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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저장고
서구 개인주의의 발생과 진행에 관한 견해 본문
개인주의는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논할 때 거의 반드시 등장하는 개념이다. 일찍이 계몽주의의 시대부터 개인주의는 현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는 개념 중 하나였고, 초기 사회학에서도 개인주의와 비슷한 개념을 통해 근대사회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후 인류학에서 개인주의의 이론화를 시도하면서 개인주의에 대한 논의가 사회과학에서도 시작되었고, 곧 여러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이 개인주의가 가진 막강한 영향력과 설명력을 밝히게 되었다.
개인주의에 대한 논의는 많지만, 개인주의가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발생했는가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서구에서 일어난 개인주의의 발생과 진행에 대한 현재의 가설은 불행히도 많은 경우 경험적 탐구의 결과가 아니라, 연구자의 선입견과 이데올로기의 반영에 머물고 있다. 여러 사회학자나 인문학자의 논의는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검증불가능한 거대한 주장에 의지하고 있다. 반대로 계량적인 사회학 가설이나 심리학자의 연구는 물질중심적이고 검증가능하나 역사적 고려가 상당히 떨어지는, 그래서 아주 작은 부분만 설명하는 가설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불행을 부분적으로 해결하고자, 필자는 역사적 관점과 과학적 발견을 모두 고려하는 가설을 제안하고자 한다. 운이 좋게도 필자는 여러 심리학적 문헌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가졌고, 또한 근대의 발생에 대한 역사적/인문학적 논의에 접근할 기회 또한 얻었다. 개인주의에 대한 과학적 지식와, 서구 개인주의의 발생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왜 근세 유럽에서 개인주의가 발생하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왜 전세계로 확산되었으며,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해하고 탐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서구 개인주의의 기원
서구 개인주의의 발생에 대한 논의는 초보적이거나 사변적이지만, 개인주의의 발생에 대한 이해는 이미 충분히 쌓여있다. 여러 문화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개인주의는 유동적인 공동체에서 혼자 일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과 일하는 경우가 많은 사회에서 발생한다. 즉 고정된 마을이 아니라 여러 지역과 국가에서, 이웃집 주민이 아니라 처음보는 이국의 상인과 거래하거나, 혼자 서류를 처리하고 탐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발생하기 쉽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았을때, 서구의 개인주의는 상인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중세 상인은 여러 측면에서 개인주의적 생활양식에 부합한다. 이들은 여러 지역에 퍼진 길드에 소속되어, 아주 멀거나 심지어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과 거래하거나 직접 오가면서 상업 행위를 한다. 이들이 수행하는 흥정, 계산, 매입/판매, 환전 등은 농부나 어부가 수행하는 작업과 달리 많은 부분을 개인이 수행하며, 같이 일하는 대상도 유동적이다. 이러한 특성은 상인이 농부나 어부보다 개인주의를 발달시키기 더 쉽게 만든다. 특히 중국과 달리 유럽 상인은 국가의 명령이나 통제를 거의 받지 않았고, 그만큼 더 개인적으로 일해야 했다.
그렇다면 중세말 유럽에서 진행되었던 상업화가 유럽에서의 개인주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을 수도 있다. 페스트 유행이 종식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왔고, 농업기술의 발달과 후추로 대표되는 국제교역은 상업의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상업화의 물결은 도시를 넘어 농촌까지 스며들었고, 많은 농민이 경작자인 동시에 도시 상인과 계약하는 수공업자가 되었다. 이러한 상업의 발달과 확산은 유럽 전반에 걸쳐 상업의 영향력을 키웠고, 개인주의의 영향력도 키웠을 것이다.
