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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상의 이해

과학주의자 2024. 5. 8. 18:32

일본 사상는 주로 문학과 결부된다는 특징이 있다. 구카이나 미시마 유키오 등 많은 일본사상가는 문학가거나 문학평론가였으며, 특히 문학평론가가 많았다. 또한 현대 일본사상가는 일본사회가 정체되어 있다는 인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한 정체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일본사회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일본의 여러 사상가들 사이에 퍼져있다. 또한 일본에 공적인 사고방식이나 정체성이 없다는 믿음도 일본의 사상가에게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믿음이 얼마나 사실과 일치하는지는 미지수다. 지난 수백년간 일본사회는 상당한 변화를 겪었으며, 사실 전근대에는 세계 어디나 민중의 삶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사회정체성에 대한 많은 심리학적 연구는 일본인에서도 재현되고 국제정치학의 여러 법칙은 일본 정부에도 적용된다. 사실 한국과 비교하면 일본인은 사적인 관계보다 공적인 집단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불일치는 일본 사상을 이끌어갔던 사람이 대부분 문학평론가였다는 점에 있을 수 있다.

 

 

1.20세기 중반

20세기 중반의 일본 사상은 주로 공산주의자에 의해 지배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무너진 일본제국의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내세웠으며, 공산일본을 건국하기 위해 폭력적인 투쟁도 불사하였다. 그러나 점차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공산주의의 인기를 시들해졌고, 야시마 산장 사건 이후 사상계에서 이들의 입지는 몰락하고 말았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자 새로운 사상적 조류가 나타났다. 한쪽에서는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일본을 긍정하며, 일본사회의 자본주의적인 일상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들은 특히 꼼데가르송 논쟁 이후 그 존재감이 부각되었다. 꼼데가르송 논쟁이란 일본의 여성 공장 노동자가 꼼데가르송 제품을 구매하는 현상을 둘러싼 논쟁으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여성 노동자)이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명품)을 즐기는 것이 혼란스러웠다. 꼼데가르송 논쟁은 현대 자본주의 일본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고, 현대일본의 모습을 긍정하는 사상적 조류를 낳았다.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사상[각주:1]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 1924년 11월 25일 - 2012년 3월 16일[각주:2])는 일본의 시인이자 평론가로, 만화가 하루노 요이코와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일상의 중요성을 발굴해낸 철학자이기도 한데, 그는 저서 <공동환상론>을 통해 인간의 사회가 환상에 기초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좌우 이데올로기를 모두 거부하고 그 대안으로 개인적 일상을 강조하였다. 

 

그는 인간의 사회가 환상에 기초하여 만들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를 구성하는 환상은 개인의 존재를 만드는 개인환상, 가족을 만드는 짝환상, 그리고 국가를 만드는 공동환상이 있다. 이러한 환상의 변화는 역사의 변화와 함께했는데, 가령 요시모토는 짝환상과 공동환상이 결합하면서 가부장제에 기초한 고대국가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일본에 비판적이었던 그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중심이 되는 '국가'를 거부하고, 짝환상에 기초한 핵가족과 가족의 일상이 우세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국가적인 것보다 가족적인 일상을 중시한 요시모토의 사상은 소비사회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소비사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좌파들의 비판에 직면하였다. 우에노 치즈코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요시모토를 공격하며 짝환상 대신 성애를 중시하였고, 아사다 아키라는 요시모토의 소비사회 긍정에 반대하여 전후 좌파 이데올로기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우노 츠네히로는 요시모토가 주장한 짝환상 중심의 사회가 모성의 디스토피아라고 공격하고, 오츠카 에이지가 긍정한 오타쿠 긍정도 그 연장선상으로 보며 같이 공격하였다.

 

2.8-90년대

8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에서는 새로운 사상적 조류가 나타났다. 뉴아카데미즘의 이름으로 등장한 새로운 조류는 기존 일본사회의 모습을 근대성이 발현된 나쁜 모습으로 정의하고, 여기서 탈피하려고 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하였다. 뉴아카데미즘은 80년대 일본을 풍미했으나, 90년대에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다양한 일본 사상가가 나타났다.

