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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총론

과학주의자 2023. 2. 22. 15:30

사회학(sociology, 社會學)은 인간 사회를 연구하고 비판하는 학문이다. 사회학의 출발은 과학이었지만, 현재 사회학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한쪽에서는 복잡한 통계적 기법을 통해 매우 실증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철학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주관적이며 실제로 사회학의 많은 영역이 철학과 겹친다.

 

대부분의 사회학 연구는 질적 방법론에 기초하여 실시되며, 이러한 연구들은 사회의 숨겨진 사실을 폭로하여 비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사회학이 과학으로 여겨지지 않거나 아주 약한 과학으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적 탐구의 결과들은 객관적인 사실로 여겨지기보다 철학적 주관이 상당히 가미된 경험적 조사로 보아야 하며, 오직 객관적인 근거에 기초한 경우에만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분야의 주요 저서는 '사회학의 핵심 개념들(Giddens & Sutton,김봉석 역,동녘,2018)'이 있다. 이 책은 수많은 다른 분야에 대한 오해와 사회학 특유의 이데올로기적 편파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학에 입문하는 정도로만 여겨져야 한다.

 

사회운동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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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론은 사회운동에 대해 연구하는 사회학이다. 사회운동론 연구자들은 좌파적 시각을 통해 사회운동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사회운동을 조장하고 일으키려고 한다. 이러한 특성상 많은 사회운동론 연구자들은 동시에 사회운동의 참여자이기도 하다.

 

 

1.개요

사회학이란 인간 사회와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회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인 오귀스트 콩트(Isidore Auguste Marie François Xavier Comte)는 인간 사회도 자연세계처럼 자연과학적 방법과 동일하게 연구될 수 있다고 보고, 인간 사회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새로운 과학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사회학을 ‘사회 질서와 진보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명명하였다. 한편, 영국의 초기 사회학자인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콩트와 유사하게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정의하고 있는데, 특히 사회변동적 측면을 강조하여 사회학을 ‘개인 유기체들의 결합으로 출현한 초유기체의 진화에 관한 과학’으로 정의하였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교육학자로서 콩트의 후계자로 널리 알려진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자신의 저서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The Rules of Sociological Method, 1895)』에서 사회학이 좀 더 체계적·객관적인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연구 대상을 사회적 사실’(social fact)로 설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사회학 연구 대상으로 설정한 사회적 사실이란 ‘고정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개인에 대하여 외적 구속력을 행사하는 모든 형태의 행위 양식’을 가리킨다. 즉, 뒤르켐은 사회학을 ‘사회적 사실들의 발생 원인과 기능을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이해하였다.

한편 여러 사회과학 분야에 정통했던 독일의 사회과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는 사회학의 주요 연구 대상을 사회적 행위로 설정하고, 사회학을 ‘사회적 행위를 연구하는 과학’으로 정의함으로써 사회적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에 부여하고자 하는 주관적 동기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사회학의 주된 과제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은 사회학의 고유한 연구 대상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고 보고, 사회학을 ‘다양한 역사적 시기와 문화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들의 형식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하였다.

 

이상의 거시적·구조적 관점에서부터 미시적·행위적 관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회학자들의 사회학에 대한 개념 정의들을 종합하면, 사회학은 인간의 사회적 행위, 사회관계에 따른 상호작용, 집단 및 사회구조와 변동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아, 이를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

 

2.주요 개념과 방법론

대부분의 사회학에서 통용되는 어떤 개념들이 있다. 근대성이나 담론, 합리화의 뜻을 모른다면 사회학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회학은 질적 방법론 사용의 메카로서, 과학이나 인문학에서 사용되지 않는 독특한 방법론이 있다. 사회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들을 이해해야 한다.

 

구조와 행위(structure,agency)

사회학에서 구조와 행위는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structure)와 개인의 행위(agency)에 대한 사회학적 개념 이해이다. 사회학에서는 구조와 행위를 나눠놓고, 둘의 관계가 어떠한지 탐구해왔다. 이 구분은 거시/미시, 사회/개인의 구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어서 여러 사회조직을 행위중심으로 연구하는 등 예외가 가능하다. 앨런 다웨(Alan Dawe)[각주:1]는 이를 두고 대조적인 주제와 방법론, 근거 표준을 가진 두 개의 사회학(two sociologies)이 존재한다고 표현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주제는 사회학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남아서 사회학 개론서의 서두[각주:2]에서부터 언급된다.

