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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사 총론

과학주의자 2023. 2. 22. 14:30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이 등장하고,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이 일어났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제 2물결이 불어오는 반면 다른 한쪽에는 구시대의 잔재들이 여전히 남아있었고, 이 잔재들은 영국이 완전한 근대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았다. 이영석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번영과 함께 쇠퇴의 징후를 보였으며, 대영제국의 몰락은 예견된 일이었다고 말한다.[각주:1]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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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에 근대적인 정치체제가 실현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의회제도와 삼권분립은 빅토리아 시대 이전에서 있었다.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가 도래하면서 본격적으로 민주주의 담론과 선거권 확대가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여러 지역을 통치하는 강력한 중앙정부와 근대적인 정치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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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는 영국 경제의 최전성기였지만, 빅토리아 시대 후반부에 영국은 더이상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아니었다. 70년대부터 시작된 장기불황으로 영국은 만성적인 장기불황에 시달려야 했고, 새롭게 떠오르는 미국과 독일에 잘 대응하지 못하였다. 한편 산업경제로의 전환은 영국사회 각지에 영향을 끼쳤다.

 

 

1.평론지의 시대[각주:2]

19세기 후반 영국은 평론지와 잡지의 황금 시대였다. 저명한 학자는 물론, 정치가와 성직자, 재능 있는 문필가들이 앞 다투어 평론지에 글을 썼다. 그리고 주로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는 다수의 독자가 이들의 글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공공 여론을 형성했다. 여유 있는 인사들의 집 서재에는 한두 종 이상의 평론지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 잡지의 사회사를 연구해온 월터 후턴(Walter E. Houghton)[각주:3]은 이러한 '잡지의 시대 또는 평론지의 시대'를 낳은 두 가지 조건을 언급한다. 우선 19세기에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상당수 독자들이 전통적인 귀족이 아닌 새로운 문필가들에게서 지식을 얻으려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다음으로, 그 시대에는 과학, 신학, 역사 분야의 지식이 급속하게 변화/확대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과 이론을 마주 대하면서 혼란을 느꼈으며 이에 대한 해답을 원했다.

 

19세기 후반의 평론지들은 독자의 지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앞다투어 소개하고 있다. 이 무렵에는 전통적인 문필가들의 작업 외에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새로운 학문 분야들이 태동하고 있었다. 각 분야에서 지적 탐구를 계속해온 이들 학자들은 전통적인 문필가 집단에 뒤이어 새로운 기고자로 등장했다. 이에 따라 성서 연구와 새로운 과학, 과거 역사에 관한 많은 논설들이 실리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의 현실 문제 또한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빅토리아 시대 후기의 평론지들은, 말하자면 새로운 지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지성지이자 현실 문제를 예리하게 진단하고 분석하는 시사 잡지라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최초의 평론지는 에든버러 리뷰로, 1802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했다. 발행 이후 에든버러 리뷰는 영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였고, 여러 휘그파가 글을 기고하면서 휘그파의 본거지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자 당대의 정적이었던 토리파에서도 나서서, 토리파의 보수적인 문필가들을 중심으로 1809년 <계간평론>(Quarterly Retriew)을 창간했다. 이 평론지 창간에 정치적 의도가 깃들어 있었다는 점은 토리파 정치인인 조지 캐닝(George Canning)이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윌리엄 기포드(William Gifford)를 편집장으로 강력히 추천한 데에서도 알 수 있다. 19세기 전반 이 평론지의 주요 기고자들은 보수적 성향을 가진 문필가와 시인들이로, 시인 로버트 사우디(Robert Southey)와 소설가 월터 스콧(Walter Scott), 수필가 찰스 램(Charles Lamb)이 그들이었다. 

