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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총론

과학주의자 2023. 2. 22. 00:23

동양철학은 공자 이후로 중국과 인근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해온 철학으로, 주로 전체론적이고 사람 사이의 관계와 친사회적 행위를 중시한다. 이는 동아시아가 쌀농사로 인해 집단적 협업을 통한 농사의 중요성은 큰 반면 무역과 같은 비농업적 산업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약했고, 한나라 이후로 독자적인 헤게모니를 확립한 중국이 국민들을 사회화하여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방법을 계속해서 모색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학[각주:1]

한국은 일찍이 율령체제를 이루면서 삼국시대부터 유교가 국가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한국에 유학이 발달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부터로, 송나라에서 탄생한 성리학이 고려 말기 고려로 유입되면서 한국의 유학이 시작되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새로이 탄생한 성리학이 유학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성리학에 반대한 육구연의 상산학파와 그 후신인 양명학이 명나라 때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의 유학은 주로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의 성리학은 중국의 성리학이 그랬듯이 불교에 비판적이었으며, 불교가 설명할 수 있고 유학이 설명할 수 없었던 인간 내면의 모습과 선의 관계를 보완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는 특히 조선에서 강해서, 조선의 유학은 주로 인간의 내면과 자기수양의 문제를 주로 탐구대상으로 삼는다. 초기에는 양명학과 성리학이 모두 공존했으나, 이황이 양명학을 이단으로 선언한 이후 양명학은 계속해서 소수 학파로 연명하게 된다. 

 

퇴계의 사상[각주:2]

퇴계 이황의 주장은 한국 유학사상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주장이며, 유학심리학을 주장한 한덕웅도 그의 가설 대부분을 퇴계에서 빌려왔다.[각주:3] 이황은 기본적으로 세상의 선함을 증명하고 자신을 수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였으며, 특히 조선 성리학이 마음의 문제에 천착하도록 방향을 트는데 공헌하였다.

 

이황의 기본적인 목적은 인간적인 욕망을 억압하고, 성리학에서 만물에 내재되었다고 말하는 천리가 발현되어 선한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천리가 인간의 내면에 들어온 상태를 이황은 성(性)이라고 주장했으며, 이 성이 인간의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특히 인간의 마음은 경(敬)을 통해 다스려진다고 주장했으며, 이 경을 통해 우리가 천리를 실현하고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퇴계의 심리설

이황이 가정한 마음(心,심)은 현대의 마음이 포괄하는 모든 요소를 통칭하는 개념인 동시에, 자유의지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심적 요소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한덕웅[각주:4]은 이것이 이황만의 특이한 개념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한국인의 마음(maum) 개념이 이와 비슷하다. 이황은 도한 마음의 구조를 성과 심, 정으로 나누고, 이외에도 허(虛), 령(靈), 지(知), 각(覺)이나 의(意), 지(志), 사(思) 등 다양한 개념을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데 사용하였다.

 

이황은 인간의 마음이 제약되거나 구속되지 않은 채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고 주장했으며(허령), 이를 신령스럽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런 마음의 허령 능력에서 지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따라 허령이 인간 마음의 핵심이고 지각은 인간의 마음이 외부의 사물과 만날 때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허령한 마음은 이황에 따르면 성과 심, 정으로 나뉠 수 있었다.

 

이황은 마음의 구조를 성과 심(心), 정(情)으로 나누었는데, 성은 4덕이 마음 속에 내재된 부분으로서 곧 세상의 근본적인 진리이자 로고스인 천리를 대변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세상 만물이 천리에 따라 돌아가기 때문에, 성도 마음 전체를 움직이는 근본 원인이라고 이황은 주장했다. 그리고 이렇게 성이 마음을 움직여서 발생한 결과를 정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때 이황은 성을 리에, 정을 기에 각각 연결시켰다.

 

이황의 사상에서 마음은 성에 의해 움직이는 마음 전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마음(maum)이기도 하다. 이황에 따르면 성은 천리가 잘 드러나고 리를 반영하는 본연지성과 기를 반영해서 사람마다 다르고 악도 포함되어 있는 기질지성으로 나뉘는데, 본연지성이 기질지성보다 우세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2번째 의미의 심이다. 우리가 수양을 통해 이 심을 잘 길러서 천리가 행동으로 드러나게 해야한다고 이황은 주장했다. 