 

초기 사회학에서 우위의 입장을 가졌던 쪽은 행위중심이었다. 계몽주의와 사회계약설이라는 배경 하에서 탄생한 초기 사회학답게,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나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사회가 개인적 행위의 총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회학의 아버지 뒤르케임은 사회적 사실(social fact) 개념을 통해 개인과 별개로 존재하는 사회의 존재를 주장했고, 이후 구조기능주의의 아버지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가 구조를 규범적 기대와 지침의 총합으로 묘사하면서 구조에 조금 더 방점이 모아졌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데니스 롱(Dennis Wrong)[각주:3]을 비롯하여 몇몇 학자들이 구조중심적 이론들이 개인의 창조적 행위를 설명하지 못한다며 비판하고, 상징적 상호작용론(symbolic interactionism)이나 현상학(phenomenology)적 방법, 일상생활 방법론(ethnomethodology)등을 도입하면서 다시 행위 중심적 설명을 부활시켰다. 다시 발생한 이러한 간극들은 마가렛 아처(Margaret Archer)[각주:4]나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각주:5] 등에 의해 봉합이 시도되었으며, 기든스와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에 의해 통합되었다.

 

사회구조는 사회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계급은 개인의 생활환경을 구성하고, 라이프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또한 가족 제도는 개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하도록 사회화를 제공하여 사회를 유지 및 재생산한다. 하지만 어떤 사회학자들은 사회구조가 좋지 않은 개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들은 사회구조가 구성적 허구이며 유동적인 사회적 관계들을 어림잡아 물화(reification)한 것이라고 공격한다. 이들이 특히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사회구조가 견고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했다는 것이다.

 

구조와 행위 논쟁은 지속되었던 만큼, 이 둘을 통합하려는 시도도 계속해서 있어왔다. 마르크스는 구조 중심으로 행위를 포섭하면서 둘을 통합하려고 했다. 마르크스는 실제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개개인이지만, 이 개개인의 행동이 사회(정확히는 사회의 물적 토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둘은 하나라고 주장했다. 기든스[각주:6]는 구조화 이론(structuration theory)을 통해 둘을 통합하려고 했는데, 이 이론에서는 구조가 개개의 행위(사회적 실천, social practice)가 모여서 만들어지며, 그렇기 때문에 이 행위가 변하면 사회구조도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서는 구조 자체가 집합적 행위들이기 때문에 둘이 구분되지 않는다.

 

한편 부르디외[각주:7]는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아비투스(habitus)란 사람들이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스키마를 의미한다. 아비투스를 사회화 과정을 통해 개인이 습득하게 되며, 개인이 사회에서 가진 위치에 따라 아비투스의 형태나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아비투스의 형태에 따라 개인의 다양한 행위가 나타나며, 또한 아비투스들을 통해 사회구조가 유지된다. 부르디외의 이러한 제안은 실제 경험적 연구들로 입증되었다. 

 

lehman[각주:8]은 캐나다와 독일에서 대학과 도제식 수련을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하여 두 관점을 통합하려고 시도하였다. 조사를 토대로 lehman은 사람들이 구조에 절대적으로 영향받는게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으로 사회구조에 관여하여 자기 위치를 형성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폴 월리스[각주:9]가 말한대로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자가 되기로 선택한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서 그는 다른 사회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의식적 요인이 실제로 그들 행동의 원인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이 분야의 주요 연구자는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가 있다. 기든스는 구조와 행위를 서로 통합하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근대성(modernity)

근대성은 사회학에서 현대사회를 연구할때 사용하는 개념으로, 사회학에서 근대는 18세기 중반 계몽주의 시대에서 80년대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사회학자들은 세속화(secularization)와 합리화, 민주화, 개인주의화, 과학의 발전을 근대성의 주요 요소로 정의하며, 근대성에는 자본주의와 산업화, 도시화, 생활양식으로서의 도시성, 세속화, 민주주의, 과학적 생산기법, 평등 추구가 모두 해당한다. 베버는 근대가 세계를 종교적이거나 감성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실제적 태도(matter of fact)로 보고 있다고 주장하며, 법적-합리적 사고가 증대되는 탈주술화(disenchantment)가 근대의 주요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근대를 의미하는 modern이라는 용어는 16세기 후반 유럽에서 고대와 근대를 대비시키면서 탄생하였다.[각주:10]

 

지난 수천년간 인류에게 근대화는 순리에 어긋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부과되었고, 20세기에는 필연적인 진보로 받아들여졌다. 근대시대를 연 계몽주의자들은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방법, 자유와 평등의 추구를 통해 인류의 진보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전통과 종교, 이외의 전승된 신념(received belief)을 공격했다. 실제로 현대 인류가 누리는 번영과 성취한 업적은 모두 근대적 사고에 기반하여 탄생하였으며, 사회학도 근대와 함께 탄생하였다.

