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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의 이론들

과학주의자 2023. 2. 22. 14:47

인문학에는 문화를 분석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있다.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알튀세르까지 다양한 문화 이론이 존재하며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과 매우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문화 이론들은 모두 철학 이론인 동시에 문학 이론이며, 인문학의 가장 주된 관점들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이론들을 이해하는 일은 문화연구뿐만 아니라 현대인문학 전반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인문학의 문화 이론들은 서로 여러 차이가 있지만, 대개 대중문화와 지배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관계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김창남은 이론은 문화 현상을 해석하는 수단일 뿐이며, 그 이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사실 어떠한 객관성도 검증되지 않은 가설들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이 분야의 주요 서적은 <대중문화의 이해(김창남,2판,한울,2018)>가 있다. 

 

 

1.엘리트주의

20세기 중반에 흥했던 일련의 문화연구자들은 현재 주류 세력에 의해 '엘리트주의'라고 지칭되는데, 이 엘리트주의자들은 대중문화가 단지 자본가에 의해 생산된 상품이며 대중은 수동적으로 소비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엘리트주의자가 정신분석학자 어네스트 반 덴 하그와 인문학자 드와이트 맥도널드인데, 반 덴 하그는 대중문화가 비이성적인 폭력이나 천박한 컨텐츠를 통해 삶의 탐구를 멈추고 일상의 어려움을 잊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엘리트주의자들은 대중문화를 저급한 대중에게 맞춰 하향평준화된 문화이며, 단지 수동적으로 소비될 뿐인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50년대 대중문화 논쟁이 일어날때 드와이트 맥도널드는 민속문화가 하류층 자신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인 반면, 대중문화는 자본가가 고용한 기술자가 만들고 대중은 소비만 하는 문화라고 공격했다. 또한 엘리트주의자들은 대중문화가 여러 다양한 문화를 하나의 저급한 기준에 동화시키며, 그러는 과정에서 이성적 가치처럼 사회유지에 필요한 여러 덕목들이 손상된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엘리트주의자로는 정신분석학자 어네스트 반 덴 하그(Ernest Van den Haag)와 인문학자 드와이트 맥도널드(Dwight Macdonald)가 있다. 반 덴 하그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52년 뉴욕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컬럼비아 대학과 미네소타대, 예일대, 하버드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드와이트 맥도널드는 기자 출신인데, 예일대를 졸업한 이후 그는 <future>, <partisan> 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이후 그는 <politics>를 창간했고, 노스웨스트대와 텍사스대, 예일대, 뉴욕대 등에서 초빙 교수로 활동했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엘리트주의는 가장 오래된 문화 담론인 동시에, 그래서 가장 지루한 문화 담론이다. 하층 문화에 대한 폄훼는 거의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조선시대에도 소설이나 판소리에 대한 폄하는 존재해 왔다. 한때는 소설과 오페라도 저급한 문화로 취급되었으며, 저급한 놈들이 지금와서 다른 문화를 폄훼하는 것은 정말 같잖아 보인다. 물론 <기생충>이나 <원령공주>처럼 다른 문화컨텐츠에 비해 인간의 의식을 고양하고, 사고력을 일깨우면서, 인간을 지적/정신적으로 성장시키는 더 우월한 문화 산물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이 오페라같은 고급문화가 아니라, 대중문화인 영화임을 주목하라. 사실 인터넷 웹툰이 19세기 오페라보다 고급이고 지적인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며, 문화를 미디어를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없다.

 

쉴즈의 문화수준론

문화수준론은 미국의 사회학자 에드워드 쉴즈가 주장한 이론으로, 에드워드 쉴즈(Edward Shils)는 1911년 태어난 미국의 사회학자인데, 펜실베이니아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 수학했고 시카고대 교수를 지냈다. 쉴즈는 근대화 이후 집단적 권위가 약해지고 개인적 권리가 신장되면서 개인적 경험과 감수성에 대한 존중이 확산되었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부류와 계층이 자신의 취향을 선택하면서 대중문화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미적/도덕적/지적 기준에 따라 문화를 3가지 수준으로 나누었는데, 우수한(superior)/세련된(refined) 문화와 범속한(mediocre) 문화, 그리고 저속한(brutal) 문화가 그것이다. 