 

이황은 주리론자로서, 성이 작동할 때는 리가 발현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기존의 성리학에 반하는 주장이었는데, 왜냐하면 기존의 성리학에서는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기이고 리는 기의 작동원리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주기론의 주장이기도 했는데, 리를 중시하는 주리론자였던 이황은 이에 맞서 리 역시도 현실에서 직접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순수한 선함을 악함과 개념적으로 분리시키고, 순수한 윤리성과 이것의 실천을 강조하고자 하였던 이황의 사상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황은 거경궁리나 성찰, 경과 같은 성리학의 자기수양 방법을 통해 리가 발현될 수 있다고 이황은 주장했다. 또한 사단칠정(4단7정)에 대한 논의도 이황에 이르러 보다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정과 사단칠정에 대한 이황의 주장에 기대승이 반박을 하면서 조선 성리학이 융성해지기 시작한다.

 

율곡의 기발리승일도설[각주:5]

율곡 이이는 기존의 성리학과 마찬가지로 리는 발하지 않고 기만 발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리와 기가 분리불가능하다는 주장 또한 이황과 비슷하다. 율곡 사상의 핵심 주장은 리가 기를 움직이는 원리이고 오로지 기만이 직접 작용한다는 것으로, 리 또한 작용한다고 주장한 이황과 차이를 보였으며 기만을 중시한 서경덕과도 차이를 보였다. 

 

율곡의 기발리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設, 理一分殊設, 리일분수설)은 모든 사물에 궁극적 진리이자 선한 진리인 천리(理)가 깃들어 있지만, 이것이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기(氣)를 통해서이며 리는 기를 중재하는 원리라는 주장이다. 이는 이통기국설로도 이어지는데, 율곡의 이통기국설(理通氣局設)은 천리는 모두 동일하지만 그것이 작용하는 기를 통해 발현되며, 기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기 때문에 결국 리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는 주장이다.

 

율곡은 그릇을 통해 이를 비유했는데, 가령 표주박에 담긴 물과 커피잔에 담긴 물은 동일한 물이지만 그 형태는 컵에 따라 다르다. 율곡은 물은 리고 컵은 기에 해당하며, 같은 물이지만 컵(기)에 따라 발현되는 바(형태)가 다른 것처럼 같은 리도 기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인간 심리에 적용한 율곡은 인간의 마음(정, 情)도 기가 발한 결과이며, 본래 인간의 본성(리)은 선하지만 그것이 발현되는 기의 선악에 따라 선한 천리가 선으로 발현될 수도 있고 악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율곡의 사단칠정론과 수양론

기발리승일도설에 기초하여 율곡은 사단과 칠정에 대해서도 이황과 다른 해석을 했는데, 그는 사단과 칠정의 근원을 나누었던 이황과 달리 사단과 칠정이 모두 리와 기에 따라 나타난 정서이며, 기가 순수해서 리가 제대로 발현된 경우의 정서를 사단, 그렇지 않은 경우의 정서를 칠정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사단이 칠정 안에 포함된다고 주장하였는데, 같은 정서가 나타나도 그것의 근원(도심 혹은 인심)에 따라 사단이나 칠정으로 부르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율곡은 과연 칠정 중 어느 정서가 사단과 관련되어 있는지 설명하려고 했는데, 칠정 중 희,노,애,구가 사단이 표출될 때 나타나는 칠정이며 희와 노, 애는 측은지심 및 시비지심과, 구는 사양지심 및 시비지심과 같은 류의 정서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외에도 주된 공통점이 있지는 않지만 오는 수오지심과 연관되었고 욕은 측은지심과 연관되었다고 율곡은 주장했다. 여기서 보면 알겠지만 율곡은 여러 칠정이 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사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과학적 연구[각주:6]와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

 

율곡은 선악이 기의 맑고 탁함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자기수양도 기를 맑게 하여 성(性)에 맞게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교기질(嬌氣質)이라고 부르는데, 율곡은 사람들이 모두 기품이 다르기 때문에 각 개인에게 맞는 방법을 통해 기를 수양해야 하지만 또한 공통된 수양 방법으로 경을 제시하였다. 율곡은 이상적인 마음의 상태를 천리가 그대로 들어나는 성(誠)의 상태라고 주장했는데, 이 성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황이 말했듯이 집중의 정신상태를 유지하는 경(敬)으로 수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율곡은 경을 마음가짐에서 실제로 행동하는 것까지 개념을 확장했으며, 이치를 궁리하고(격물치지), 바른 마음을 가진 채 성실하게 자신의 뜻을 다지며(성의정심), 효도와 친애, 가부장적 가족 통치, 간악한 사람을 멀리하기, 민본주의적 통치 및 교화에서 성(誠)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 하에서 율곡은 실제 정치가 유교적 이상을 달성하는데 기여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십만양병설도 그러한 노력 중 하나였다.