 

근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은 여러 사회들이 어떻게 근대에 도달하는지를 제시하는 작업으로, 근대를 모든 사회가 도달해야 할 이상향으로 제시한다. 가장 고전적인 근대화 이론은 월터 로스토(walter rostow)가 제안했는데, 로스토[각주:11]는 개발도상국 사회가 먼저 그들의 전통과 결별하고 미래의 전망 있는 인프라와 신산업에 투자하면서 근대화가 달성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계적으로 이뤄지는데, 실제로 홍콩과 타이완, 한국, 싱가포르 등 첨단 기술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온 나라들은 로스토의 예측대로 빠르게 근대화되었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나라들이 서구와 다른 근대화 경로를 거치거나 다른 방식의 근대성을 정립했으며,[각주:12] 이에 기반하여 사회학에서는 근대화가 서구화와 다르다는 다중적 근대성(multiple modernity) 개념을 주장한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각주:13]은 근대의 특징이 질서라고 주장했다. 그는 근대사회를 정원에 비유하고, 근대성이란 정원의 자연을 길들이고 질서를 창조하는 조경(gardening)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바우만에 따르면 국민국가의 권력 증대는 이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근대화 이후 질서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일상적이 되었다고 바우만은 주장했다.

 

어떤 사회학자들은 근대성에 대한 논의에 비판적이다. 그들은 근대성에 대한 논의가 근대화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공격한다. 무엇이 근대를 만들었는가? 자본주의? 민주주의? 도시화? 여기에 더해 신마르크스주의자(neo marxist)들은 근대화가 저개발 사회들을 강제로 경제성장으로 몰아넣는다고 공격한다. 경제성장이 안좋은 이유는 이들이 개발도상국들이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선진국 경제에 종속될 것이며, 이들의 자원과 노동력이 수탈당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실증적 근거에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 몇가지 사회적 특성이 달라지면서, 사회학자들은 현재를 후기근대성 시대로 정의하고 있다.[각주:14] 후기근대사회에서 사람들은 환경파괴로 인해 과학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사회적 삶의 불확실성이 증가했다고 사회학에서는 주장한다. 그러나 하버마스가 얘기했듯이,[각주:15] 근대사회의 많은 것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얻은 것들이며 버릴 것이 아니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들이다. 때문에 하버마스는 이런 것들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론(discourse)

담론은 특정 주제에 대한 사고방식으로, 일반 대중이 특정 이슈나 대상에 대해 가지는 일종의 패러다임이다. 담론은 몇가지 가정에 기반해 있으며,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형성하고 사람들의 행위를 주관한다. 담론 개념은 미셀 푸코가 담론이 권력에 의해 만들어 진다고 주장하면서 사회학에서 흥행하게 되었으며, 특히 권력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담론이 특정 집단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안겨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련의 사회학자들[각주:16]은 담론에 대한 과도한 집중이 사회학을 장식 사회학(decorative sociology)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한다. 이들에 따르면 담론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의미에 대해서만 다루면서, 사람들의 실제 삶은 놓쳐버렸다. 실제로 담론 연구들은 대개 어떤 사회적 행위를 특정한 의미 표현으로 환원시키지만, 많은 사회적 행위들은 의미가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위해 행해지며 설사 의미를 담더라도 그 의미가 인문학자들이 주장하는 그 의미라는 근거는 매우 빈약하다.

 

사회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

사회구성주의는 사회학과 다른 social studies에 만연한 상대주의적 사상이다. 사회구성주의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현실을 다르게 해석하며, 우리가 말하는 '사실'은 사람들이 사회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사실을 규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규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구성주의는 모든 신념과 관습, 제도, 가치, 지식, 심지어 과학까지 사회적 해석에 의해 만들어진 주관적인 결과물이며, 이러한 것들이 문화 재생산 과정을 거쳐 후대로 물려진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기본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실재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 실재는 언어를 통해 구성된다.
  • 실재는 이야기를 통해 조직되고 유지된다.
  • 본질적인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구성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취하는 사회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며, 과학지식사회학자들과 일부 페미니스트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구성주의도 다른 상대주의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사회구성주의적 주장이 참이라면, 사회구성주의 그 자체도 사회적 구성물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이 객관적인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국 사회구성주의를 따른다면 '실재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주장도 우리 사회의 담론일 뿐인데, 그렇다면 '실재는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그리스나 근대 유럽에서는 거짓 아닌가? '제국주의가 나쁘다.'는 주장도 결국 우리 사회의 담론일 뿐이라면, 우리가 근대에 행해졌던 제국주의와 만행들을 비판할수 있는가? 왜냐하면 근대에 행해졌던 제국주의적 가치관은 모두 그 사회에서 만들어진 주관적 결과물이고, 사회구성주의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구성주의는 본질적인 진실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도 주관적인 견해로 만들었고, 인류사회의 악행(여기에는 사회구성주의자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제국주의도 포함한다)을 비판할 길을 없애버렸다. 왜냐하면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모두 사회적으로 구성된 산물이며, 어느 한쪽을 더 높게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왜 논리법칙이 그렇게 자명한지, 왜 과학법칙이 그렇게 높은 정확성을 가지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사회구성주의도 여느 상대주의와 마찬가지로 논리적 모순이며, 지난세기에 사회학을 지배했던 그저 그런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비판적 실재론[각주:17]

비판적 실재론은 사회학에서 받아들이는 실재론으로, 사회의 많은 것들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사회적 기반이 존재한다는 패러다임이다. 비판적 실재론은 20세기 말을 휩쓸었던 사회구성주의의 대안으로 영국에서 등장하였으며, 환경사회학에서는 주류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아직 다른 사회학 분야까지 퍼지지는 못했다.

