리굽 완의 밑면. 굽이 동그랗다.

 

이외에 전남 강진군 대구면, 칠양면,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전북 고흥군 와산면 용계리, 동면 반암리,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충남 서산시 서연면 오사리,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용인시 이동면 서리, 평남 강서군 도차면 익산 사기동 등에서 해무리굽 다완이 발굴된 바 있다.

 

해무리굽 완이 제작된 시기를 초기 청자 시대라고 부른다. 강경숙은 이 시기를 918년에서 정종 시대까지의 128년으로 정의하였다. 이 시기부터 한국은 토기의 자리를 점점 도자기가 차지하게 되면서 청자 생산이 시작되었고, 오나라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오월 월주의 청자가 후백제를 통해 들어와 한국 도자기의 원류가 되었다. 서남해안 일대에 초기 청자 가마터가 다수 분포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한국에서 언제부터 청자를 만들었는지는 논쟁중이다. 정양모와 최건의 9세기 발생설은 강진 일대에서 발견된 해무리굽(일휘문굽) 완을 한국 초기 청자의 표지로 보아 그 원류를 당 후기 저장성 월주의 옥벽저완(玉壁底碗)으로 추정하고, 옥벽저완이 국내에 도입된 시간차를 고려하여 해무리굽 완의 제작시기를 최대 9세기 중반에 비정하였다. 그러나 해무리굽 완은 옥벽저완보다 접지면이 얇고, 굽 지름 대비 접지면 지름이 더 넓으며, 측사면 기울기도 높고 내저에 원각이 있는 경우도 있어 차이가 크다는 비판이 있다.

 

10세기 발생설은 최순우, 윤용이, 미카미 츠기오가 주장한 설로, 이들은 용인과 강진에서 나온 해무리굽 완이 내저 원각이 없고 접지면 폭이 얇다는 점 등에서 서로 시기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용인 해무리굽 완은 10세기 중반 오나라 월주요의 옥벽저완을 단순히 모방한 것으로 최대 10세기에 제작되었고, 강진 해무리굽 완은 이보다 더 나중 시기에 토착화가 진행된 것이다.

 

한국의 청자는 월주 청자의 짝퉁에 불과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수준이 계속해서 오르게 된다. 고려 초기에 제작된 순화 4년명 항아리는 유약을 바른 상태가 불량하여 좋은 품질의 도자기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기술이 좋아져 요 성종의 영경릉에서 고려가 선물로 보낸 고려청자음각문편(高麗靑瓷陰刻文片)이 발견된다. 다만 이 시기에도 서민의 그릇은 여전히 토기나 녹청자 등 저질 도자기가 많았으며, 해무리굽 완은 개경의 고위층이 주로 사용하였다. 인천 경서동과 해남 진산리에는 청자보다 먼저 만들어진 조질 녹청자가 발견되는데, 태토가 거칠고 유약 표면이 안정되지 못해 지방에 공급된 제품으로 여겨진다.

 

순화 4년명 항아리는 대표적인 초기 청자 유물이다. 굽 밑에 음각된 바에 따르면 이 항아리는 993년(순화 4년)에 최길회라는 장인이 만든 것으로, 태조 왕건의 사당인 태묘(太廟) 1실에서 의기로 사용되었다. 입이 넓고 굴곡이 완만한 이 항아리는 태토는 백토에 가까운 유조는 백자도 청자도 아닌 옅은 황갈색이고 유약이 뭉쳐 흘러내린 흔적이 있다. 어떤 학자는 이를 불완전한 백자로 분류한다. 이러한 품질은 정종 안릉(安陵)에서 발견된 청자의 품질과 비교된다.

 

순화 4년명 항아리

 

중기 청자

중기 청자시대는 문종, 선종, 숙종, 예종, 인종 집권기의 약 100년 정도이다. 이 시기에 송의 도자기는 정교함과 세련됨에서 최고조에 달했고, 이는 문종 기 고려에도 영향을 끼쳐 청자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정확히 고려청자는 허베이성 곡양현 간자촌 일대인 정요(定窯)의 도자기에 큰 영향을 받았는데, 정요는 당 말기에서 송대까지 주로 백자를 생산하였고 통일신라에서도 정요의 백자완을 수입한 바 있다.