 

정약용(다산)의 사상[각주:7]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로, 성리학에 고증학적 면모를 도입한 뛰어난 사상가였으며 동시에 실학자였다. 다산 사상의 핵심은 공자와 맹자의 복구였는데, 정약용은 성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공자와 맹자에 대한 주희의 해석에 의존하는 대신 독자적으로 공자와 맹자를 해석하려고 시도하였다. 또한 이황-기대승 논쟁 이후 주류가 된 조선 성리학의 심성 논쟁을 사변적이고 공허하다고 비판하고, 보다 현실상황과 국가의 통치에 적합한 실학을 탐구하였다.

 

정약용은 이황과 기대승의 사상이 너무 추상적이고 난해해서, 실제 선한 행동을 실천하는 것을 도리어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가 특히 비판한 개념은 성(性)이었는데, 그는 인간의 마음 속에 리를 대표하는 작은 부분인 성을 기존 성리학자들이 남용하고 이상한 가설을 만드는데 사용하면서 성리학이 난해해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에 대한 독자적인 생각을 성기호설로 창안하였다.

 

정약용의 성기호설

성기호설에서는 성이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본능이라고 해석한다. 이 본능은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도의의 (도의지성, 영지의 기호)은 선을 기뻐하고 악을 미워하는 본능으로 인간의 측은지심과 죄책감이 이것의 근거이다. 도의의 성은 기존 성리학의 본연지성과 비슷하나, 본연지성이 가지는 형이상학적 특징이 모조리 제거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4덕도 기존 성리학과 달리 도의의 성(사단)이 발현되었을때 나타나는 것이지 원래부터 존재해온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질의 성(형구의 기호, 형구지기호 기질지성)은 반대로 생리적 욕구를 말하는 것으로, 개인의 사적인 욕망으로 나타난다고 정약용은 주장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을 이원화한 점은 기존 성리학에 부합하지만, 정약용은 기존 성리학과 달리 도의의 성과 기질의 성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며 다만 기질의 성을 충족하는 것이 도덕과 어긋나지 않는 선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기존 성리학과 달리, 정약용은 인간이 선하거나 악하게 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인간이 천리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사람이 선해지거나 악해지는지 여부는 사람이 자신의 선한 마음(도심)과 악한 마음(인심) 사이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달려있다.(권형설) 여기서 정약용은 사람이 선해지기 보다는 악해지기 쉽다고 주장했는데,(기질함익설, 氣質陷溺設) 이는 인간의 육체적 욕구와 사회의 부정한 문화가 사람들이 악을 선택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라고 정약용은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 하에서 정약용은 기존의 사단칠정론을 거부하였다. 초기에 그는 주희의 해설을 따라 이황-이이 논쟁에서 이이의 기발리승일도설이 참이라고 믿었으나, 광암 이벽과의 논쟁 이후 성리학의 리와 기를 자신의 도심과 인심으로 재해석하게 되면서 이황이 옳다고 선회하였다. 또한 그는 사단칠정론의 구조 자체를 거부하고, 맹자가 주장한 사단만이 유의미하게 존재하지만 이 역시도 사덕의 결과가 아니라 사덕을 발현시키는 사덕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수양론

정약용은 사람이 선해지기 위해서는 이라는 수련을 통해 도심을 인심보다 우세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방법이 존심(存心)이었다. 기존 성리학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정좌나 경을 통해 수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불교 비판자였던 정약용은 그러한 수련이 맹자가 말한 존심을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정약용은 맹자가 말한 존심이 계속해서 없어지려 하는 도심을 보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이미 존재하는 선한 천리(사덕)를 보존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정약용은 삶 속에서 매사 선한 행동을 실천할 때 도심을 기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존 성리학과 다르며 오히려 양명학과 비슷한 주장으로, 정약용은 성리학의 경 수련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어떻게 선한 마음을 기르냐고 반박했다. 비록 그가 경 수련을 완전히 무가치하다고 여기지는 않았고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러면서도 경 수련은 맹자에 대한 왜곡이며 선한 일을 행하여 도심을 보존하는 것이 맹자의 본래 주장이었다고 그는 해석했다.