특히 도시화는 중세 유럽은 물론 지금도 개인주의화를 촉진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변수 중 하나이다. 도시는 그 특성상 많은 사람이 서로 유동적으로 관계맺는다. 물론 길드나 교회와 같이 도시에도 고정된 공동체가 있었지만, 그들마저도 자신과 오랜 안면이 없는 여러 파트너와 고객과 협업해야 했다. 또한 도시에는 분업화의 결과 출현한 다양한 직군의 종사자들(특히 중산층)이 거주하였으며, 이들은 농부에 비해 개인주의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자동맹과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수많은 도시들은 이러한 중산층의 요람이 되었고, 곧 서구 개인주의의 요람이 되었다.
도시화 및 상업화와 함께, 소득과 교양의 증가도 개인주의에 기여했을 수 있다. 급격한 상업화와 경제발전은 전반적인 소득 수준을 높였고, 동시기에 나타난 금속활자는 지식의 보급을 가속하였다. 비록 이렇게 보급된 지식이 가져오는 영향은 지식의 내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전반적인 연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미국)뿐만 아니라 독재국가(러시아)에서도 교육수준이 개인주의를 높인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여러 연구에서 교육수준은 권위주의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데, 권위주의는 개인주의 수준을 낮추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교육과 소득은 중산층으로 하여금 개인주의자가 되게 도왔을 수 있다. 다양한 사실과 사고를 배운 중산층에게 기존의 규범과 공동체의 영향력은 더 약하고, 이미 스스로 생각하는 일에 종사하던 중산층에게 교양의 증가는 지적 독립성을 가중하여 개인주의 규범이 자라나도록 도왔을 수 있다. 이들의 높은 소득은 그러는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고정된 공동체의 압박에서 그들을 지켜주었을 것이다. 교육과 소득은 중산층을 기존의 공동체로부터 지적으로, 생계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지금의 중산층이 그러하듯이 이들을 더 개인주의적으로 만들었을 수 있다.
이러한 변수들은, 왜 유럽과 북미에서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반면 라틴아메리카는 집단주의 사회로 남았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는 개척자의 후손에 의해 구성되었고, 지금도 relational mobility가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라틴아메리카가 개인주의는 커녕 동아시아와 동급의 집단주의 사회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주 산업은 농업이었고, 도시화도 비교적 낮았다. 이러한 차이가 같은 개척자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앵글로아메리카는 개인주의로, 라틴아메리카는 집단주의로 향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중세 말기 유럽의 상업발달은 유럽에서 개인주의화를 일으키고, 동시에 그 자신의 개인주의화를 더욱 가속했을 것이다. 발달된 자본주의는 도시화와 교육, 소득증가를 견인했고, 이들은 다시 개인주의화에 기여했다. 여기에 더해 상인들은 상업의 활로가 막히자 바다 멀리의 신대륙에서 대안을 찾았고, 카톨릭의 압제를 싫어했던 개인주의자들은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그 결과 서구는 개인주의를 향한 거대한 전진을 시작하였으며, 그 근본적인 원인은 상업화에 있었을 것이다.
개인주의의 영향과 전개
개인주의는 다양한 심리적 성향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개인주의화가 사람들의 마음, 그리고 그들이 모여 구성한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으리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주의는 자신을 낳았던 토대를 더욱 공고히 하였으며, 근대의 다른 세 축, 즉 탈주술화와 민주주의, 경제성장에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개인주의를 촉발했던 여러 흐름은, 동시에 개인주의화에 영향을 받아 가속화했을 수도 있다. 특히 필자는 종교개혁이 그 중 하나라고 추측한다. 자신에게 초점을 두고 자신의 가치와 생각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자들은, 오래된 전통과 해석에 의존하는 카톨릭과 불일치하는 점이 있었다. 위에서 내려주는 해석이 전통과 함께 강요되는 신앙은 개인주의적 신앙과 맞지 않다. 비록 루터가 개인주의적 동기에서 종교개혁을 실시했는지는 불명이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상인과 학자들이 개신교로 개종한 배경에는 그들의 개인주의 성향이 작용했을 수 있다.