 

12세기 전반기의 중기 청자는 비색의 순청자와 상형 청자의 전성기로, 정요와 남중국의 월주요 및 북중국의 여주요의 영향을 받아 청자가 수준급으로 발전하였다. 반면  이 시기부터 상감청자가 나타나긴 했지만, 이 시대에는 주류를 차지하지 못했다. 인종의 장릉에서 발굴된 순청자를 볼 때 순청자의 전성기는 늦어도 1146년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요의 영향을 받은 11세기 전반 용계리 가마 계통의 청자는 압출 양각 기법과 철화 기법이 도입되었고, 굽이 점점 좁아지면서 굽다리의 내화토 받침에 점토가 섞이고 청록, 담청록, 아록색 유약이 사용되었다. 이 시기와 관련된 가마터 유적은 충남 공주 사곡면 신영리, 전북 부안 진서면 진서리, 전남 강진 대구면 계율리, 부산 덕포리, 경북 경주시 현곡면 내태리 등에 있다. 그리고 전남 강진 대구면 사당리의 강진요(康津窯) 유적과, 전북 부안 보안면 유천리의 부안요(扶安窯) 유적은 순청자 제작과 관련되어 있다.

 

이 시기 고려청자는 풀무늬, 당초무늬, 쌍앵무무늬 등이 음각 및 양각으로 새겨지고, 무늬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핸 퇴화 기법도 등장하였다. 표면이나 안쪽에 장식이 없이 유약만 발라 만든 소문 순청자도 등장하였고, 퇴화문 청자는 태토 위에 백토니(白土泥)로 점을 찍어 흰점을 새겼다. 백토니나 자토니(紫土泥)로 화초나 동물을 그린 회청자와, 태토에 철사(鐵砂)로 그림을 그리고 백자유약을 바른 철회백자도 이 시기에 등장하였다. 전반적으로 이 시기의 청자는 귀족 문화의 취향을 반영하였으나, 그 형태에 있어 송과 큰 차이는 없었다.

 

12세기로 가면서 고려청자의 기술은 계속 발전하였다. 송 태평노인(太平老人)의 <袖中錦(수중금)>에서는 고려청자의 색을 천하제일로 묘사했고, 1123년경 송의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청자에 대해 "솜씨가 좋고 빛깔도 더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거기서 고려청자는 송과 달리 비색(秘色)이 아닌 비색(翡)으로 표기되었는데, 다른 것들은 송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술병은 오이 모양에 작은 뚜껑이 있고 연꽃 위에 오리가 엎드린 모양이라고 보고되었다.

 

중기 청자. 청자소문과형병

 

서긍은 참외모양 술병을 고려의 대표적인 청자로 기술했지만, 반드시 그런 모양의 청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려청자에는 동철기(銅鐵器)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것도 있었고, 인간, 새, 동물 모양의 청자도 있었다. 표주박과 참외, 석류, 죽순 등 화초와 비슷한 것도 있었고 투각(透刻) 기법으로 장식한 것도 있다. 현재 기린향로, 사자향로, 투각 연화 칠보향로, 오리모양 연적, 원숭이모양 연적 등이 남아있다.

 

후기청자

후기 청자시대는 의종 시기부터 원종 말년까지의 127년으로, 상감청자의 전성기다. 중기 청자시대에 씨앗이 보였던 상감청자는 무신정권이 개막하면서 고려청자의 주류가 되었다. 황해안 일대에 있던 청자 가마들은 11세기 후반부터 강진요와 부안요 일대로 집중되기 시작하여, 12세기에 이르자 이 두 지역 외에서는 거의 생산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고려 정부가 흔들리는 14세기 후반이 되자 이 지역의 기술자가 외부로 이주하면서 도자기 생산 지역도 확산되었다.