 

실재론(realism)의 근원은 16-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재론은 철학적 이념으로 우리의 마음과 감각을 넘어서는 실제세계가 저 밖에 있다는 철학적 주장인데, 근대철학의 역사동안 계속해서 독일철학의 관념론(idealism)과 대립해왔다. 사회학에서는 70년대 로이 바스카(roy bhaskar)와 앤드류 세이어(andrew sayer)에 의해 정립되었으며, 이들은 사회학이 사회구성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사회학 특유의 인문학적 색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였다.

 

 

부르디외의 사회학

부르디외는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사회학을 추구한 사회학자 중 하나였다. 문화적 정당화 이론은 실제로 광범위한 질적 연구 및 통계적 자료에 뒷받침되었고 그만큼 탄탄하였다. 그러나 모든 부르디외의 주장이 그러한 실증적 기반을 갖춘 것은 아니다. 특히 예술과 미디어에 대한 부르디외의 주장인 장이론(field theory)은 과학적 연구보다는 사회학적 비평이 더 가까웠다.

 

이 분야의 주요 학술지로는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act, 악트)이 있다.

 

예술론

예술에 대한 부르디외의 관점은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그는 초기에는 순수예술을 단지 상류층의 취향이며 계급 갈라치기의 수단이라고 비판하였다. 비록 근대에 들어오면서 예술의 권위는 약해졌지만, 그러면서도 예술은 상류층의 위치를 굳건히 하는 장치이다.[각주:18]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예술의 상업화가 강해지자, 그는 입장을 선회하여 순수예술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부르디외는 예술의 상업화를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공공의 일반 이익을 대변하는 국가가 자본 대신 예술을 지원하고, 예술가는 동시에 자본과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꾀하면서 사회과학자와 함께 사회비판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각주:19]

 

그가 순수예술을 옹호한 이유는, 그가 예술이 계급과 무관하게 자율적인 진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예술이 내적인 규범과 패러다임을 통해 사회와 분리된 고유의 영역(장)을 만들었으며, 이 영역 안에서 고유한 창작과 진보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각주:20] 아방가르드 예술은 그러한 예시이며, 따라서 국가의 비호와 예술가들의 자립 노력을 통해 좌파적이고 계급에 독립적인 예술이 가능하다고 부르디외는 주장하였다.

 

부르디외의 동료 볼탕스키(boltanski)는 이론의 논의를 확장해서 산업사회에서도 경제적 영역과 분리된 자율적 영역이 대중문화에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각주:21] 볼탕스키는 프랑스 만화를 분석하였는데, 그는 프랑스 만화가 전형적인 문화산업으로서 경제적 영역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영역과 자율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고하였다. 이는 만화가들이 순수예술을 모방한 만화를 지속적으로 그렸고, 동시에 순수예술의 종사자도 자신의 차별화를 위해 만화를 평론하고 순수예술적 의미를 부여해 주면서 만화가 순수예술의 지위를 일부 획득하게 된 결과로 여겨졌다.

 

반면 부르디외의 제자 에니크(Heinich)는 아방가르드가 저항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부르디외의 주장을 공격하였다. 그에 따르면 아방가르드는 저항이 아니라 이미 예술의 주된 관행이 되었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자신이 사회비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런 사회비판 정신이 담겼다는 작품을 기득권에게 비싼 값으로 판다. 정작 대중은 그런 예술에 관심이 없고, 그 결과 사회적 실천에 눈곱만큼의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현대예술은 단지 미술 트렌드로 전락했지 저항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에니크의 주장이었다.[각주:22]

 

영미권의 문화연구자 헤스먼달치(hesmondhalgh)는 부르디외의 문화 이론이 문화산업의 복잡성을 잘 담아내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각주:23] 헤스먼달치는 부르디외가 예술을 논하면서 오직 제한적이고 자족적인 소비가 주가 되었던 순수예술만 집중적으로 다뤘다고 비판하였다. 그 결과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는 문화연구에 비해 일천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헤스먼달치는 부르디외가 저널리즘 이론에서 비판했던 텔레비전이 정작 다큐멘터리와 같이 양질의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는 점을 들어 장이론이 한계를 가졌다고 논박하였다.

