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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저장고
꽃잎이여 서지월 한 세상 살아가는 법 그대는 아는가. 물빛, 참회가 이룩한 몇 소절의 바람 옷가지 두고 떠나는 법을 아는가. 눈물도 황혼도 홑이불처럼 걷어내고 간난 아기의 손톱같은 아침이 오면 우린 또 만나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꽃이 피는 것과 소유하는 일이 서로 반반씩 즐거움으로 비치고 있는 그 뒤의 일을 우린 통 모르고 지내노니 흉장의 일기장 속 꼭꼭 숨은 줄로만 아는 풀빛, 그리울 때 산 그림자 슬며시 내려와 깔리는 법을 아는가. 눈썹 위에 눌린 천장을 보며 아들 낳고 딸 낳고 나머지 옥돌같이 호젓이 앉았다가 눈감는 법을 그대는 아는가.
부활송 구상 죽어 썩은 것 같던 매화의 옛등걸에 승리의 화관인 듯 꽃이 눈부시다 당신 안에 생명을 둔 만물이 저렇듯 죽어도 죽지 않고 또다시 소생하고 변신함을 보느니 당신이 몸소 부활로 증거한 우리의 부활이야 의심할 바 있으랴!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진리는 있는 것이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달게 받는 고통은 값진 것이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우리의 믿음과 바람과 사랑은 헛되지 않으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우리의 삶은 허무의 수렁이 아니다 봄의 행진이 아롱진 지구의 어느 변두리에서 나는 우리의 부활로써 성취될 그날의 우리를 그리며 황홀에 취해 있다
봄이여, 사월이여 조병화 하늘로 하늘로 당겨오르는 가슴 이걸 생명이라고 할까 자유라고 할까 해방이라고 할까 4월은 이러한 힘으로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을 밖으로, 밖으로, 인생 밖으로 한없이, 한없이 끌어내며 하늘에 가득히 풀어놓는다 멀리 가물거리는 유혹인가 그리움인가 사랑이라는 아지랑인가 잊었던 꿈이 다시 살아난다 오, 봄이여, 4월이여 이 어지러움을 어찌하리
겨울 해변가에서 서정윤 소리치고 있다. 바다는 그 겨울의 바람으로 소리지르고 있었다. 부서진 찻집의 흩어진 음악만큼 바람으로 불리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했다. 아니, 물보라로 날리길 더 원했는지도 모른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겨울의 바다 오히려 나의 기억 한장을 지우고 있다 파도처럼 소리지르며 떠나고 있다. 내가 바닷물로 일렁이면 물거품이 생명으로 일어나 나를 가두어두던 나의 창살에서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그 바닷가에서 나의 모든 소리는 바위처럼 딱딱하게 얼어 버렸다 옆의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그 겨울의 바람이 나의 모든 것으로부터 떼어 놓았다.
애련설 愛蓮說 (연꽃을 사랑함을 설하다) 주돈이 水陸草木之花 수륙초목지화 물과 뭍에 나는 꽃 가운데 可愛者甚蕃 가애자심번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은데 晉陶淵明獨愛菊 진도연명독애국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自李唐來 世人甚愛牡丹 자리당래 세인심애목단 이씨의 당나라 이래 세상 사람들이 매우 모란을 좋아했다 予獨愛蓮之出淤泥而不染 여독애련지출어니이부염 나는 연꽃을 사랑한다,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고 濯淸漣而不妖 탁청련이부요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中通外直 不蔓不枝 중통외직 부만부지 속은 비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香遠益淸 亭亭靜植 향원익청 정정정식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可遠觀而不可褻翫焉 가원관이부가설완언 멀리..
꽃씨 서정윤 눈물보다 아름다운 시를 써야지.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대 한 사람만을 위해 내 생명 하나의 유리이슬이 되어야지. 은해사 솔바람 목에 두르고 내가 가슴의 서쪽으로 떨어지는 노을도 들고 그대 앞에 서면 그대는 깊이 숨겨 둔 눈물로 내 눈 속 들꽃의 의미를 찾아내겠지. 사랑은 자기를 버릴 때 별이 되고 눈물은 모두 보여주며 비로소 고귀해진다 목숨을 걸고 시를 써도 나는 아직 그대의 노을을 보지 못했다. 눈물보다 아름다운 시를 위해 나는 그대 창 앞에 꽃씨를 뿌린다. 오직 그대 한 사람만을 위해 내 생명의 꽃씨를 묻는다. 맑은 영혼으로 그대 앞에 서야지.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예블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
저녁 무렵 작자 미상 어둠의 부축을 받으며 수술한 상처가 가려워지는 저녁 무렵을 살아야 했다 마디 마디 소리하는 아픈 오늘을 묶고 가쁜 내일을 차비하는 힘찬 순간들을 살찐 기도 속으로 승화해야 될텐데 노을도 숙연해지는 원점위의 생활 연쇄 반응이 아쉬움 속에 울고 찾아야 한다는 집념이 엉킨 물결치는 울분으로 철없이 지나는 세월을 부숴야 했다. 샛별보다 더 빛나는 마음으로 아침을 돌아 나오는 태양을 기다리며 어둔 저녁 무렵을 부축해야 하는 이것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보잘것 없는 한편의 전설일 뿐이다.
이 하이쿠는 각 계절을 상징하며, 크리스토퍼 틴의 'Mado Kara Mieru'의 가사로 차용되었다. 기억을 쉽게 하기 위해 이렇게 모아둔다. 봄 핫토리 란세츠 매화 한송이 한송이 만큼이나 따스함이여 젖은 툇마루 냉이 캐서 놓았네 흙 묻히면서 얼굴에 묻은 밥알을 파리더러 떼어주더라 梅一輪 一輪ほどの 暖かさ 濡縁や 薺こぼるる 土ながら 顔に付 飯粒蠅に あたへけり --------------------------------- 여름 야마구치 소도 눈에 어린 잎이 보이고 산에 두견새가 보이니 초여름엔 가다랑어 생각이 나는구나 --------------------------------- 가을 치요조 가을 바람에 산을 둘러보았네 절의 종소리 --------------------------------- 겨울 마사오카 ..