 

뉴아카데미즘[각주:3]

뉴아카데미즘은 80년대부터 일본에서 주류였던 사상으로, 문학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아사다 아키라와 나카자와 신이치의 주장을 시작으로 나타났다. 아사다 아키라는 기존의 시대를 어떤 강고한 구조에 의해 개개인이나 여러 현상이 가진 차이점이 억압되었다고 주장하고, 그러나 다가오는 새 시대에는 이러한 차이를 표출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비슷하게 나카자와 신이치는 인간 마음의 그 어떤 것도 사상이나 이론, 종교 등 특정한 구조로 파악할 수 없으며, 그러한 구조로 파악될 수 없는 차이가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서로 주장하는 바가 사뭇 다르지만, 모두 거대서사를 만들었다고 하는 근대를 부정하고 개개인의 차이를 중시하는 탈근대를 지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 아사다가 자신의 <구조와 힘>을 출간했을때 책은 15만부 이상 판매되었고, 아사다와 나카자와는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뉴아카데미즘은 80년대 일본 사상계의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90년대로 들어오면서 점점 많은 사상가들이 뉴아카데미즘을 비판하였는데, 이들은 뉴아카데미즘이 지향하는 세상과 과거 세상이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공격하였다. 이러한 비판적 경향은 옴진리교 테러 이후 더욱 거세졌다.

 

오오츠카 에이지(오쓰카 에이지)의 사상

오오츠카 에이지(오쓰카 에이지)는 일본의 만화가이자 서브컬쳐 평론가이다. 20세기 후반에 만화가로 문화계에 입문한 에이지는 이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사회에 대한 여러 평론을 남겼으며, 그와중에 순문학의 가치를 공격하여 순문학계와 대립하기도 하였다. 그는 최근 일본사회가 감정화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따르면 21세기 일본인은 이성적 대화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그것을 공감하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다. 이는 개인의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산업적 경향에 의한 것으로, 이로 인해 사회가 감정화되고 있다고 에이지는 비판하였다.[각주:4] 이에 남상욱[각주:5]은 이러한 비판이 단지 에이지가 중시했던 구시대적 이데올로기가 지지받지 못했기 때문에 불평을 하는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3.10년대

뉴아카데미즘이 쇠퇴하면서 일본에는 여러 사상적 입장이 나타났지만, 90년대부터 시작된 잃어버린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이러한 사상적 입장도 모두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2000년대의 아즈마 히로키를 제외하면 일본 사상이 사멸했다는 평가가 나타날 정도로 일본 사상계가 전반적인 퇴조를 보이기 시작했다.[각주:6] 그러다가 10년대부터 일본을 '모성사회'로 규정하고 비판한 우노 츠네히로와, 오히려 일본 문화를 부흥의 문화로 보며 긍정하기 시작한 후쿠시마 료타가 등장하면서 일본 사상계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우노 츠네히로의 사상

우노 츠네히로는 2010년대에 대두하였다. 아니메 평론가인 우노 츠네히로는 아니메를 중심으로 일본의 여러 문학 작품을 해석한 후 일본 문화를 소년의 문화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사회는 모든 시민이 '아버지'로서 주체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일본인은 2차대전 종전후 미국의 통제로 인해 이러한 자주성을 행사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아버지로 성숙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품 속에서 자신의 이상만을 외치는 소년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소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일본인이 택한 것은 '흉내'라고 주장한다. 즉 실제로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할 수 없는 일본인은 그 대신 자신의 생각을 극단적이고 이상적으로 표출하면서 자신이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흉내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흉내를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어머니를 꿈꾸고 어머니적인 것에 의지하게 되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일본의 평화주의와 국수주의 모두 그러한 흉내의 결과라고 우노는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생각 위에 세워진 일본을 그는 '모성의 디스토피아'라고 부르며 저주했다.

 

우노 츠네히로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모성의 디스토피아(김현아 & 주재명 역, 워크라이프, 2022)>가 있다.