개인의 가치와 생각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는 민주주의에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정치문화에 대한 오래된 이론에서, Almond와 Verba는 참여형 정치문화가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참여형 정치문화는 정치 현안에 대해 독자적이고 적극적인 의견을 가진 시민과, 이러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치체제를 통해 성립될 수 있다. 마침 유럽은 기원전까지 내려가는 의회의 전통이 있었고, 새로이 나타난 개인주의자들은 이제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중심으로 정치적 요구를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수용적인 정치체제와 결합하여 영국 민주주의로 나아가거나, 개인의 의견을 탄압하는 정부에 맞선 혁명의 불길로 이어졌다.
개인주의는 자본주의의 결과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의 발달과 경제성장에도 기여했을 수 있다. 이는 개인주의 규범이 집단주의 규범에 비해 시장 규범에 더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자들은 개인적 가치를 공동체의 가치보다 중시하며, 자신의 이익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개인주의 규범에서 개인의 존엄성 중시는 타인으로도 확대되어, 사유재산권과 같은 기본권의 인정과 협력적 상호작용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 둘은 실제로 개인주의 문화권에서 두드러진 상호작용 방식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개인주의 문화에서의 약한 집단 규범은 그만큼 개인이 혁신을 일으킬 자유를 제공하기 수월하다. 이러한 자기중심주의와 협력적 상호작용, 혁신은 경제성장과 시장화에 상당부분 기여했을 수 있다.
개인주의는 탈주술화를 촉진하는 효과도 있다. 이는 미국사를 대상으로 한 역사적 분석이나 WVS 데이터에서 모두 지지된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주의와 연관된 경제성장과 analytic thinking으로 설명될 수 있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볼 때, 개인주의는 각 사물을 맥락에서 분리해서 보는 analytic thinking이 강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모든 사물을 서로 연결된 것으로 파악하는 종교와 유사과학과 대립하며, 실제로 analytic thinking과 반대되는 holistic thinking은 종교인에게 강했고 유사과학 지지를 높였다. 거시적으로는, 개인주의 문화는 경제규모가 크고 HDI도 높은 경향이 있다. 이러한 변수는 사람들이 종교에 덜 의지하고, 세속적 삶과 과학에 더 의지하게 만들수 있다.
개인주의는 직접적으로만이 아니라 간접적으로도 탈주술화에 기여했을 수 있다.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대항해시대와 종교개혁으로 기존의 규범이 흔들리자, 유럽 각지에서 새로운 사상적 조류가 나타났다. 부국강병을 꿈꾸던 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다양성을 포용하면서도, 통일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사상 또한 필요로 했다. 때문에 유럽의 사상가들은 독창적이면서도 다른 사상까지 포섭하거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사상을 고심하였고, 많은 사상들이 다양한 부분에서 서로 경쟁하였다. 운이 좋게도 계몽주의자들은 과학적 법칙이 존재하는 세상에 있었고, 세상의 힘을 빌려 물질 영역에서의 우위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탈주술화는 과학이 종교와 경쟁하여 승리한 결과였으며, 개인주의는 그러한 경쟁이 발생하도록 지원했을 수 있다.
그러나 본 글에서 제시한 인과관계가 모든 상황에서 작동하지는 않을 수 있다. 가령 개인주의와 탈주술화의 경우, 여러 연구에서 holistic thinking은 유사과학 지지를 높였지만 반대로 analytic thinking이 강하다고 유사과학을 덜 지지하지는 않았다. 또한 동양은 개인주의 수준이 낮고 실제로 유사과학 지지도 서구보다 더 강하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았으며 WVS에서 상당히 비종교적이고 세속적인 문화로 분류되었다. 게다가 타이에서 문자교육은 개인주의 수준을 높이지 않았으며 이는 서구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달랐다.