 

우수한 문화는 주제를 아지 진지하게 다룬다는 점이 특징이다. 가령 그리스 조각은 대리석에 대한 상세한 기술적 이해와 육체미에 대한 강렬한 심미적 탐구를 추구하며, 수묵담채화는 단지 검은 선 만으로 여백과 검은 부분을 나누면서 미를 표현하려고 집중한다. 주제에 대한 집중성과 문제를 지각하는 날카로운 통찰, 종합적인 안목, 정교하고 풍부한 표현 등이 우수한 문화의 조건으로, 이러한 문화 컨텐츠들은 고급문화 전통 속에서 자라난 엘리트들인 고급지식인 계층에 의해 생산된다. 쉴즈는 시나 소설, 조각, 회화, 음악, 건축 등을 여기에 포함시켰다. 

 

범속한 문화는 우수한 문화와 동일한 장르이나, 우수한 문화에 비해 독창성이 결여되고 모방성이 강한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컨텐츠들은 범속지식인 계층에 의해 생산되며, 범속지식인들은 나름 고급문화의 전통을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산업화 전통과 문화의 상품화 논리 역시 받아들인 계층이다. 쉴즈는 뮤지컬 코미디를 범속한 문화의 예시로 들었으며, 잡지나 베스트셀러 소설, 매스미디어 컨텐츠도 여기에 들어간다.

 

저속한 문화는 그것이 내포한 상징성이 초보 단계에 있는 경우이다. 가령 영화 <분노의 질주>를 <월든>과 비교해본다면, 전자는 후자에 비해 무슨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심미적인 탐구도 본능적이고 섬세하지 못한 차원에 머물면서 깊은 생각을 끌어내기는 커녕 말초적인 욕망만을 자극한다. 이처럼 깊은 통찰력은 필요없고 조잡한 감수성이나 자극하는 경우가 저속한 문화로, 이렇다 할 문화적 전통 없이 활동하는 저속지식인 계층에 의해 생산된다. 쉴즈는 게임이나 스포츠, 범죄영화, 문고판 책은 물론이고 상징성이 지극히 낮은 고급문화 장르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쉴즈는 3가지 문화에 3가지 생산자가 있듯이, 소비자도 3가지 집단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수한 문화는 주로 지식인들이 소비하며, 학자나 전문직, 작가, 저널리스트, 장교, 고위 관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범속한 문화는 중산층에 의해 소비되는데, 쉴즈는 미국의 경우 지식인들조차도 범속한 문화를 소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속한 문화는 노동자와 농촌 인구가 소비하는데, 쉴즈에 따르면 이들은 우수한 문화나 범속한 문화에서 소외된 자들이다.

 

쉴즈가 문화의 우열을 나누고 있긴 하지만, 그는 엘리트주의와 달리 범속문화나 저속문화의 생산이 반드시 우수한 문화를 파괴한다고는 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범속한 문화와 저속한 문화로 돈을 벌어들인 기업과 정부가 우수한 문화를 후원하여 살려낼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사회에는 3가지의 서로 다른 존중되어야 할 문화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원주의자들(현재 주류 세력)은 문화의 우열을 나누었던 쉴즈의 개념 그 자체를 싫어한다.

 

한편 문화에 3가지 층위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후에 부르디외의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쉴즈의 주장은 다른 대중문화 담론보다 객관적인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갠스의 취향문화론

취향문화론은 컬럼비아대 사회학 교수였던 미국의 대중문화 연구자 허버트 갠스(HGebert Gans)가 주장한 담론인데, 갠스는 쉴즈가 서로 다른 문화간에 우열을 가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계층간 문화의 차이를 취향의 차이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 취향을 고를 기회가 공평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현재 개인들이 가진 문화 취향은 스스로가 선택한 적절한 심미적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계층이 아니라 '취향공중'이라고 부른다.

 

갠스는 사회계층에 따라 5개의 취향문화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높은 사회계층(취향공중)이 가진 취향문화일수록 더 고급인 문화로 대접받는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고급문화는 엘리트 계층이 공유하는 문화이며, 그들만이 생계 문제 없이 문화를 키워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만이 문화적 전문성을 발달시켜 문화적 권위를 차지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급문화는 정의와 범위가 명확한 반면, 다른 문화들은 그렇지 않다고 갠스는 주장한다.

 

쉴즈와 비슷하게 갠스도 고급문화가 더 좋은 문화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갠스는 고급문화의 미적 기준이 절대적이라는 데에는 반대하며, 각 취향문화가 가진 고유한 미적 가치와 기준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책의 다른 부분에서 갠스는 고등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들은 고급문화를 즐길 능력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고급문화를 충분히 접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갠스는 주장한다.