 

그가 아버지가 되는 것을 강조한 것은 부분적으로 그가 가진 열등감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노 츠네히로는 그의 실제 본명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을 쓰는 것으로, 이를 통해 그가 아버지나 남성성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고도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읽을 때 그가 분석한 일본사회의 문화 현상은 전후에 나타난 젊은이들의 사상이 모두 자민당이라는 강력한 세력에 부딪히면서 발생한 좌절의 표현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공적으로 표출하고 싶어했음에도 강력한 기득권에 의해 이것이 좌절되었으며, 그 대신 극단적인 사상이나 창작물로 그것을 표현한 것이다.

 

우노의 아니메 담론

우노는 그의 <모성의 디스토피아>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토미노 요시유키, 그리고 오시이 마모루를 해석하면서 2차대전 이후 일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내놓았다. 그의 생각에서 전후 일본 아니메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학 활동을 통해 공적이고 세계적인 정치를 흉내낸 결과물이며, 아니메는 미국에 의해 왜소해진 부성을 감싸주기 위해 모든 것을 승인해주는 모성을 도입하였다.

 

그는 일본에서 아니메가 발달한 이유도 아니메의 특성에서 찾았다. 우노는 영상이 작가가 의도한 것만을 화면에 담아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20세기는 그러한 영상에 의해 지배되어온 영상의 세기였다. 그리고 아니메는 영상 중에서도 허구적인 것을 표현하기 가장 적합했다. 이와 같은 해석 하에서 우노는 아니메야말로 욕망을 표현하는 최고의 도구이고, 전후 일본인은 아니메를 통해 가짜 성숙과 흉내의 욕망을 표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시각은 다른 아니메 연출가에 대한 그의 해석에도 반영되었다. 우노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이 아버지로 성숙할 수 없음을 자각하였으며, 그래서 작품을 통해 날 수 없는 돼지(자신)와 날 수 있는 소녀를 그렸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미야자키의 작품 속에서 남자는 오로지 여자와 만난 이후에 날 수 있었다고 주장하며, 그의 작품 속에서 남성은 어머니의 도움을 통해서만 성숙할 수 있다고 해석하였다.

 

토미노 요시유키의 경우 우노는 그가 건담과 그 세계관인 우주세기를 통해 무너진 부성과 왜곡된 모성을 넘어 새로운 인간관을 추구했다고 해석하였다. 토미노의 <기동전사 건담> 후반부에 제시된 뉴타입은 그가 제시한 새로운 인간관이었다. 그러나 토미노도 결국 가짜 몸(건담)과 가짜 역사(우주세기)로 그러한 것을 표현하였으며, 종국에는 뉴타입으로 표상된 정보시대의 개인들이 서로 대립하고 싸우는 모습을 예견하고 실망하였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왜곡된 모성을 받아들였다고 우노는 공격하였다.

 

우노는 오시이 마모루에 대해 모성의 디스토피아를 가장 잘 통찰했다고 평가하였다. 오시이 마모루의 초기 작품은 그가 보기에 아니메(주로 일상물)로 표현되는 왜곡된 모성을 거부하고 탈피하려는 시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전후시대가 끝나고 정보시대가 도래하면서 오시이의 아니메는 생명력을 잃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대신 과거의 작품과 메시지를 반복하며 좌절해 버렸다고 우노는 비판하였다.

 

그럼에도 우노는 아니메를 통해 모성의 디스토피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정보시대가 도래하면서 영상의 세기에 특화되었던 전후 아니메는 기능을 상실하였지만, 그래도 얻어갈 상상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를 정보사회에 맞는 방식으로 개량하여 현재를 비판하고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야자키 하야오 해석

우노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허무주의자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비행으로 대표되는 남성성을 추구하긴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 여성의 도움이 없으면 실현불가능하다. 그 대안으로 하늘을 나는 소녀 주인공이 나타나긴 했지만 그조차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가 마지막에 제시한 인물상은 모든 결점을 포용해주는 어머니로, 남성은 오로지 어머니가 마련해 준 자궁 속 낙원에서 '헤엄치는' 형태로만 날 수 있다고 해석하였다. 즉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른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되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우노는 그러한 표현의 이면에는 파괴적이고 남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본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패전국이라는 특성상 그것을 공공연히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에 미야자키가 자신의 작품을 반전으로 포장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구도에서 결국 미야자키 또한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동을 무엇이든 받아주는 헌신적인 모성을 추구했다고 우노는 해석했고, 이러한 주장에 근거하여 그가 군국주의자라고 단정한다.