 

상감청자는 상감 기법으로 제작한 청자를 말한다. 상감(象嵌)이란 태토 표면에 문양을 음각하고 거기에 다른 색의 태토를 채워넣어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말한다. 태토 표면에 문양을 새기고, 거기에 백토니나 자토니를 붓으로 발라 틈을 메운 뒤 말린다. 그 후 밖으로 나온 이토(泥土)를 제거하면 그림만 남게 되고, 이를 유약을 발라 구우면 백토는 흰색, 자토는 검정으로 변색된다. 이런 기법은 나전칠기나 금 또는 은을 상감한 동(銅)기의 입사기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상감 기법은 12세기 중반부터 청자에 사용된 것은 물론이고, 15세기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청자가 아니지만, 상감 기법은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상감청자의 발생 시기에 대해서는 12세기 초기설과 12세기 중기설이 대립하고 있다. 최순우, 정양모의 12세기 초기설은 상감청자의 등장시기를 인종 초인 1123년경으로 보는데, 1159년(의종 13년)에 사망한 문공유의 무덤에서 청자 상감 보상당초무늬 대접이 나왔다는 점에 근거한다. 이 청자는 흑백상감이 매우 우수하게 되어 상감 기법이 이미 고도로 발달해 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그보다 더 이른 연도인 인종 시기에 상감 기법이 탄생했다고 추측한다.

 

윤용이의 12세기 중기설은 상감청자가 의종 시기인 1157년경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강진요 유적에서 청기와와 동일한 퇴적층에서 출토된 상감청자편에 근거한 것이다. 여기서 발굴된 상감청자편은 문공유 무덤과는 달리 일부에만 상감이 된 초보적인 파편이 많은데, 연구자를 이를 근거로 상감 기법이 1157년경에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추측한다. 이 가설에서는 문공유 무덤에서 출토된 청자 상감 보상당초무늬 대접이 명종 무덤에서 출토퇸 상감청자와 양식이 맹우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사실 문공유 무덤에서 나온게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감청자는 12세기 후반이 되면 점점 무늬가 화려해지고 양식화가 현저해지며 그릇의 안팍에 빈틈없이 흑백 상감이 된다. 포류수금문이나 운학문과 같이 자유롭고 회화적인 무늬는 점차 사라지고, 규칙적인 질서를 보여주는 도안화된 무늬가 주류가 된다. 또한 포도동자무늬, 국화무늬, 모란무늬 등 진사(辰砂)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형태도 매병처럼 고려 특유의 형태가 나타나고, 도자기 벽도 두꺼워져 실사용에 적합하게 되어 갔다. 유약은 녹색 투명유를 주로 사용하였고, 규석의 수도 3개에서 4-5개로 늘며 규석받침도 커지고 점토가 섞인 모래받침도 제작에 사용되었다.

 

청자 진사 연화문 표형 주자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청자이다. 최항(?-1257)의 묘지석과 함께 강화도에서 출토된 이 청자는 연판 주변은 진사로, 잎맥은 음각하여 묘사하였다. 백퇴화 기법으로 장식된 부분도 있고, 목에는 양쪽에 하나씩 연꽃을 안고 있는 동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청자 진사 연화문 표형 주자

 

후기 청자시대에는 상감청자 외에도 회청자, 진사채, 철채청자, 철사상감 등 다양한 도자기 기법이 등장하였다. 청자뿐만 아니라 백자도 이때 만들어졌는데, 상감청자의 시대 아니랄까봐 상감백자도 이때 등자하였고 철채백자나 연리문, 철사유 등 다양한 기법이 적용된 백자가 제작되었다. 청자 태토에 백토 상감을 하고 상감한 부분 이외에는 철유를 바른 철채백상감자기류도 이때 등장하였다.

 

한편 상감청자 외에 청자 기와(청기와)도 이 시기의 주요 청자이다. 청자 기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사> 세가 권18 의종 11년 4월 병신조에 양이정이라는 정자의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기록이다. 당진요 발굴에서도 수십편의 청자 기와가 발굴되었고, 만월대 부근에서 이와 동일한 청자 기와편이 발굴되어 청자 기와가 고려에서 널리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청자 기와의 무늬는 보통 수막새기와는 무란, 당초, 모란당초, 연화무늬가 있었고, 암막새기와는 당초무늬가 양각, 음각, 반양각, 민무늬 등의 기법으로 새겨졌다.

 

청기와. 도자기를 지붕에 올릴 생각을 진짜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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