 

갠스는 쉴즈보다 더 문화상대주의적인 입장에 가까워졌지만, 아직도 다원주의자들의 입맛을 만족하지 못한다. 현대 대중문화 연구자들은 그 또한 문화간 우열의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들어 그 역시 엘리트주의의 아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다원주의자들은 갠스의 담론이, 우월한 고급문화의 시각에서 대중문화에 일종의 '시혜'를 내려준다고 보고 있다. 또한 대중문화 연구자들은 취향문화론이 과학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공격하는데,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이라고 지칭하는 놈들이 누가 누구를 욕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분야의 고전은 갠스가 직접 저술한 <대중문화와 고급문화(강현두 역,나남,1998)>가 있다.

 

현대의 주류:다원주의

엘리트주의와 다양한 반대 담론이 나왔지만, 기본적으로 현대의 주류 입장은 다원주의이다. 다원주의는 밑에서 다룰 마르크시즘 문화론과 포스트모던 문화론과 함께 현대 대중문화 연구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다원주의자들은 대중문화와 고급문화가 미적 우열이 있다는 주장 자체를 거부하며, 고급문화란 단순히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입장과 이해관계 속에서 자의적으로 정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대중문화에도 고유한 미적 기준이 있으며, 대중문화 특유의 미적 가치를 수립하고 이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객관적으로 보았을때 다원주의가 가장 객관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적 가치는 주관적이거나 생물학적 본성의 일부일 뿐인데, 그처럼 모호하고 조악한 미적 가치라는 개념으로 여러가지 문화의 서열을 짓는 일은 어려울 뿐더러 합리적으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문화 산물은 우리의 문명에 도움이 되며, <분노의 질주>보다는 <기생충>이 사회변혁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번외로, 이러한 입장의 지지자들은 그래피티와 같은 범죄행각도 문화의 이름으로 옹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적 가치와는 별개로 남의 집에 페인트 뿌리고 튀는 민폐쟁이들은 엄격히 규제하고 꺼지게 하는게 맞다.

 

 

2.마르크스와 프랑크푸르트

여느 인문학이 그렇듯이, 대중문화 연구에서도 마르크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특히 마르크스의 후예를 자처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그냥 문화연구의 창시자라고 불러도 될만큼 분야를 창시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마르크스의 문화론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화론은 상당히 다르고, 프랑크푸르트 학파 내에서도 학자들마다 다양한 문화관의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회에 대한 비판 정신과 계층적 시각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들 모두 사회에서 인정되는 주장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내는(인문학자들은 이를 '폭로'한다고 표현한다)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한데 묶여서 다뤄진다.

 

마르크스주의 문화론(reflection theory,반영이론)

사실 마르크스주의 문화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마르크스는 문화론을 주장한 적이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마르크스는 문화에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회를 상부구조와 하부(토대)구조로 나눈 후, 문화는 상부구조에 있다고 여겨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사회구조가 그 사회의 생산양식과 생산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는데, 그에 따르면 한 사회의 생산양식은 그 사회의 경제구조를 결정하고, 경제구조가 그 사회의 법적/정치적 구조와 사회적 의식의 형태를 형성한다. 마르크스는 생산양식과 같은 사회의 물질적 구조가 변화할때 사회가 변한다고 보았고, 문화적 변화는 이러한 물질적 변화가 일어난 뒤에야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러니 그가 문화에 관심이 없었음은 당연하다.

 