 

이 장황하고 날카롭게 보이는 해석의 문제는 다른 문학평론이 그렇듯이 근거라고는 찾아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여성과 어머니를 강조한 것은 오히려 일본 제국으로 대표되는 남성성을 부정하고 대안으로 여성성을 내세운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에서 계속 반복되는 전쟁 장면은 일종의 표현을 통한 치유로, 비행에 대한 갈망은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마음의 반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문학평론의 특성상 둘 모두 자신을 지지하는 명확한 근거는 찾기 어려우며, 다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표면적인 견해는 후자에 더 부합하는 듯이 보인다. 물론 미야자키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자기는 독심술을 할 수 있어서 진실을 꿰뚫어 본다고 우길 수도 있다. 정말 대단한 궁예가 아닐 수 없다.

 

21세기 아니메의 경우

2016년은 일본 아니메 역사에서 다시 기념비적인 한 해가 되었다.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과 야마다 나오코의 <목소리의 형태> 등 뛰어난 걸작이 다수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우노는 이러한 아니메가 자신이 평론해온 전후 아니메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보기에 21세기의 일본 아니메는 2011년 도호쿠 대지진에 대한 대응으로, 지진과 잃어버린 10년으로 인해 무너진 전후 일본적 구조에 대응하는 방법이었다. 그에 따르면 <너의 이름은.>은 지진을 먼 과거의 일로 치부하여 사람을 안심시키고, <목소리의 형태>는 대표적인 일상물로서 끝나지 않는 지금의 일상을 이상화하고 보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두 작품 모두 남자 주인공이 여성을 만나면서 성숙한다는 점을 들어, 21세기 아니메도 모성의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어머니 여성 안에서만 남성의 성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도중에 여성을 만나는 모든 신화와, 남성이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는 서사를 가진 모든 영화와 소설도 모성의 디스토피아의 산물이 될 것이다. 반면에 융의 주장을 따라 해석한다면 남성이 여성을 만나 성장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오히려 주체적인 방식이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거기에 부정적이지만, 똑같이 신빙성없는 오이디푸스는 잘만 인용하면서 융은 인용하지 않는 것은 우노가 그냥 여성성 자체를 싫어해서 그럴 수도 있다.

 

대안: 고지라의 명제

우노는 아니메를 평론하면서 아니메가 2가지 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는 오츠카 에이지가 먼저 주장한 아톰의 명제로, 우노는 아니메가 성장도 하지 않고 죽지도 않는 신체로 성장과 죽음을 흉내내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고지라의 명제를 주장했는데, 그는 국제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쉽게 말할 수 없는 현실을 환상을 통해 그려내는 것이 아니메의 또다른 기능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95년에 제작된 <패트레이버2> 극장판과 2016년에 개봉한 안노 히데아키의 <신 고지라>가 고지라의 명제를 드러낸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신 고지라>는 파괴된 후쿠시마 원전을 고지라로 바꾸어 표현함으로서 전대미문의(그리고 일부는 인재인) 재난에 직면한 일본을 표현한다. 그리고 <너의 이름은.>과 달리 고지라를 도쿄 한가운데 봉인하여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서 그러한 현실에 직면하도록 만든다. 영화에서 문제해결은 주로 젊은 공무원과 관료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데, 우노는 이들이 정치적 세계관과 서사에 치중하는 대신 현실에 대한 실용주의적 해법을 중시한 헤이세이 개혁세력을 표방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신 고지라>는 안노 히데아키가 제시하는 새로운 정치적 해결책이었다. 비록 헤이세이 세력은 몰락했지만 안노는 헤이세이 세력이 표방하는 실용주의가 이 시대의 해법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신 고지라>는 가상적인 현실을 시뮬레이션하여 실용주의를 선전하는 도구였다고 우노는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처럼 현실을 아니메를  통해 표현하고 그 해결을 제시하는 것이 현재 아니메가 수행할 기능이자 모성의 디스토피아를 탈출하는 길이라고 우노는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노는 <신 고지라>가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기존의 아니메가 허구를 바탕으로 정치를 흉내냈다고 주장하는데, <신 고지라>의 경우에는 반대로 정치적이고 공적인 것을 너무 강조해서 허구가 사라졌다고 비판한다. 우노는 <신 고지라>가 현실와 허구의 관계맺기에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이는 영상물 자체가 정보사회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고지라의 명제를 실천하는 아니메가 기존 영상의 세기가 아니라 정보사회에 기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정보사회 담론

