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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적 성차에 대한 주관적인 시각

과학주의자 2022. 5. 21. 00:40

필자는 남녀가 다른가 같은가에 대한 문제는 철학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심리학적 수준에서 차이의 정도를 논하는 기준은 적당히 정립되었지만, 아직은 불안정하며 어떠한 철학적 기반이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남녀가 다른지 같은지에 대해 의견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심리학에서 어떤 경우에 '다르다'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 결론이 내려져야 한다.

 

이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은 어떠한 차이가 있다면 무조건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가령 물체 a와 b가 있을때, 물체 a에는 1nm의 뿔이 있고 b에는 없다면 우리는 1nm의 뿔을 통해 a와 b가 다르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를 심리학적 다름의 정의로 수용하는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심리학에서는 인구를 어떠한 기준으로 나누건 거의 필연적으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피험자를 지역으로 나누거나, 소득으로 나누거나, 심지어 수기로 무작위 배정할 수도 있다. 그러한 경우에도 우리는 표본수집 절차의 편파성에 의해 거의 반드시 두 집단 사이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나뉘어진 인구집단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적 다름의 정의는 고전적인 다름의 정의와 달라야 하며, 심리학적 실정에 맞아야 한다. 이러한 정의는 철학적으로 심리학적인 다름의 개념을 잘 포착해야 하며, 동시에 심리학적 차이의 여러 특성들(통계적 유의미함, 효과크기, 패턴 양상 등)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한 작업을 심리학자가 수행할 수도 있지만, 슬프게도 대다수의 심리학자는 분석철학적 기법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아예 분석철학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심리철학자에 의해 잘 수행될 수 있으며, 특히 심리철학자가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을때 더 잘 수행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심리철학적 지혜가 요구되는 바이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필자는, 비록 심리철학의 전문가가 아니지만, 심리학적 성차를 규정하는 한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필자는 남녀가 같은지 다른지 여부를 공통이론집합을 통해 판별하자고 제안한다. 공통이론집합이란 여러 공통이론의 문장이 결합된 T문장으로, 여기서 공통이론은 남녀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는 이론이다. 거의 대부분의 심리학 이론이 공통이론에 해당하는데, 가령 작업기억 이론은 남녀간의 차이를 상정하지 않고 작업기억 기제가 모든 남녀에게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반대로 배우자선호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이론은 남녀의 배우자선호가 굉장히 다르다고 가정하며, 남녀의 시공간지각능력 차이에 대한 주류 견해도 남녀의 선천적인 차이를 가정한다.

 

우리가 공통이론집합의 개념을 도입하는 경우, '남녀는 같다.'라는 명제는 '남녀는 공통이론집합에 의해 잘 설명된다.'라는 명제와 동일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통이론집합은 남녀에 어떠한 차이를 두지 않고 같은 방식으로 남녀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통이론집합이 완전히 남녀의 차이를 부정하지는 않음에 주목하라. 가령 작업기억 이론은 여성이 수학과제에서 낮은 수행을 보인다고 예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작업기억은 불안이 발생할때 큰 침해를 받는데, 여성은 고정관념 위협으로 인해 수학과제를 수행할때 불안을 경험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측은 남녀의 차이를 예측하기는 하지만, 예측에 사용된 모든 기제는 남녀 공통이다. 또한 적절한 방식을 동원하면 이 차이는 사라지거나 역전될 수 있다. 

 

공통이론집합을 통한 정의의 장점은 이 정의가 심리학적 연구의 본질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본질은 남녀가 다른지 같은지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개발하는 것으로, 주류 심리학자나 진화심리학자 모두 남녀를 포괄적으로 잘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기 위해 몰두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이 타당한지의 여부는 이들의 이론이 얼마나 성과를 내는지를 통해 측정될 수 있다. 또한 공통이론집합을 통한 정의는 연구에 다른 실용적인 이익을 주는데, 왜냐하면 연구현장에서 '남녀는 공통이론집합에 의해 잘 설명된다.'는 명제는 '연구에서 남녀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성비를 맞추거나 각 성에 맞는 추가적인 설명 메커니즘을 제공할 필요성을 덜어준다.

 

또한 공통이론집합을 통한 정의는 관행적인 심리학적 기준을 통해 판별될 수 있다. 우리가 '남녀는 다르다.'라는 명제를 '남녀는 공통이론집합에 의해 잘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정의하는 경우 우리는 기존의 연구도구를 통해 이를 검증할 수 있다. 확인적 요인분석은 서로 분리되거나 연관된 여러 요인을 통해 데이터를 설명하는데, 설명변량이 60%를 넘기면 좋은 모델이라고 평가되고, 설명변량이 80-90%를 넘기면 아주 좋은 모델이라고 평가된다.(50% 이상이면 고려할 만은 한 모델이라고 평가된다) 이는 다른 다변량 통계인 회귀분석과 구조방정식 모델에서도 동일하다. 그리고 공통이론집합을 통한 설명은 여러 요인을 통해 데이터를 설명하는 다변량 통계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도 공통이론집합이 인간행동을 60%이상(혹은 80% 이상) 설명하는지 여부를 통해 남녀가 같은지 다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우리가 공통이론집합을 통한 정의를 받아들일 경우, 우리는 남녀가 동일하다는 주류 심리학적 견해를 잠정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남녀의 차이를 조사한 가장 대규모 연구는 원문에서 언급된 zell과 krizan, teeter의 연구[각주:1]인데, 이 연구에 따르면 384개의 분야에서 남녀간의 차이가 컸던 분야는 전체의 14.5%를 차지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 85.5%에서는 남녀의 차이가 없거나 작다는 얘기가 된다. 이때 남녀의 차이가 표준편차의 0.25보다 작은 차이(즉 d<.25)는 고려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것이 유의미한지 여부를 떠나 대부분의 상황에서 설명력 1% 정도의 요인은 모델의 설명력에 거의 보탬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뇌과학에서는 6%의 설명력도 작은 것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유의미한 설명력 증가와 예측력 증가가 가능한 요인들만 고려하는 경우 전체의 14.5%만을 차지하며, 즉 14.5%의 분야를 제외하면 남녀는 공통이론집합에 의해 매우 잘 설명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거의 절대다수의 심리학 이론은 남녀차이를 상정하지 않으며, 높은 설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며, 남녀의 차이가 무시할만큼 작다는 젠더유사성 가설과도 부합한다.

 

이처럼 공통이론집합을 통한 정의는 남녀가 같은지 다른지에 대한 논쟁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논쟁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이러한 정의는 남녀가 같은지 다른지에 대한 주장의 핵심을 잘 잡아내고, 심리학적 연구와 실질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심리학적 연구도구를 통해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필자는 공통이론집합을 통한 정의가 남녀의 차이를 다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바이다. 물론 필자는 심리철학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추가적인 철학적 분석과 비판이 요구된다.

  1. Zell, E., Krizan, Z., & Teeter, S. R. (2015). Evaluating gender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using metasynthesis. American Psychologist, 70(1), 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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