이러한 입장은 반영이론이라는 단어로 정리된다. 문화연구에서 반영이론이란, 문화는 그 문화가 속한 사회의 생산양식을 반영한 결과라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문화는 단순히 해당 사회의 경제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에, 문화를 이해하려면 쓸데없이 텍스트갖고 지랄하지 말고 사회의 경제구조를 중심으로 분석해 들어가야 한다. 이 이론은 공산주의권에서 받아들여져 프롤렛쿨트(proletkult) 운동과 같이 새로운 사회주의 기반 문학을 건설하려는 운동의 토대가 되었고, 현재 역사학에서도 일정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문화의 고유성도 역시 인정하고 있음을 주의하라. 문화는 사회의 물질적 환경을 반영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역사문화적 배경도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 사후 일군의 마르크시스트들은 어떻게든 마르크시즘에서 문화의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마르크시즘 특유의 교조주의로 인해 그들은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대신 마르크스의 저작을 재해석하여 문화의 자리를 만들려고 했는데, 그중 가장 성공했고 가장 유명해진 이들이 프랑크푸르트 학파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화론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192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사회연구소를 주축으로 탄생한 철학 학파를 말한다. 이들이 활동했던 20-40년대 유럽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으며, 이때 노동자들이 공산주의가 아닌 파시즘에도 일부 동원되는 현상이 나타나자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좌절에 빠졌다. 그 중 하나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였고, 이들은 당대의 대중을 비판하기 위해 문화연구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대중문화'라는 명칭이 대중문화를 대중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착각할 우려가 있다면서 대신 '문화산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베버와 프로이트의 이론을 끌어왔으며, 경제구조 이외에 사회문화적 구조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정신분석학적 분석도 시도하였다. 그러한 결과로 이들은 방대한 이론체계를 구축하였고, 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초반 사이에 매스미디어와 전체주의의 문화정책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은 비판이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이론은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이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사물화 현상에 주목했다. 사물화 현상(reification)은 상품이 아니었던 것이 상품처럼 취급되는 현상으로, 가령 아무나 마실 수 있던 물이 병에 담겨 라벨이 붙여지면 일정한 값을 가진 상품이 되는 것이 사물화 현상의 예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사회의 거의 모든 것들이 사물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자율성과 자발성, 비판의식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들에게 무력감과 소외를 경험하게 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한다. 대중문화는 여기서 대중들을 환상으로 도피시켜서 사회저항의 의지를 꺾게 만드는게 대중문화라고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주장했다.

 

왜 소외와 대중문화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가?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사회변화가 인간의 행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인간이 자신에 의한 주체적 행위(실천)를 통해서 사회변화를 일궈낼 수 있는데, 실천의 근간은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대중문화는 비판적인 사고를 키워주기는 커녕 순응시키고, 그들이 목도했던 노동자들은 공산주의의 열렬한 추종자가 아니라 공산주의와 파시즘으로 갈라져 싸우는 멍청한 대중들이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대중문화가 저항해야할 노동자들을 순응하게 한 범인이라고 단정했고, 대중문화를 비판하는데 열을 올리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대중문화의 대안으로 자율예술을 제안했다. 이윤과 권력을 위해 조작된 대중문화와 달리 자율예술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사회변혁의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대중문화는 어떤 내용을 가지건 상품화를 거치면서 비판의식이 거세되어 버리기 때문에 기존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기생충>도 단지 사회의 온존에만 기여하는 영화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율예술은 기존의 문화산업에서 벗어나야 하며, 기존의 예술적/문화적 형식을 벗어던져야 자율예술일 수 있다고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주장했다. 이는 아도르노가 쉰베르크의 음악을 찬양한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연구자들은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대중문화의 산업적 특성에 주목하고 자본주의적 지배라는 개념을 도입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원주의자들은 프랑크푸르트 학파도 결국 엘리트주의일 뿐이라며 공격한다. 다원주의자들에 따르면 자율예술은 지극히 반대중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며, 그러한 예술은 대중을 결집시킬수 없다고 비판한다. 대중과 동떨어진 예술은 대중을 결집시킬 수 없다는 말은 일리가 있지만, 대중을 비판하면 무조건 엘리트주의라는 이 무지한 새끼들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막말로 대중이 만들고 이끌어서 성공한 사회운동이 몇이나 되는가?

 

주요 프랑크푸르트 학파 구성원으로는 허버트 마르쿠제(Hebert Marcuse,1898-1979)가 있다. 하이데거와 후설의 제자인 마르쿠제는 1933년 사회연구소에 들어갔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거두로 활약하다가 2차대전기에 미국으로 갔다. 여기서 그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을 설파하면서 미국에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주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마르쿠제는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엮으면서 신좌파 사상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다른 학자로는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1903-1969)가 있다. 아도르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 강의를 했고, 2차대전기에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53년에 다시 독일로 돌아와 프랑크푸르트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그는 본업인 철학뿐만 아니라 사회학과 음악학에도 다양한 업적을 남겼으며, 주요 저서로 <계몽의 변증법(Dialectic of Enlightment)>이 있다.