새롭게 도래한 정보사회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그는 인터넷의 발달로 자기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지자 모성의 디스토피아가 전세계로 확장되고 있다며 비관하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기존에 현실과 분리되어 있던 허구로서의 창작물과 서브컬쳐가 인터넷의 발달로 90년대부터 현실과 하나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옴진리교가 허구에 기반한 종교가 그 한계를 깨닫고 현실로 나온 것이 옴진리교 테러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몇몇 문화평론가의 동의는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 사실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실제 사실과의 관계와는 별개로 우노는 현실과 허구 사이 경계의 붕괴가 모성의 디스토피아를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정보사회에서 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는 무너졌고 공과 사, 세계와 개인의 구분도 무너졌다. 이제 서브컬쳐는 현실을 담고 있고, 서브컬쳐에서 표현된 것이 현실에 나타난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을 보고 믿고싶은 것만을 믿을 수 있으며, 그것이 그에게는 현실이다. 그가 비판한 왜곡된 모성이 현실에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노는 정보사회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하나의 '확장현실'이 나타났다고 해석하였다. 이제 허구가 덧붙여진 현실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시로 그는 포켓몬고를 들었다. 휴대폰을 통해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포켓몬을 포획하는 포켓몬고는 그가 보기에 확장현실의 대표였으며, 허구가 현실에 침입하는 대표적인 예시였다.

 

우노는 서브컬쳐를 통해 현실에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강조한다. 여기에 고지라의 명제를 더해서 우노는 서브컬쳐를 통해 대안적인 현실을 모색하고, 동시에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노는 정보시대를 강화된 모성의 디스토피아라고 비관하였지만, 동시에 정보시대에서 서브컬쳐의 역할을 제대로 활용하여 모성의 디스토피아를 깨부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포켓몬고와 같이 정보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비판하는 아니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것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성숙'을 아니메가 제시해야 한다고 표현하였다.

 

우노의 대안: 자본주의 긍정과 BL

그렇다면 정보사회에 맞는 성숙이란 무엇인가? 우노는 다시 <신 고지라>에 대한 비평으로 돌아가서, 그 안에 담겨있는 환상에 집중한다.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사상을 차용한 그는 요시모토가 주장한 짝환상이 부부적인 짝환상과 형제/자매적인 짝환상으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존의 아니메는 폐쇄적이고 자기완결적인 부부적인 짝환상이었다고 규정한 후, 형제/자매적 짝환상으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노는 이를 <신 고지라>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그는 작중 등장하는 미국 특사가 여성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그가 어머니 역할을 하면서 모성의 디스토피아를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가 만약 남자로 대체된다면 그는 어머니가 아닌 형의 역할을 하며, 그렇다면 형제/자매적인 짝환상이 성립되면서 비로소 미성숙한 일본인이 대등한 어른으로 성숙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비슷한 논지에서 그는 BL물을 긍정한다. 남성간의 사랑을 다루는 BL물은 우노의 눈에 형제/자매적인 짝환상의 표현으로 보였고, 미소녀 동물원이라 일컬어지는 여성만 나오는 아니메도 비슷하게 해석되었다. 비록 이들도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우노는 불만족하지만, 그래도 왜곡된 모성에 기반한 기존의 아니메보다는 낫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여기에 더해 그는 새로운 성숙의 대안으로 자본가를 제시한다. 그가 보기에 세계의 자본주의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상품을 판매하고 사업을 조직하는 사업가밖에 없다. 이에 따라 그는 과거의 정치적 이상을 격하한 후 그 대안으로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인간을 제시한다. 비록 요시모토가 소비사회를 긍정한다고 비판하였지만, 그 자신도 소비사회의 근본적인 원인(자본주의)은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똑같이 망상의 산물인데도 하렘물은 모성의 디스토피아고 BL은 새로운 신기원인 이유는 남녀에 대한 우노의 인식이 경직된 것일 수 있다. 우노는 동성애도 마찬가지로 성애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BL도 미소녀 동물원도 일상의 편안함과 수용성에 안주하는 모성의 디스토피아라고 해석될 수 있지만, 그는 모성의 디스토피아에서 '모성'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러한 해석이 불가능해 보인다. 