 

저널리즘 이론

예술과 마찬가지로 부르디외는 언론이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언론은 몇가지 측면에서 예술이나 과학과는 다르다고 여겨졌다. 부르디외의 이론에서 언론은 사회 일반에 영향을 끼치는 생산물을 생산하며, 동시에 사회 일반에서 오는 경제적 압력에 대단히 취약하다. 특히 대중매체(특히 텔레비전)가 탄생하면서 언론의 소비층은 넓어졌다. 반면 텔레비전의 특성상 깊이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어려워졌고, 그 결과 특종과 선정성을 중심으로 한 저질 기사가 점차 언론의 주류가 되었다고 여겨졌다.[각주:24]

 

여기에 더해 부르디외는 언론인이 지배층과 동일한 아비투스를 공유하기 때문에 지배층에 대한 비판이 힘들다고 보고했다. 언론인은 대부분 상류층과 여가나 사회경제적 배경이 비슷하고 교류도 자주 한다. 이는 언론인이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공유하게 만들고, 그만큼 상류층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그들에 대한 비판이 약해지게 만든다.[각주:25] 그렇기 때문에 부르디외는 언론이 사회를 비판하는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상업화를 약화시켜 저널리즘 영역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학을 주축으로 언론에 대한 외부 견제 기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각주:26]

 

 

대중사회[각주:27]

대중사회(mass society)는 근대사회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20세기 초에 제기된 개념이다. 대중사회의 개념을 제시한 철학자들에 따르면 근대에 새롭게 출현한 자본주의적 산업사회는 전통적인 유대관계를 가지지 못해 각 개인이 원자화되어, 마치 서로 엄청나게 떨어진 원자처럼 서로 고립되고 떨어져 존재한다. 원자화된 개인들은 타인과의 유대관계에서 탈피했으나 주체성을 가지지 못하여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선전에 쉽게 선동당하고 매스미디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대중사회를 주장한 학자들은 대중이 미디어에 철저히 종속된 수동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매춘에서의 연애

매춘부와 구매자 남성이 육체관계 이상의 관계를 추구한다는 인식이 여러 문학적 표현에 등장한다. 특히 한국의 근대문학 작품에서 구매자 남성과 매춘부가 연애관계를 추구하는 묘사를 손쉽게 볼 수 있다.[각주:28] 이러한 관계는 가상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세상에서도 나타나는 듯이 보인다.[각주:29] 해당 논문의 연구자는 이러한 연애관계가 피상적인 컨셉이 아니라 실제적인 연애관계라고 말하며, 상업적 연애와 비상업적 연애의 구분이 모호하다고 주장한다.

 

 

산업사회[각주:30]

산업사회(industrial society)는 근대화 이후에 출현한, 산업화가 생산의 영역에 깊게 자리하고 기계적 대량생산이 주된 생산 메커니즘인 사회를 말한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서구사회와 근대화를 거친 많은 사회는 이전의 농경사회와 달리 기술의 발달을 통해 가능해진 기계적 대량생산을 통해 재화를 생산한다. 이처럼 기술의 발달에 의해 일어나는 생산체제와 산업구조의 변화를 산업화라 하고 이 산업화를 거친 사회를 산업사회라 한다. 산업사회는 생산방식의 변화와 기술의 발달에 기초하여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인간관계가 창출되고 농경사회와 다른 새로운 사회 유형이 지배적인 구조가 되었다. 산업사회 이론은 이러한 산업사회의 관점에서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이론이다.

 

 

상대성이론에 대한 라투르의 해석[각주:31]

라투르는 아인슈타인이 대중과학서로 쓴 "상대성, 특수 및 일반이론"(Einstein, 1920)을 참고로 상대성이론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상대성이론에 대한 라투르의 분석은 국내에서 사회구성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인용되기도 했다.

 

라투르는 상대성이론을 분석하면서 상대성이론이 다루는 문제(두 개 이상의 다른 좌표계의 설명)를 약간 이해하고 있다. 비록 물리학자 앨런 소칼은 라투르가 두 개의 좌표계를 다르게 운동하는 좌표계가 아닌 다른 위치인 좌표계로 보는 오류를 범한다고 하지만, 이는 사소한 오류로 여겨진다. 라투르는 서로 다른 결과를 내놓는 두 개의 좌표계를 통합하는 과정을 상대성이론의 본질로 파악한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제 3의 좌표계를 도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주장한다. 라투르는 이에 대해 정확히 이렇게 말한다.