 

벤야민의 예술의 정치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구성원 중 하나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저술하면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화평론에 동참하였다. 다른 구성원들과는 달리 그는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에 망명했는데, 그로 인해 프랑스가 점령되자 수용소에까지 갇혀야 했다. 수용소에서 풀려난 이후 그는 그제야 미국으로 탈출하려고 했으나, 피레네 산맥에서 스페인 관리에게 걸려 통과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독약을 먹어 자살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은 이후 스페인에서 국경을 개방하여 다른 일행들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그는 과거와 현재 문화의 차이로 복제성을 들었다. 과거의 예술작품은 본래 신비체험이나 신과의 합일을 추구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주술적이고 신비로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더욱이 당시의 예술작품은 복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런 일회성과 오리지널리티가 작품의 가치를 높이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비감을 느끼게 하였다. 이러한 신비감을 벤야민은 아우라(aura)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대중문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문화컨텐츠는 양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영화에서 보듯이 원본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거나 희미하게 되었다. 벤야민은 그러면서 예술작품이 주술적/신비적 기능을 상실하고 상품적 가치와 전시적 가치만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거의 예술작품은 신비감을 불러일으켜 대중이 몰입하게 한 반면 현대의 문화컨텐츠는 대중으로 하여금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예술의 정치화가 가능해졌다고 벤야민은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벤야민은 예술과 정치가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예술지상주의를 공격하면서 예술지상주의는 곧 파시즘이라고 주장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파시즘을 사회적 모순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거부하지 않은 채 정신만을 강조하여 제거하려는 사상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파시스트 정권에서 선전을 위해 매스미디어를 동원하는 것을 두고 '정치의 예술화'라고 표현했다. 김창남은 예술의 정치화 개념이 대중문화의 진보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했는데, 대중문화를 정치의 예술화 사례로 본 벤야민이 과연 거기에 동의할지 잘 모르겠다. 예술의 정치화가 작가와 독자의 위계를 허물었다는 김순원의 해석footnote]김순원. (2014). 흡혈귀와의 불편한 동거: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18 세기영문학, 11(2), 1-46.[/footnote]에도 벤야민이 동의할지는 미지수이다.

 

 

3.구조주의적 접근과 문화주의

구조주의는 20세기 전반 대륙철학을 지배했던 사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기 전까지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비록 그 지위는 예전만 못하지만, 구조주의는 문화연구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를 하나 낳았다. 구조주의자들은 기호학을 낳은 것만으로도, 문화연구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충분하다.

 

알튀세르의 사상도 주요한 대중문화 이론 중 하나이다. 알튀세르는 사람들이 ISA라는 기관에 의해 통치를 받으며, 이들에게 호명되어 자신이 객체임에도 불구하고 주체인 것처럼 착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대중은 자신이 대중문화의 주체적인 소비자라고 여기지만, 실상은 소비하는 객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여성이 객체화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입김을 잘 충족해 주었으나, 다른 진영에서는 알튀세르의 주장이 인간 바깥의 요소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반인간적이라고 공격한다.

 

기호학

기호학은 구조주의적 가정에 기초하여 문화 현상을 분석하는 학문으로, 구조주의의 창시자 소쉬르에서 시작되었고 문학자 바르트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소쉬르는 언어가 랑그라는 구조 속에서 파롤이라는 기표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파롤들을 조사하여 랑그를 밝혀내는게 바로 기호학이다. 랑그(langue)와 파롤(parole), 기표(signifier), 기의(signified), 계열체(paradigm), 통합체(syntagm)가 기호학의 용어들인데, 기표는 ㄱ,ㄴ 등의 기호를 의미하고 기의는 각 기호가 가진 뜻을 의미한다.

 

기호학은 인문학자들이 문학과 영화, 사진, TV 등 대중문화의 텍스트들을 분석하는 주된 방법 중 하나이며, 대중문화 연구를 주된 인문학 분야로 끌어올리는데 공헌하였다. 기호학자들은 대중문화 연구에서 대중문화 텍스트들이 가진 구조를 파악하고자 했으며, 이 구조를 파악하여 이를 지배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밝혀내고자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이들은 텍스트에서 의미가 대립되는 요소들을 쌍으로 정리하거나, 이야기의 전개를 세분화하고 배열방식을 조사하는 민담분석 방법이나, 몬화적 표상의 표면적 의미와 함축된 의미를 구분하고 의미화 과정을 조사하는 신화분석적 방법 등을 사용한다. 이들은 모든 대중문화 텍스트들이 어떠한 구조에 근거하여 의미가 부여되고 생산되는데, 이 구조는 당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주요 기호학자로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915-1980)가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문화비평가, 마르크스주의자, 구조주의자 및 후기구조주의자, 에세이스트 등 다양한 명함을 가진 바르트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를 지냈으며, 50년대에는 마르크시즘과 사르트르, 브레히트의 영향으로 문학의 역사성과 사회성에 주목했고, 60년대에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언어학자 그레마스와의 인연으로 구조주의를 접하면서 본격적인 기호학 연구를 시작하였다. 