 

이어서 1824년 제러미 벤담과 제임스 밀이 지식인 독자층을 겨냥해 그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리뷰>(Westminster Review)를 내놓았다. 이 평론지는 처음부터 편집 방향을 자유주의 쪽으로 설정했다. 같은 세기 중엽에는 존 틴들(John Tyndall),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토머스 헉슬리(Thomas Huxley) 등 저명한 과학지식인들이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진화론을 비롯한 새로운 과학과 사회이론을 설파함으로써 당대 여론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밖에 1855년 은행가, 조선업자이자 예리한 정치 평론으로 유명했던 월터 배저트(Walter Bagehot, 1826-1877)가 보수 성향의 <국민평론>(National Review)을 창간하기도 했는데,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수학한 그는 이코노미스트 지의 편집장이기도 했다.

 

19세기 초반부터 탄생한 평론지들은 18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공론장을 형성하고 여론형성을 주도하였다. 이 시기에 평론의 사회적 영향력이 증대된 것은 <당대평론(Contemporary Review)>이나 <19세기(Nineteenth Century)>와 같이 새로이 등장한 평론지들과 관련되어 있는데, <당대평론>은 1866년 알렉산더 스트라한(Alexander Strahan)이 창간한 평론지로 당대의 지나친 세속화 경향을 우려햐여 주로 종교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당대평론>은 동시에 당시의 가장 논쟁적인 주제들을 다룬 논설을 집중 게재하여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특히 70-77년 사이에 편집을 맡은 제임스 놀즈(James Knowles)의 헌신적인 활동을 통해 이름 그대로 당대에 가장 널리 구독되는 평론지로 떠올랐다.

 

<19세기>는 바로 이 놀즈가 1977년 새로이 창간한 지식인 잡지이다. 원래 놀즈는 건축가였으나, 후일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과 친교를 맺으면서 문필가들과 어울렸고, 당대평론 편집자를 거친 이후 <19세기>를 창간하게 되었다. 그는 시사적인 문제를 주로 다뤘지만 과학과 종교 또는 둘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는 논설들도 자주 게재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원하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이 잡지는 1870~80년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지로 이름을 높였고, 19세기 말 발행 부수가 거의 2만 부에 이르렀다.[각주:4]

 

<당대평론>과 <19세기>를 필두로 새롭게 등장한 평론지들은 독자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보수에서 급진까지 평론지에 따라 이념적 스펙트럼도 다양해졌다. <계간평론>과 <국민평론>이 보수 성향을 나타냈다면, <19세기>와 <당대평론>은 좀 더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이었다. 다른 한편 <웨스트민스터 리뷰>는 여성이나 종교 문제에서 다른 평론지보다 더 급진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1870년대 이후 한 세대 동안 이들 평론지의 논설들은 정치적인 문제와 경제 현실, 사회적 이슈들, 종교와 과학과 역사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었다. 당대 가장 뛰어난 문필가와 과학자들이 논설의 필자로 등장했으며, 그들의 논설은 식자층의 지적 욕구를 충족하고 여론형성을 주도해 나갔다.

 

에든버러 리뷰

최초의 평론지는 <에든버러 리뷰>(Edinburgh Review)다. 에든버러에서 1802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이 잡지는 이후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산물이자 당시 에든버러 지식인의 지적 수준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19세기 영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평론지 간행은 18세기 후반 이래 영국 문화의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른 스코틀랜드 계몽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을 낳은 기본 토양은 물론 이 지역의 대학 제도다. 18세기에 에든버러, 글래스고, 세인트앤드루스, 애버딘 대학의 명성은 전 유럽에까지 널리 퍼졌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물론 대륙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기를 원할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대학교육을 받은 독서층의 증가에도 주목해야 한다. 에든버러 식자층의 주류는 전문 직업인이었다. 그들은 전문적인 식견을 지니고 있었지만 남부로 진출할 만한 재력은 갖추지 못한 소지주, 변호사, 상인, 문필가, 제조업자, 교사, 목사들이었다.