이는 서구의 개인주의화가 반드시 위에서 서술한 방향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위의 설명은 근대의 효시로 간주되는 영국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다른 근대화 과정을 거친 국가들(프랑스, 공산권, 독일 등)에서는 다소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을 수 있다. 이것이 다음에서 필자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다루는 이유이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비교한다면, 전반적으로 계몽주의가 낭만주의보다 더 개인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계몽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하고 그렇다고 개인의 표현을 억압하지는 않는다. 반면 낭만주의는 개인의 자기표현을 중시하긴 했지만, 공동체를 강조하고 공동체와의 연결을 중시했으며 종국에는 파시즘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는 개인주의의 두 하위차원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볼 때 계몽주의는 WVS의 secular 차원의 반영으로 보이며, 낭만주의는 self expression 차원의 반영으로 보인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낭만주의를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정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낭만주의는 개인주의에서 그러하듯이 개인의 직관을 중시하고,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며, 자기표현을 장려한다. 이러한 낭만주의를 일으킨 이들은 주로 중산층으로, 개인주의가 가장 강한 계층이다. 이와 반대되는 파시즘, 신앙, 관습 추종 등은 바이저가 자유주의라고 정의했던 초기 낭만주의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반면 그러한 집단주의적인 특성은 후기 낭만주의에서 강해지며, 자연을 모두 연결된 실재로 간주하는 holistic thinking은 셸링에서부터 두드러진다. 낭만주의에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특성이 모두 혼재되어 있으며, 계몽주의와 비교할때 더욱 그러하다.
이 수수께끼를 풀 때 우리가 고려해야할 몇가지 사항이 있다. 먼저 낭만주의는 독일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독일은 근대화의 물결에서 멀었던 국가고, 벌린에 따르면 계몽주의 국가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세계에 대한 종교적이고 비환원주의적인 이해와 집단 및 관습 존중이 특징인 독일 보수주의로 이어졌다. 이러한 보수주의와 비교할 때, 낭만주의는 비교적 개인주의에 가깝다. 보수주의와 달리 낭만주의에서는 개인의 자기표현을 더 강조하고, 개인의 권리를 더 지지한다.
낭만주의의 인구학적 배경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낭만주의는 독일 중산층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이들은 대개 교육의 수혜를 받아 영향력있는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때 이들이 받았던 교육이 영국과 프랑스에서 실시한 교육과 다를 수도 있다. 계몽주의의 선두주자에 비해 독일 교육에는 과학 커리큘럼이 부족했고, 대신 권위를 옹호하는 과목은 많았을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은 중산층을 개인주의가 아닌 집단주의로 이끌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두 배경을 조합한다면, 낭만주의는 '독일화된 개인주의'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낭만주의의 창시자는 독일 중산층이었지만, 영국과 네덜란드와 달리 이들은 더 집단주의적 배경에서 자라났다. 이들이 태어난 곳은 보수주의가 주류 사조였고, 그들도 그러한 내용을 교육받았다. 때문에 이들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세계관과 윤리는 타협한 절충적인 개인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초기 낭만주의로 나타났다. 이후 낭만주의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낭만주의의 지지자들은 전체적으로 집단주의에 더 기울어졌고, 그 결과 우리가 아는 집단주의적이고 파시즘적인 후기 낭만주의가 나타났다.
독일화된 개인주의가 서구 개인주의에 끼친 영향은 어떤 측면에서는 절대적이나, 어떤 측면에서는 아닐 수 있다. 예술이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정착한 것은 분명히 낭만주의의 공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낭만주의는 자기표현의 강조를 어느 사상보다 빨리 개념화하여 지성에 도입하였다. 그러나 낭만주의가 개인주의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사실과 멀어보인다. 개인주의적 사상은 일찍이 르네상스에서부터 나타났으며, 낭만주의의 기여라고 하는 여러 항목(자기의 중시, 자기표현의 용인)은 낭만주의와 전혀 연관이 없는 맥락(일본 어촌, 실험처치)에서도 자연발생한다. 그러한 항목을 사상화한 순서는 낭만주의가 우선할 수 있으나, 과학적 사실에 비추어본다면 낭만주의가 없었더라도 자기를 중시하고 자기표현을 장려하는 문화는 자연발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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