 

"떨어지는 돌의 움직임에 관해 기차 안에서 한 관찰과, 동일한 돌의 움직임에 관해 철둑에서 한 관찰이 일치하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약 좌표계가 하나뿐이라면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둘이라 해도 결과는 같다.... 아인슈타인의 해법은 [각주:32] 행위자를 가정하는 것이다. 하나는 기차 안에, 하나는 철둑에, 마지막 사람은 저자[발언자]로서 또는 저자의 대변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다른 두 사람이 보내온 부호화된 관찰들을 겹쳐놓는다."[각주:33]

 

라투르는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두 개의 좌표계를 중재하는 제 3의 좌표계를 통해 통합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서로 대립하는 두 좌표계가 정보를 보내면 제 3 좌표계가 이 정보를 취합하여 통합한다. 이 과정에서 제 3의 좌표계는 이러한 진리생산 과정에서 남다른 특권을 가지게 된다. 마치 파놉티콘의 중앙에서 죄수들의 정보를 모으는 간수나, 시민들의 표를 모아 당선된 후 도리어 시민 위에 군림하는 정치인처럼 제 3의 좌표계는 하나의 기준으로서 다른 좌표계들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이를 라투르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관찰자를 파견한 모든 현장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기록을 취합하는 특권은 바로 발언자의 몫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결국 특권을 장학하려는 싸움,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고분고분한 육체로 길들이려는 싸움으로 귀착된다."[각주:34]

 

이러한 라투르의 분석은 몇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상대성이론은 필연적으로 제 3의 좌표계를 요구하진 않는다. 물론 전문적인 논의에서는 3개 이상의 좌표계가 요구되는 경우도 있지만[각주:35] 여기서 나타나는 좌표계는 반드시 3개도 아닐뿐더러 다른 좌표계에서 정보를 모아오는 좌표계도 아니다. 무엇보다 상대성이론은 하나의 좌표계를 다른 좌표계로 변환하는 로렌츠 변환을 포함하고 있다. 로렌츠 변환을 통해 서로 다른 두 좌표계는 제 3의 좌표계 없이도 서로 변환될 수 있으며 상대성이론은 로렌츠 변환의 기술과 풀이를 포함하고 있다. 사실 서로 다른 좌표계간의 변환은 고전역학에서도 가능하다. 시속 2km/s로 움직이는 공 위의 물리법칙을 정지한 침대 위의 물리법칙으로 변환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여기에 중력과 광속이 포함되면 이 변환은 거의 불가능해지고 상대성이론은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 해결 어디에도 권력을 가지는 좌표계는 필요하지 않다. 

 

문화연구자 리즈 머민[각주:36]은 이에 대해 라투르의 상대성이론 분석은 상대성이론에 대한 과학기술학적 분석이 아니라 상대성이론에서 사회과학에 사용할 이론적 틀을 발굴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한다. 확실히 레비나스나 그람시도 특정한 분야에서 이론적 틀을 발굴해 사용하였고 라투르 자신도 이후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이라는 고유한 이론적 틀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라투르는 상대성이론을 분석한 책 서문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사회라고 하는 개념을 새롭게 설정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작업이 명백히 사회적이라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이와 연관된 질문이지만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사회를 연구하는 방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 것인가?"[각주:37]

 

이를 보면 리즈의 주장은 반만 맞고 반만 틀리다. 라투르의 글은 사회과학에 사용할 이론적 틀을 발굴하려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상대성이론에 대한 왜곡으로 점철된 오류투성이 글이다. 

 

 

세계화[각주:38]

세계화는 국경을 넘는 교역과 투자, 교류가 확대되면서 국가간 상호의존성이 증가하고 다자간 협의가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사회학과 다른 인문학에서 세계화는 주로 경제적 세계화로 이해되며,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자본주의가 세계 전체로 확산되고 그로 인해 노동자의 권익은 약화되는 현상이라고 해석된다. 또한 이러한 세태 속에서 흥하는 기업은 대개 서구 선진국의 대기업이기 때문에,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으로도 해석된다. 한편 세계화는 국가의 약화와 동시에 유럽연합이나 벵갈과 같은 지역 단위체의 강화와도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화를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라고도 부른다.

 

사회학과 인문학의 주류(그리고 좌파)에서는 세계화를 서구국가들이 벌이는 새로운 제국주의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서구국가들은 다른 나라를 문화적으로 지배하려고 하고 있고, 서구 대기업이 이러한 문화 침략의 선봉장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그래서 맥도널드화(McDonaldization)나 코카콜라식민화(coca-colonization)와 같은 것이 그러한 침략 활동이다. 이러한 면모는 특히 문화에서 잘 드러난다고 이들은 주장하는데, 그래서 이들은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과 같은 복합 미디어 그룹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미국 문화를 선전하고 있으며 그래서 미국은 진보가 죽고 천박한 우파가 활개치는 사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문화의 전파를 일종의 침략이라고 보며, 여러 지역의 '순수'한 문화가 '사악한' 미제 문화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가 된다는 관념을 가진 듯이 보인다. 이러한 성향은 이러한 주장이 나타난 프랑스(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음)와 한국(민족주의가 주류 담론을 차지했었음)의 문화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러한 점으로 인해 인문학자 중 문화연구자들이 세계화에 관심을 가지고 세계화를 자신들의 담론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정보사회론[각주:39]

