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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영성에 대한 고찰 - 3단계: 신화적 사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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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영성에 대한 고찰 - 3단계: 신화적 사고

과학주의자 2024. 1. 21. 16:44

현재 신화의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무지몽매한 종교인이 아니라면 모두들 신화가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실상 신화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세속화된 형태로 우리 주위에서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이는 신화가 우리에게 강력한 의미, 강력한 확신을 동반한 광범위한 의미체계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신화

3단계 사고는 신화적 사고이다. 여기서 신화란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체계적인 방식을 말한다. 가령 그리스 신화는 세상의 탄생과 진행, 각 사물과 동식물, 나라의 유래에 대해 설명한다. 단군 신화는 고조선의 탄생에 대한 설명이다. 굳이 과거의 신화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신화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골수 민주당 지지자는 세상을 선한

민주당이 악한 국민의힘과 투쟁하는 장으로 바라본다. 스타워즈는 비록 가상적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스타워즈 덕후들은 현실을 이해하는데 스타워즈를 통한 비유를 줄곧 들곤 한다.

 

신화와 과학의 차이는 비과학성과 가치에 있다. 과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걸러진 주장만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가치는 최대한 억제된다. 그러나 신화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철저히 직관에 의존한다. 그리고 대개의 신화는 매우 가치편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많은 고구려인은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을 믿고 고구려의 신성함을 높게 평가하였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아주 작은 의혹만으로도 민주당이 악과 위선의 세력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린다. 이러한 판단은 객관적 근거는 부족하면서, 상당히 가치편향적이다.

 

신화의 또다른 특징은 서사성에 있다. 많은 신화는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바리데기 굿을 수행하는 무당은 바리데기의 능력과 역할을 하나의 이야기의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어떤 사물이나 국가의 유래를 이야기의 형태로 설명한다. 현대에 와서도 사람들은 자기 국가를 이야기를 통해 파악한다. 한국인은 높은 GDP나 6척의 이지스함 전력으로 한국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려나 조선 등 과거의 맥락을 통해 한국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한다. 우크라이나전쟁 초반부에 유발 하라리는, 전쟁이 자아내는 항전의 이야기가 우크라이나 국가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화는 과학보다는 훨씬 직관적이고 가치판단적인 설명이다. 그리고 상당히 서사적이다. 이러한 신화는 다른 어떤 지식체계보다도 우리에게 강력한 의미를 제공한다.

 

신화의 강점

신화의 강점은 그 호소력에 있다. 논리적으로 보았을때 신화가 과학이나 개인의 가치체계보다 낫다고 볼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신화는 과학보다 인간에게 강한 영향을 끼치고, 개개인의 가치체계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아직도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은 의사보다는 샤먼을 더 신뢰한다. 현대문명에서는 과거의 신화가 상당히 퇴색되었지만, 그 빈자리를 현대의 신화가 채우고 있다. 돈을 통해 군대를 유지하고 움직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많은 국민국가에서 강한 군대를 유지하는 비결은 국가라는 거대한 신화를 통해 군인과 국민의 지속적인 충성심을 이끌어내는데 있다. 또한 종교는 그 어떤 사업보다도 인력과 자금을 자발적으로 동원하기 쉬운 방법이다.

 

신화는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는가? 첫번째는 그것이 가지는 서사성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신화는 이야기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고정된 지식의 형태로도 이해하지만,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때 단순한 지식보다는 서사가 인간을 설득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미지를 구축하거나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은 단순한 정보전달보다 이러한 서사를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두번째 강점은 보편성에 있다. 신화는 상당히 보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때 세상에 정말 다양한 신화가 있고 신화마다 정말 판이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신화가 보편적이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물론 각각의 신화가 가진 이야기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신화들이 공유하는 어떤 특성들이 있다. 신화학자들은 세계 각지의 신화를 연구하면서 신화들이 공유하는 특정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것을 '신화소'라고 이름붙였다.

 

신화소는 신화를 이루는 벽돌이다. 그리고 이 신화소는 여러 신화에서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한반도의 건국신화는 대개 영웅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공유한다. 중동 신화와 바이킹 신화는 모두 저승을 땅 밑에 있는 장소로 이해한다. 어떤 신화소는 거의 모든 신화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악의 탄생이나 영웅 이야기, 세상의 탄생은 어느 신화에서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현대신화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대안우파는 현대세계를 타락으로 바라보고 대안우파 사상을 통해 이러한 타락을 극복하여 다시 아름다운 문화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의 타락과 영웅의 출현, 질서의 회복은 아주 전형적인 영웅 서사이다.