 

한편 그가 BL과 자본주의를 동시에 긍정하는 것은 오히려 남성성에 대한 그의 집착을 잘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높은 수입을 벌어들이는 것은 현대 남성성의 지표로 간주되고,[각주:7] 동성애에 대한 이상화는 마초주의가 강했던 사회(고대 그리스, 중세 일본 등)에서 자주 나타났던 현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자신의 여성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돈 잘버는 남자는 우노의 아버지에 대한 열망을 잘 충족한다고도 볼 수 있다.

 

후쿠시마 료타의 부흥문화론[각주:8]

후쿠시마 료타는 일본의 문학자로, 2010년대 이후 일본의 주요 사상가로 떠올랐다. 후쿠시마는 일본 문학의 기원을 이야기 조공과 패자의 위로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만엽집>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고대문학은 가곡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특정 씨족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덴노에게 지역 특산물로 자신의 노래를 조공하였다. 후쿠시마는 이러한 풍습에서 일본 문학이 유래했으며, 거기서 유래하는 외부자적 시선을 통한 멸망 바라보기 및 위로하기가 현대 일본문학에도 내려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증에 근거하여 후쿠시마는 일본 문학이 재난을 당한 일본을 부흥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전국적인 내전이나 지진, GHQ 등 일본에 재난이 닥쳤을때 일본 문학이 2인칭의 시점에서 피해자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피해자를 위로하고, 재난의 의미와 일본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만드는 기능을 해왔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히토마로는 일본이 국가의 기틀을 다지면서 잊혀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이야기였고, <헤이케 이야기>는 바쿠후 성립기의 혼란을 설명하고자 작성된 이야기이며, 에도 바쿠후 시대의 문학은 명의 멸망으로 대리 체험된 국가멸망의 기억을 의식화하고 일본의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근대문학은 다이쇼 시기의 불황과 간토 대지진 후 발생한 아노미를 종식하여 일본 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후쿠시마는 현대 일본의 문학, 특히 일본의 서브컬쳐가 2차대전 이후의 일본을 구축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하였다. 2차대전으로 일본의 국가적 야망은 무너졌으며, 그럼에도 오히려 전후에 비해 더욱 경제적으로 번영하게 되었다. 후쿠시마는 전쟁과 원자폭탄으로 국가가 파괴되었음에도 단지 경제적 풍요에 만족하는 일본인이 비정상이라고 주장하고, 이러한 풍요를 중심으로 일본의 새로운 질서를 정당화하는 작업을 한게 일본 서브컬쳐라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미야자키 하야오 등 다시 일본의 이미지를 재구축하여 일본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미야자키 하야오를 찬양하였다.

 

  1. 우노 츠네히로. 모성의 디스토피아. 김현아 & 주재명 역. 워크라이프, 2022,pp536-55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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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사키 아츠시. 현대일본사상: 아사다 아키라에서 아즈마 히로키까지. 송태욱 역. 을유문화사,20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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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사사키 아츠시. 현대일본사상: 아사다 아키라에서 아즈마 히로키까지. 송태욱 역. 을유문화사,20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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