정보사회란 발달한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하여 형성되는 사회를 말한다. 토플러(toffler)는 인간의 역사를 기술을 중심으로 3가지 물결로 구분했는데, 여기서 1물결이 농업사회, 2물결이 산업사회이다. 토플러는 기술의 변화가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제3물결인 정보사회도 정보통신기술의 영향 하에 산업사회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고 강조한다.[각주:40] 이를 세부적으로 보자면 정보사회에서 주요 상품은 지식, 기술, 컨텐츠 등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한 무형의 상품이고, 매스미디어가 아니라 좀 더 소규모의 인터넷 매체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

 

사회학자들은 정보사회가 좋은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이론을 제안한 토플러와 사회학 교수인 다니엘 벨은 정보사회가 더 발달한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참여민주주의의 확대, 분권적인 의사결정, 정보접근의 평등화를 통한 피지배층의 권력 강화 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경제에서는 산업사회의 집중화, 표준화, 착취 등이 사라지고 여가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대로 비관론자들은 새로운 기술이 권력자가 피지배층을 감시하기 더 용이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발달한 기술을 토대로 다국적 기업과 자본주의가 전세계로 확대되어 사람들을 착취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000년대만 하더라도 이런 논쟁은 심심찮게 벌어졌다. 지금 시점에서 볼 때 둘 다 타당하다.

 

이 분야의 주요 연구자로는 故앨빈 토플러(Alvin Toffler)가 있다. 토플러는 처음으로 정보사회를 주장하였다.

 

 

집안일 분담

사회에 성평등이 정착되면서 많은 가정에서 남녀가 집안일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분담이 어떠한 사회학적 효과를 가져오는지 연구하였다. 어떤 실증적 조사연구[각주:41]에서 남성의 가사분담은 분담하는 가사의 형태에 따라 다른 효과를 가져왔는데, 남성이 기존에 여성이 분담해 왔던 주요한(core) 가사를 더 많이 분담할수록 더 적은 성관계 횟수를 보고하였다. 그러나 성관계에 대한 만족도나 종합적인 결혼만족도는 가사분담이 동등할수록 커졌다.[각주:42]

 

필자는 전자의 연구에서 발견된 관계가 제 3변인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남성성을 중시하는 남성은 가사분담을 기피하는 동시에 여성 배우자에게 더 많은 성관계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가설은 전자의 연구를 설명함은 물론, 왜 정작 성적 만족도는 가사분담이 큰 가정에서 높은지도 설명해 준다.

 

 

청년문화[각주:43]

청년문화는 보통 60-70년대에 서구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문화 기조를 말한다. 당시 서구는 물질적 풍요와 보수적인 문화에 질린 사람들에 의해 반문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이끈 주요 세대가 청년들이었다. 청년문화의 주창자들은 공동체의 회복과 소수자의 인권을 주장했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신좌파가 탄생하였다. 록과 포크 음악은 청년문화에서 호응을 얻으면서 본격적인 주류 음악이 되었고, 히피도 이때 출현했다. 청년문화는 한국에서 영향을 미쳐서 70년대 한국에 통기타나 청바지, 장발, 생맥주 등이 유행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막스 베버는 저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에서 처음으로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자본주의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베버는 개신교의 교리, 특히 청교도윤리가 자본주의의 탄생을 가져왔다고 보았는데 청교도윤리의 특성인 검소,절약정신에 의해 막대한 자본이 쌓였고 막대한 자본을 기반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탄생했다고 보았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에토스로 간주되는 이윤추구, 검소함, 절약[각주:44]은 많은 부분에서 청교도 교리와 유사하다. 최근 경제사학자의 연구[각주:45]에 따르면 청교도 교리 이외에도, 개개인의 성경 탐독을 강조했던 루터교의 교리 아래에서 많은 개신교인이 성경을 읽기 위해 읽기를 공부했고, 읽기가 가능해진 대중이 금속 활자의 발명으로 폭증한 출판물들을 읽으면서 교양이 증가했다. 대중의 교양증가는 필연적으로 인적자본의 증가를 가져왔고 이는 근대유럽의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

 

이 분야의 주요 연구자로는 故막스 베버가 있다. 베버는 처음으로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자본주의 윤리의 연계성을 지적했으며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은 세계적 고전이 되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각주:46]

피에르 부르디외는 프랑스의 사회학자로, 1930년에 태어나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그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를 지냈으며, 2002년 사망했다. 그는 그의 독창적인 사회문화이론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그에 따르면 프랑스는 사회적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적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이 문화적 취향은 어떤 경우에 장벽이 되어 계층이동을 실질적으로 차단한다. 대학 면접때 가장 좋아하는 포도주를 말하라고 했다는 일화가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데,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중산층과 하류층의 사회적 성공을 효과적으로 막아서 계층화를 공고히 한다. 부르디외는 주장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면서 객관성까지 확보하였다.