 

예시:007 분석

기호학자 에코는 기호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007 시리즈를 분석하였고, 이를 논문 <이언 플레밍의 007의 서사구조>로 출간하였다. 이 연구는 대중문화 텍스트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의 전형으로서 김창남의 교재에 실리게 되었다. 

 

에코는 우선 작품 속의 인물과 사건, 행동에서 대립적 요소들을 찾아서 이들을 대립쌍으로 배열하였다. 이리하여 본드/M, 본드/악당 악당/본드걸, 본드걸/본드, 자유세계/소련, 영국/타국, 의무/희생, 욕망/이상, 충성/불충, 도착증/순수함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이들 대립쌍을 통해서 에코는 007이 반공주의와 백인우월주의, 가부장제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007의 서사구조를 분석하고, 다음의 도식들이 항상 007 이야기에 나타남을 보였다.

 

  1. M이 본드에게 과제를 부과하고, 본드는 악당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어떤 장소로 간다.
  2. 악당은 대개 흉측한 모습으로 본드에게 나타난다.
  3. 본드가 악당에게 최초로 일격을 가한다.
  4. 여자가 나타나 본드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5. 본드는 여자를 취한다. 그는 여자를 소유하거나 유혹하기 시작한다.
  6. 악당이 본드를 붙잡는다. 
  7. 악당이 본드를 고문한다.
  8. 본드가 악당을 물리친다.
  9. 건강을 회복한 본드는 여자와 즐기지만 여자는 곧 떠나간다.
 

이러한 이야기는 악당과 미녀, 그리고 용이 등장하는 서구 설화의 구조를 원형으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원형에 007을 비추어 보자면 M은 왕이고, 악당은 용이며, 본드는 왕에게 임무를 받고 미녀를 구해주는 전형적인 주인공 기사이다. 이러한 원형 서사가 위에서 언급한 각종 이데올로기들과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 에코의 주장이다.[각주:1]

 

문화주의

문화주의는 영국에서 발생한 대중문화 담론으로, 리처드 호가트와 레이먼드 윌리엄스, E. P. 톰슨 등에 의해 제창되었다. 문화주의는 대중들이 문화를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이들의 조상인 매슈 아놀드 등이 견지한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의 문화를 '살아있는 문화'라고 표현하면 찬양한다. 또한 마르크시즘에 반대하여 이들은 문화는 물질적 환경에서 자유로우며, 오히려 물질적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구조보다는 인간에,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간의 주관적 경험에, 지배계급보다는 피지배계급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와 차이를 보이며, 대중이 문화적 실천을 통해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해 나간다고 주장하여 프랑크푸르트 학파와도 반대된다.

 

호가트는 자신의 저서 <The Uses of Literacy>에서 영국 노동계급의 문화를 '삶의 문화(lived culture)'라고 불렀다. 그는 30년대 영국 노동계급의 문화는 일상에 대한 관심과 이미 알려진 것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탐색보다는 보여주는 것에 대한 선호를 특징으로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화는 노동계급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며, 호가트는 이 문화가 일상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생활을 강화한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 호가트는 당대에 확산되던 매스미디어 중심의 대중문화가 건강한 노동계급 문화를 위협한다고 공격했다.

 