 

이러한 점에서 정약용의 주장은 양명학과 비슷하다. 양명학에서는 선한 마음이 선한 행동과 하나이며, 앎과 행동이 모두 하나의 리로서 그 자체로 선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양명학은 선한 행동의 실천을 중시했는데 이 점에서 정약용은 양명학과 유사하다. 그러나 본성과 행동을 굳이 구분했다는 점, 인간의 악을 따로 정의하고 경계한 점, 경과 행동의 균형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정약용은 양명학과 차이가 있다.

 

최한기의 기철학[각주:8]

최한기의 철학은 유교적 전통에서는 극히 드물게 강한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최한기는 지혜를 얻으려면 자신의 감각을 통해 주변 사물을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방법을 통해 대상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을 그는 '통(通)한다'고 표현하였다. 그에 따르면 심지어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규정한 인의예지조차 경험으로 얻게 되는 습성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앎이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 경험을 통하여 배워 얻어지는 것이며, 감각을 통해서 얻어진 정보를 통찰하면서 습득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감각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최한기는 시각과 청각이 가장 중요한 감각이고 미각이나 후각, 촉각은 그 다음 순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이 감각들 중 하나라도 없으면 앎에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했는데, 스티븐 호킹이나 다른 장애인 학자들을 보면 별로 그런거 같지는 않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근간이었던 이기이원론에 따르면 천지의 만물은 모두 같은 기(氣)를 받아 서로 다른 질에 따라 서로 다른 신기(神氣)를 갖게 된다. 사람마다 신기가 서로 다른 점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공통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이해할 수가 있다. 이런 점을 받아들여 최한기는 사람들의 신기가 서로 통하기 때문에 지혜를 전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덧붙여 인간과 자연의 신기도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에 탐구를 통해 자연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탐구는 앞서 말했듯이 감각을 통해 가능한 것으로, 감각뿐만 아니라 이 감각정보를 바탕으로 귀납법과 연역법으로 추론할 때 앎을 얻을 수 있다는게 최한기의 사상이었다.


인간은 경험과 그것이 쌓여진 기억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확장하여 갈 수 있다. 이 과정이 추측이다. 귀납법과 연역법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그의 추측법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기를 바탕으로 이를 추측하는 것, 현상(情,정)의 나타남을 미루어 본성(性,성)을 알아내는 것, 움직임을 보고 그 정지 상태를 알아내는 것, 자기자신을 미루어 남을 알아보는 것, 물을 바탕으로 일을 짐작하여 아는 것 등이다. 이러한 앎의 단계를 최한기는 3단계로 나눴는데, 무언가를 알려면 먼저 1)대상의 범위를 정하고(정의), 2)대상을 탐구한 다음(조사), 3)그렇게 하여 알게된 통찰을 직접 시험을 통해 증험해야 한다(검증)고 주장했다. 이러한 측면도 과학적 방법론과 상당히 유사하다.

 

역시 현대과학과 비슷하게, 그는 풍수나 사주와 같은 점술을 매우 혐오하였다. 그는 조선시대에 앎을 방해하는 2가지 흐름이 있다고 비판했는데, 그 중 하나는 그가 심학(心學)이라고 부른 기존의 성리학으로 그는 리(理)가 기와는 별도로 존재하며 앎을 탐구하는데 경험은 필요없다고 주장하던 성리학이 추론만 있고 감각은 없어 앎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감각만 있고 추론은 없는 학문도 해가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러면서 그가 예시로 든 것이 점술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최한기는 경험적 자료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한의학도 공격했다.

그의 사상이 얼마나 서양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서양의 역산(曆算)과 기학(氣學), 즉 과학적 방법론을 크게 중요시하면서 서양의 과학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그의 학문방법을 설명한 추측록(推測錄)·신기통(神氣通)이 이미 많은 서양과학의 예를 들어 그의 논지를 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뒤의 저술이 모두 서양학문을 소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동양철학, 심지어 현대의 동양철학이나 대륙철학과 비교해도, 최한기의 사상은 과학적 사고에 매우 가깝다.