 

 

한국의 90년대생

MZ세대는 한국의 90년대생을 일컫는 말로, 사전상 정의는 20년대 기준으로 20대에서 40대를 포괄하는 단어이다. 이러한 단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대가 보여준 행태, 특히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20대 남성이 보수 후보인 오세훈을 지지한 사태를 보고 언론에서 이들에게 집중하면서 유명해졌다.# 이 단어를 만든 김난도를 비롯하여 수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은 mz세대가 가지는 특징을 운운하며 20대를 규정지었으나, 심리적 변수의 측면에서 사실 90년대생은 다른 세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각주:47] 

 

mz세대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사상누각이지만, 그럼에도 현 세대를 관찰하여 시대의 변화를 논하려는 시도는 종종 있다. 임명묵[각주:48]은 90년대생의 특징으로 탈가치화를 들며, 90년대생은 특별히 지향하는 가치도 없고 단지 사회의 경쟁 속에서 투쟁하여 물질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승리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심해진 경쟁과 인터넷의 발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헤게모니

헤게모니는 마르크시즘 운동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에 의해 정립된 사회학 용어이다. 헤게모니는 사회적으로 상식이나 진리라고 인정되는 지식으로, 헤게모니는 사회마다,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헤게모니는 동시에 지도력, 패권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왜냐하면 헤게모니가 실제로 지배층의 지배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유교는 상당부분 한나라 초기 동중서에 의해 정립되었는데, 동중서의 유교는 많은 경우 천자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학에서 헤게모니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상식이라는 뜻과 함께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지배하기 위해 가하는 문화적, 비물리적 압력을 말하기도 한다.[각주:49]

 

흔히 대중매체에서는 폭압적인 제국을 묘사하지만 그런 제국은 오래가지 못한다. 공포정치로 악명이 높았던 아시리아, 크롬웰의 통치, 혁명기 프랑스 정부 등이 모두 단기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인간은 공평함과 도덕을 추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물리적 강제만으로는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힘들며, 그래서 피지배 세력을 물리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방법으로 지배하는 권력구조가 더 오래 살아남았다. 아시리아와 인도의 아리아인을 비교하면 이는 더 명확해 지는데, 공포와 폭력으로 이민족을 다스렸던 아시리아는 폭력을 참다못한 이민족의 끝없는 반란에 의해 단기간에 멸망했다. 반면 아리아인은 브라만 교를 통해 드라비다인에 대한 지배를 전생에 극악했던 자에 대한 합당한 벌로 합리화함으로써 지배구조를 거의 3000년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문화적 지배가 물리적 지배 못지않게 효과적이기 때문에 많은 안정적인 문명, 사회에서는 헤게모니를 발달시켰다. 

 

현대의 헤게모니는 주로 자본가와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정립되었다. 자본의 양을 노력의 양과 동일시하고 그를 통해 빈부격차를 정당화하는 주장이 대표적인 헤게모니이다. 하지만 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듯이 현대의 헤게모니는 양상이 복잡하다. 결국 헤게모니는 특정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행사하는 문화적 장치이기 때문에 새로 떠오르는 다른 계급에서도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불교와 성리학의 대립이 나타났던 조선초에서도 나타났으며 결과적으로 기존 지배층의 헤게모니(불교)가 새로운 세력의 헤게모니(성리학)에 밀려났다. 현대에는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수많은 사상, 계급, 집단이 난립하게 되고 따라서 다양한 집단들이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다. 후기산업사회에서 헤게모니는 하나의 장(field)처럼 기능하는데, 이 장 안에는 다양한 집단에서 만든 헤게모니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헤게모니 투쟁을 벌이고 있다.

 

헤게모니 이론의 창시자인 그람시는, 헤게모니 이론과 함께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개념도 제안했다. 유기적 지식인이란 문화적 소양을 갖춘 엘리트로서 문화와 이데올로기 분야에서 리더십을 제공하는 지식인을 말하는데, 조선의 유학자나 현대의 언론인, 교육자, 문화산업 종사자 등이 여기 해당한다. 그람시는 유기적 지식인들이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생산하면서 새로운 헤게모니를 만들고 유통시킨다고 주장했다.[각주:50]

 

이 분야의 주요 연구자로는 故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있다. 그람시는 헤게모니 이론의 창시자로, 1891년 이탈리아 샤르데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곱사등이였던 그는 트리노 대학을 졸업한 후 토리노 공장 평의회에서 활동했고, 마르크스주의 신문인 <신질서>를 창간해 편집자로도 활동했다.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이 창당된 이후에는 당 중앙위원과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1926년 무솔리니 정권에 거역한 죄로 체포되어 20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람시를 두고 검사가 '이 자의 두뇌를 20년간 활동 정치시켜야 한다.'고 한 논평은 그람시의 천재성을 보여주면서 그를 소개할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감옥에서 그람시는 유명한 <옥중수고>를 집필했고, 1937년 옥중에서 4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각주: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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