역으로 역사학자 톰슨은 저서 <The Making of English Working Class>에서 문화가 노동계급 형성에 공헌했다고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계급은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생산양식에 의해 고정된 게 아니라, 대립되는 이해관계에 대한 감정과 인식이 서로 공유된 결과물이다. 이러한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틀이 바로 문화이며, 톰슨은 문화의 원천이 경험이라고 주장하고 또한 문화가 현실을 이해하는 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 문화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가진 경험과 가치, 사상, 행동, 욕망이 조립된 결과이다. 톰슨은 문화가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되며, 피지배계급의 문화는 기존 체제에 대항하는 활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윌리엄스는 저서 <문화와 사회(culture and society: 1780-1950)>에서 문화의 정의를 3가지로 나누었다. 먼저 문화는 '어떤 절대적/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이상적인 상태로서, 인간이 완벽함에 이르는 과정이나 상태'인데 이는 앞서 다룬 엘리트주의적 관점이다. 그리고 문화는 '문서화된 텍스트와 실천행위로 이루어진, 인간의 생각과 경험이 다양하게 기록된 지적 작업의 유기체'이다. 또한 문화는 '삶의 방식에 대한 묘사'인데, 윌리엄스는 마지막 정의를 택했다. 그는 문화가 특정한 삶의 방식의 표현이라는 인류학적 관점을 받아들였고, 문화분석을 '특정한 삶의 방식이나 문화에 내재되거나 표출된 의미와 가치들을 명확히 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는 감정구조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란 특정한 집단이나 계급,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나 생활철학이다. 윌리엄스는 문화분석이 이러한 감정구조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문화를 3가지로 나누었는데, 특정 시대를 지배하는 지배적 문화(dominant culture)와 새로 올라오는 부상하는 문화(emergent culture),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일각에서 생존해온 잔여적 문화(residual culture)가 그것이다.

 

문화주의는 문화연구자들에게 있어 엘리트주의를 탈피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또한 정통 마르크시즘의 주장과 달리 문화의 독자성을 주장했기 때문에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문화주의는 인간의 능동적 실천을 강조하고 문화가 이러한 실천의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구조주의와도 또한 각을 세우며, 이 점 역시 문화연구자들이 좋아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점들이 마음에 들어 문화주의는 문화연구에 잘 받아들여졌으며 후에 영국의 독자적인 문화연구 학파 탄생의 모태가 되었다.

 

이 분야의 주요 사상가는 리처드 호가트, 레이먼드 윌리엄스, 톰슨이 있다. 리처드 호가트(Richard hoggart)는 노동자 출신의 학자로, 1946년에서 1959년까지 헐 대학에서 성인교육 담당 강사로서 문학을 가르쳤다. 이후 자신의 사상을 표현한 <문자의 이용(the uses of literacy)>을 저술했고, 이후 버밍엄 대학 영어학 교수를 거쳐 64년에서 68년까지 같은 대학의 현대문화연구소에서 초대 소장을 지냈다.

 

E.P.톰슨(E.P. Thompson)은 역사학자로,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the making of english working class)>을 통해 전통적인 역사관이 노동계급이 소외시켰다고 비판하고 이들의 삶에 초점을 두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역시 노동자 출신이며, 46년에서 60년까지 옥스퍼드대에서 성인교육 담당 강사로 일했다. 이후 케임브리지대에서 재직했고, 이후 여러 저서를 퍼내면서 문화주의의 창시에 기여하였다.

 

영국 문화연구

앞서 얘기한 문화주의는 영국의 문화연구를 지배했고, 또다른 학풍을 낳았다. 사회학자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1964년 호가트가 설립한 버밍엄대 현대문화연구소(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에서 한동한 소장을 역임했는데, 그의 지도하에 현대문화연구소에서 미디어와 이데올로기, 일상과 문화, 하위문화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고 하나의 학풍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입장을 일컬어 문화연구라고도 한다.

 

문화연구 학파는 문화주의와 구조주의를 통합했다. 문화연구 학파는 문화가 일방적인 지배구조의 산물이라는 구조주의적 관점을 거부하며, 동시에 노동계급의 순수한 표현이라는 문화주의도 거부한다. 대신 이들은 헤게모니 이론을 받아들여서 문화가 지배구조과 인간 실천이 대립하는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문화를 연구할때, 어느 텍스트가 지배문화와 얼마나 일치하고 얼마나 벗어났는지 분석하려고 든다. 또한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듯이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며, 이러한 차이로 인해 하위문화가 탄생한다고 주장한다.

 

하위문화는 한 사회 내의 소집단들이 가지는 독특한 정체성들이 반영된 문화이다. 가령 한국안은 모두 한국사회의 구성원이지만, 노동자들과 법조인들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주류 문화를 소비한다. 문화연구자들은 하위문화가 지배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적/무의식적 대응이며, 지배문화의 영향과 이에 대한 하위집단의 저항이 결합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이들에게 라스타파리안 교는 백인 중심 문화에 대한 흑인 저항의 결과로 여겨진다.

  1. 에코.'대중의 영웅들'.조형준 역.새물결,2005,pp157-21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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