 

에든버러 리뷰는 서평을 중심으로 하는 영국 최초의 본격적인 지성지였다. 편집자들은 영국에서 출판된 여러 학문 분야의 저술들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비평을 시도함으로써, 스코틀랜드를 넘어 브리튼 문화에 르네상스가 도래하기를 기대했다. 초기 편집진에는 시드니 스미스(Sydney Smith, 1771-1845), 프랜시스 제프리(Francis Jeffrey, 1773-1850), 헨리 브루엄(Henry Brougham, 1778-1868)이 참여해 활동했는데, 시드니 스미스는 성공회 목사로 에식스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사람이었다. 프랜시스 제프리는 글래스고대와 옥스퍼드에서 수학한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주요 인사였고, 브루엄은 유용지식보급협회를 이끌고 벤담과 함께 런던대학 설립운동을 주도했던 휘그파 하원의원 겸 법률가였다.

 

에든버러 리뷰를 창간한 사람은 시드니 스미스였다. 그는 19세기 초 에든버러에서 사역할때 그곳의 여러 지식인을 모아 에든버러 리뷰를 창간했으며, 동시에 편집장이 되었다. 이후 에든버러 리뷰는 스미스와 제프리가 이끌다가, 비슷한 지식인 잡지들이 서로 경쟁하던 19세기 후반에는 헨리 리브(Henry Reeve)가 오랫동안 편집장으로 활약했다. 이때 제임스 밀(James Mill)와 존 머컬러크(John R. MuCulloch) 등이 경제 평론을 자주 기고하여 에든버러 리뷰가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의 본거지이자 휘그 지지파로 알려지기도 했다.

 

 

아침식사(breakfast)[각주:5]

19세기에 이를때까지 영국에는 아침식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중세 영국의 식사는 10시에 이뤄지는 정찬(dinner, 저녁)과 오후 5시에 먹는 supper가 있었으며, 현재 아침이 하는 기능을 정찬이 수행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정찬과 supper를 먹는 시간이 뒤로 미뤄졌고, 그러면서 기상과 정찬 사이에 먹는 아침이 새로이 생겨났다. 1472년에 에드워드 4세가 어제 먹고 남은 음식과 약간의 에일(ale)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526년에 헨리 8세가 빵과 약간의 에일을 아침에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왕족과 귀족이 당시부터 아침식사를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512년 기록에 따르면 노섬벌랜드 가(northumberland family)는 양고기와 생선절임, 맥주, 소고기, 닭고기를 아침으로 먹기도 했다.

 

정찬과 supper로 먹는 규범은 상당히 길게 이어지다가, 17세기에 정찬이 오후로 넘어가면서 평민에게도 본격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주로 8시에 아침을 먹었으며, 크롬웰 부부는 푸딩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후 18세기에 들어오면서 아침은 전형적인 영국 식사로 자리잡았다. 18세기에 영국 식사는 일어난 후 먹는 아침과, 12시-2시 사이에 먹는 정찬, 그리고 오후 9시에 먹는 supper로 구성되었다.

 

아침식사는 대개 간단한 음식을 에일과 함께 먹었으며, 18세기 이후에는 에일이 차와 커피(주로 차)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식사에는 많은 경우 고기나 졸인 계란(pouched egg)가 포함되었는데, 이러한 메뉴 구성은 당시 supper의 메뉴 구성과 상당히 비슷했다. Wills는 정찬(저녁)이 늦어지고 supper를 대체하면서 supper의 메뉴가 아침으로 넘어온 것이라고 이를 해석했다.

  1. 이영석,'영국제국의 초상',푸른역사,2010 [본문으로]
  2. 이영석,'영국제국의 초상',푸른역사,2010,pp17-21 [본문으로]
  3. Houghton, W. E. (1959). British Periodicals of the Victorian Age: Bibliographies and Indexes. [본문으로]
  4. Berry, N. (2008). Articles of faith: the story of British intellectual journalism. Waywiser Press. [본문으로]
  5. Wilson, C. A. (Ed.). (1994). Luncheon, Nuncheon and Other Meals: Eating with the Victorians. Alan Sutton.pp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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