 

신화의 보편성은 집단무의식에서 기원한다고 여겨진다. 집단무의식이란 인간 모두가 공유하는 무의식으로, 다른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면서 인간의 행동과 생각, 꿈 등에 영향을 끼친다. 특히 개인적 무의식이 상쇄되는 집단에서는 더욱 영향력이 커진다. 신화학자들은 사람들이 이 집단무의식을 공유하고, 집단무의식이 신화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신화를 만드는 원초적인 사고체계를 우리 모두가 이미 가지고있기 때문에 우리는 비슷한 신화를 공유하고, 신화에 설득되기도 쉬워진다.

 

신화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설명하고, 그 기반에는 우리의 강렬한 무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둘 모두 인간의 직관에 잘 들어맞는다. 우리의 원초적인 직관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설명하는 현상이 정말 광범위하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신화적 사고의 조건

신화가 주는 확신을 가지고 본다면 과거의 신화가 더 호소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신화는 각종 팩트를 통해 교차검증되기도 하고, 합리성이 개입되어 집단무의식과도 약간 거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리스 신화나 켈트 신화를 사실로 믿지는 않는다. 더욱이 삶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이는 신화가 가지는 한계, 비합리성에 의한 것이다.

 

아무리 신화가 강력하다고 해도, 신화가 결국은 비현실적인 설명이라는 점은 우리를 가로막는다. 신화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인 해석이다. 거기에 객관성은 없으며, 이는 사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우리의 정확성 추구 동기와 대립한다. 이것이 특히 탈주술화된 현대인에게는 강할 수 있다. 우리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된 자의 후손이고,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뱀인 누군가가 우리에게 농사를 전해줬다는 주장을 어떻게 믿는가?

 

이러한 충돌은 신화부터는 영성의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신화는 종교의 원초적인 형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와 마찬가지로 속세를 초월하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초월적 존재는 대개 비현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성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결국 논쟁으로 가면 초월적 존재를 주장하는 쪽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영성의 문제는 상대방이 초월을 납득하고, 그것도 화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납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현실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은 매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일종의 '도약'이 요구된다. 우리가 초월적 존재를 믿어야 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우리는 결단을 내려서, 앞으로는 초월적 존재를 믿겠다고 결심할 수는 있다. 이러한 믿음은 논리적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선택의 결과이다. 대부분의 개종자는 치밀한 논증을 통해 종교를 전향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결단을 통해 종교를 바꾸었다. 정확히 같은 과정이 영성에도 요구된다. 테르툴리아누스가 말했듯이, 이해를 해서 믿는게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사실 우리가 과학적 사고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러한 결단은 쉽게 해소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현실을 왜곡해서 지각한다. 있지도 않은 가치나 당위를 부과할 뿐더러, 자신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 거짓을 믿기도 한다. 단지 자신의 믿음에 맞다는 이유로 천연비타민이 인공비타민과 다르다고 믿는다면, 천연비타민보다 더 좋은 '축성된' 비타민을 믿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실제 세상과 다르다는 점을 자각한다면, 그 세상을 보다 신화적으로 바꾸는 일도 더 수월할지 모른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신화적 설명이 실제 사실과는 다르지만, 동시에 그것이 실제 사실과 아주 동떨어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월식이 늑대가 달을 삼켜서 생긴다는 주장은 실제 사실과 다르지만, 적어도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진실이다. 그러한 신화는 월식의 실제 모습(달이 사라짐)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며, 우리가 세상에 부여한 이야기다. 비록 그 주장 자체는 틀렸지만, 내가 그것을 믿고 있다면 '내가 그 주장을 믿는다'는 사실은 진실이다. 또한 '내가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생각한다'는 사실도 진실이다.

 

윤회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하지만 우리 몸의 원자가 죽음 이후에도 다시 무언가를 이룬다는 점에서 그것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윤회는 그러한 순환을 우리가 해석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우리가 부여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지각하고 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된다. 죽음을 '나쁨'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죽음을 '윤회의 단계로 보이는 것'으로 이해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객관적 세계가 아니라 주관적 세계,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집단무의식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사실이다. 이 집단무의식의 세계가 객관적 세계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당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든(혹은 신화를 거부하든), 신화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도약이 필요하다. 현실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세상이 있다는 믿음을 내면화할 수 있어야 신화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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