 

그러나 그의 사상도 시대적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최한기는 <신기통>에서 모든 사람들이 통할 수 있는 분야를 17가지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에 삼강오륜을 올려놓았다. 그는 삼강오륜은 지혜를 얻은 누구나 마땅히 동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비동양인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윤리학에서 삼강오륜은 특수한 문화권에서 유래한 덕이지 보편적 윤리가 아니며, 사실 상당히 역사 특수적이고 기득권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장자의 사상

장자(장주)는 대표적인 도가 사상가 중 하나로, 노자와 함께 도가 사상을 정립한 양대 사상가로 손꼽힌다. 장자의 사상은 그가 남긴 책 <장자>를 통해 전해져오는데, 장자는 내편 7편과 외편, 잡편의 총 3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실제 장자가 저술한 부분은 내편 7편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며, 나머지는 장자의 제자나 후계자의 창작이다. 일부는 이 중에서도 '소요유'와 '제물론'만이 장자의 실제 저술이라고 주장하고, 사실 저 두 편도 한나라때 편찬되었기 때문에 편향과 조작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장자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와 분별의 지양을 주장하였다. 장자는 <장자> 중 <소요유>에서 여러 우화를 거론하면서, 세상이 거대하고 도에 따라 돌아가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에 비해 인간사는 매우 작고 덧없는 것이며, 이에 장자는 인간상에 집착하지 말고 다른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도의 경지에 오를 것을 주문하였다. 그러한 경지는 욕망과 인간사, 심지어 물질적 조건에서도 자유로이 벗어나 있고, 자연 만물과 조화된 상태로 묘사된다.

 

 

동양철학의 명실론

명실관계는 어떤 대상의 명칭과 실제 사이의 관계로, 고대 중국인들이 사회정치적 혼란을 해결하여 질서를 건립하기 위해 몰두한 문제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사회혼란의 원인이 이름과 실질이 괴리되어 서로 부합되지 않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명실관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자는 명(名)으로 실(實)을 바로 잡는 정명론을 제시하였으며, 묵자는 실을 취해서 명을 부여하는 견해를 주장하였고, 노자는 무명론(無名論)을, 열자는 실을 해치지 않으면 명을 허용하는 완화된 무명론을,[각주:9] 공손룡은 명실론 등을 제시하였다. 순자는 이들의 주장을 공자의 정명론을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종합하여 실천적 측면과 논리적 측면을 모두 집대성한 정명론을 창시한다.[각주:10] 

 

현실정치에서 명칭(명,)의 중요성에 처음으로 주목한 사람은 공자이다. 명과 실제의 괴리가 사회문제를 낳는다고 공자가 주장한 이후, 이런 주장에 동조한 학풍을 명학이라 일컫는다. 명학은 명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이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는 순수학문을 목표한 언어철학과 다르다.[각주:11] 순자 역시 공자의 학통을 이어받아 명을 바로잡는게 정치의 근간이라고 주장했다.[각주:12] 그는 당대 명가를 저격하여 명가의 궤변이 명을 혼란시켜 사회혼란을 초래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형태의 사건에 대하여 서로 다른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고, 여러 가지 다른 사물의 이름과 사실이 서로 어지럽게 매어져서 귀천의 차등이 밝혀지지 않고, 같고 다름의 한계가 구별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뜻에는 반드시 알리지 못하는 근심이 있게 되고, 일에는 반드시 곤란하고 망가뜨리는 재앙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위해 분별하여 이름을 만듦으로써 사실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이것으로 위로는 귀천을 밝히고, 아래로는 같고 다름을 가려낸다. 귀천이 밝혀지고 같고 다름이 구별된다면, 뜻에는 알리지 못하는 근심이 없게 되고, 일에는 곤란하고 망가뜨리는 재앙이 없게 된다. 이것이 이름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각주:13]

 

순자는 명의 기능을 작위와 등급을 나누고 형법과 예절의식을 이름하며 자연현상을 지칭하는데 두었고, 이것이 바로 서지 않을 경우 가치관의 혼란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순자에 따르면 명은 무언가에 부여하는 순간  해당 사물에 대한 사실을 명확하게 하여 의미를 바로잡고 그에 따라 가치관을 안정되게 하였다.[각주:14] 그리고 공자의 주장이 주로 귀족 대상이었던데 비해 순자는 대상을 모든 인간으로 확장하여 상인과 농부도 정명의 대상에 포함시켰다.[각주:15] 이는 춘추시대에 비해 사회규모가 확대되고 사회변동성이 커진 전국시대의 역사적 특징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각주:16]

 

이 분야의 주요 연구자로는 故공자와 故노자가 있다. 공자는 처음으로 명실관계를 동양철학에 가져왔으며, 노자는 명을 중시한 공자의 정명사상에 반대하여 명을 버리고 실제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무명론을 주장하였다. 이 두 거두는 명실관계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서 가장 핵심이 된다.

 

 

니체와 불교[각주:17]

니체사상과 불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한국에서는 많이 이뤄졌으며, 이는 니체가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졌기도 하고 니체가 한국인에게 인기있는 철학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니체를 좋아하는 이들의 특성상 대부분의 연구는 니체의 불교관을 연구하거나, 니체와 불교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박찬국은 이에 반대하여 니체와 불교 사이에는 근원적인 차이가 있으며, 비록 니체가 불교를 오해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는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성리학

성리학은 송나라 이후에 등장한 유학 사상으로, 자연과 인간 심리를 설명하는게 특징이다. 이는 당나라 멸망 후의 혼란을 수습하고[각주:18] 몰락한 경학 대신 불교 및 도가에 대항하기 위해 나타났다.[각주:19] 후와일루(侯外庐)는 성리학이 왕안석의 신법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주장했다.[각주:20]

 

성리학에서는 유학 최초로 인간 심리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주장하였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주자)는 인간의 마음을 성과 정으로 나누었다. 은 천리의 직접적인 발현으로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천리고, 그 성이 바깥으로 발동할 때 그것을 이라 한다. 성은 인의예지의 4덕으로 되어있으며, 정은 4덕이 발동한 4단과 인간이 가진 일곱가지의 정서(칠정)로 구성되어 있다. 4단은 각각 4덕과 대응하는 동시에 오행과도 대응하는데, 측은지심은 목, 수오지심은 금, 사양지심은 화, 시비지심은 수에 대응한다. 그리고 토는 이 모든 것을 합한 신과 대응한다.[각주:21]

 

 

위아주의(양주)

『맹자』에 따르면 양주는 '내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에 이익이 되더라도 하지 않겠다.'라는 주장을 남겼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위아설(爲我說), 즉 이기/개인주의의 선구자였다고 볼 수 있다. 도가사상가의 일환이었던 양주는 인간의 욕망이 도의 발현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는게 도를 실천하는 길이라 보았다. 이런 주장은 나중에 열자에게도 전해지고,[각주:22] 전국시대 당시에는 꽤 인기가 있었던지 맹자집주에서도 '양주와 묵적과 같은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대목이 나온다.

 

 

선불교에서의 선악관

동아시아 불교에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점은 분별의 불인정이다. 도가도 그러하지만, 동아시아 불교에서도 사물을 분별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본다. 이는 동아시아 불교가 현학에서 유래한 도가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으로, 도가에서는 본래 구별할 필요가 없는 세상만물을 선함/악함이나 강함/약함 등의 잣대로 나누면서 세상이 혼란해지고 고통이 생긴다고 본다. 물론 달과 지구는 분명히 다른 천체이지만, 두 천체 모두가 공유한 유한성과 물리법칙의 동일성, 그리고 경로적분의 철학적 본질과 결 어긋남 이론을 고려하면 태양/지구 분별법이 반드시 타당하지는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지구의 공전 궤도를 분석할 때만 되어도 달과 지구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문제는 이러한 관점이, 마치 불교에서는 선악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점이다. 안옥선[각주:23]은 이러한 인식을 비판하고, 선불교에서는 선악을 분별하지 말라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물론 선불교에서는 선과 악의 절대적인 분별은 인정하지 않으며, 선과 악 모두 같은 도에서 나왔고 선 속에 악이, 악 속에 선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선과 악이 없다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악이 선의 일부이며, 악함은 선함이 탐진치에 가려진 상태에 불과하다. 이는 깨달은 자는 탐진치가 흩어지면서 자연히 선함에 기울어질 것이라는 해석[각주:24]을 가능케 한다. 모든 존재들의 진여는 자비이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마땅히 자비를 실천한다는게 선불교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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